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회
108일차
꼬끼오-
새벽닭이 울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레굴루스 성 안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쟁기가, 삽이, 검이, 창이 들려있었다. 남녀노소 신분을 초월하여 모인 이들은 새벽을 틈타 광장에 모였다.
"우리는! 후작님을 마왕군의 끄나풀로 몰고간 성기사단을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붉은 머리띠를 묶었다. 머리띠 정중앙에는 레오 후작령의 상징인 금색 사자의 문장이 박혀있었다.
"성기사단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광장에 모인 이들은 대로를 점거하여 성문의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후작님을 상대로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우지끈!!
나무로 된 성문이 박살났다. 성문 앞에 있던 주민들 일부가 파편에 꿰뚫려 피가 튀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눈에 핏발이 섰다가, 성문이 박살나며 튕겨나온 이들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성기사다.
성기사단의 기사가 심장이 뽑힌 채 죽어있었다. 눈을 까뒤집으며 몸을 잘게 떠는 그는 주민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도...망...."
툭. 성기사의 손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캬아아악!!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사람들은 몸이 굳어버렸다. 짐승의 포효같기도 한 괴성에 다리가 멈춰버렸다.
캬오오오!!
영주성 안에서 마수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흙바닥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마수는 몸집이 무려 5m가 넘는 거대 괴수였다.
크르르.
우스꽝스럽게 생긴 길쭉한 주둥이와 달리, 마수의 날카로운 이빨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수가 입안에 있던 무언가를 '퉤'하고 뱉었다.
"끄, 끄어...."
대로 한 가운데에 시체가 떨어졌다. 눈을 까뒤집은 성기사는 하반신이 사라진 채 상반신만 남아 피를 흘리다 초점이 사라졌다.
도망.
그제서야 사람들은 성기사의 단말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모두 물러서시오!!"
괴수가 뛰쳐나온 지하에서 성기사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성한 모습 하나 없을 정도로 전신에 피칠갑을 한 이들은 마치 전장에 나온 것처럼 처절해보였다.
"마수는 우리가 상대하겠소!"
바이스 부단장의 외침과 함께 성기사들이 마수의 주변을 포위했다. 일부 기사들은 바닥에 넘어진 이들을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저런 게 튀어나오는-"
순간. 주민들은 괴수가 뛰쳐나온 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다름아닌 후작가의 성 지하.
"서, 설마?"
캬아아악!!
오해를 풀 틈도 없이, 마수는 사방으로 포효를 내질렀다. 피부는 금방이라도 괴사할 것 처럼 썩어 문드러져있었다.
"주민 여러분은 외성 밖으로 대피하십시오!"
흑마법에 의해 오랫동안 실험을 받아 변형이 이루어진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건지.
그 누구도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성기사단이 괴수를 제압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건 자명했다.
"서, 설마 후작님이 진짜로?!"
"생각은 나중에! 도망쳐어---!!"
캬아아아!!
마수, <나크타>는 썩은 시체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내성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 * *
"이, 이 썩을 놈!!"
후작은 기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20대 건장한 기사 둘이 전력을 다해야 그를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후작은 나이답지 않은 힘으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입도 험하군. 마왕군의 끄나풀 주제에."
퀘르벨스 추기경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테라스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성기사단이 중상을 입으며 마수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지하에 저런 마수를 기를 수 있다는 말인가. 영지민들을 제물로 바쳤나? 더러운 마왕군의 내통자같으니라고."
"모함하지마라, 이 궤변자! 네놈들의 수법을 누가 모를 것 같으냐!"
"그래. 그런 식으로 우리의 진실함을 모독하려고 하지. 너같은 놈들은 벌써 몇 번이고 봐왔다."
"모두 날조다! 여신께서 보고 계신다! 두렵지도 않더냐!!"
서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대화가 통할 리가 없다. 어느 한쪽이 진실을 왜곡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이상,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만무.
"레오 후작가는 오랜 역사를 자랑했으나, 고트다이할 레오 후작의 마왕군 내통으로 그 대가 끊기게 되었군."
"이 미친 놈...! 성기사를 죽이면서까지 우리 가문을 핍박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후후, 후작 각하."
퀘르벨스 추기경은 후작의 귀에 아주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평생 궁금해하십시오. 그대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가. 정답은 하나입니다. 마왕군과 내통했기 때문에."
"그건 네놈의 날조가 아닌가!"
"날조라니, 그 무슨 말씀을. 저는 여신교단의 추기경입니다. 제가 설마 그런 짓을 할 작자처럼 보이십니까?"
퀘르벨스는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마왕군의 내통자. 여신의 권위를 대행하는 자인 추기경의 말조차 곡해하고 왜곡하다니. 아아, 여신이시여. 이 죄많은 노인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후작은 옆에 있는 기사들을 간신히 뿌리쳐, 퀘르벨스 추기경의 멱살을 붙잡았다.
"여신께서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하, 참나."
퀘르벨스는 반쯤 가라앉은 눈동자로 후작을 향해 빈정거렸다.
"그랬다면 진작에 천벌을 받았겠지. 어디서 더러운 손으로 나를 건드리느냐. 마왕군의 창놈이."
짜악.
퀘르벨스는 후작의 뺨을 때렸다. 후작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추기경은 후작의 뺨을 때린 흰 장갑을 벗어 후작에게 던졌다.
"더러운 것은 태워서 정화해야하는 법.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하지 마라, 이단. 네놈은 불로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 이 놈이...!"
"끌고가라."
성기사들은 하얀 수염이 붉게 물든 힘없는 노인을 잡아 방을 떠났다. 퀘르벨스는 후작성의 창고에서 꺼낸 고급 와인을 병나발로 입에 물고 테라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여신의 이름으로."
캬아아아!
퀘르벨스의 손에서 보라색 마나가 아주 짧은 시간 반짝거렸다.
그러자 등에 독액이 든 혹을 달고 다니는 네 발 짐승, <나크타>는 성기사단을 무시하고 민가를 향해 갑자기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런 마수를 태어나게 하다니...쯧쯧쯧."
퀘르벨스는 혀를 차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죽여마땅하군. 여신의 이름으로 철퇴를 내려야...크흐흑."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서 추기경은 홀로 웃으며 와인을 홀짝였따.
* * *
아침이 되었다.
아스모딘을 조교실에 집어넣고 난 뒤, 나는 요정들의 환생을 기다렸다. 정확히는 내가 진화에 들어갈 소환시설의 빈 자리를 기다렸다.
<알림> 앗, 니무에의 상태가?
요정들의 대장, 니무에의 코쿤이 열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해피버스데이!"
오크. 40%
하이엘프. 20%
다크엘프. 20%
그린엘프. 20%
어떤 확률로 태어나든 나는 그녀의 탄생을 축복했다. 니무에가 스스로 합성한 알에는 나의 피가 명백히 흐르고 있었다.
"아...."
맑고 청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실눈을 뜨고 눈앞의 여인-니무에를 확인했다.
"...하이엘프?"
엘프로 다시 태어난 니무에는 하이엘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보통 엘프보다 훨씬 뾰족한 귀.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가늠컨대 E부터 시작할 것 처럼 보이는 거유.
옥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숲의 녹음을 담아놓은 듯한 짙은 눈동자.
"......아아, 이것이 그린엘프인가."
"음...그러게요. 엘프의 몸이라고 크게 다른 건 없는 건 같은데. 여기는 확실히 다르지만요."
니무에는 스스로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가슴을 들어올렸다. 멜론 두 덩이가 텅텅거릴 정도로 가슴은 거대했다. 이래도 될까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다다익선이라고 하지만, 엘프의 머리가 대체적으로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 머리통보다 가슴이 더 큰 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
"최고다, 그린 엘프!"
나의 거근 유전자가 분명 그린엘프들에게는 거유로 발현된 것이 틀림없다. 내 앞에 있는 니무에 말고 다른 요정들의 상태는 모르겠지만, 일단 첫 스타트가 제법 나쁘지는 않았다.
위이잉.
약속된 시간이 되자 포털에서 몇몇 여인들이 걸어왔다. 얼굴이 익숙한 듯 낯선 이들은 모두 엘프들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하이엘프가 2명, 다크엘프가 3명, 그린엘프가 1명 정도 비율이라는 것.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오크는 한 명도 없었다.
"역시 모체가 다크해서 그런가?"
"그래도 다들 어째...."
륜은 삼삼오오 모인 요정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니무에를 비롯하여 합성을 통해 다시 태어난 요정들은 모두 가슴이 얼굴보다 컸다.
"요정들이여, 내가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괜찮겠느냐?"
"뭔가요?"
"젖 한 번 짜봐라."
나는 엘프들에게 각각 나무컵을 들이밀었다. 서로 다른 색의 엘프들은 동료의 도움을 받아 가슴을 움켜쥐어 젖을 짜냈다.
향긋한 우유향이 짙게 내 코를 간질였다.
가축 취급의 엘프로부터 낳은 알로 합성한 덕택인지 몰라도, 엘프들을 통해 착유한 젖은 그 양이 컵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가슴이 진짜 젖통이라도 되는 것 마냥 정말 많았다.
"어디 다크엘프의 맛은...그대로 초코우유로군."
모체인 다크엘프들보다 훨씬 깊고 농후한 맛이다. 싸구려 가공유가 아니라 실제 초콜릿을 녹여 갈아 넣은 것만 같은 고급스러운 달달함마저 느껴진다.
"이건 팔린다. 아니, 팔기조차 아까운 젖이로구나."
"하지만 저희 인간들에게 보내기로 했잖아요."
"끙. 그 작전을 철회하고 싶을 정도로 아쉬운 맛이로구나.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젖만 몰래 짜서 우리 던전에 보내는 건 가능하겠느냐?"
"......그럴 거면 차라리 목장에 있는 다크엘프들을 보내시는 게?"
맞는 말이었다. 순간 판단히 흐려질 정도로 맛이 일품이었다. 팩에 넣어서 따로 유통하고 싶을 정도의 진한 맛이었다.
"그럼 다음. 하이엘프들의 맛은 어떨까. ......!!"
나는 하얀 젖을 들이키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익숙한 맛이며, 아는 맛이며, 달콤한 맛이었다.
"...나무통을 바꿔야겠어. 그래, 단지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뜻하게 먹어도 맛있지만 차게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것 또한 팔린다. 초코우유와는 다른 맛이야. 스테디셀러라고 해도 되겠어."
합성으로 태어난 하이엘프라 크림엘프들이 가진 특유의 과일향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혀를 애무하는 듯한 달콤함이 입을 가득 채웠다.
"니무에. 이리 오너라."
"네? 저 여기 짜냈는데요?"
"그린엘프라는 새로운 종이 나왔는데, 내가 어찌 직접 혀를 대지 않을 수 있으랴."
니무에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들어올렸다. 나는 가볍게 혀를 유두에 올렸-
"......."
"주인님?"
"......녹차라떼도 있는데 왜 하필?"
그린엘프인데 왜 이런 맛이 나는가. 나는 니무에가 짜낸 젖이 담긴 나무컵을 들었다. 향은 나지 않지만, 입안에 느껴지는 맛은 분명 '그것'의 맛이었다.
"륜. 이걸 마셔보거라. 어떤 맛이 나는지만 알려주면 된다."
"......윽."
륜은 인상을 찌푸렸다. 같은 엘프의 젖이라서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린엘프 특유의 젖내에 난색을 표하는 듯 했다.
"샤이탄, 네가 한 번 마셔보거라."
"흠...."
샤이탄은 담담한 얼굴로 가볍게 우유를 홀짝였다. 컵을 두 손으로 잡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샤이탄. 조금 실망했다."
"실망까지 하실 거라고는.... 개인의 취향일 뿐입니다. 검스와 흰스의 차이같은 거 아닐까요?"
"글쎄다."
나는 니무에를 들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평가를 부탁했다. 그리고 여러 곳을 둘러본 끝에, 그린엘프가 짜낸 젖에 대한 평균적인 기호를 알아냈다.
마족은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좋아하는 경향을 보였다.
마족 이외의 존재들은 반반 정도로 표가 갈렸다.
오직 오크와 엘프만이 극명하게 난색을 표했다. 거기서 나는 오크와 엘프의 결합이 낳은 끔찍한 존재에 대해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린엘프가 우리 군단의 정점이거늘...."
어찌 이런 끔찍한 종족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유전자 감별을 위해 니무에를 데리고 직접 유전자 감별사-신수에게로 갔다.
"신수님, 새로운 종이 태어났습니다."
"오오, 이건 처음보는 종이로군. 그래. ......뭐, 뭔가 복잡한 맛이로구만."
신수조차도 맛에 대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나는 이 세계에 악마의 씨앗을 뿌린 나 스스로에 대해 참회했다.
"여신이시여, 부디 저에게 용서를."
다크엘프를 모체로 삼아서 그런 걸까.
"오크로부터 시작되어 인간을 모체로 삼아 태어난 오크. 그리고 그 상대는 다크엘프. ...뒤섞인 피로 인해 이런 맛이 나온다고 봐야하는 게 아니겠는가."
"끔찍하군요."
교잡의 끝이라고 생각한 그린엘프.
그들의 젖에서 민트초코 맛이 느껴졌다.
"나는...무슨 짓을 한 거지?"
아아, 나는 이 세계에 민트초코를 탄생시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