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98화 (497/800)

498회

122일

<늦은 밤, 레굴루스 성 별실.>

사지타리우스 백작령에서 온 아틀라스 상단은 이므신할 후작과 직접 거래를 마쳤다.

그들은 가져온 수레에 있던 물건들을 땅에 살포시 내려놓았고, 빈 수레에 마석과 약간의 금화를 챙겨 백작령을 떠났다.

"각하, 성기사단이 주민들에게 의복을 나눠줄 겁니다."

"각하 아니야. 그냥 이므신할로 하지?"

"...알겠습니다, 이므신할 님. 이건 따로 빼두라고 하신 의복들입니다."

이므신할을 보좌하는 성기사는 테이블 앞에 의류들을 종류별로 늘어놓았다.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배부한 물품이 아닌, 추후 사태가 진정되고 난 뒤 아틀라스 상단과 거래를 하기 위해 남겨둔 견본이었다.

"잘했어. 이제 당신도 들어가서 쉬어."

"현장 지원을 나가도 되겠습니까?"

"괜히 지쳐서 쓰러지면 안 된다?"

"제 체력이 되는 만큼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성기사가 떠난 뒤, 후작의 별실을 따로 사용하기로 한 이므신할은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잠깐 눈 좀 붙였다가...응?"

부르르.

갑자기 벽 한켠에 놓아둔 성검 레오의 검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므신할이 성검을 향해 손을 뻗자, 검이 그녀에게 날아와 몸 위에 놓였다.

"그래, 그래. 속상하지. 근데 어떻게하겠어. 지금 이 상황에서."

이므신할은 유리창 너머에 보이는 후작의 집무실을 노려봤다. 성기사단은 이므신할에 협조하는 대신 철저히 이므신할과 후작이 만나지 못하도록 막았다.

"내가 괜히 갔다가 아버지가 죽을 수도 있잖아."

고트다이할 후작은 흑마법의 마기로 인해 과한 신성력에 노출되면 정화되어 죽을 것이다. 추기경이 이므신할에게 후작과의 만남을 차단하며 건넨 말이었다.

"진짜면 만날 수 없고, 거짓이면 진짜가 되겠지?"

만약 거짓이라고 해도 이므신할이 후작과 만나려고 강행한다면, 추기경은 고트다이할 후작을 처리할 것이다. 흑마법에 중독된 이교도의 말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검의 용사임에도, 친딸임에도 이므신할은 후작과 만날 수 없었다. 이므신할 본인도 후작이 아직 살아는 있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건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 솔직히 아버지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부르르.

"어. 우리 아버지, 많이 그렇거든. 흑마법에 심취하는 경우가 다 그렇잖아? 수명이라거나...다른 이유라거나."

이므신할은 고트다이할이 진짜로 흑마법에 빠졌다는 것에 대해 마냥 거짓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언가 모종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고트다이할은 마족과도 손을 잡을 자가 분명했다.

"...에이, 복잡한 생각은 그만. 한 번 입어나 보자."

이므신할은 침대에 검을 눕힌 뒤 종류별로 늘어진 옷들을 살폈다. 대부분 검은색과 흰색의 단색으로 이루어진 옷들이었고, 개중에는 제법 여성스러운 옷들도 많았다.

"...흠, 흠흠."

이므신할은 제복을 벗어던졌다. 성검의 용사로 산 지 오래 되었지만, 그녀는 본디 후작가의 영애이며 후작이었던 자였다.

"와...레이스 수 놓은 것 좀 봐. 이거 사교계 입고 나가면 진짜 난리가 나겠는 걸?"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많다. 이므신할은 눈을 빛내며 종이 상자 안의 옷들을 꺼내며 사방에 늘어놓았다.

"흐흐흥, 어느것부터 입을...어머."

콧노래를 부르며 옷들을 고르던 이므신할은 자신도 모르게 완성한 옷차림에 스스로 놀랐다.

"......어우, 이거 좀 무서운데?"

결혼하는 여인을 위한 예식복 옆에 놓은 흰 스타킹과 팬티, 그리고 가터벨트는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므신할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저걸 입고 전신 거울 앞에 선 자신을 생각하니 몸이 떨릴 정도였다.

"그냥 입기는 아까우니까...."

철컥.

이므신할은 문을 걸어잠궜다. 그리고 자신의 추레한 속옷을 벗어던졌다.

"흐흐흥, 아래부터~"

이므신할은 콧노래를 부르며 속옷을 집어들었다. 예술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하얀 속옷은 장인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들어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새 옷이라 그런가? 되게 향긋한 향기가 나는데?"

이므신할은 천천히 팬티를 착용했다. 입은 듯 입지 않은 듯 한 감촉도 감촉이었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스스로 반할 정도였다.

"진짜 예쁘다.... 그렇지, 이제 속옷도 예쁘게 입어야 할 시대지. ......어라?"

두근, 두근.

스스로의 모습에 반해버린 걸까. 이므신할은 갑자기 욱씬거리는 하복부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히이익?!"

이므신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레, 레오!"

성검 레오가 하늘을 날아와 이므신할의 근처를 맴돌며 신성력을 흩뿌렸다.

"아, 아응, 이...이런 젠장...!"

이므신할은 주먹을 움켜쥐며 침대로 몸을 던졌다. 반듯하게 침대에 누운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헐떡였다.

"성검의 용사까지 당하는 저주라니...앗흥...?!"

욱씬, 욱씬. 음부가 불이 난 것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므신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팬티를 살짝 내렸다.

"......레오? 진짜 미안한데...."

도리도리. 성검은 검신을 좌우로 흔들었지만, 주인의 거친 손길에는 이겨낼 수 없었다.

"손잡이, 손잡이만 좀 빌릴게...!"

성검의 용사.

고트다이할 레오 후작 대리.

"하아, 하아. 끼워놓고 있으니까 그나마...하응."

이므신할 레오, 섹무새 증후군 발병.

그리고 성기사단에 의해 의복을 배부받은 이들 중 속옷을 배부받은 이들이 전부 섹스를 외치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후작령 인근 언덕 위 숲 속.>

"망할 마족놈들...! 역시 겉으로만 거래니 뭐니 지껄인 게 틀림없어."

안다이할 레오는 언덕 위에 숨어 대로를 지나가는 상단을 향해 이를 갈았다. 협곡에서부터 뒤를 쫓은 상단은 물건을 처리하자마자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비르고 남작령을 향해.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르고 남작령의 사람들이 동원된 것 같습니다. 저들은...사실상 마왕군에 붙은 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인류의 배신자 놈들...!"

안다이할과 안서니우스는 상단인 척 속이고 의류를, 스타킹을 후작성에 공급한 인간들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일말의 희망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설마 이므신할 님께서 돌아와계셨을 줄이야."

"...왜 온 건 지는 모르겠지만 천만다행이지. 아니, 오는 게 당연해.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이단으로 몰려서 처형당할 상황인데 돌아와야지."

"각하. ...만약 이므신할 님이 추기경과 손을 잡았다면 어쩌지요?"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시게. 누님이 어디 그럴 사람인가? 아버지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추기경 목을 날릴 사람이야. 성 안의 상황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는 게 분명하다."

안다이할을 비롯한 후작가의 기사단은 성 내부의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밖에서 무언가 엄청난 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후작성 상공에서 선회하는 대규모 하피들.

성벽에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부터 시작하여 후작성까지 먼 거리를 땅굴을 파서 후작성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뱀인간 형태의 슬라임들.

그리고 마족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르고 남작령으로 돌아가는 인간 상단까지.

"분노의 군단 놈들, 분명 아스타로트 던전 때부터 우리 뒷통수를 칠 생각을 한 게 분명하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입니다!"

"...문제는 그냥 우리가 싸웠다가는 씹어먹히게 생겼다는 거지. 애초에 우리가 씹어먹을 것 조차 떨어졌지만."

협곡에 진을 친 기사단의 식량은 점점 고갈되기 시작했다. 주 단위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식량은 생각보다 빨리 동났다.

꼬르륵.

아무리 날고 기는 기사라고 해도 배가 고프면 전력을 낼 수 없는 법. 안다이할을 비롯한 기사단 전원은 몰골이 대부분 초췌했다.

"각하. 배신자들이 뭔가를 먹고 있습니다...?"

"......육포? 아니지. 저건...?"

안다이할과 기사단은 조금 더 고개를 빼꼼 더 내밀어 상단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살폈다. 작은 나무 꼬치에 끼워놓은 기다란 무언가는 보기만해도 상스러운 형태였다.

"저, 저저 미친...?"

"소시지를 어떻게 저렇게 먹을 수 있는 거지...?"

츄릅, 츄릅. 멀리서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상단의 여인들은 마치 소시지를 남자의 그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입안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자네들은 소시지를 저렇게 먹는 다는 것에 신경쓸 게 아니라, 저들이 소시지를 먹는 다는 걸 신경써야 하는 거 아닌가?"

"크, 크흠. 죄송합니다, 각하."

"......아니네. 쯧. 그대들이 그런 쪽으로 혹했으니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거지. 그래, 다크엘프들이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응?"

안다이할의 얼굴이 굳었다.

"저들은 뭐지?"

누군가가 성벽 방향에서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거한과 낯익은 얼굴의 여인에 안다이할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성녀가 왜 저기서 나와...?"

* * *

에일라와의 만남은 분명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나와 에일라는 적이었다.

에일라는 포르네우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기사단을 몰고 온 기사단장이었고, 나는 그녀의 기사단을 몰살키시고 에일라를 포로로 잡은 장본인이었다.

"그랬던 너와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후후, 과거의 저는 제가 아닙니다. 주인님 덕분에 다시 태어났잖아요?"

에일라는 능숙하게 보지를 조이며 허리를 움직였다. 구속조차 되지 않은 손을 일부로 머리 위로 올리며 손을 X자로 교차했다.

"이 자세 기억하십니까?"

"알다마다. 어찌 잊겠느냐. 내가 동정을 네게 바쳤던 날을."

처음 그녀와 섹스를 할 때 처럼 아래에 눕히고 정상위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에일라는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 나의 쾌감을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저항하던 너도 어느순간부터는 즐기기 시작했지. 안 그러냐?"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에일라는 뾰루퉁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상체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덮었다.

"정말?"

"...애초에 강간당하는 셈인데 즐길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어, 그건 좀 충격인데."

기억 상으로는 분명 에일라도 즐겼...지 않나? 에일라는 내 얼굴을 붙잡으며 볼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 때 표정을 주인님께서 스스로 보셨어야 하는데."

"내 표정?"

"예. 무척이나 절박해보이셨습니다.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절할 수도 있구나. 마족도...인간이랑 별반 다르지 않구나."

"......."

죽기 직전에 섹스 한 번 하고 죽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에일라는 내게서 무언가 다른 것을 본 듯 했다.

"아참. 주인님, 그거 아십니까?"

"뭐?"

"저 사실은...그 때 계속 깨어있었습니다."

"뭐?"

찌걱. 나는 너무나도 놀라 삽입조차 순간 멈춰버렸다. 에일라는 킥킥 웃으며 다리로 내 허리를 잡아당겼다. 귀두가 안쪽으로 쓱 미끄러지며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을 눌렀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기사입니다. 아버지가 성검의 용사기도 하고요. 가사상태에 빠진 척 하는 건...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시스템이 너보고 혼수상태라고 했는데?"

"글쎄요. 저는 다 알고 있는데요? 기절한 저를 바닥에 눕혀두고...."

에일라는 마치 자신의 위에 누군가가 엎드린 것 처럼 손을 뻗었다.

"륜의 아래를 빠시면서, 둘이서 저를 아래에 깔았던 것도 말입니다."

"아, 안 그랬는데?"

"륜에게 물어볼까요?"

"미안하다. ...그, 안 불편했냐?"

포르네우스 던전 밖으로 튕겨나와 아무 생각없이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해와 달이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지조차 몰랐다.

"나 그 때 너한테 박고 달렸었는데."

"...그러셨죠. 후후."

그저 에일라를 챙겨 도망가야한다는 생각에 의식이 없었다. 무아지경으로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이 옛 바알의 던전이었다.

"그걸 계산하면 이 던전에서 주인님께 가장 많이, 오랫동안 박힌 여자는 저일 겁니다. 후후."

"그, 글쎄? 그건 모르는 거 아닐까?"

"아뇨. 확신합니다. 왜냐면 앞으로도 계속 주인님께 박힐 거니까요."

에일라는 확신에 찬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처음 나를 향했던 경멸과 증오가 아닌,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눈빛에 나는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아아, 생각해보니 그렇군. 그 날 굳이 너를 살렸던 이유가 떠올랐어. 그거 아느냐? 그 때 모두가 기사단을 죽였을 때, 내가 너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셨...습니까?"

"그래. 포로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겠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

나는 에일라의 가슴을 향해 얼굴을 묻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살결을 타고 내게 직접 전해졌다.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지금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왕이면...더 빛나는 것을 가지고 싶구나."

사르르.

에일라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환생결정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하복부에 다소곳이 잡고 베시시 웃었다.

"에일라. 나는 욕심쟁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꼭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예. 잘 압니다. 제 처녀도...가져가셨잖아요? 후후."

"그래. 네 처녀도 처녀지만...."

뷰르릇.

"6성도 가지고 싶구나."

에일라의 안에 사정한 순간, 환생결정과 그녀의 몸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에일라를 안아들었다.

"네가 내 첫 여자였던 것처럼, 너는 내 첫 6성이 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셔요?"

스르륵.

소환 시설의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나와 에일라의 몸을 휘감았다. 일반 코쿤과는 다른 영롱한 무지개빛의 아우라가 에일라를 감싸쥐었다.

"얼마든지 기다려주마."

<환생> 근원을 찾아가는 중.

# 예상시각 : ???

# 예상결과 - <에일라>

[?? 아리에스] (★★★★★★, 10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