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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485화 (484/800)

485회

113일 여신을 상징하는 은빛의 달이 반짝이는 심야.

백작성에는 한 무리의 새들이 고요히 건물 첨탑과 옥상에 내려앉았다.

강철과도 같은 깃털을 단 거대 하피들은 등에 태운 이들이 무사히 착지할 수 있도록 조심스레 날개를 움직였다.

"도착."

전신에 검은 타이즈를 두른 이들은 눈동자 부분만 밖으로 드러낸 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과 타이즈로도 숨길 수 없는 거대한 가슴과 육감적인 바디라인은 뭇 남성들이라면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여인들의 손에 의해 붙잡혀 온 유일한 남자, 사지타리우스 백작은 눈을 가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할 수 조차도 없는 상황이었다.

"얘, 귀족 오빠. 슬슬 대답하지?"

여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백작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백작은 금방 목이 꺾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마지막 양심이 그의 의지를 지켜주고 있었다.

"우리 편하게 편하게 가자. 응?"

"...너희들은 정말...엘프인 건가?"

백작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궁금증을 질문했다. 두건이나 복면을 두른 여인들의 귀는 하나같이 전부 쫑긋 서있었다.

"엘프 맞지. 그린엘프라고 해."

"그런 엘프...들어본 적도 없다."

"들어본 적 없는 게 당연하지. 기원은 묻지마.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는 거니까."

그린엘프 몇몇이 고양이같은 몸놀림으로 유리창을 열었다. 백작은 도둑질에 너무나도 능해보이는 그린엘프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언니들은 지하부터. 너희들은 1층부터. 영주성을 샅샅히 뒤져서 값비싼 물건을 챙기는 거야. 알았지?"

창문을 열고 들어간 그린엘프들이 하나 둘 어둠속으로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무실로 던져진 백작은 그린엘프에 의해 강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백작님, 우리 귀찮은 언쟁은 하지 말자. 당신네 백작가의 재산 어디있어?"

"그걸 말할 것 같나?"

"그래. 말 안 할 것 같았어."

퍼억, 퍼억! 그린엘프는 주먹을 들어올려 백작의 어깨뼈를 박살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때리는 바람에, 백작의 비명은 그린엘프의 손 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바닥에 누워있으라구. 내가 이런 건 또 전문이니까."

그린엘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무실 책상으로 걸어갔다.

"어디있을까~"

서랍을 열어젖히는 그린엘프의 행동에 백작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서랍 안에는 영지 운영을 위한 서류와 사무용품만 들어있을 뿐이다.

"보통 이런 구조면...."

딸칵.

무언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백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척하면 척이지."

그린엘프는 혀를 빼꼼 내밀며, 서랍안에 숨겨진 비밀 서랍 속에서 값비싼 보석들을 꺼냈다. 붉은 루비가 박힌 목걸이를 스스로 착용하며 백작에게 보석을 과시했다.

"어때, 나 예쁘지 않아?"

"...정말로 이상하군. 생긴 건 분명 엘프인데, 하는 행동은 싸구려 저질 모험가 수준이야."

백작의 짜증어린 빈정거림에 그린엘프의 표정이 뒤틀렸다.

"저질이면 뭐 어때? 그래서 그 저질들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한 놈이."

"던전 밖에서 싸우기만 했더라도-"

"응, 변명 안 통하죠. 이미 다 죽었죠?"

던전의 마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그린엘프는 백작의 머리를 짓밟으며 그를 비웃었다.

"우리는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챙겨가는 것 뿐이야. 본격적인 약탈이 진행되기 전에, 혹시나 싶어서 미리 챙기러 온 거지."

"흥, 네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한들...."

"또 찾았다. 히히."

그린엘프는 검집 속에 숨겨둔 제법 날카로운 세검을 휘두르며 장난스레 웃었다.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것 치고는 제법 세련된 외형이었다.

"이건 어디서 만든 거래?"

"로도페리 공주님께서 만들어 내게 주신 물건이다! 네 년이 함부로 다룰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로도페리가 이미 우리 건데 뭐 어때. 그럼 이건 이미 우리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히히."

덜컥.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검은 타이즈의 그린엘프들은 다들 양손에 한가득 무언가를 챙겨 집무실로 돌아왔다.

"대장~~지하실에 보석류 창고 털어왔어!"

"2층에 따로 몰래 금괴 쌓아놨던데?"

"마석들도 모으고 있었나봐. 하급이랑 중급 마석 최소 수백은 되는 것 같아."

"어, 어떻게...?"

백작은 아연실색했다. 그린엘프들은 마치 고블린이라도 되는 것 마냥 삽시간에 영주성 안의 값비싼 물건들을 털었다.

"후후."

그린엘프의 대장은 백작에게 윙크를 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가 이런 쪽으로 좀 전문가들이라서. 그보다 더 없어? 여기서 더 가치있는 걸 얘기하지 않으면....너는 어떻게 되는 지 알지?"

"......."

백작은 입을 닫는 걸 선택했다. 아직까지 '그것' 만큼은 걸리지 않았지만, 백작은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좋아. 죽겠다 이거지? 얘들아, 시작해."

그린엘프들이 하나 둘 백작의 근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 * *

아침이 밝았다.

사지타리우스 백작가의 안주인, 미르망 인 사지타리우스는 교회에 기도하기 위해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났다.

"부디 무사하시길."

남편 사지타리우스 백작과 그녀는 천생연분이었다.

귀족가에서는 아주 드물게 연애결혼으로 결혼한 케이스이며,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신혼 분위기를 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마님, 오늘도 새벽기도를 나가시는 겁니까?"

"예. 함께 가시겠어요?"

복도를 걷다 마주친 시종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르망과 함께 걸었다. 늙은 가신인 그는 백작이 자리를 ㅂ운 동안 미르망을 백작가의 주인처럼 대했다.

"너무 새벽에 일어나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후후, 하지만 아가도 그이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 하는 걸요."

미르망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힘들게 얻은 자식이기에 애정은 더욱 각별했다.

"그러고보니 시종장 님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잠이 오지 않아서 말이지요. 시종들 중에 서로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있는지...아주 소리가 너무 커서."

"후후. 좋은 거 아닐까요?"

"예. 그렇...."

둘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할 백작의 집무실에는 작은 불빛이 켜져있었다.

"시종장?"

"저는 아닙니다."

"저도 아녜요."

"...혹시?"

둘은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집무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리고 백작령의 주인이 잠시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던 믿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 아아...!"

백작은, 알몸이 된 채 바닥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있었다. 시종장은 급히 달려가 백작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미르망의 비명과 함께, 백작성은 끔찍한 아침을 맞이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 * *

<아침, 라스베가스 관청.>

"보고드립니다. 백작가에 있던 모든 재화를 전부 털어왔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린엘프들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역시 전직 모험가들 답게 백작성이라는 던전에서 막대한 보물을 챙겨 돌아왔다.

"자세한 내역은 에일라 님께 따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마석이 있다고 들었는데?"

"예. 분류해야하겠지만, 최소 중하급이 각각 오백개씩은 있었습니다."

"미묘한 양이군.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금은보화는 기본이고 수백에 이르는 마석까지. 야밤에 급히 하피 에일로에 태워 백작성을 털어온 보람이 있었다.

"백작은 깔끔하게 보내줬어?"

"예. 1시간 내에 12번을 싸게 만들었습니다."

사지타리우스 백작. 나는 그에게 12번의 기회를 줬다. 백작성 내에서 가장 값어치있는 물건을 말하여 바친다면 살려는 주기로.

"12번 동안 한 마디도 안 했다고?"

"예. 바닥에 묶어놓고 기승위로 찍었는데 끝까지 한 마디 안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걸로 보내줬습니다."

"호상이로군. 그린엘프의 가슴에 파묻혀 죽다니."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자였다면 분명 호상이리라.

죽기 직전까지 정기가 짜여지는 걸로 모자라, 민트초코 향기를 풍기는 가슴에 파묻혀 절정의 쾌락 속에서 그는 가버렸다. 가버리고 말았다.

"백작이 뭐 숨기는 건 없었고?"

"숨기는 게 있어보였는데 끝까지 말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보물이 있었다는 건가.... 흐흐흐, 뭐 어찌됐든 좋다. 나머지는 이제 그레모리의 몫이다."

토벌대의 총사령관으로 나섰던 백작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백작성에 나타났다.

토벌대는 던전에서 더이상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과연 이것을 두고 인간들은 무슨 상상을 할까? 토벌대 전멸? 던전의 준동?"

"어느쪽이든 백작령은 붕괴하게 될 겁니다."

"크흐흐, 군단의 압도적인 힘을 깨닫게 되겠지요. 드래곤조차도 굴복시킨 "

"사지타리우스 백작가는 대대로 손이 귀한 가문이었습니다. 백작이 죽은 이상...마땅한 후계자가 없을 겁니다."

에일라 아리에스.

그에이 칸세르.

기네비어 피스케스.

세 명의 귀족은 백작가의 자연붕괴를 주장했다. 백작가의 후계자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가문에는 여자들밖에 없었다.

"가문의 대를 끊은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길래 왜 우리 군단의 던전을 털어먹으려고 해서...흐흐.덕분에 아주 좋은 걸 알게 되었지만."

턱. 나는 알로켄 던전의 인간 요새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철광석을 꺼내들었다.

"너희들이 보기에 이거 괜찮은 걸로 보이냐?"

"예. 충분한 가치를 가진 광석입니다. 이걸로 무기를 만들면 주인님 식으로...최소 3성은 보장될 겁니다."

"용의 눈으로 보기에도...제련하면 엄청난 무기가 태어날 것이지요. 크흐흐."

"알로켄 던전이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교단의 전승에 따르면 사지타리우스 황야에는 막대한 광맥이 잠들어있다고 했죠. 분명 그 중 일부가 알로켄 던전으로 편입된 것 같습니다."

공주기사와 드래고니안이 보장하는 철광석.

여신교단의 사제가 밝힌 추측.

인간들이 굳이 던전 안에 요새를 구축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드워프들이 알로켄 던전 공략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

"알로켄 던전은 노다지가 분명하다."

여차하면 알로켄의 이름을 거두어 폐쇄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군단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다름아닌 철광이니까.

'언제까지 경갑으로만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스타킹을 겹쳐 단단한 가죽 방어구를 만든다고 한들, 실제 철갑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건 당연했다. 기술만 있다면 오히려 풀플레이트 아머를 만드는 것이 더 경제적일 것이다.

"이걸 다루려면 결국에는...."

"드워프들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

우락부락하고 수염난 드워프들을 설득해야한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시련이다.

"전부다 로도페리 같으면 모를까...털복숭이에 주정뱅이들 설득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데."

라스로 설득하기에는 너무 종족 자체가 짜증나는 종족이다. 호방한 것 까지는 좋지만, 언젠가 군단장을 상대로 반말을 찍찍 지껄이며 맞먹으려고 들 게 뻔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로도페리."

"......."

로도페리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게 꼭 안겨있는 그녀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쾌감 10배의 절정에도 이제 익숙해졌는지, 슬슬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거나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흐흐흐. 로도페리야. 네가 포로라는 걸 잊었느냐?"

"닥...쳐...."

"너는 나의 씨를 잉태하였다는 말이다."

"뭐?"

로도페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옆에 있던 다른 세 인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파종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던전 안에서 몇 번을 싸질렀는데 당연하지."

"거짓말...!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 드워프가 어떻게 오크의 아이를 임신해?!"

"엘프도 오크 아이를 낳는 세상인데 드워프라고 못할까. 흐흐, 걱정마라. 난 내 아이를 가진 여자에 대해서는 그만큼 대우를 하니까 말이야."

태도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나는 로도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선을 맞췄다.

"들었다시피 우리는 대장장이들이 필요하다. 드워프 공주인 네가 협조해줘야겠어."

"나보고...마왕군을 위해 일하라는 거야?"

"마왕군이 아니다. 군단이다. 라스토피아다. 우리는 비록 마왕군의 비호 아래에 있으나, 언젠가 세계를 하나로 통일할 거대 제국이지. 인간, 엘프, 오크, 수인. 종족의 차별없이 라스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다."

"......."

로도페리는 주변을 훑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만약 그렇...그치만...."

로도페리의 눈에서 망설임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스템을 통해 떠오른 그녀의 속내를 읽고, 로도페리가 확실히 정할 수 있게 협박했다.

"잘 들어라. 만약 네가 여기서 내게 협조하지 않는다면, 나는...."

찌걱.

나는 로도페리의 안을 거칠게 찌르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드워프들을 모두 암컷 엘프로 만들어버리겠다."

"......!!"

우락부락한 드워프들에다가 그린엘프의 알을 합성하여, 로도페리와 똑같은 거유 암컷 드워프로 만드는 것.

"선택해라. 그레모리와 합성되어 그레모리의 거유로 살아가겠느냐, 아니면 드워프들은 모두 너처럼 암컷으로 타락시키겠느냐?"

로도페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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