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96화 (495/800)

496회

122일

"길가에 돈이 떨어져있는데 줍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지."

선인이든 이기적인 인간이든 악인이든, 일단 돈이 보이면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착한 사람이라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돈주머니를 주울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돈을 자신이 챙길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노려 제 주머니 안에 넣을 것이다.

악인이라면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돈에 관심이 없다는 건 다른 꿍꿍이 때문에 돈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령 누군가를 암살하기 위해서 타깃을 기다리는 중이라거나.

"은화를 만지는 순간 발정마액이 손에 묻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발병이지."

은화는 드워프들이 준비해줬다. 백작성에 있던 귀중품들을 녹인 다음, 우리는 화폐를 우리 멋대로 찍어내어 마액을 퍼뜨리는 매개체로 삼았다.

"이것이 자본의 힘이다, 추기경이여."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하여 자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규모 하피들을 동원한 민트초코 마액의 광역 살포.

슬라미아를 이용한 은화 살포.

막대한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 그리고 인간의 금전에 대한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의 힘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족이 저주를 뿌리지 않아도, 인간들에게는 영혼 깊숙히 박힌 저주가 있지. 이건 신성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저주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저주는 여신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질병이다. 나는 성욕을 퍼뜨리기 위해 인간의 금전욕을 자극했다.

"자...나의 수는 이제 하나 남았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추기경이여?"

* * *

<레굴루스 성 후작의 집무실.>

"이건...심각하군요."

추기경은 곳곳에서 들어오는 보고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비에서 이상야릇한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 곳곳에서 섹무새 증후군에 발병된 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사실상 도시 전체에 퍼진 수준입니다."

"진짜 마족의 짓이 아니야?"

"예. 그랬다면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겠죠."

"......아니면 마족과 결탁한 누군가의 짓이라거나."

이므신할은 마주앉은 추기경을 노려보며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트다이할의 몰락에 추기경이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사단이 빠져나간 틈을 타서 후작성을 강제 점거한 뒤에 네놈들이 사역하던 마수를 날뛰게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건 나중에 추궁하겠어. 지금은 이 성의 주민들을 지키는 게 우선이니까."

"...어째서 그런 생각을?"

"용사니까. 내가 설마 모를 줄 알고?"

"......후후."

추기경은 낮은 웃음으로 시선을 피했다. 이므신할의 옆에는 사자의 손톱같은 모양의 검이 소파에 비스듬하게 놓여있었다.

"과연...진실을 꿰뚫어보는 사자의 직감이라는 겁니까?"

"사람 오그라들게 만드는 거창한 말 하지마라."

성검 레오. 저 검에 찔리면 분명 목숨이 날아가리라. 추기경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지금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상황이 끝나고보면 그 때 해결을 보자고."

후작의 자리조차 내팽겨치고 성검의 용사로서 살기를 선택한 이므신할은 스스로 추기경을 추궁하기를 포기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아버지 건에 대해서는 아버지 건에서 끝내. 알겠어?"

"후작가 전체가 아닌 후작 개인의 일탈로 처리하라?"

"내 동생은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야."

"...아무리 용사들이 조금 사고방식이 비상하다고 한들, 잘 이해가 되지 않군요."

추기경은 검과 자신의 목을 번갈아 가리켰다.

"당신 입장에서 저는 당신의 부친을 이단으로 몰고 후작가를 망하게 하려고 한 자가 아닙니까?"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성검의 주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 그걸 너한테 이해해달라고 청할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탕. 이므신할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당장 내가 이 자리를 떠나면 이곳에서 폭동이 일어날까봐 그러는 거야. 안다이할 그 새끼가 돌아오면 바로 떠날 거다."

"사자는 제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는 속설이...."

"개소리 집어치워."

추기경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눈앞의 존재는 애초에 후작의 작위를 벗어던지고 신분을 숨겨 인류연합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자다. 이미 추기경의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그보다 뭔가 해결 방법은 있어?"

"가장 확실하면서 깔금한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발병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치유되었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응, 들었어. 그...교회에 집단감염 일으킨 사람들 맞잖아? 참 희안하게도 저주에 걸린 사람들."

최초 발병자 8명에 대해서는 제법 강도높은 추적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마시고 병이 났다는 걸 실토했다.

"으으. 어떻게 길에 놓인 걸 입에 댈 생각을 하지?"

퓨지르라는 이는 길가에 놓인 컵의 음료를 제 것 인양 들이켰다. 다른 이들도 딱히 다르진 않았다.

"미안. 잠시 그걸 생각하니까 속이 안 좋아서. 그래서 해결 방법이 뭐야?"

"그건-"

쾅!

집무실 문이 열렸다. 집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친 이는 놀랍게도 성녀였다.

"<비르고>의 소재가 파악되었어. 가자."

"......아니, 지금 장난해?"

이므신할은 성녀를 상대로 날카로운 어조로 쏘아붙였다. 추기경을 대할 때와는 다른 짜증이 서려있었다.

"지금 우리 영지 꼬라지를 다 알면서 그런 말이 나와?"

"조치할 방법이 없잖아.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죽을 만큼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어! 네 년 진짜 성녀 맞아?!"

"성녀니까 하는 얘기야. 내가 이곳에 처음 오면서 받은 사명이 있거든."

성녀는 두 손을 모아 여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12용사를 모으라.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 순간, 인류는 눈앞에 드리워진 어둠을 비로소 걷어낼 수 있으리라>."

"그래. 성녀님께서 여신께 받았다고 하는 그 빌어먹을 계시지. 그리고 내 성검이 비르고를 찾을 열쇠가 되기도 하고. 근데 씨-발 지금 여기 상황 안 보이냐고!!"

"진정하시게, 레오."

뒤따라온 트랄이 성녀의 멱살을 잡으려는 이므신할의 어깨를 누르며 진정시켰다. 힘으로는 어디가서 밀리지 않는 그녀였으나, 트랄의 힘에는 이길 수 없었다.

"야! 타우러스, 너 지금 성녀 편 드는 거야?"

"진정하라는 말이지 편 든 건 아니었소만."

"아오, 더 짜증나!"

이므신할은 바닥을 크게 구르며 짜증을 부렸다.

"추기경! 뭐 방법 있다며! 얘기해봐!"

"뭔가 이야기가 안 끝난 상황에서 제게 화살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만...?"

"시끄러워! 성녀 얘기는 좆도 안 들어도 돼! 너 어차피 성녀랑 정적이잖아!"

"......면전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조금...상당히 과격하신 분이군요. 흐흐."

추기경은 이므신할의 앞에 섰다. 성검의 용사지만 여인의 평균 신장을 가진 이므신할이었으나, 퀘르벨스가 보이는 위압감 때문인지 신장이 더 커보였다.

호가호위.

추기경은 이므신할을 앞에 내세우고 성녀를 노려보며 씩 웃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고해성사를 하는 거죠."

"고민을 들어서 뭐하게? 면죄부라도 팔게?"

"아니죠. 엄밀히 따지자면 고해성사는 아닙니다. 연인, 부부가 없는 혼자만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성욕해갈의 장을 마련해주는 겁니다. 바로...."

추기경의 말에 모두가 굳어버렸다.

"추기경, 미쳤습니까?"

"제가 이런 시국에 농담을 할 것 같습니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섹무새 증후군이라는 건 그 원인이 성행위에 대한 강한 욕망에서 비롯된 걸수도 잇습니다."

추기경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렇다면 사제된 자로서 신도의 고민을 해결해줘야만 하지요. 그들의 욕망이 넘치는 게 잘못이라면, 그 넘치는 욕망을 저희가 덜어내드려야 하는 겁니다."

"어떻게?"

"뭐...간단하지 않겠습니까?"

추기경은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았다. 그리고 그걸 한 두 차례 앞뒤로 흔들었다.

"고름을 짜내듯, 빼드려야죠."

* * *

<교회 지하, 제 7 격리실.>

"섹스!"

"섹스!"

"""섹스!!"""

침대에 묶인 모두가 섹스를 외치고 있다. 검은 가죽끈으로 전신이 묶인 유증상자들은 입이 자유로우니, 입만 자유로우니 온갖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걸로 자신의 분을 풀고 있다.

"여신님! 도와주십시오! 한 발 빼주십시오!"

"으아아! 어차피 죽기 전에 한 번 섹스할 거 나랑 하면 되잖아아아아!"

"더, 더 세게 묶어줘!!"

"......도대체 이건 무슨 저주지."

격리실의 관리를 맡은 성기사들은 깊은 한숨과 함께 신성력을 일으켰다. 몸을 신성력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바로 섹무새 증후군에 걸릴게 분명했다.

끼이익.

격리실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바이스 엑슈얼 부기사단장에게 쏠렸다.

"부단장님?"

"...추기경 예하의 특별지시다. 성녀께서도 승인하셨지."

"예?"

영원한 앙숙같던 둘이 서로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성기사들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뭐? 성녀?! 으앗, 성녀섹스!"

"끄아아! 성녀빨통 빨고싶다아아!"

"성녀님! 매도해주세요! 끼이익!!"

"부단장님, 이것들 모두 이단으로 몰아서 죽이면 안 됩니까?"

"참아라. 이들은 이단이 아니라...아니, 그걸 얘기해봤자 의미는 없지."

바이스 부단장은 하얀 장갑을 벗어 로브 안에 집어넣었다. 굳은 살이 박힌 거친 손은 그 누구보다도 사내다웠다.

"특별지시...흐흐."

그리고 그는 의자를 끌어 한 침대 옆에 앉았다. 누가봐도 남자다운 바이스가 침대 옆에 앉으니 유증상자들이 하나 둘 침을 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저, 저기요?"

"아아, 형제님. 저어어언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추기경께서 생각하신 것이 맞는지 확인할 뿐이니까요."

스르륵.

바이스 부단장은 신성력이 가득한 손으로 남자의 수건을 들어올렸다. 수건 아래에는 가죽끈에 의해 단단하게 묶인 자지가 괴사할 것 처럼 부풀어있었다.

"형제님. 제가 지금부터 형제님께 실례를 하겠습니다."

"자, 잠깐! 으, 하지마! 하지마 씨발!"

덥썩.

바이스가 남자의 자지를 붙잡았다. 원래보다 비대해진 자지임에도 바이스의 솥뚜껑만한 손에 전부다 잡힐 정도였다.

"여신께서 말씀하시길, 나의 손에 닿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포용하라 하심에."

고오오.

바이스는 다른 손을 남자의 귀두 위를 덮듯이 우산을 씌웠다. 너무나도 경건한 행동에 성기사들은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네 이웃의 곤란이 있거든 모른체하지 말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 하셨으니."

"손 떼! 죽인다! 죽일 거라고! 씨발롬아!!"

너무나도 경건하면서, 성스러운 행위였다.

"괴로워하는 빈자의 고통은 덜어주고, 바라는 자에게는 네 피와 살을 내어주어 그들을 채워주어라. 여신이시여."

바이스는 자지를 붙잡고 여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자지가 붙잡히지 않은 다른 이들은 성기사들을 향해 격렬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형제님?"

기도가 끝난 바이스는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마음껏 고뇌를 떨쳐내십시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으, 차라리 마녀 데려와아아! 씨바아아아아아아!!"

탁.

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탁탁!

잠시 뒤.

각 격리실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기사들이 하나 둘 들어가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 * *

"예하. 성기사단이 고해정사를 시작했습니다."

"...예. 이걸로 하는 시늉은 할 수 있게 되었군요."

추기경은 눈앞에 놓인 세 개의 스타킹에 한숨을 쉬었다. 각각 검은 스타킹, 흰 스타킹, 그리고 둘이 섞인 줄무니 스타킹은 그 자가 직접 추기경에게 건넨 물건이었다.

"검은 스타킹 안에는 '비'. 흰 스타킹 안에는 '은화'."

분노의 군단장은 추기경에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후작성을 공략할 지 암시했다. 추기경은 줄무늬 스타킹을 앞에 두고 기도를 올렸다.

"미안합니다, 형제여. 이므신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므신할만 없었다면 지금쯤 성기사단이 발정마액을 퍼뜨리는 매개체가 되었을 텐데...."

본디 추기경은 성기사단을 이용해 직접 발정마액을 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므신할이 성녀와 함께 나타나 성기사단을 휘어잡아버린 이상, 성기사단은 사실상 내부에서 발정마액을 퍼뜨릴 수 없었다.

"당신은 무슨 방법을 남겨두었습니까?"

추기경은 줄무늬 스타킹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건에 추기경의 표정이 굳었다.

"속...옷...?"

"추기경 예하!"

방 안으로 성기사 한 명이 급히 들어왔다.

"사지타리우스 백작령에서 상단이 성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후작 성 봉쇄 이후, 불과 며칠만에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외지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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