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회
122일 신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성병이 후작령을 휩쓴지도 어언 이틀.
예상 이상으로 막강한 전염성을 가진 이 병은 사람을 성욕에 미치게 만드는 짐승으로 타락시키게 했다.
하나같이 전부 ‘섹스’를 외치고 그걸 실행하려고 한다는 것을 들어, 교단에서는 이를 ‘섹무새 증후군’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으아악 쎅쓰!”
“꺄아악! 섹무새다!”
남자 하나가 갑자기 길을 걷다가 섹스를 외쳤다. 그의 바지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있었다.
“나, 나 아니야! 나는 그냥-”
삐이이이---!!
주변을 거닐던 이들이 하나 둘 호루라기를 불었다. 남자는 당황해 골목 사이로 뛰어들었다.
“여기입니까?!”
“예!”
“크윽…!”
급히 뛰쳐나온 성기사단은 분무기로 주변에 성수를 뿌렸다. 원인균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효과를 억누르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증상자를 쫓겠습니다, 형제여!”
신성력을 몸에 퍼뜨리는 성기사들이 급히 골목 안으로 달렸다. 성기사들은 금방 남자를 붙잡아 제압했고, 그의 바지를 벗겨 불룩한 자지에 무언가를 씌웠다.
“윽, 으으억?! 으어…?”
남자의 떨림이 조금씩 멎어들기 시작했다. 섹스를 외치며 여자를 찾던 그는 자지를 감싸는 정체불명의 물건에 오한이 들었다.
“이, 이것은 설마…?!”
“정조대다.”
“으아아악?!”
남자는 괴로움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딱딱하게 발기한 그의 자지에는 가죽끈이 여러 개 코일처럼 채워져 있었다.
요도를 압박하여 사정을 강제로 막아버리는 단호한 대처였다. 남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 괴로워 할 뿐, 아무 곳에나 사정하지는 않았다.
“나, 나를 풀어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자세한 건 교회 지하로 가서 말하도록 하시지.”
“아, 아냐! 나는 이단이 아니야!!”
“이단이라서 데려가는 게 아니라 위험하니까 데려가는 거다!!”
두 성기사는 남자의 팔을 잡고 질질 끌었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성기사들조차 남자를 억누르기 힘들 지경이었다.
“섹스, 섹스으으! 섹스 한 번만 하게 해줘어어!!”
남자는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며 아둥바둥거렸다. 끌려가는 남자의 추태를 보던 주민들은 서로 떨어진 채 수근거렸다.
“상스럽게...들었어요? 신성력으로 치료가 안 되는 병이래요.”
“그냥 섹스만 외치면 다행이지…. 어제 옆 구역 주점 얘기 들었어요? 아 글쎄 그 집 딸이….”
“주점에 순찰을 나왔던 성기사를 강간했다지? 말세여, 말세.”
후작령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식량과 생필품의 사재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교단은 뭐하는 거야?
성기사단은 뭐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쟤들도 안 되잖아.
그거 들었어요? 사실은 후작이 저지른 짓이래요, 글쎄.
사람들 몇몇은 고트다이할 후작이 흑마법을 연구하다가 개발한 저주가 괴물과 함께 퍼져나왔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후작성 지하에서 뛰쳐나온 괴물이 나타나고 난 이후로 이 병이 생겼잖아요?
에이, 그랬으면 그 날부터 계속 발병했을 걸?
모르죠! 성기사단이 지하의 시설을 건드리다가 잘못 건드린 걸 수도 있고.
그나마 후작령을 관리하는 성기사단에 불신이 가득해지는 가운데, 여론은 교단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에 대한 호평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사프지르 대사제 님 일 들었어요? 발병한 자들에게 신성력을 뿌리다가 그만….
추기경은 어떻게 됐어? 이단심문관이라더니...사람들 잡아가두고 그러고 있잖아.
그냥 감옥에 격리하는 거래. 증상 나아지면 바로 풀어준다더라.
그 놈들 영원히 가둬야 하는 거 아니야? 혹시 모르잖아. 이게 마족의 새로운 저주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작령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주민들 스스로도 후작령을 떠나야 한다는 걸 직감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성을 감히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시국에 전염병을 성 밖으로 옮기는 자가 있다면 인류를 상대로 재앙을 일으키려는 역병의 사도로 간주하겠노라.
추기경 답지 않은 단호한 선언에 주민들은 그 누구도 성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간혹 부랑배 몇몇이 추기경의 엄포를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했으나, 그들은 진짜로 인류의 배신자이자 이단으로 몰려 효수당했다.
그렇게 혼란이 가득한 와중에,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증상이 보통 하루 안에 가라앉는다고 하는데...그거 아냐? 남자들….
아 글쎄 내가 사실은 발병하고 집에만 있었는데...증상은 가라앉았는데 그건 또 그대로인 거 아니겠는가! 흐하하!
자지가 아팠더니 자지가 커졌어…?
누구는 몇 cm 길어졌다더라. 누구는 발기하지 않은 상태가 발병 전에 발기한 사이즈와 똑같다더라. 누구는 정액이 두 배는 늘어났다더라.
이거...걸리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상한 여론이 감도는 가운데, 교단에서는 공식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대사제가 직접 발표한 증상의 해결 방법은 단 하나.
…...한 번 걸린 이들은 다시 걸리지 않는다. 고로 걸려서 저주에 대항력을 가지는 게 어쩌면 좋은 게 아닐까?
하루 섹스만 질펀하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말도 안되는 해결책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신성력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후작성 내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작성 밖에 있는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성녀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마족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저주를 두고 성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겉으로는 분노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좀 걸렸으면’하는 기류가 팽배해진 가운데, 후작성에 한 무리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부 사람들이 그토록 찾던 성녀 일행이 레굴루스 성에 도착한 것이다.
***
<늦은 오후, 레굴루스 성 응접실.>
“환대를 해야 하오나...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 양해바랍니다. 저는 여신교단의 추기경, 퀘르벨스라고 합니다.”
“왼쪽부터 <타우러스>, <제미니>, <칸세르>, 그리고…<레오>.”
까드득.
레오라고 불린 여인, 이므신할은 응접실의 주인 행세를 하는 추기경의 행동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므신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 성녀로서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우선 현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예. 저희는 고트다이할 후작이 마족과 내통하여 흑마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쾅! 시작하자마자 이야기가 멈췄다. <레오>라고 불린 여인은 검을 뽑아들고 추기경에게 겨눴다.
“내가 누군지는 너도 알지?”
“...알다마다요. 원래 이 자리의 주인이셨어야 할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내 앞에서 그딴 망발을 지껄여?”
“망발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하에서 증거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후작성에서 뛰쳐나온 괴수로 인해 죽은 이들의 수가 백 명을-”
스릉. 이므신할이 겨눈 칼이 추기경의 목에 닿았다. 은빛의 검날에 붉은 피가 흘렀다.
“다시 한 번 말해봐.”
“고트다이할 후작께서는 지하실에서 흑마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성에 닥친 재앙은 고트다이할 후작으로 인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게!”
“<레오>여, 진정하시게.”
일행 중 유일한 남자가 이므신할을 진정시켰다. <타우러스>는 뾰족한 귀는 엘프를 연상케했고, 추기경 조차 그의 얼굴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꿀꺽.”
추기경의 뒤에 서있던 바이스 엑슈얼은 침을 꿀꺽 삼키며 타우러스를 주시했다. 정작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추기경 예하. 저희는 막 이 성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진실된 정보가 필요합니다.”
타우러스의 말에 추기경은 잠시 침묵했다.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에 추기경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알아주십시오. 저는 여신님을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여신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을.”
갑자기 뜬구름잡는 말에 성녀와 일행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이므신할은 검을 거두어 들였지만, 이번에는 성녀가 추기경을 쏘아붙였다.
“여신님의 말씀을 팔아넘기는 게 당신 특기죠, 궤벨스.”
“제 이름은 퀘르벨스 입니다만….”
“어머, 미안해요. 이게 입에 붙었다보니까. 후작님을 이단으로 몰아서 구금하고 후작령을 냉큼 집어삼키려는 계략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보니 그만.”
“......성녀님. 저는 여신님의 종복입니다. 제가 어찌 왕국의 후작가를 제멋대로 주무르려는 사욕을 부리겠습니까?”
성녀와 추기경의 대화는 점점 살벌해졌다. 교단의 세력을 양분하는 이들 중 대표 둘이 날을 세우는 만큼, 응접실의 공기는 점점 딱딱해져갔다.
“증거를 대세요. 증거가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증인이 있고, 증거가 있습니다.”
추기경이 손뼉을 치자 응접실 밖에서 기다리던 한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피부가 반들반들한 여인은 전 날 무언가 좋은 거라도 먹고 몸보신을 한 듯 싱글생글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다이할 님의 아내, 엘렉트라 레오라고 합니다.”
“너…!”
“아는 사인가?”
“...아니, 아무것도.”
이므신할은 머리에 쓴 사자탈을 지긋이 눌러썼다. 명백히 엘렉트라를 꺼려하는 분위기에 엘렉트라는 서글프게 웃으며 가운데 테이블로 다가갔다.
“저도 믿기 힘들지만...후작님의 방에 이런 물건이 나왔어요.”
엘렉트라는 떨리는 손으로 작은 유리병 하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안에는 노란색 젤리같은 것이 절반 정도 들어있었다.
“이게 뭐야?”
“발정마액. 인간을 순식간에 발정난 짐승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현재 후작성 안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발정마액의 원액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증거 있어?!”
“...제, 제가 봤어요.”
엘렉트라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서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일하시길래 출출하실까 쿠키를 구워갔는데…집사장 님과 두 분이서…. 흐끅, 저, 전 보고 말았어요! 아버님의 그...그 것이 서있는 것을!”
“...뭐? 그, 그럴리가 없어! 그 분은, 그….”
이므신할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명백한 정보와 배치되는 증언이었다.
“아버님은 고...크윽!”
“엘렉트라 레오 님. 혹시 잘못 보셨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까?”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왜냐면, 왜냐면…!”
뚝, 뚝뚝.
엘렉트라의 손가락 사이로 굵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버님께서 발정마액의 영향을 받으신 뒤에...옆에서 그분을 간호하고 있던 저를…!”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에 성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선동과 날조는 우리의 승리 공식 중 하나지. 흐흐, 설마 그런 바람직한 일이 있을 줄이야.”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범하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말세란 말인가. 나는 추기경으로부터 전해들은 후작가 내부의 상황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주인님, 엘렉트라도 우리 편이라고 봐야하나요?"
"아니. 그 자는 라스를 실천했지만 우리 편은 아니다."
마족과 행위를 나누는 것은 아니기에, 엘렉트라는 우리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성욕에 솔직하면서도 제 진정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상황을 이용할 뿐이다.
"인간들은 지금 성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계획대로 성녀가 온다고 한들 쉽게 동요가 가라앉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성녀가 왔다고 하면…."
"그래. 최소한 성녀의 뜻에 따르려고 하기는 하겠지."
그런건 우리로서는 사양이다. 인간들은 성욕에 더 솔직해지고 강력하게 타락해야한다.
신성력 따위 필요없다고 느끼게끔, 발정마액에 더욱 미치게 만들어야한다.
"하피들의 준비는 모두 끝났나?"
"네! 얼마든지 시작하면 돼요."
툭. 투둑.
서서히 빗방울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장거리 비행을 앞둔 하피들이 앞에 서서 박수로 이목을 끌었다.
"분노의 군단이여! 아직 깨우치지 못한 이들에게 진리를 퍼뜨릴 준비는 끝났나?!"
"""라스!"''"
"좋다! 날아라! 가서 마음껏 뿌려라!"
푸드득.
하피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하피들의 선두에는 드라고니안으로 강화된 나의 딸 하르퓨이어가 하피들을 인도하여 후작령으로 힘차게 날개를 펼쳤다.
"이제 후작성 전체가 감염될 것이다."
쏴아아.
억수같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충격이야."
성녀는 허탈감에 성의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었다. 너무 충격적인 상황의 연속이라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엘렉트라 양 불쌍해서 어떡해."
성녀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심성이 고운 엘렉트라는 고트다이할이 죽을까봐 결국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여신이시여…."
성녀는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굵은 빗방울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응?"
투둑. 툭.
왠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성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좀 괜찮아졌소?"
"네. 타우러스, 당신은 이상한 냄새 안나요?"
"...이 코를 찌르는 상쾌한 냄새 말인가? 좋군. 맡기만 해도 정신이 맑아지니."
"......그렇기는 하죠. 씁, 맨솔향이...아니지. 아니야. 이건…!"
잊고있었다. 성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 담긴 냄새에 소름이 돋았다.
"민초…?!"
민트초코의 냄새가 후작성 전체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