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어길 수는 없다. 466회
107일차
# 2401
인장은 조교되는 것.
색욕의 군단장이든 아스모데우스든, 일단 인장이자 마왕의 딸인 이상 조교실로 들어가야한다. 그게 우리 군단의 룰이며, 샤이탄의 아래에 딸리게 될 여인으로서 반드시 따라야 할 일이었다.
'안그러면 루시펠이 불쌍하잖아.'
노오오오력을 해서 하르파스를 살려주는데 큰 공헌을 하고, 지금도 하루에 한 번씩 나의 씨로 마석을 낳아 우리 군단 살림에 보탬이 되고 있다. 그런 루시펠의 노오오오력을 감안해서라도 아스모딘은 조교되어야 한다.
"누구의 색욕이 더 색스러운가 한 번 보자고. 흐흐흐."
당연히 우리의 승리가 되겠지만. 나는 정신과 라스의 방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아스모딘에게 손을 흔들었다.
"샤이탄. 우리 내기 하나 할까?"
"어떤 내기 말씀이십니까?"
"루시펠이 아스모딘을 조교하는데 성공한다 실패한다."
"저는 실패한다에 걸겠습니다."
"저런. 나는 루시펠을 믿고 있는데."
샤이탄은 분노의 인장일지 몰라도, 나는 세 인장의 주인이다. 그리고 내가 키우고 조교한 루시펠의 실력을 믿는다.
"레비즈는 애가 워낙에 독종이라서 실패한 거고. 루시펠이 아예 못하는 건 아니잖냐. 흐흐, 너 지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루 지내야 할 거다?"
"주인님께서 시키시는 거라고 해봐야 알몸으로 근무하는 것 정도밖에 더 되겠습니까만, 그 반대라면 주인님께서 저를 위해 하루 쓰셔야 할 겁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걸고 내기를 걸었다. 어차피 내기의 결과가 상관없이 서로가 윈-윈인 결과가 발생하겠지만, 침대 위의 주도권은 몹시 중요한 문제다.
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내가 주도권을 잡고 리드하니까. 아주 가아아끔 꼴릴 때 직접 위에서 올라타보라는 걸 제외하고는 내가 주도적으로 허리를 흔든다. 샤이탄은 그 주도권을 하루 가지겠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샤이탄, 루시펠이 지금까지 한 걸 생각하면 조금은 믿어볼만 하지 않냐?"
"믿으니까 루시펠이 진다는 거에 건 겁니다. 주인님. 아스모딘이 왜 서큐버스인 저를 제치고 색욕이 되었겠습니까."
"......."
갑자기 내기의 결과가 두려워졌다.
"샤, 샤이탄. 혹시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 지 정도는...?"
"걱정마십시오. 하르파스가 한 것 정도로만 할 겁니다."
"...설마."
"예. 주인님을 알몸으로 벗기고 그 위에서 스타킹 신고 풋잡하도록하죠. 아아, 주인님의 언어로 따지면...펨돔이었던가요? 후후."
샤이탄은 음흉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꿈속에서."
"......."
아스모딘 파이팅. 루시펠 파이팅.
어차피 둘 다 샤이탄의 시녀이자 나의 첩이 될 여자들인데, 차별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흐흐, 그러면 이제 또다른 일을 처리해야지."
이번 쟁탈전을 통해 '라스'와 관려된 일은 모두 끝마쳤다. 조교의 결과가 어떻든 이미 나는 아스모딘을 아스모데우스로 맛보았다. 겉껍질은 화장빨로 속일 수 있어도 질만큼은 숨길 수 없으니, 내가 그녀를 들고 달렸던 그 속살은 드라이어드 아스모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슬슬 이야기는 끝났나?"
"어이쿠, 기다리게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륜, 플라우로스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중성적인 외모의 여인 앞에 허리를 숙였다. 하이엘프 모습을 한 그녀, 신수는 마나가 깃든 음료를 홀짝이며 노곤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맛만큼은 자부할만 하군. 아직 질은 그닥이지만 말이야."
"저...진짜로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원래 초월자 정도 되는 분들은 다 그렇게 성적으로 나사가 빠져있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신수를 비롯하여 겪어온 초월자들을 상기했다.
눈앞의 신수 유그드라실부터 시작하여 요정왕 티타니아, 여신과 대천사 가브리엘, 에스투, 그리고 마왕 솔로몬과 여신.
나만의 던전을 가진 이후 나도 어지간한 변태력으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내게 직간접적으로 보이는 성적인 자유분방함은 자유를 넘어 무정부주의에 가까웠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신수가 싱긋 웃으며 마시는 음료는 마액을 희석한 것이다. 내가 일부러 신수를 엿먹이려고 대접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플라우로스를 통해 받은 상급 마액이다.
"나사가 빠져있다라...자네, 내가 얼마나 살았다고 생각하는가?"
"글쎄요. 뭐, 세계수니까 세계가 시작할 때부터?"
"정답일세. 이 세계의 나이가 곧 나의 나이일세. 그렇다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자극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말일세."
신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손가락을 뻗었다.
"섹스는 할 때마다 새롭다네. 특히 우리쯤 되면 말이지. 나로서는 마지막 7명에-크흠."
신수는 헛기침을 하며 차를 마셨다. 말을 돌리는 것 같지만, 저걸 추궁했다가는 바로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맛이 참 좋군. 류나리아니아의 딸의 손녀의 딸...아니지, 륜이라고 했나. 확실히 그대 주인의 맛은 일품이군. 지금까지 먹어본 맛 중 두 번째로 맛있다고 자부할 수 있노라."
"첫 번째는요?"
"당연히 마왕이지."
아직까지 솔로몬에 비빌 정도는 아니라는 건가.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신수의 앞에서 당당히 마주앉았다.
"장모님."
"내가 왜 자네 장모인가?"
"플라우로스도 제 여자이니 장모님이시죠. 제가 플라우로스 뿌리 안에 몇 번은 박고 싸질렀는지 아십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그리고 자네도 여간내기가 아니야. 생물학적 어머니 앞에서 그런 소리를 당당히 지껄이다니. 흐흐흐."
신수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자신의 허벅지 위에 고이 눕힌 플라우로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신수의 손길에는 분명한 모정이 보였다.
"그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아까 물으려던 건 그냥 물어본 걸 테고."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당신들의 '가호'."
신수의 눈썹이 튀었다. 나는 신수에게 내가 기절한 사이 겪었던 일에 대하여 자세히 읊었다.
"저는 꿈에서 요정왕이라고 자칭하는 존재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티타니아라고 하더군요. 본인 스스로 색욕의 인장 아스모딘의 어머니라고 자처하는 자를 만났습니다."
"그 썅년...크흠, 그 여자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 ㄴ...녀는 요정왕 티타니아가 맞다."
화두를 잘못 꺼낸 건 아닐까. 하지만 내 의문의 확인을 위해서는 한 가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녀는 제게 요정왕의 가호라는 걸 주었습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흐음. 과연. 그 꼬라지를 해도 일단은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건가. 흐흐, 앙큼한 것. 크흠, 미안하군. 나이를 먹다보면 혼잣말이 자꾸 늘어나서 말이야."
몇 살이나 먹었는 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래. 요정왕이 가호를 내려준 이유가 궁금한가? 그럼 자네는 내 가호를 원하는 것인가?"
"그것도 있지만, 저는 예전에 이런 경험도 겪었습니다. 예, 여신을 뵈었습니다."
내 말에 신수의 표정이 굳었다. 설령 누군가가 듣고 있다고 한들, 나는 여기서 확실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신전에서...."
나는 신전에서 여신처럼 보이는 여성과 만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혹시나 몰라 샤이탄과 의논했던-마왕도 뷰릇뷰릇하게 만드는 미약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한 채, 여신의 말을 적당히 각색하였다.
"여신은 저를 통해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대천사...아마도 가브리엘이죠? 그 여자도 저에게 뭔가를 준 것 같았습니다. 제법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가브리엘까지? 허...."
신수는 혀를 내둘렀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유망한 기대주에서 형용할 수 없는 천재에 대한 공포같은 시선이 서려있었다.
"자네. 혹시 꿈이 마왕인가?"
"아뇨. 라스의 신입니다."
"...내 딸을 잘 부탁하네."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은 신수의 눈빛에는 뭔가 열망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눈빛을 읽고 신수의 속내를 알아챘지만, 신수에게 괜히 올가미가 씌워질까봐 일단 모른 척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궁금한 건? 그들이 왜 자네를 주시한다는 거?"
"아뇨. 가브리엘이 내린 가호가 뭔지 궁금합니다."
나는 시스템을 통해 조회되는 <요정왕의 가호>에 대해 언급했다. 정령을 상대로하는 파종에서 최소 ☆☆☆을 보장하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보정.
'보통 요정왕의 가호라고 하면 정령친화력이 오른다거나, 정령을 부리게 해준다거나 하던데.'
이 요정왕은 얼마나 색스러운지, 오로지 파종과 번식에만 적용되는 가호를 내려줬다. 그 계기는 아스모딘이라는 인장을, 자신의 딸을 내가 가지게 됨으로써 벌어진 일.
그렇다면 오만의 인장인 루시펠을 내가 가지게 되면서, 어쩌면 그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대천사 가브리엘도 내게 가호를 내린 게 아닐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자네는 가호를 '시스템'으로 보고 있으니까."
신수는 의외로 명쾌한 대답을 내렸다.
"대천사가 어찌 마왕군의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겠는가. 대신 뭔가 특별한 가호를 내려줬겠지. 그래. 음...신성력에 저항력이 생기도록 해줬다거나."
"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신성력을 가진 존재들과 떡을 칠 때 자지가 신성력에 타들어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만약 가브리엘이 진짜로 내게 신성력 저항 가호를 내려줬다면, 그녀는 분명 내 생명의 은인이다. 레비즈 공략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루시펠을 더 아껴줘야겠습니다."
"글쎄. 자네 성향을 생각하면 아스모딘 쪽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네만."
"네? 그래도 지금까지 조교해 온 몸정이 있는데."
"드라이어드는 나무의 정령일세."
"......."
요정왕의 가호. 정령 상대로 최소 ☆☆☆ 보정.
인장을 상대로 하는 파종은 마석 가챠.
즉, 아스모딘을 상대로 파종하는 건 무조건 최저가 중급 마석...!
"아아, 이것이 노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천재의 벽이라는 것인가."
조교노력가 루시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산란천재 아스모딘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잠시 애도를 표했다.
'엄마차이.'
만약 가브리엘이 '<대천사의 가호> - 천족 상대로 확정 ☆☆☆☆ 보정'같은 걸 내려줬으면 어땠을까. 나는 열심히 아스모딘을 조교하고 있을 루시펠에게 나중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기로 했다.
"흠...그나저나 둘이나 자네에게 가호를 줬으니 나도 가호를 줘야겠지. 그대는 아주 멋지게 내 부탁을 들어줬으니."
"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클라이막스.
나는 신수를 향해 엎드려 절했다.
"제 머리에 가호를!"
"...그래. 아까부터 계속 신경쓰였다네."
신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웃음을 참으려는 듯 보였다. 나는 몸을 들어올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진짜 개빡시게 뛰었습니다. 다크엘프들 구하느라 양동작전 펼치고, 정말 힘들게 힘들게 구했습니다. 물론 일부 다크엘프들이 합성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친구들이 죽은 만큼 모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래. 자네가 노력한 건 알겠네. 기다려보시게."
신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내리듯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신수에게, 세계수 유그드라실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머리가 전부 불타올랐어도 태연했던 이유.
<세계수의 가호>. 불타올랐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날-
"아. 조졌...크흠."
신수가 내 머리에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내 어깨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자네, 마음 단단히 먹으시게."
"예? 불안하게 왜 그러십니까?"
"글렀네."
"......."
두근, 두근. 신수의 앞이라 쪼그라들었던 자지가 불타올랐다. ★이 6개라거나 200이 넘는 레벨이라거나, 마왕의 여자라는 건 중요치 않았다. 억눌러놓았던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탈모라는 건 말일세, 모근이 약해져서 생기는 것이야. 노쇠한 모근이라도 뿌리가 살아있다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데...이건 다 타버렸어."
"예?"
"뿌리가 다 타버려서 복구가 불가능하구만. 여자로 치면 폐경이라는 걸세. 그...미안하네. 이건 나도 어쩔 수 없구만. 가망이 없어, 가망이."
아아, 이것이 절망이라는 것인가.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알림> 특성 '대머리'가 추가되었습니다ㅋㅋㅋㅋㅋ
<대머리> 오크는 대머리가 국룰
시스템으로 놀려먹다니.
"솔로몬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