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74화 (473/800)

나는 부하들을 믿고 코쿤 속에 몸을 맡겼다. 474회

108일차

초월자들에 의해 정신만 납치당한다거나 하는 건 이제 신물이 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내 천장이다."

아는 천장을 넘어,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천장이다. 나는 나의 던전에서 눈을 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도 없네?"

던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버려진' 던전 처럼 너무나도 을씨년 스러웠다.

"륜? 샤이탄?"

항상 내 주변에 있을 이들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 심지어 시스템창도 먹통이 된 것 처럼 반응이 없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던전 전체를 달렸다.

"에일라! 루나! 그레모리!"

목이 찢어져라 나의 여자들을 부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고, 내 목소리만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

나는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벽만 보일 뿐.

콰득, 콰득.

나는 아무 생각없이 손으로 벽을 파냈다. 손톱을 세워 벽을 파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곳은 라스촌의 입구로 향하는 곳.

쿠웅!

다리를 들어 벽을 걷어찼다. 그러자 바깥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작게 열린 구멍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구멍을 조금씩 넓혀나갔다.

"우, 우오오!!"

전력으로 벽을 허물었다. 구멍이 열리자마자 나는 던전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주변에 보이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대체 뭐야?"

라스촌은 폐가 수준으로 망가져있었다. 오랜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 나무 판자들이 전부 삭아있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이끼와 덤불이 집 전체를 덮고 있었다.

"씨발...?"

마치 시간이 너어어어무나도 오래 흐른 곳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분명 내 던전'이었던' 곳이다.

"원래 진화할 때 이런 식인가?"

★★★★★으로 진화할 때 뭔가 이벤트 같은 것이 일어나는 거라면 사양이다. 나는 역경을 통해 진화한다거나 하는 것 보다는, 1초만에 모습이 변하는 진화를 희망했다.

"아니면 진화하는 닷새동안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다. 시스템의 불친절은 예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 진화에 따라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다는 것 정도는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닐까.

'근데 이런 거 있다고 다른 애들은 얘기 안했는데?'

이미 숱한 이들이 진화를 하면서 그 경험을 얘기해줬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미래의 모습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말했다.

"하, 하하, 하...."

누군가가 이야기라도 해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좋을텐데. 나는 몸을 돌려 던전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안 가본 곳이 있지."

나는 다시 구멍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던전 전체의 구조를 나의 기억과 대조하며 안을 탐방했다.

병영도 막혔다.

슬라임 서브던전으로 들어가는 문도 막혔다.

저장고를 설치해둔 바닥은 열리지 않았고, 감옥도 철거되었다.

"......."

뒷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가지처럼 뻗어지게 만들어뒀건만, 그것조차 막혀있었다. 뒤로 가는 길 끝에는 오직 무덤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하, 하하, 하."

속이 뒤틀린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지나치다. 다른 언어도 아닌 '한글'로 적어놓은 가지런한 글자는 내가 아는 이의 필체였다.

- 파후우 여기에 잠들다.

"샤이탄...?"

꿈속에서 나를 통해 한글을 배웠던, 샤이탄의 필체가 무덤의 묘비에 박혀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게...내 미래라고?"

파후우 여기에 잠들다.

"......."

고인 능욕이라고 한들, 나는 확인을 해야했다.

"씨발, 씨발...!"

흙이 입에 들어가는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나는 모든 힘을 다해 손으로 흙더미를 파냈다. 그 안에 놓인 관의 겉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머리카락...."

색만 봐도 알 수 있다. 금색, 은색, 갈색, 적색, 분홍색.... 약속이라도 한 듯 가지런하게 잘라 봉투안에 넣어둔 머리카락은 내가 알고 있는 색들이었다.

"......."

끼이익.

나는 관뚜껑을 열었다. 관 안에는 시체의 냄새보다 역한 밤꽃냄새가 진하게 울려퍼졌고, 내 머리가 순간 띵해질 정도로 아팠다.

"윽...."

안에는 오크 하나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로, 머리는 벗겨진 채, 두 손을 명치 위에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죽어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다. 지금의 나와 다른 점은....

"배가...?"

배가 비어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배에 햄을 달고 태어났던 나와 달리, 관에 누워있는 오크의 배는 거식증이라도 걸린 사람마냥 훅 꺼져있었다.

"이게...나?"

오크 파후우의 미라. 죽었기에 관에 묻혔고, 내 여자들의머리칼이 관 위의 봉투에 담겨있고, 봉분이라도 되는 것 마냥 묻혀 그 비석에 나의 이름 석자가 한글로 박혀있다.

"...이거 나 아니네!"

내가 아니다.

내가 죽을 리 없다.

아니,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한들 이런 식으로 될 리가 없다.

"여신의 신성력조차 뚫지 못한 게 나의 배다! 다른 모든 것이 문드러지더라도, 배만큼은 그대로일 것이야!"

꾸륵, 꾸르륵.

죽은 오크의 시신이 조금씩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크를 향해 외쳤다.

"순순히 5성 내놔, 씨발놈아!"

푸슈우웃.

죽은 오크가 사정했다. 나는 전력으로 몸을 옆으로 굴려 오크의 사정을 피했다. 관속에 묻힌 오크는 썩은 내가 나는 정액을 뷰릇뷰릇했다.

"...난가?"

죽어서도 사정하는 놈이라면...난가? 나는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이 놈이 만약 진짜 나라면, 죽어서도 사정할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

"아니지, 아니야. 내가 죽어서도 사정할 리가 없지. 죽어서 사정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남자를 향해 사정하지는 않을 거다."

곧 죽어도 여자에게 사정하고 죽을 것이다.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여, 오크의 사인을 확인하고자 오크의 몸을 찬찬히 살폈다.

"심장마비? 뇌사? 아니면 아사?

못 먹어서 죽었다? 하지만 사정만큼은 확실하게 했다. 시체가 사정한다는 건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이 놈은 분명 내 진화를 위한 일종의 시련인 게 틀림없다.

"어떻게 죽었...읍."

오크의 몸을 뒤로 돌리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엉덩이가 쓰라렸다.

"어떤 새끼가...!"

오크의 청년막이 찢어져있었다. 항문이 파열되어 있었다. 오크의 거근보다도 더 굵고 두꺼운 무언가가, 오크의 뒤를 강제로 쑤신듯 찢어져있었다.

"......내가 항문파열로 죽는다고?"

믿을 수 없다. 이건 내가 아니다. 그레모리에게 전립선이 빨린 것 외에, 그 누구도 나의 뒤를 건드리지 않았다. 내가 못하게 했다.

"그래,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청년막을 내어줄 리가 없다. 그 어떤 존재를 상대로 한들, 청년막이 당하기 전에 차라리 자진하고 말 것이다.

"...그래. 이건 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죽을 리가 없다. 나는 오크를 관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옆으로 밀어놓은 흙더미를 다시 아래로 집어넣는 중, 나는 관뚜껑 위에 붙여진 봉투를 손으로 뜯어냈다.

"내가 아닌 놈의 관에 내 여자들의 머리칼을 같이 넣어 줄 이유가 없지."

찌익.

나는 봉투를 뜯어 머리칼을 고이 쥐었다. 그리고 흙더미를 다시 안으로 밀어넣을-

콰---앙!!

관뚜껑이 터졌다. 안에 있던 오크가 주먹으로 관뚜껑을 부수고 일어났다.

"어, 어어..?"

오크는 초점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부터 떠오른 붉은 문신은 내 문신과 똑같은 형태였다. ...그리고 아랫도리가 발기한 형태 또한 똑같은 형태였다.

"...어, 어음. 내 여자들 머리칼을 네가 챙긴 거 아니냐. 씨발, 네가 잘못 한 거 아니냐!"

"끄, 끄어어."

오크는 무덤에서 몸을 일으키려했다. 나는 바로 묘비를 뽑아 놈의 대가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뒤져라, 후장 따여 죽은 오크!"

퍽, 퍼억.

오크의 머리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피는 튀지 않았지만, 비석이 으깨지듯 오크의 머리도 으깨졌다.

하지만 좀비물 중 악질적인 것들이 으레 그렇듯, 머리를 깨도 움직이는 좀비들이 있기 마련.

콰득!

오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놈은 단번에 무덤에서 뛰어올라 내 몸을 뒤로 돌리려고 했다.

"이, 이 미친 새끼!!"

나는 직감했다. 놈은 자신이 죽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내 청년막은 나의 것이다!"

나는 전력을 다리에 모아 오크의 명치를 밀어냈다. 관 안으로 벌러덩 넘어진 오크는 내 뒤를 덮치기 위해 번쩍 몸을 일으켰다.

"씨, 씨바...?"

따먹힌다. 청년막이 따인다. 자신이 죽은 것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의지와 원념이 빨딱 세운 자지에서 엿보인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이대로 먹힐 수는 없다.

"......라스 로 다!"

나는 다리를 들어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오크의 안면을 발로 후렸다. 놈은 뒤로 벌러덩 넘어가며 다시 관속에 처박혔다.

부서진 관뚜껑을 닫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것은 단 하나.

"우오오!!"

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쿵, 쿵쿵쿵!

그리고 달리기 무섭게, 내가 달리는 소리와 엇박의 질주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던전의 중심부, 넓은 공터로 나온 나는 뒤를 슬쩍 눈으로 흘겼다.

부히이익!!

좀비 오크는 단거리 스프린터라도 되는 것마냥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덜렁거리는 자지는 나를 향해 똑바로 세운 채, 내 뒤를 노리고 있었다.

"이, 이런 건 싫어--!!"

나는 목숨을 걸고 앞으로 달렸다.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 설령 던전을 빠져나가 쫓아온다고 해도, 나는 산을 타고 넘어 바다를 헤치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칠 것이다.

"이대로 따일 까보냐!"

나는 달렸다. 그 옛날, 에일라에게 내 자지를 박고 달리던 때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달리기였다.

쿵, 쿵쿵, 쿵쿵쿵!

하지만 좀비 오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놈은 나보다 훨씬 가벼운 몸으로 내 뒤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눈앞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구멍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던졌-

"으억?!"

뒤에서 놈이 나를 덮쳤다. 몸을 날려 나를 위에서 짓누르는 무게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이럴 수 없다...! 이럴 수는...!!"

먹힌다. 놈의 능숙한 손길이,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손길이 내 뒤를 건드리는 것이 느껴진다.

"으, 으어, 으어어!!"

나는 바닥을 긁으며 도망쳤다. 하지만 내가 도망치는 여인을 대하듯, 놈은 일부러 내가 구멍 속으로 몸을 집어넣을 때까지 느긋하게 내 허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

"우, 우오오!"

나는 구멍 안으로 상체를 집어넣었다. 아까전에 빠져나왔던 것처럼 던전 밖으로 나온다면, 분명 도망칠 기회가 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후두둑.

갑자기 내가 뚫어놓은 구멍이 조금 무너져내렸다. 나는 천장이 무너져내리는 곳 바로 아래에 깔렸다.

"끄, 끄어억!"

내 배가 구멍에 걸렸다. 땅에 손을 집어넣어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구멍에 걸린 배와 뒤에서 나를 잡는 좀비 오크의 손 힘을 벗어날 수 없었다.

덥썩.

나는 소름이 돋았다. 순간 내가 지금까지 범해 온 모든 여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았다. 주물럭거리는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

"씨바아아아아!!"

누군가, 제발 이 상황을-

<힘을 원하는가.>

"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씨발 따지다가 후장 따이게 생겼는데!"

<그건 맞는 말이군.>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강해져라. ...여.>

"헐...."

그곳에는, 내가 본 그 어떤 자지보다도 더 거대한 좆이 내 위에서 빨딱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지의 아래에 보이는 환상에 허탈해졌다.

"별이...다섯 개...."

무언가가 내 엉덩이에 닿기 직전, 내 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 *

"......."

나는 의식을 되찾자마자 바로 손을 뒤로 놓았다.

"......다행이로군."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힘을 손에 넣은 덕분에, 나는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크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나를 감싸고 있는 물체는 요람처럼 편안했지만, 이제는 이곳을 벗어나야 할 때.

<알림> 이름을 정하십시오!

4성, 파후우 쿰처쿠 척은 죽었다. 이제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5성의 나를 위해, 가장 큰 선물을 줘야했다.

이름.

내가 내 던전을 만들며, 내가 세상을 향해 외치기 위해 정한 이름을 힘차게 읊었다.

"<라스푸틴>."

사랑의 독재자.

순간.

내 눈앞에,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똑같이 잘생긴, 하지만 배에는 배둘레햄이 아닌 탄탄한 복근이 자리잡은 남자.

식스팩에 각각 인장이 하나씩 박힌, 검은 머리가 풍성한 녹색 피부의 남자.

내 자지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훨씬 더 거대한 자지를 달고 있는 남자.

...좆대 바로 위, 치골에 분노의 인장을 새겨놓은 남자.

★★★★★★, Lv.274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그는, 나를 향해 자지를 치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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