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회
107일차
물건을 다룰 때, 특히 전자기기를 다룰 때 제일 난감한 상황은 망가지는 것이다.
고장나는 것. 특히 내가 건드리거나 건드리려고 하는 타이밍에 그렇다면 더욱 당황스럽다. 나는 결코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망가지면 더욱 그렇다.
"으어, 씨벌! 이게 뭐여!"
지금도 그렇다. 아스모딘의 몸은 마치 뿌리가 썩어 말라비틀어지는 꽃잎처럼 생기를 잃었다. 사람이 순식간에 미라가 되는 모습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거 좆됐다."
"주인님, 진정하세요."
"그거 아스모딘 아녜요."
"......??"
샤이탄과 루시펠은 침착했다. 썩어가는 아스모딘을 향해 미약한 짜증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아스모딘이 아니라고?"
"네. 분신 같은 거예요."
"아, 뭐야. 그레모리 같은 건가. 천만다행이군. 난 또 내가 러스트릴리스에서 뽑아내는 바람에 좆된 건 줄 알았잖냐. 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만지자마자 썩어버린 아스모딘이 본체가 아니라니. 내가 목숨걸고 구한 아스모딘이 분신이라니.
"그럼 이 년 본체는 어디있어? 인장은 여기 있는데??"
"인장은 여기에 있는게 분명합니다. ...저희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 막 불안해서 손이 막 다 떨리는데."
"그럼 저희 보지에 집어넣고 마음 편히 계셔요."
"그럴까?"
나는 샤이탄과 루시펠의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두 명은 스스로의 몸을 내게 붙이며 나를 진정시키려했다. 라벤다 향과 레몬 향이 허브처럼 내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진정시켰다.
"주인님, 복숭아 차는 어때요?"
"좋지."
나는 륜이 준비한 복숭아 차를 들이켰다. 자지는 달아올랐지만, 자지에 모든 분노가 쏠린만큼 역설적으로 내 이성은 차가워졌다.
"......진정했다."
나는 세 여자의 도움으로 패닉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셋을 손과 혀로 보내버리고 난 뒤, 형체가 완전히 사라진 아스모딘을 보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나뭇가지…?"
사람의 형태는 사라지고 나뭇가지만 쌓여있다. 그리고 마치 아랫배의 형상을 한 나무껍질에는 색욕의 인장이 남아있다. 장난을 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인장은 인장이었다.
"이건 도대체."
"주인님. 아스모딘은 드라이어드 입니다. 나무의 요정이자 정령이죠."
"...거기에 장난기도 조금 심하고, 머리도 제법 좋은 아이에요. 저희가 보기에는…."
"분신에 인장을 박아넣고 본체는 따로 움직였다는 건가?"
샤이탄과 루시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모딘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면, 아스모딘은 인장을 분신에 새기고 자신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가능한가?"
"아스모딘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그녀가 만든 분신은...자기 자신의 육체로 빚어서 만든 거니까요."
"목각인형에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보시면 돼요. 설마 인장까지 이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지만."
"......."
인장은 분명 우리 군단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엠블럼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인장이라는 건 곧 마왕의 딸을 말하는 것이지. 분노의 인장이 샤이탄이고, 오만의 인장이 루시펠인 것처럼."
그러니까 색욕의 인장도 아스모딘 그 자체여야 한다. 이런 나무껍질에 반짝이고 있는 인장이 아니라, 아스모딘 본인이어야만 한다.
"샤이탄. 일단 인장을 흡수해라."
"네."
샤이탄은 색욕의 인장을 자신의 하복부에 집어넣었다. 분노와 섞인 색욕의 인장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할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본체는 어딘가에 있다...그리고 그건 아마도 둘 중 하나."
아스타로트.
아스모데우스.
"젠장, 아스타로트를 잡지 못한 것이 아쉽군."
"후훗, 주인님. 주인님께서는 이미 아스타로트를 잡으셨습니다."
"......?"
샤이탄은 나를 향해 자랑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파두신 함정이...."
나는 샤이탄에게 설명을 듣자마자 나를 끌어안았다.
장하다, 과거의 나.
* * *
<세 시간 전, 라스피카 성 성문 앞.>
"그대들이 호위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물론이오. 우리는 바로 이 길을 따라 후작령으로 돌아가겠소."
안다이할과 기사들은 굳게 닫힌 남작성의 성문을 흘깃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평범한 남작령에 불과했던 스피카 성의 겉은 여느 백작가보다 더 단단해 보일 정도로 성벽이 개조되어 있었다.
"각하, 저건...."
"분명 보고에 있었던 스톤골렘 성벽일 터."
안다이할과 안서니우스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다. 잘 다듬어진 석재를 구할 수 있는 곳도 마땅찮은 남작령에서 성벽 앞에 새로운 성벽을 쌓는 건 사실상 무리였다.
끼이익.
굳게 닫힌 성벽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유니콘을 탄 검은 제복의 기사들이 뛰쳐나왔다. 안이 보이지 않는 투구에 안다이할은 검에 손을 옮겼다.
듀라한. 유니콘. <죽음의 기사>로 불리우는 이들이 나타나자 자연히 몸에 긴장이 서렸다.
"......괜찮습니까, 니프엘라?"
선두에서 죽음의 기사들을 이끄는 갑옷의 기사는 예상 이상으로 고운 미성을 가지고 있었다.
"네. 여왕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들을 씻겨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인간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온 니프엘라는 마치 포로처럼 연행되고 있는 다크엘프들을 가리켰다.
대부분 손목이 가죽끈으로 결박되어 있었지만, 스스로의 발로 직접 걸어 엘프와 오크들을 따라 라스피카까지 걸어왔다.
단 한 명, 전신이 가죽끈에 꽁꽁 묶여 오크에게 들쳐진 다크엘프 한 명을 제외하고.
"저 자는...?"
"불행히도 안에 '색욕의 악마'가 깃든 다크엘프입니다. 여왕님께서 직접 정화해주셔야 할, 색욕의 저주가 깃들어있습니다. 지금도...."
주르륵.
다크엘프의 발치에서 끈적한 밀액이 흘러내렸다.
뒤를 따르던 인간 기사들은 처음에는 음심이 조금 돌았으나, 바닥에 애액으로 라인을 그을 정도로 흥건하게 홍수를 쏟아내는 다크엘프의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었다.
색욕의 저주.
엘프들 조차 견뎌내기 힘들어 할 정도로 발정나게 한 저주는 까딱 잘못하면 엘프 뿐만 아니라 오크, 인간에게도 전염될 수 있는 문제였다.
발정난 다크엘프를 둘러멘 오크들은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무발기 사정을 할 정도였고, 한 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간신히 이곳까지 끌고왔다.
"먼 길 고생하셨습니다. 여왕님께서 곧 오실테니, 안에서 휴식을 취하십시오."
죽음의 기사는 원정군을 성 안으로 들였다.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인간 기사들은 우물쭈물하며 안다이할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단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죽음의 기사는 투구를 벗었다. 투구 아래에는 찰랑거리는 긴 머리의 여인이 창백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미모에 인간들은 잠시 넋이 나갔다.
"한 때는 인간이었던 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저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던 엘프들을 구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은...약소한 물건입니다만, 엘프 여왕님께서 인간들에게 보내는 성의입니다."
죽음의 기사는 제법 큼지막한 배낭을 서너 개 가져왔다. 검은 가죽으로 된 배낭은 배낭 자체로도 제법 고급스러워보였고, 안서니우스가 나서서 안의 물건을 확인했다.
"......!!"
익숙한 종이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은 익히 알고 있는 것에 더불어 새로운 물건까지 들어있었다. 안다이할 또한 안의 내용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것은...?!"
"팬티, 스타킹, 가터벨트."
죽음의 기사는 제복 치마 아래를 슬쩍 들췄다.
"선물은 개인적으로 사용하셔도 될 겁니다. 추후, 엘프들의 정화작업이 끝나고 나면 엘프들이 직접 이것을 입고 갈 것이니다."
"......."
기사들은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몇몇 기사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성 안으로 들어가는 엘프들을 눈으로 흘겼다.
"정말로 약속은 지키는 겁니까?"
안다이할은 그들이 꺼내지 못하는 말을 대신 입에 담았다.
"정말로 엘프들의 정화작업이 끝난 이후에는 저희에게 신병을 양도하는 겁니까?"
"......엘프 여왕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미 추방한 엘프를 다시 들일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밖으로 내쫓을 수 없으니, 그들을 구한 인간들에게 우선 보내겠노라 하셨습니다."
엘프 여왕의 공언에 기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죽음의 기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정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던전에서 얼마나 당했느냐에 따라...정화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여왕님께서는 약속했습니다. 반드시 이들을 정화하여, 자신들을 구해준 이들에게 인사하도록 하겠노라고. 엘프는 은혜를 아는 자들이라고."
죽음의 기사는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봉인에는 분노의 군단 인장과 엘프 여왕의 상징같은 성흔이 각각 박혀있었다. 안다이할은 여왕의 약속이 적힌 양피지를 챙기며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그 날이 오기를 반드시 바랍니다."
"네. 반드시 약속드립니다."
인간 기사들은 엘프들을 구했으나 단 한 명도 후작가로 데려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엘프와 분노의 군단으로부터 막대한 재물과 '여왕의 약속'을 받았다.
- 구출한 다크엘프들을 정화하는 그 즉시, 시장 라스마켓을 통해 레오 후작가로 추방할 것이다.
인간 기사들은 엘프 여왕의 약속을 믿으며 후작가로 기수를 돌렸다.
* * *
<그리고 다시 현재, 파후우 쿰처쿠 척의 던전 지하 1층.>
"웰컴 투더 라스 월드."
들어가자마자 오크들이 좆질하는 소리가 감미롭게 울려퍼진다. 인간들에게서 '정화'라는 명목으로 들인 다크엘프들은 오크들에 의해 사용되며 쾌락에 절어있다.
기존에 우리 군단에서 사로잡은 다크엘프들에 더불어, 인간들로부터 양도받은 다크엘프들 또한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다.
"후후, 이걸 위해서 투트랙으로 병력을 동원했지."
설령 인간들이 다크엘프들을 구출하더라도, 결국에는 우리의 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교묘히 유도했다. 아무리 전투력이 높은 기사라고 한들 주술적인 공포까지는 이겨낼 수 없었다.
마족의 저주를 들먹이니 아주 효과 만점이더라. 그리고 그 저주를 해주하여 보내주겠다는 엘프 여왕의 약속까지 더해지니, 인간들은 순순히 다크엘프를 우리에게 보냈다.
"주인님, 그러면 약속은 안 지킬 거예요?"
"그건 아니지. 루나의 이름으로 약속을 했고, 분노의 군단장이 인증하기도 했다. 우리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엘프들은 정화하여 보낼 거야. 다만...."
꿀럭. 나는 품에 든 알 하나를 집어들었다. 갓 낳은 것처럼 따끈따근한 알은 이 엘프 목장에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첫 '알'이다.
어버이는 오크와 다크엘프.
<오크 x 다크엘프> 오크와 다크엘프의 결합
오크 (☆☆~☆☆☆, 40%)
다크엘프(☆☆☆, 20%)
하이엘프(☆☆☆, 20%)
그린엘프(☆☆☆~☆☆☆☆, 20%)
"흐흐흐, 원래 가축 분양은 새끼를 분양하는 것이지."
"주인님, 악랄하시네요."
"어차피 쟤들 인간들의 품에 보내봐야 성노예로 팔려나가기밖에 더하겠냐. 우리 군단에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 환생 가챠 돌리는 게 훨씬 낫지."
환생하거나, 혹은 자신이 낳은 알로 합성되거나.
후자의 경우 엘프가 여자 오크가 되는 경우가 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환생할 때까지 목장에서 계속 알을 낳는 게 그들에게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치만 주인님, 환생 확률이 없지 않아요?"
"륜아."
나는 륜의 머리를 잡고 내 아래로 낮춘 다음, 자지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귀를 핸들처럼 붙잡아 앞뒤로 움직였다.
"환생이라는 것도 다 노오오오력을 하면 가능한 것이다. 안드라스의 경우를 잊었느냐?"
666개의 알을 낳아 5성이 되려고 했던 그녀의 경우처럼, 무수히 많은 알을 낳으면 환생 퀘스트가 열릴 지도 모른다.
던전 주인만 열리는 퀘스트라면 어쩔 수 없고, 그 때는 엘프로 확정 환생하는 알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정화해서 엘프를 보내준다고 했지. 내용물이 다르다고 한들 어쟀든 엘프를 보내는데 지들이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맛을 보기라도 했나? 아니면 이름을 듣기라도 했나. 어차피 정화 작업을 통해 기존과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는 해놓았다."
구출한 엘프들이 아닌 다른 엘프들이 자신들의 앞에 놓였을 때, 감이 좋은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치마를 걷어올리며 드러낸 가터벨트와 스타킹, 그리고 구해준 것에 은혜를 갚으러 왔다며 달콤한 냄새를 풍기면 바로 정신이 날아갈 터.
"샤이탄, VIP 포로 둘은 안에 따로 있지?"
"예. 꼼짝도 못하도록 해놨습니다."
"흐흐, 그럼 이것부터 테스트하자."
나는 몸을 돌렸다. 우리의 뒤, 목장을 관람하러 온 여인들은 모두 인간으로, 하나같이 서큐버스 이상의 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 번 인간 사회에 침투한 스파이니까 경험을 더 잘 살릴 수 있겠지? 흐흐, 너희가 험하게 몸을 굴렸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지. 자, 요정들이여."
남작령 공략을 위해 스스로 웃음과 꽃을 팔며 남자들을 서큐버스들에게 인도했던 인간 모험가들.
아발론의 요정.
"40%로 오크가 될 수 있지만, 60%로 엘프가 될 수 있지. 오크가 되면 본인 희망에 따라 엘프 될 때까지 합성 해주마. 자...누가 먼저 합성해볼래?"
남작령의 몰락을 가져온 아발론의 요정들은 인간을 그만두고 엘프로 다시 태어나, 인간 사회에 깊숙히 침투하게 될 것이다.
하는 김에 험하게 굴린 몸도 엘프의 깨끗한 몸으로 갈아치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