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14화 (513/800)

514회

127일차 <마르코시아스 던전.>

"이 새끼 벌써 몇 번을 죽는 거야?"

금발의 마인, 마르코시아스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짜증을 부렸다. 던전 내에 2인자라고 불러도 무방한 80레벨의 마인이 1분에 한 번씩 죽는 것에 짜증이 절로 났다.

"마석 아깝게...!"

말은 마석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초조할 뿐이었다. 2성 마족에게 마물 강화권을 모두 몰아줘서 '부활의 효율'을 늘렸으나, 벌써 강화권 30개 분량은 넘게 까먹으면서 죽고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부활!"

"...허억?!"

소환 시설에 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몇 번이나 죽었지만, 죽을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일어서는 그는 마르코시아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제가 약해서!"

"아냐, 아냐. 저쪽이 미친 거지. 신성력을 쓰는 놈들을 부하로 쓰고 있잖아?"

"제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너는 충분히 강해. 나보다 레벨이 고작 4 낮은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마르코시아스는 부하 마인에게 모든 던전의 재원을 털어넣었다. 다른 마인들도 대부분 비슷하지만, 자신이 던전 초창기부터 함께 던전을 발전시켜온 마인에게는 조금 더 애착이 있었다.

"저쪽이 이상한 거야."

"크으...죄송합니다. 놈이 조금만 멍청했어도 신성력을 어떻게 쓰는 지 알아냈을텐데."

"그래. 그건 좀 아쉽긴 하네."

부하 마인은 대화라는 명목으로 아스타로트 던전의 수비대장으로 보이는 오크에게서 정보를 캐내려 했다.

"천족이랑 인간이랑 교배시켰겠지?"

"검사와 마법사도 섞였을 수 있습니다. 가슴이 엄청 큰 걸로 보아, 엘프도 섞였을 수도 있구요."

"쯧, 교배식만 알아내면 바로 키메라에다가 섞어버리면 되는데."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용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자유롭게 사용하는 부하를 어떻게 만들어냈나 진심으로 궁금했다. 마물의 합성을 통해 각 종족의 우수한 점만 남기고 하나로 합성하는 것이 마르코시아스 던전의 병력 운용 방식이었다.

"키메라들은 어떻게 됐어? 반은 죽었는데 반은 아직 살아있어."

"...사실상 적에게 사로잡혔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젠장. 아으, 왜 하필 저런 미친 던전에 쟁탈전을 걸어서."

마르코시아스는 금발을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스스로 쟁탈전을 걸기는 했지만, 몽마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던 아스타로트 던전은 듣던 것과 크게 달랐다.

힘 대 힘.

정신공격이 통하지 않는 키메라를 이용해 몽마 군단을 힘으로 찍어누르려던 마르코시아스의 계획은 아스타로트라는 강대한 힘 앞에 틀어막히고 말았다. 던전의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포털이 양방향으로 열릴 때까지 방 하나 넘어가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도 포털 앞에다가 꼼수 부릴까?"

"지금 작업하기에는 늦었습니다. 적의 함정은 파악했으니 적진의 요새를 탈취하는 것으로 하죠. 다행히 직선형 울타리라 저희가 점거해서 써도 될 것 같습니다."

마르코시아스와 마인은 빠르게 전략을 수정하며 반격의 때를 살폈다. 이미 쟁탈전의 포털은 열려버렸고, 누구 하나가 죽기 전에는 싸움을 끝낼 수 없다.

"마을에서 잡아온 인간 여자들 있지? 그것들 몸으로 키메라 알 더 까자. 일단 정원 다 채울 때까지 병력부터 늘리자구."

"예. 그래도 정예 키메라들을 혹시 모르니...응?"

위이잉.

포털에서 미약한 반응이 나타났다. 마르코시아스는 급히 마술서를 펼쳐 적을 요격할 태세를 갖췄다.

"그래, 들어와! 우리도 지키는 싸움은 이골이 나있다고!"

"자, 잠깐만요! 지금 넘어오는 저건-"

구구구.

포털에서 땅을 구를 때마다 톱밥이 흩날리는 나무 끌차가 무언가를 싣고 안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족은 나타나지 않고 끌차만 나타난 것에 둘이 의아함을 느낀 순간.

화륵.

끌차 위에 실린 상자에서, 매케한 탄 내와 함께 기름 섞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르코시아스는 붉은 화마를 보자마자 마술서를 앞으로 보이며 마나를 방출했다.

"모두 피해!"

전방에 넓은 마나의 방어막이 펼쳐진 순간, 화염수레의 안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에 타다 남은 거친 톱밥을 뿌렸다.

콰아아앙------!!

포털을 넘어온 화염수레는 폭발했다.

화염수레'들'은 계속 폭발하고, 또 폭발했다.

***

불의 비를 내리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들의 세력에 대해서는 화공을 하기에 조금 꺼려지는 부분이 있지만, 마족을 상대로는 얼마든지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던전은 하늘을 날아갈 수 없는 실내공간.

당연히 하피 공군에 의한 화염병 투척이나 불화살 사격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적진을 뜨겁게 불지를 방법을 찾아내야했다.

그것이 바로 화염수레.

기름을 싣고, 화염병을 싣고, 안에 불씨를 피워 폭발하기 직전인 상자를 끌차에 실어 적진 포털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제약이 발생했다.

<알림> 무생물은 포털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냥 화염수레만 넣고 싶을 뿐이었으나 시스템은 편법을 가만두지 않았다. 물자를 수송하더라도 최소한 구울 몇 마리는 붙어서 포털을 넘어가야만 했다.

'그럼 생물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넘어갈 수 있나?'

의지가 없는 화염수레를 어떻게 하면 포털 너머의 마르코시아스 집에 정확히 배송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으로 '적 병력의 잔해'를 사용하기로 했다.

"키메라 시체는 아직인가?!"

"해체에 시간이 걸려요!"

"군단장님, 그간 전투에서 쌓아둔 시체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슬라미아들이 먹다 남긴 것들입니다!"

"가져와! 남의 집 쓰레기는 되돌려줘야지!"

그래서 나는 '생물의 일부'를 사용했다. 우리 군단의 병력을 화염수레에 실어 굴리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뜨려 죽인 키메라들을 비롯해 적의 시체를 활용하기로 했다.

무생물은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생물은 넘어갈 수 있다.

샤이탄은 생물이 존재하는 범위 주변의 것들을 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지하여 넘어갈 수 있게 한다며 말했지만, 자세한 건 치우고 '시체의 일부를 실은 화염수레'가 적 포털 너머로 배송이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다.

"다음!"

나는 내 앞에 준비된 끌차 위의 상자를 열어젖혔다. 기름이나 화염병과는 달리, 밤꽃냄새가 진하게 나는 육각형 상자에 나는 잠시 주먹이 울었다.

"크으...폐기 마액이 나오다니...!"

5성으로 진화하다보니 부작용 중의 하나가 나온 것이, 기존에 내가 4성 시절에 제작한 마액들이 모두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륜아, 맛 차이가 그리 심하더냐?"

"주인님. 1성일 때 박으셨던 제 애널이랑 4성 애널이랑 똑같아요? 맛 차이를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이제 저거 못 먹어요."

"...크흑! 반박할 수 없어 슬프다."

정확히는 소비자들이 ★★★★급 마액을 거부했다. ★★★★★급 마액을 다들 한 번씩 맛을 봐버렸기에, 이전의 맛은 거부하는 것이다.

"정말 슬프도다. 이 상자 안에 중급 마석이 최소 5개는 들어갔을텐데."

"대신 그만큼 효과가 나올 거예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화륵. 나는 마액의 위에 불씨를 집어넣었다. 마'액'이지만 사실상 녹아내린 마나의 유체같은 것이라 불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메어리, 이번 화력은?"

"최대에요. 10초 뒤에 폭발합니다."

마나에 의한 불꽃. 원소마법의 대가 그레모리에게서 기초르 배운 메어리는 성검도 성검이지만 마법도 마녀에 준하는 실력자였다.

"마액의 마나가 기름 역할을 해줄 거예요!"

파이어볼이니, 익스플로젼이니 하는 화염계 마법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고, 마나로 빚어진 화염구는 상자 안에서 마액의 마나와 섞여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좋아! 택배 갑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고객의 집에 배송하기. 나는 끌차의 손잡이를 뒤에서 잡고 앞으로 내달렸다. 전방으로 전력질주를 하여, 끌차에 내 무게와 관성을 모두 실었다.

"갑니, 어?"

"이 갯-"

포털의 너머에서 마인이 나타났다. 그는 살짝 그을린 얼굴로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이미 나는 수레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커윽?!"

수레는 놈의 영 좋지 못한 곳과 부딪혔다. 덕분에 수레는 잠시 멈춰버렸고, 나는 앞으로 전력으로 달려 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반송불요!!"

퍼--억. 나는 손바닥을 펼쳐 수레째로 놈을 포털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지막 순간 불꽃이 터져나온다 싶은 순간, 아주 운좋게 폭발이 포털 너머로 넘어갔다.

"...와, 씨발. 어떻게 그 타이밍에 딱 맞게 나오지?"

"주인님?!?!"

"괜찮다, 륜아. ...1초만 늦었어도 우리 던전 안에서 터질 뻔 했어."

진심으로 놀랐다. 놈은 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화염수레를 몸으로 막아버렸고, 내가 힘으로 밀어버리지 않았으면 포털 근처가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끙.... 바닥을 다시 들어올린 게 오히려 독이 된 건가?"

바닥 함정을 한 번 사용한 이후, 바닥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때문에 놈은 나오자마자 땅을 디디고 화염수레를 막을 수 있었다.

"난감하군. 다음에도 막히면 안 되는데."

"주인님, 그냥 터지기 직전인 걸 만들어서 집어 던지는 건 어때요?"

"그건 안 돼. 던지면 그냥 앞에서 굴러갈 게 뻔하다. 수레의 추진력과 무게가 함께 있어야 돼."

"하지만 지금처럼 막히면 안 되잖아요. 수레 자체를 쏠 수도 없고."

흠칫. 나는 륜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수레를 발사하는 거다!"

"...네?"

"륜, 역시 너는 내게 승리의 여신이다! 메어리, 바닥을 다시 열어다오! 나는 목공들을 불러올테니!"

잠시 뒤.

하나 더 추가로 소환하여 연구용으로 준 드라이어드를 맛보고 있던 목공들은 갑작스런 내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한 번 해보죠!"

"대충 말씀만 하셔도 알겠습니다!"

현자가 된 이들은 금방 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 발정 보드를 활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방어를 위해 만든 나무 울타리의 일부까지 허물며 우리는 새로운 장치를 만들어냈다.

* * *

포털의 방향이 바뀐 지도 어느덧 한나절.

"아아, 짜증나! 내가 왜 여기서 계속 불끄고 있어야 하냐고!!"

마르코시아스는 포털 앞 방으로 통하는 복도 앞에서 마술서를 펼친 채 계속 서있어야 했다.

언제 적이 수레에 실은 화염 폭탄을 던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물을 다루는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르코시아스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던전은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주기적으로 포털 너머로 날아오는 수레.

던전을 가득 채우는 매케한 연기.

불에 타들어감과 동시에 충격으로 사방으로 비산하는 나무 톱밥들.

그리고 그 사이에 숨겨진 미약한, 악의 넘치는 미약 테러. 불에 타들어가는 슬라임 점액의 미약 성분은 일부가 남아 기체가 되어 던전 안으로 스며들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던전의 마인들이 발정나서 전투력이 급감할 게 뻔했다. 마르코시아스는 마인들이 원소마법 중 물을 다루는 힘을 익힐 때까지 직접 소방수 역할을 해야했다.

쏴아아.

던전 천장에 만들어진 먹구름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는 불꽃의 열기를 잠재움과 동시에, 타들어가는 나무판자 속 미약의 성분을 던전 바닥에 가라앉혔다.

"후우, 후우."

마르코시아스는 마나로 기도를 보호하며 숨을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극독을 머금은 고블린을 포털 너머로 집어던지는 놈들은 종종 있었어도, 폭발하는 수레에 미약을 실어 테러를 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아스타로트...분명 원래 아스타로트가 아니겠지?"

본인이 그들로부터 분명 듣기로는 이런 자가 아니라고 했다. 원래 널리 알려져있던 아스타로트가 누군가에 의해 이름이 빼앗긴 게 틀림없다.

"엘프들이 단서인데.... 아으, 지금은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야. 일단 지키고 보자."

부하 마인들과 교대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마르코시아스는 두 눈을 부릅뜨고 포털을 노려봤다.

우우웅.

"...!"

포털이 빛나기 시작했다. 화염수레가 또다시 넘어온다는 신호였고, 마르코시아스는 마술서의 페이지를 넘겨 새로운 마법진을 그려냈다.

"인탱글!"

빗물에 젖은 땅에서 진흙이 나무뿌리처럼 돋아났다. 바퀴로 굴러오는 화염수레는 방지턱에 걸려, 포털의 바로 앞에서 폭발하게 될 것이다.

"조금 여유가 있으면 다른 대책을-"

부--웅.

화염수레가 던전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바닥에 깔린 방지턱을 만든 마르코시아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포털의 윗부분에 걸치듯 '점프해서' 날아들었다.

"뭐, 뭐야?!"

설마 화염수레를 포털 앞에서 집어던지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빨랐다.

"이런 젠장!"

마르코시아스는 급히 마술서의 페이지를 넘겨 다른 마법진을 꺼내들었다. 방지턱을 넘어 땅에 닿는다면 분명 바퀴가 미끄러지며 복도를 향해 달려올 게 뻔했다.

"왜 하필 길은 정중앙에 나서!!"

던전의 근본 구조에 대한 짜증을 터뜨린 마르코시아스는 마술서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막을 수 없다면 아예 맞불작전으로 더 강한 힘으로 터뜨리는 수밖에.

"익스플로-"

그리고 그 순간.

콰----앙!!

화염수레의 뒤로 불꽃이 분사됨과 동시에, 수레는 갑자기 허공에서 더 빨라져 마르코시아스를 덮쳤다.

-아아, 이것은 부스터라고 하는 것이다.

마르코시아스는 눈앞에서 펼쳐진 폭발 속에서 환청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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