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는 '마족답게' 싸우기로 결정했다. 481회
112일
적의 시체를 이용하는 것은 언데드 운용에 있어서 정석 중의 정석.
"너네 시체 쩔더라. 흐흐, 포털을 넘어간 동료가 시체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억장이 무너질까,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동료를 무참히 베어버리는 선택을 할까.
어느쪽이든 아직 시체는 많이 남아있다.
40명 정도의 여자 모험가를 목장으로 보내고도, 죽은 시체를 먹어치워 레벨링을 하고도 우리 군단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체는 차고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여윽시 그레모리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이런 수단을 생각해두다니."
"마지막 수단이었어. 목장까지 털릴 것 같으면 얘네들 화살받이로 던지고 도망치려고 했지."
내 앞에는 라스투자드의 아래에 편성된 구울 마법사들이 인당 35구의 구울을 부리고 있었다. 구울 마법사들이 예전 라스투자드 수준으로 하나하나 올라온 것이다.
4성, 구울 리치가 된 라스투자드가 다룰 수 있는 시체는 무려 105구.
근 100구에 이르는 시체를 혼자서 감당할 수 있으며, 부리는 시체의 능력을 최대 3성급의 전력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질 좋은 시체가 있으면 시체 군단을 만들 수 있기는 했지만, 그레모리는 이들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꼈다.
"병사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지 못하지만 파괴된 구울은 다시 부릴 수 없지. 응당 순서가 반대가 되어야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죽은 이들에 대해서는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기로 하고, 부활 이후에는 더 좋은 삶을 약속해주는 방법 밖에 없다.
모든 여자들에게 1인 1오크를.
모든 남자들에게 1인 1엘프를.
죽은 이들은 부활시키고, 죽은 이의 수만큼 우리 군단의 수를 늘려야 한다. 나는 죽은 이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뭐...이들을 동원해봤자 어차피 진작에 쓸려나갔을 것이다."
우리 군단의 정예병들도 7할이나 죽었다. 거기에 쌓아둔 시체들이 달라붙었다고 한들 얼마나 살릴 수 있었을까.
말 그대로 시간벌이 용도로 남겨둔 구울이다. 정확히는 구울도 아닌 차갑게 보관중이던 시체들이었다.
사수좌전선에서 납치해 온 이들의 죽은 시신들.
그레모리가 사지타리우스 백작가의 토벌대와 싸우며 납치했던 이들을 비롯해 우리 군단의 여러곳에서 죽은 시체들이 그레모리의 던전으로 이송되었다.
시체들은 우리보다 훨씬 약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는 일어나서 할 일 해야지? 흐흐."
병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지금이 바로 언데드가 활약할 때.
"혼돈! 파괴! 망각! 인간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러 가자꾸나."
레벨링은 아직 평균 40대로 낮은 편이지만, 그들이 부릴 수 있는 '정원 외'의 구울은 무려 400구에 이르렀다.
대부분 저러벨이나 2성 수준의 하이구울이지만, 우리 군단에서 등용한 하이 구울과는 별개의 존재들이었다.
[일어나라, 노예들아.]
라스투자드의 사도들이 시체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알로켄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왔던 병사들은 모두 알로켄 던전 탈환을 위한 시체 병사들이 되었다.
"가라. 가서 죽여라. 한 명이라도 더 동료를 죽음의 세계로 끌고오너라."
[너희의 피와 살로 적을 오염시켜라.]
캬아아악!!!
구울들은 일렬로 포털을 넘어갔다. 바닥에 만들어놓았던 물웅덩이 함정의 위에는 나도 충분히 건널 수 있는 나무 판자로 다리를 만들어놓았다.
"쟤들도 저런 함정 설치해두면 어떻게 하지?"
"알게 뭐냐. 어차피 시체 아니냐."
설령 적이 우리처럼 포털 앞에서 방어선을 구축한다고 한들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로서는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마석으로 바꿔먹을 가치도 없는 시체들이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송구합니다, 군단장님."
몸에 붕대를 두른 오크가 내 앞에 허리를 숙였다. 나의 차남, 퍼시발. 던전 주인으로서 내가 그레모리에게 파견한 <알로켄>.
"뭘 송구하냐. 저들이 우리보다 잠깐 강했을 뿐인데. 너는 살아남으라는 나의 명령을 잘 지켰을 뿐이다."
알로켄 던전에 소속된 모두가 죽었지만, 퍼시발만큼은 살아남았다. 내가 그렇게 명령을 했었다.
"죽은 부하들은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해서 마석을 모아 살리면 그만이다."
모두가 죽더라도 던전 주인만 산다면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장소'는 적에게 점령당했지.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적을 찢어죽이고 제 던전을 되찾아야합니다."
"그렇다. 그 기개다, 퍼시발."
퍼시발은 도마뱀처럼 찢어진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이를 갈았다.
"강해진 기념으로 네 힘으로 복수하고 싶지?"
"예! ...군단장 님, 혹시 로브 안에...?"
"오, 눈치챘느냐. 아아, 이것이 내 새로운 팬티다."
나는 로브를 살짝 벌려 내가 입고 있는 속옷을 보였다. 퍼시발의 분노가 어린 눈동자는 내가 입고 있는 속옷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흐흐. 그래. 로도페리는 내가 이미 제압했다."
"......."
"복수의 상대를 잃은 것 같아 허탈하느냐? 네가 아니라 내가 로도페리를 제압하여 상실감이 큰 것이냐? 걱정마라. 아직 메인은 남겨뒀으니."
나는 로도페리만 챙기면 된다. 로도페리는 내 로브 안에서 최대한 몸을 크게 움직이며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애초에 꽉 묶여있는 이상 그게 가능할 리 없다.
"사지타리우스 백작가는 네가 먹거라. 가문의 여식들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 아, 물론 내가 한 번 맛 본 뒤에."
"뭐야, 초야권이야?"
"안 될 게 뭐 있나?"
이미 인간 여성은 에일라와 릴리, 두 명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나 꼴리는 포인트가 있지 않고서야, 고작 백작가의 여자을 내 옆에 들이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로도페리처럼 경쟁력이 있어야지.'
체구는 들고 다니기에 최적화되어있지만 가슴 만큼은 그린엘프들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여자. 나는 로브 밖으로 나의 팬티가 드러나지 않게 로브 밖으로 드러난 붉은 머리칼을 로브 안으로 집어넣었다.
"라스의 사도들이여, 지금 적 던전의 상황이 '보이느냐'?"
[너무나도 잘 보입니다. 군단장 님.]
라스투자드의 12사도들은 구울을 통해 보고 있는 시야를 우리에게 말로써 전달했다.
던전의 중앙에 만들어놓은 나무 요새.
구울들의 등장과 동시에 요새 안으로 기어들어간 인간 세력들.
구울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드워프들.
"인간은 수비, 드워프는 공격이라는 건가?"
로도페리가 내게 잡혀있으니 드워프들은 구울들을 뚫고 포털을 넘어오려는 것이 일견 당연해보였다. 그레모리가 확인한 첩보답게, 로도페리는 진실로 드워프의 공주가 틀림없는 듯 했다.
"흐흐, 남의 집에 알박기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겠군. 전부 무기를 들어라. 잠시 후에...내가 완전무장을 하고 넘어가겠다."
무기는 정해져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는데 빤스만 입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
"잠깐 코스프레에게 다녀오마."
그레모리에게 움직일 수 있는 전병력을 집결시키라 명령한 나는 잠시 라스베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찌걱, 찌걱.
여전히 속옷은 입은 채.
* * *
<잠시 뒤, 라스베가스 살롱 드 코스프레>
"군단장 님, 미치셨습니까?"
"무엇이 미쳤다는 말이냐?"
"그게 무슨 드워프제 속옷입니까. 망측하게 무슨."
"드워프가 만든 속옷이지. 속옷이라는 게 정의가 무엇이냐. 안에 받쳐 입는 게 곧 속옷 아니냐."
"......."
코스프레는 인상을 쓰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로서도 늙은 노인의 앞에 로도페리만 입고 있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로도페리를 벗을 수도 없는 노릇.
"로도페리 벗으면 나 노팬티된다."
"알겠습니다. 제가 눈을 돌리겠습니다."
"봐도 좋은데? 딱히 닳는 것도 아니고."
"군단장 님 걸 제가 봐서 뭐 합니까?"
"그러니까 내 걸 봐도 딱히 상관없다고."
팬티 아래에 숨겨진 은밀한 그것을 가리기에 정말 최적화된 속옷이다. 꽉끼기는 하지만.
"내가 주문한 것들을 내가 사용해야겠구나."
"예?! 설마 그것을...?!"
"그래."
레비즈를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디자인의 물건. 나는 그것을 입어야만 했다. 지금 그게 아니면 입을만한 물건이 없었다.
"꺼내라. 내가 입을 터이니."
"......."
코스프레는 끔찍한 얼굴로 특별히 준비한 물건을 꺼냈다.
언젠가 마녀 레비즈나 그에 준하는 이에게 공개 수치 플레이를 위해 만들어놓았던, 스타킹 아머 10개 분량으로 만들어진 군단 최강의 경갑.
"군단장님, 이제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아, 이것은 역바니 아머라고 하는 것이다."
장갑과 군화. 바니걸이 속살을 드러내는 부분을 가리기 위해 만든듯한 이 갑옷은 팔은 어깨까지, 다리는 치골까지 가릴 정도의 단단한 가죽갑옷이었다. 재질과 느낌은 스타킹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과연. 안에 바니걸 슈트를 받쳐 입으면 되겠군요."
"아닌데? 원래는 안에 아무것도 안 입어."
"예?"
"이것만 입는 것이다. 그럼 유두랑 거기는 어쩌냐고? 몰라, 크크."
"...당신은 신입니까?"
"나는 라스푸틴이노라. 이 세계에 꼴림을 알리기 위해 태어난 사랑의 전도사지."
리버스 바니. 바니걸, OL정장, 라텍스 슈트에 이어 하나의 방어구가 늘어났다.
"입기 전에...먼저 타이즈부터."
나는 가장 품이 큰 타이즈에 발부터 집어넣었다. 그리고 허벅지 부근부터 로도페리를 천천히 타이즈 속으로 밀어넣었다.
"으어어, 더 조이는 구만."
안그래도 밀착되어 있는 몸이 타이즈 덕분에 더 달라붙는다. 나는 억지로 밴드 부분을 들어올려, 로도페리의 엉덩이에 걸치도록 만들었다.
"뒤에 어떻게 되었지?"
"무릎을 들어올리면 벌어질 것 같습니다만."
"조금 폭이 넓은 허리밴드를 만들어다오. 그것으로 칭칭 휘감아 보정하도록 하지."
코스프레는 능숙한 손길로 가죽 원단을 잘라 나와 로도페리를 고정했다. 역시 꼴림의 장인 답게, 그는 로도페리의 엉덩이골에 분노의 인장 모양으로 버클을 달았다.
"군단장 님, 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위는 밴드로 먼저 칭칭 휘감고, 그 다음에 타이즈 셔츠를 입겠다."
"그건 왜죠?"
"그래야 가슴의 감촉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
"제가 그래서 당신을 따릅니다, 군단장님."
나는 두 팔을 들어올렸고, 코스프레는 내 가슴과 로도페리를 완벽하게 감싸며 고정했다. 로도페리의 얼굴이 내 가슴에 파묻혔고, 나는 배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마음껏 만끽했다.
사전작업은 끝.
로도페리라는 속옷 위에 이너아머를 받쳐입은 나는 나만을 위해 준비된 또다른 가죽 갑옷을 착용했다.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물들이고 또 물들인 검은색이 둔탁하고 하드한 느낌을 주었다.
"어차피 위에 로브를 걸치게 되겠지만...그래도 입기는 입어야지."
로도페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괜히 눈 먼 화살이 내 배를 노리고 날아와 로도페리의 등허리에 꽂히는 일이 없도록, 나는 어지간한 공격에 뚫리지 않을 가죽 갑옷을 착용했다.
"아아, 완벽하다."
입기만 해도 마음이 깊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갑옷 사이로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퍽-유-"
참으로, 딥 다크 해지는 기분이었다.
* * *
<알로켄 던전>
"젠장...."
백작은 조금씩 늘어나는 구울들에 절로 욕지기가 나왔다. 마치 지금까지의 승리는 거짓말이라는 듯, 패색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B급 모험가부터 시작하여 백작가의 기사, 거기에 드워프 장로까지. 그간 백작령에서 알로켄 던전의 토벌을 위해 싸웠던 용사들이 시체가 되어 자신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이...더러운 놈들!!"
죽은 자를 모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산 자까지 능욕하려고 하다니. 백작은 울분에 차 소리를 질렀으나,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으어어, 으어어.
구울의 수가 너무 많았다. 어떻게 방법을 찾아볼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구울의 수가 너무 많았다. 죽일 수는 있다. 동료를 깔끔하게 죽여버리겠다는 냉정함만 가질 수 있다면.
거기에....
"정신차려, 이 새끼야! 야! 너 아직 안 뒤졌어!!"
끄어어어.
구울이 된 장로를 납치해 사지를 구속하고 린치를 가하는 드워프들의 눈에는 절박함이 서려있었다. 그들은 도저히 장로가, 자신의 동료가 구울이 되었다는 것-죽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 했다.
"죽음이 찾아왔노라."
포털의 안쪽에서 음험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요새 위의 망루에서 포털을 유심히 지켜보던 백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자는...!"
"내가 너희들의 죽음이다."
검은 로브를 입은 거구의 남자는 손에 든 도끼를 땅에 크게 찍었다. 그의 뒤에는 그를 보좌하는 듯한 구울 마법사들이 포털을 넘어와 진형을 갖췄다.
"저, 저저!"
드워프 장로가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세웠다.
"우, 우리 공주님 도끼!!"
"아, 이거?"
거구의 남자는 흑요석으로 된 양날도끼를 들어올렸다.
"너네 공주님 도끼 내가 먹었다."
어째서일까.
찌걱, 찌걱.
백작은 어디선가 자꾸만 추잡스러운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추리할 시간도 없었다.
"전군, 돌격."
거구의 괴물이 도끼를 앞으로 겨눔과 동시에, 구울들이 전부 요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