516회
127일차
<그 시각, 마르코시아스 던전 심처.>
"하아, 이제 좀 쉴 수 있을 것 같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마르코시아스는 침대에 몸을 대자로 누웠다.
"다행이다...한 시간만 더 늦게 배웠으면 내가 마력 고갈 당할 뻔 했어...."
부하 마인들이 원소마법을 익혀 마르코시아스 대신 불을 끌 수 있게 되었고, 마르코시아스는 그들과 교대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러 자신의 방으로 귀환했다.
"으아아, 젠자아앙. 왜 미친 놈이랑 붙게 되가지고...!"
마르코시아스는 주먹으로 침대를 팡팡 두드리며 발광했다. 자신의 방을 남들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친 덕분에, 던전 주인의 위엄을 지키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폭탄을 던지는 거지? 안에 작은 고블린이라도 실었나?"
포털을 넘어오는 화염수레 안에는 분명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르코시아스의 상식으로는 화염수레 안의 작은 상자에 고블린이나 요정을 토막내어 집어넣고 포털 너머로 던지는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리치의 라이프 베슬을 넣어서 던지는 건가...? 근데 그러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나?"
적은 어떤 식으로 화염수레를 무차별로 던지는 걸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찰병을 포털 너머로 보냈지만, 온갖 방식으로 넘어가자마자 저격당하는 바람에 정찰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으으...나도 포털 앞에다가 공사 좀 해놓을 걸...!"
타산지석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스타로트는 영악하고 치졸하지만 배울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바닥 공간을 없애버려서 지상군의 침투를 막고...자기네는 투석기 같은 걸 이용해서 우리 던전을 공격하고...으으, 진짜 위험한 놈을 상대하게 되었어."
포털 앞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건 여느 던전 주인들의 기본이었으나, 아래 공간을 없애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통로 개조해야겠다. 다크엘프 새끼들 넘어오지 못하게."
아직 승리가 확정된 건 아니었지만, 마르코시아스는 빠르게 아스타로트 던전의 노하우를 훔쳐가고 있었다.
"분명 아래에도 길이 있겠지? 길이 있으니까 포털이 다른 곳으로 이동안 한 걸 거야. 그래, 소환진으로 가는 더 빠른 길이 아래에 있어. 끙...."
마르코시아스는 마물들이 죽기 전에 봤던 시야를 떠올리며 던전의 구조를 예측했다. 두 개의 층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언뜻 스쳤다.
"지하와 천장의 가시에 꿰뚫리는 것을 각오하고...음...."
"주인님!!"
마인이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왔다. 누가 노크도 없이 들어오냐 성질을 부리려 했지만, 총애하는 마인의 등장에 마르코시아스는 주먹을 내렸다.
"무슨 일이야?"
"저, 적이 이상합니다! 미쳤어요!"
"무슨 소리야?"
"그, 그게!"
마인은 귀까지 붉어진 얼굴로 굳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이렇게까지 흥분하게 만들었나 마르코시아스는 걱정이 되었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 순간, 마인의 정장바지 앞섶이 부푼 것에 마르코시아스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 설마 발기한 거야?"
"죄송합니다...상스럽게도 그만...!"
"크으...! 아스타로트 이 나쁜 자식! 화염수레에 발정제 성분을 섞어서 공격하더니.... 결국 당하고 말았구나!"
"아, 아닙니다. 그,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이건 그냥 발기한 겁니다."
"뭐? 왜?"
"......막 정찰 고블린을 던지기 직전이니까, 직접 보시죠."
마르코시아스는 마인의 제안대로 갓 소환했던 1성 고블린과 시야를 공유했다. 죽음을 앞두고 벌벌 떨고 있기는 했지만, 고블린의 눈꺼풀은 닫히지 않았다.
키익, 키이익.
고블린은 누군가에 의해 등이 떠밀렸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정찰을 보내는 고블린인 만큼, 등 뒤에서 마인들은 막대로 쿡쿡 등을 찌르며 포털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키이익!
포털을 넘어가자마자 고블린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르코시아스는 이전과는 다른, 새롭게 펼쳐진 나무 울타리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어...?"
착각일까. 아니면 피로에 눈이 삐어버린 걸까.
"다크엘프가 오크한테...?"
다크엘프들은 모두 테이블에 엎드린 자세로 포털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뒤에 서있는 오크들이 창과 방패를 든 채, 허리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는 것.
퍼억. 천장을 바라보던 고블린은 바닥의 가시창에 꿰뚫려 죽었다. 시야가 끊긴 마르코시아스는 소름이 돋았다.
"내,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아닙니다...! 놈들은, 아스타로트 던전의 오크들은 다크엘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크엘프들은 포털을 향해 활을 겨눈 채!!"
콰앙! 마르코시아스의 주먹이 침대를 강하게 내리쳤다. 방 안에 마력이 진동하시 시작했다.
"나를 깔보는 거야, 뭐야?!"
10m 거리 앞에 적진이 있는데, 그 앞에서 섹스를 하며 활을 겨누고 있다? 어이가 없다 못해 아스타로트에게 직접 찾아가 머리통을 뜯고 싶을 정도였다.
"이 개자식, 나를 능멸해?!"
누군가가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따위는 부하들을 떡치게 하는 것 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고.
"이런 도발 왜 하냐고!!"
제법 강력한 다크엘프들이 오크들에게 뒷치기로 범해지고 있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걸 자신을 상대로 하는 것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아악!"
존경할 뻔 한 적이 순식간에 변태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마르코시아스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굳어버렸다.
"아, 이것 또한 혹시?"
적을 화나게 만들어 정신을 흐트리게 하는 작전이 아닐까. 마르코시아스는 자신이 분노했다는 것에 적이 순간 존경스러웠다.
"설마 여기까지 계산한 거야...?"
"주인님, 저희 혹시."
"우리 뭔가 터무니없는 걸 건드려버린 게 아닐까?"
마르코시아스와 마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엘프가 화살을 쏜다.
목공들이 스키점프대를 이용해 화염수레를 쏜다.
그러니 오크도 뭔가를 쏴야한다.
그래서 오크들은 정액을 쌌다.
"어차피 둘 다 조준하고 쏘는 건 똑같지."
륜의 장담답게 쿠키엘프들은 뒷치기를 당하는 와중에도 50%의 명중률을 보이며 적을 저격했다. 말이 50%지 10명이 사로에 동시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3발만 맞아도 즉사인 적들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흐흐, 보는 입장에서는 더럽게 짜증나겠지?"
"어떤 의미에서 말입니까?"
"오크가 엘프 따먹고 있는데 안 빡치고 베겨? 흐흐흐. 샤이탄아, 엘프랑 하기 싫어하는 종족이 있더냐? 드워프 놈들도 엘프가 다리 벌리면 냅다 박을 걸?"
"확실히 그건 그렇죠. 마인들에게도 엘프는 제법 수요가 높은 종족입니다."
이쯤되면 그냥 엘프는 모든 종족에게 꼴리기 위해 태어난 종족이 아닐까. 정확히는 지금의 엘프들이 모든 종족에게 음심을 자극시킬 수 있도록 신수가 공들여 만들어낸 종족인게 분명하다.
"마인 새끼들, 오크들 질투하면서 달려들 게 뻔하다. 지금 오크들 몇 명이나 투입했어?"
"1:1로 꾸려놨습니다. 현재 40명이 지하 2층 최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쿠키엘프들 한 번씩 가버리고 나면 20명은 줄여. 그리고 20명 중 10명은 사로에서 쿠키엘프들한테 박고, 10명은 뒤에서 휴식 겸 화염수레 발사하라고 해. 오크들도 2교대로 돌린다."
"엘프들은 4조 2교대, 오크들은 2조 2교대로군요."
앞에서 활을 겨누는 쿠키엘프에게는 오크의 자지를 맛 볼 기회를. 그럼 분명 엘프들의 사기도 늘어날 것이며, 엘프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사격대에 서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자간 던전은 어떻게 됐지?"
"이제 막 소환시설의 등급을 올렸습니다. 1Q2W3E4R!은 제법 똑똑한 오크이니, 주인님께서 믿고 맡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렴 행정일은 제대로 하겠지. 흐흐."
이제부터 1Q2W3E4R!는 자간이라는 이름을 가져, 우리 군단의 원활한 목재 공급을 위한 행정 던전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파밍용 던전이라 전투에 나설 일은 거의 없지만, 자간은 그런 쪽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니 분명 적성에 충분히 맞을 것이다.
"엘프들 박는 대신 드라이어드한테 박으면 또 좋을테고. 흐흐, 역시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는 그만큼 보상이 따라야 해."
"열심히 일해야 할 시간에 성욕에 져서 약속 시간을 어긴 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아, 하이엘프 공주님이 엉덩이 살랑살랑 거리면서 꼬시는 데 안 박을 수가 있나. 그리고 나는 일을 한 것이다. 쿠키엘프들의 전의를 고양시키기 위해 군단장이 직접 나서서 사기를 끌어올렸지. 게다가 오히려 좋아할 걸? 봐라. 지금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위이잉.
포털을 넘었다. 나는 우리 군단의 중심지, 라스베가스의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나의 방문을 기다리는 세 남자가 나를 보고 예를 갖췄다.
"늦어서 미안하다. 섹스하느라 늦었다."
"아...역시.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저희도 잠시 실례했습니다. 대접 잘 받았습니다."
"접대 아니고?"
"저런, 군단장님께서는 성기사를 성으로 사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유감입니다."
나를 맞이한 남자, 바이스 엑슈얼은 자신의 뒤에 서있는 성기사 둘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나는 그들의 옆에 서있는 아인 안드라스 둘에 헛웃음이 나왔다.
"야, 성기사가 마족이랑 섹스해도 되는 거냐?"
"추기경 예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종족을 초월하여 자신의 씨를 널리 퍼뜨리는 것. 그것이 바로 여신님의 진정한 뜻이라고. 그러니 저희는 금기를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여신님의 뜻을 따르는 것일 뿐이지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마족이라고 한들 모두가 똑같은 보지인데, 일단 박고 싸면 똑같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역시 추기경의 오른팔 답군."
"아직 그분의 뜻에 따르려고 하면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제국에서는 제국의 법을, 왕국에 가면 왕국의 법을 따르라. 여신 교단의 교리 중 추기경 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교리지요. 여신교단이 각국에 무리없이 스며들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교리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법도를 존중한다. 확실히 여신교단의 침투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 라스토피아에 왔으면 라스토피아의 법도를 따라야지. 안드라스들과 정을 나눈 기념으로, 내 너희에게 명예시민의 자리를 내어주마. 행여나 성기사단에서 쫓겨나거나 인류연합에게 배신당해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면 라스베가스로 오너라. 마족박이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후후, 그러면 저희 여기다가 교회를 세울 지도 모릅니다?"
"마족들이 사는 곳이라고 교회를 배척할 성 싶더냐? 어리석은 녀석. 신성력을 사용하는 여사제가 있다면 신성력을 이겨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을 가르쳐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느냐."
"...과연. 마인과 섹스를 하려면 스스로 마기에 중독될 각오까지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잘 알았습니다."
잡담은 여기까지. 나는 바이스로부터 추기경의 서신을 전달받았다. 서신의 시작에는 최근들어 라스마켓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사과의 말이 적혀있었다.
"예하께서는 지금 함부로 밖에 나오지 못하십니다.
"음? 왜지? 미약 테러는 가라앉았을텐데."
"군단장님 덕분에 후작령 주민 중 절반 이상이 평균 1cm가량 길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레오 후작...이므신할 레오가 계속 추기경 님에 대한 감시를 풀지 않고 있습니다."
"응?"
나는 처음듣는 후작가의 상황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므신할은 성검의 용사라며? 성검의 용사들은 성녀랑 다같이 어디론가 떠난 거 아니었나?"
"예. 성녀님께서 대규모 축복을 걸어 사람들의 증상을 진정시켰습니다. 물론...그것에 질색한 이들도 있지만요."
하루가량 발정난 개새끼처럼 지내게 되지만 1cm가 늘어난다. 하지만 성녀의 정화를 받으면 효과는 줄어들고만다. 과연 성녀에 대한 여론이 좋을까, 아니면 나쁠까?
"이므신할 레오는 추기경 예하께서 발정의 저주를 사방에 뿌린 걸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런. 발기라는 건 자연현상인데 그걸 저주라고 표현하다니. 그냥 비가 좀 내렸을 뿐이고 사람들이 땅에 있던 것을 마음대로 주워갔을 뿐인데."
"아직까지 걸리지는 않았으나, 레오 후작은 분명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지금 저도 제법 무리해서 나온 겁니다."
이므신할 레오.
성검의 용사는 도시 전체에 성검의 힘을 이용해 경비 체제를 구축했다. 조금만 이상한 물건이 나온다 싶으면 바로 성기사단을 파견해 조치했다.
"음...아쉽군. 발정 저주의 만연함으로 자연 붕괴를 노렸는데. 안아키는 실패로 끝난 건가."
"성녀가 다 망쳤습니다."
"흐흐, 걱정마라.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비를 이용한 미약 분사. 땅에 떨어진 돈을 이용한 접촉 감염. 그리고 미약 성분이 짙게 물들어있는 천으로 만든 실크 속옷.
단지 그것만 성녀가 확인하고 갔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얼마든지 남아있다.
"성녀가 떠난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후작령의 인구 절반 가량이 음탕해진 지금이라면 더더욱."
우리는 제법 많은 것을 활용해 후작령 전체를 공략할 것이다.
"인간 놈들, 자지 1cm 씩 내가 키워주도록 하지."
성녀를 이용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