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회
112일
구울은 본래 약한 존재다.
시체를 강제로 일으켜세운데다가 척추도 제대로 서지 못하니, 마력이 없으면 원래 몸의 힘을 제대로 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있다.
내가 흑마법사는 아닐지언정, 구울들을 강화하는 방법은 알고 있다.
쿵, 쿵쿵쿵!
아주 작은 떨림과 함께 붉은 오라가 내 주변으로 울려퍼졌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분노하라."
나의 로브 뒤로 퍼져나간 붉은 에너지는 라스투자드를 비롯한 구울 마법사들의 몸에 깃들었다. 그들의 푹 꺼진 눈동자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원통함을 저기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풀어라."
쿵. 쿵쿵.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구울 마법사들의 안광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구울 마법사들이 부리는 해골 달린 스태프에서도 불은 오라가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분노는 전염되는 것."
나의 오라가, 나의 분노가 구울 마법사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구울 마법사들은 자신이 부리는 시체들에 나의 분노를 전했다.
두근, 두근.
오라가 깃든 시체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매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으어어 소리를 내던 구울들도 점차 사람처럼 걷기 시작했다.
"피가 없으면 마나로 움직이도록 하면 되지."
나의 오라가 구울들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울들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끄어, 으어어!!"
시체들이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요새의 망루 위에 숨어있던 인간들이 화들짝 놀라 대응하기 시작했다.
화살이 빗발치고 마법이 날아온다. 선두의 구울들이 화살비에 고슴도치가 되고 마법에 폭사한다.
"동료들을 무참히 죽이다니, 이 악독한 인간들!"
인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요새의 나무 울타리에 달라붙는 구울들의 힘에 인간들은 우리를 신경쓸 새가 없었다.
우지끈!
울타리에 달라붙은 구울들이 순식간에 울타리를 망가뜨렸다. 망루에서 떨어진 모험가의 위에 올라타기 무섭게 그들은 입을 벌렸다.
"너희들, 우리의 동료가 되어라!"
쿵, 쿵쿵! 나는 북소리를 더욱 더 크게 내었다. 5성이 되어 강화된 스킬 중 하나로, 나는 더 적은 힘으로 멀리까지 북소리를 펼쳐 내 오라를 방출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그렇다면 얌전히 언데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잖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순순히 항복하는 자는 성적으로 뜯어먹힐 것이다.
하지만 계속 적으로 우리와 맞서기를 희망한다면, 그들은 구울들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게 될 것이다.
"흐흐. 싸우기를 바란다면 이쪽이야 편하지."
인간들은 울타리를 넘어간 구울들을 죽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리 오라의 버프를 받았다고 한들, 이지가 없는 구울들이 숙련된 모험가와 기사들을 상대로 쉽게 이길 리는 없었다.
이기지 못해도 상관없다. 저들이 요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도 그만이니까.
"라스투자드. 구울들을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하라."
[군단장께서 가로되, 우매한 것들을 막을 믿음의 벽을 구축하라 하셨노라.]
라스투자드가 스태프를 앞으로 겨누며 마나를 방출했다. 창백한 색의 마나가 붉은 오라와 함께 전방으로 흩뿌려졌고, 구울들의 절반이 우리가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펼쳤다.
"뭐 하려는 지 궁금하겠지? 흐흐, 퍼시발!"
"가져왔습니다."
포털을 넘어온 퍼시발은 등에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분노로 가득찬 퍼시발은 곧장 몸을 돌려 포털의 근처-소환진으로 달렸다.
"천막치자."
[군단장께서 말씀하셨다. 어둠보다 짙은 칠흑의 장막을 펼쳐 적들의 시야를 교란하라.]
흑마법사들은 일제히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어 검은 장막을 만들어냈다. 명백히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숨기려고 하는 행동에 인간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촤르르!!
퍼시발은 배낭을 소환시설의 위에 집어던졌다. 알로켄의 문장을 본딴 소환진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퍼시발은 허공을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부활이다. 군단의 전사들이여."
"소생하라, 1Q2W3E4R!!"
소환진의 마법진이 반짝임에 따라 알로켄 던전에서 죽은 오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죽었다 부활한 이들은 하나같이 열을 내며 무기를 들어올렸다.
"먼저 부활한 이들은 동료가 살아날 때까지 수비라인을 지켜라."
[군단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권능의 힘으로 다시 생명을 얻은 자, 함께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새로이 받은 생명의 힘을 일깨우거라.]
시간을 버는 쪽은 과연 누굴까. 나는 수비라인을 구축한 구울들을 바라보며 요새에서 나오지 않는 이들을 향해 애도를 표했다.
"가만히 있으면 나야 좋지."
나는 느긋하게 허리를 앞뒤로 살짝씩 튕기며, 로도페리의 안에 씹질을 하는 소리로 오라를 뿌렸다.
쿵, 쿵쿵, 쿵쿵쿵큥.
5성이 된 나는 귀두로 자궁구를 두드리는 소리만으로 오라를 뿌릴 수 있게 되었다.
* * *
요새 안의 인간들.
요새 입구의 드워프.
그리고 요새를 넘어가려는 구울들.
적으로 나타나는 흑마법사들 때문에 시체를 많이 상대해본 모험가들과 드워프들은 구울들을 상대로 제법 분투했지만, 서서히 울타리가 무너지고 시체와 직접 맞딱뜨리게 되었다.
"이 자식들...세 배 빨라?!"
쉭, 쉬익.
구울들은 평범한 구울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붉은 오라가 깃든 몸으로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이전에 밍기적거리며 걸어올 때보다 세 배는 빠른 속도로 손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젠장...! 죽어서도 민폐야!"
모험가들은 검과 방패로 구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미 저들이 동료였다는 것은 그닥 중요치 않았다. 이전에는 동료며 연인이며 형제였을 지 몰라도, 지금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적일 뿐이다.
"젠장...! 더럽게 강하네!"
강해도 너무 강하다. 자신들을 죽일 만큼은 아니지만, 일반 구울들에 비하면 훨씬 강했다.
"대체 뭐야!"
샤아아아앗!!
"으아, 씨발!"
모험가 하나가 구울의 팔을 향해 힘차게 검을 그어내렸다. 마나가 깃든 그의 검은 일격에 구울의 팔을, 불과 닷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료였던 이의 팔목을 잘랐다.
푸슈우웃!
시체의 몸에서 끈적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뿜어졌다. 모험가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당겼으나, 이미 그의 얼굴에는 끈적한 무언가가 흩뿌려졌다.
"뭐, 뭐-으으읍?!"
모험가는 순식간에 구역질이 났다. 얼굴이 끼언져진 끈적한 물체는 피보다 훨씬 끈적하면서 냄새가 심했다. 썩은 시궁창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정신을 뒤틀리게 하는 악취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시체가 부패한 냄새 사이에 흐르는 이 미묘한 밤꽃냄새는....
"웁, 우웩, 우웨엑!!"
모험가는 얼굴 전체를 손으로 닦아냈으나 이미 늦었다. 악취와 함께 스며든 희멀건한 백탁액은 그의 피부에 일부 스며들게 되었다.
"이봐, 정신차려! 지금, 우웁."
모험가를 도와주기 위해 나선 기사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차마 직접 다가가지는 못하고, 검을 휘둘러 팔만 남은 구울이 백탁액을 흩뿌리는 것을 튕겨냈다.
샤, 샤아아아....
몸안의 모든 백탁액을 흩뿌린 구울의 눈에 반짝이던 붉은 안광이 점점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험가들이 잘 알고 있던 구울처럼 행동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퍼억.
망치를 든 드워프가 구울의 상반신에 망치를 휘둘러 쳐날렸다. 구울은 맥없이 땅을 구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시체 썩은 내가 아주 그냥 풀풀 나는 구만."
"그것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오염된 마나의 냄새?"
드워프와 기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냄새는 자신들이 알고 있던 냄새와 비슷했다. 아니, 차라리 무조건 오염된 마나의 냄새여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구울들의 몸에는 피 대신에 '그것'이 흐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이 더러운 새끼들!"
키야아아아!!
백탁액의 냄새에 구울들은 더욱 흥분하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토벌대는 종족을 초월하여 역한 냄새를 흩뿌리는 구울들을 조금씩 처리해나갔다.
"머리! 머리통을 날려!"
"괜히 팔다리 자르려고 하지마! 안에 있던 독액을 뿌린다!"
상식적인 생각하에, 그들은 시체 내부의 혈액이 부패하여 독액이 된 것이라 믿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간다고 한들, 설마 구울 시체 내부에 '그것'이 혈액처럼 흐를 리가 없지 않은가.
키키키키킥!
하지만 구울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혈관에 흐르는 액체에 기겁을 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전술을 바꿨다.
일부러 검날에 베이도록 더욱 과격하게 손을 휘둘렀고, 일부는 아예 스스로 손목을 잘라 조준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역병을 퍼뜨려라!]
"으아악!"
"꺄아앙!!"
푸슛, 푸슈웃.
구울들은 인간들을 향해 자신들의 혈액을 마구 뿌렸다. 아무리 코가 금방 자극에 마비된다고 한들, 순간적인 악취와 비위를 상하게 하는 냄새는 절로 속이 뒤틀리게 만들었다.
[최후의 주문을!]
[부두술, 카니발리즘 캐스트!!]
정체불명의 주문과 함께, 구울들이 자신들의 심장을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붉은 안광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과 별개로,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하얀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파이어 인 더 홀."
깊고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구울들은 자신의 심장을 울타리 안으로 던졌다. 심장을 스스로 뜯은 구울들이 하나 둘 픽픽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붉은 기운이 감도는 하얀 심장은 포물선을 그리며 울타리 너머로 날아갔다.
"으, 으아아악!!"
토벌대의 비명과 함께, 울타리 안 요새에 하얀 심장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 * *
"아아, 던전에 밤꽃냄새가 가득해."
시체 썩는 냄새도 섞여있지만, 나의 마액냄새가 던전 내부에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요새 안에 던져진 심장 폭탄은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진 지라, 바닥에 닿자마자 물풍선마냥 터지며 주변에 마액을 퍼뜨렸다.
"우리 군단의 특별한 구울들이지. 이름하야 라스구울."
"아무거나 이름 앞에 라스 붙이면 특별해지나?"
"이름의 통일이지. 흐흐."
평범한 구울과 다른 점은 단 하나.
그들의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흑마법사의 마나라는 것에 더불어, 흑마법사들이 구울의 시체를 더 손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하나 더 들어있다는 것.
무엇을 숨기랴. 나는 그들의 몸에 나의 마액을 주입했다. 심장에 마액을 소량씩 집어넣어 신체의 기능을 향상시켰다. 소량으로도 움직일 수 있도록, 나는 계속 북소리를 내며 오라를 흩뿌렸다.
쿵, 쿵.
두 다리를 땅에 붙여 가만히 허리를 앞뒤로 흔드는 것 만으로도 땅이 울린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도 진동으로 여겨져 주변에 막대한 오라를 흩뿌린다. 바로 근처에서 내 오라의 버프를 받은 흑마법사들이 라스구울들을 조종해 적을 공격한다.
두두두두.
손목이 잘린 라스구울은 팔을 앞으로 뻗어 체액을 발사한다. 팔을 소총마냥 겨누며 울타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모험가들을 저격한다.
퉤! 퉤! 퉤!
기사의 위를 덮친 라스구울은 침과 함께 마액을 뱉으며 기사의 얼굴을 적셨다. 토벌대의 얼굴을 집요하게 노리는 라스구울들의 노력 덕분에,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마액 범벅이 되었다.
[라스 후 아크바르!]
이미 크게 상처를 입어 죽어가기 직전인 라스구울은 스스로의 심장을 뽑아 던진다. 마액을 심장에 모아 수류탄처럼 던져 주변에 마액을 터뜨린다.
"살상력은 없다. 그냥 마액일 뿐이니까."
그냥 부패한 마액일 뿐이다. 색깔이 조금 탁한 건 그저 시체의 혈관을 돌아다녔기에 부패한 피의 색이 섞인 것일 뿐이며, 마액 자체는 아무런 바이러스가 없다.
"하지만 시체의 몸에서 나온 마액이 깨끗할까?"
죽자마자 바로 저온고에 보관한 시체들이다. 부패를 지연시켰다고 한들 부패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니다. 벌레만 안 꼬였을 뿐, 바이러스나 미생물은 지금 저 놈들의 몸에 창궐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 군."
시체폭탄만큼 인간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방법이 또 없다. 인간은 인간을 상대로 가장 큰 공포를 느끼니까. 시체에 자신이 죽은 모습을 투영하는 것으로 그들은 더욱 큰 공포에 빠지게 된다.
'지들 멋대로 마액을 저주받았니 뭐니 오해하는 것도 그냥 내버려두고.'
무지 또한 공포의 근원이 된다. 최소한 마액의 원료에 대해 알게 된다면 더럽다 수준이지, 저렇게 역병의 근원인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야 뭐 아무래도 좋지만."
덕분에 시간은 모두 벌었다. 나는 천막 뒤에 숨어있던 이들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자들. 그들 또한 언데드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태어난 걸 환영한다, 군단의 전사들이여."
오크들이 씩씩거리며 무기를 들어올린다.
워울프들이 이빨을 세우며 그르렁거린다.
하이구울들 또한 긴 팔을 들어올리며 힘을 과시한다.
그들 모두 적을 '급습'할 준비를 마쳤다.
"너희들 모두 한 번 죽어서 최대 레벨이 1깎였지. 걱정마라. 마물 강화권은 많으니까. 진화에 부족한 레벨은 저것들로 챙기면 될 터."
[군단장님. 드워프들이 울타리 너머로 뛰쳐나왔습니다.]
라스투자드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드워프 한 무리가 도끼를 들고 나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본보기로 몇 놈을 처리하고 요새 안으로 쫓아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놈들은 나를 죽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천막 안이 드러나면 안 되지. 암. 내가 상대하겠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라."
[괜찮겠습니까? 그..안에 있는데.]
"속옷이 불편하다고 못 싸울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 강자가 있으면 벗고 싸울테지만, 나는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내가 언제는 자지를 안 세우고 싸운 적이 있더냐?"
[.......]
라스투자드는 할 말을 잃은 듯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로도페리의 도끼를 들어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너네 동료들 달려오는 게 느껴지느냐? 너를 구하러 오는 것이."
갑옷 속 로도페리는 대답이 없었다. 이미 내가 계속 두드리고 두드리느라 절정에 실신해버렸다.
기절한 사람의 무게가 상당하지만, 이 정도 무게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이 정도 구속이 아니면 내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억누를 수 없다.
[드워프 4장로] ★★★★ Lv.67
[드워프 7장로] ★★★☆ Lv.79
[드워프 10장로] ★★★★☆ Lv.82
"너희들의 수준으로, 나의 구속구를 풀어낼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