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회
106일차
거래.
기사단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의 군단이라는 이들과 거래를 맺은 건 마녀 레비즈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었던 것을 무마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분노의 군단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기사단은 언제든지 남작령을 탈환할 준비는 모두 해놓은 실정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거래를 한다? 이건 위험하다. 명분이 마땅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눈앞의 하르파스라는 조류계 마족을 믿을 수 없다.
마족이 뒤섞인 고깃덩어리 앞에서 새까맣게 불탄 오크의 배 위에 걸터앉아 발로 자지를 가지고 노는 마족이라니. 이 얼마나 정신나가고 선정적인 마족이란 말인가.
분노의 군단은 엘프가 중재를 섰기에 거래가 가능했다. 행여나 엘프가 인간들의 편으로 다시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거래를 텄다. 분노의 군단장이 후작에게 보낸 진심어린 선물도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마족과, 다른 군단과 새롭게 거래를 할 이유는 없었다.
"허튼 소리."
안다이할은 검을 빼어들어 하르파스에게 겨눴다. 날카로운 검끝은 하르파스가 가지고 놀고 있는 오크의 남근을 향했다.
"거래를 할 이유가 없다."
"무슨 거래인지 듣지도 않고 그러기야?"
"들을 가치도 없는 거래일테지."
"일단 듣고나서 판단하지 않겠어?"
하르파스는 두 손을 들며 항복 표시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추잡스러운 소리는 시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서로 못본 척 하는 건 어때?"
"역시 가치도 없는...뭐라고?"
"대화가 조금은 통할 줄 알았는데 유감이네. 한 번 더 말해줘? 지금은 서로 싸우지 말자는 거야."
하르파스는 귀두를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남근을 제멋대로 다루는 행위에 기사들은 괜히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 비싼 스타킹이 쿠퍼액으로 젖어들어가니, 기사들로서는 애가 타면서도 한편으로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우리는 이 던전을 상대로 쟁탈전을 걸었어. 아스타로트를 죽였고, 던전을 폐쇄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럼 너희들 이 던전에 갇히게 된다?"
"......!!"
안서니우스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재, 쟁탈전이라고? 진짜냐?!"
"그럼. 아무래도 너희들은 다른 입구를 통해서 여기까지 온 모양인데...유감이야. 우리가 다 털어먹었거든. 하하하."
"쟁탈전...? 그게 무엇인가?"
"각하, 그건...."
안서니우스는 안다이할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하르파스가 했던 말의 의미를 바로 파악했다.
"저들이 이 던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출구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인가?"
"예. 아니면 저들의 던전을 통해 빠져나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말인가?"
"그러니 던전이지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마족이 바로 마왕이지요."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하르파스가 인간들에게 제안한 거래는 간단했다.
- 지금은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냥 서로 물러서자.
기사단 입장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거래다. 다름 아닌 마족 스스로 싸움을 지양하니 피를 흘릴 이유도 없고, 10명이 넘는 다크엘프들을 구출하는 걸로 기사단의 소임은 다했다.
더욱이 후작령에서 불과 2~3일 거리에 있는 던전이 사라진다? 후작령으로서는 당연히 쌍수들고 환영할 일이다.
"조건이 있다."
하지만 안다이할은 굳이 조건을 걸고 넘어졌다. 막 자지를 발바닥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듯 주물럭거리던 하르파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까다롭네. 말 잘못 했다가 우리랑 싸우게 될수도 있단다?"
"그쪽이 구한 다크엘프의 수가 몇인지 궁금하다."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분노의 군단에게 알려야지. 우리는 분노의 군단을, 정확히는 엘프들을 대신하여 이 던전에 납치된 다크엘프들을 구하러 왔다. 당연히 돌아가면 엘프들에게 이 상황을 전할 것이다. 그래야 엘프들이 너희와 협상을 하든 할 것이 아닌가?"
안다이할의 말은 일견 논리적으로 보였다. 그 말을 들은 하르파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음, 뭐, 그렇네. 좋아. 알려줄게. 30명 쯤 된단다."
"......칫."
역시나. 안다이할은 1층을 공략하면서 이상하리만큼 인질인 엘프의 수가 적다고 느꼈다. 그래서 던전의 안쪽에 다크엘프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더 깊숙한 곳에 있었다.
"나머지는 어떻게 되었는 지 아는가?"
"모르지. 아, 알지도. 죽은 거 아니겠어? 구한 애들 말 들어보니까 좀 험하게 다루더라. 망할 몽마 년들."
하르파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흔들었다. 안다이할은 자신의 의문을 해결할,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그쪽은 왜 다크엘프를 구한 거지?"
"응?"
"단순히 여자라서 구했다는 건가...?"
"허. 이래서 좆달린 새끼들이란."
콰득! 하르파스는 발가락으로 오크의 자지를 세게 튕겼다. 어찌나 강하게 때리는 지 기사들이 순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단순히? 야, 아무리 내가 마족이라고 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야.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포로라고 해도 함부로 대하는 건 쓰레기같은 짓이라고. 종족이기 전에 같은 여자로서 그러는 거야. 알겠어? 생각하니까 좀 열받네."
꽈드득. 하르파스는 오크의 고환을 발뒷꿈치로 누르기 시작했다. 안다이할은 자신이 말을 잘못 꺼내는 바람에 고통을 겪는 숯검댕이 오크를 향해 속으로 사과와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하르파스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인간과 오크라는 종족은 다를 지언정, 성기가 발에 의해 조여지는 걸 보며 느끼는 환상통은 남자로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해했소. 거래를 하지. 단, 당신이 한 말을 꼭 지키시오. 엘프들을 괴롭힌다면 가만두지 않겠소."
"네, 네, 그러시던가."
여유를 부리는 하르파스의 모습에 안다이할은 안심했다. 만약 오만의 군단이 엘프들을 똑같이 괴롭힐 경우, 분노의 군단 다음 표적은 오만의 군단이 된다. 안다이할의 말에 섞인 교묘한 칼날을 하르파스는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이제 끝났지? 폐쇄되기 전에 빨리 나가. 나는 이거 마저 타들어가는 거 보면서 재미 좀 볼 거니까."
멍청한 건지, 아니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건지. 전자의 기질도 조금 보였지만, 역시 후자에 더 신경을 쓰는 듯 했다. 하르파스는 오크의 배를 미끄럼틀 타듯 내려와 허벅지 안쪽으로 자지를 움켜쥐었다.
"아니면 설마...구경하고 싶은 거야? 내가 내 전용 자지랑 하는 걸? 으히히."
하르파스는 날개로 입술을 가리며 실실 웃었다. 허벅지 위에 빼꼼 고개를 내민 귀두에 기사들은 고개를 돌리면서도 아닌 척 눈을 흘겼다.
"농담이야. 너희들, 이거 다 불타면 던전 폐쇄되니까 빨리 도망치는 게 좋아. 나는 분명히 말했다? 우리쪽에서도 포털 끊어버리면 너희 영원히 여기에 남게 되는 거야. 아...그것도 있겠네."
하르파스는 다리를 M 자로 벌렸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오크의 자지를 앞뒤로 쓰다듬다가 자신의 고간부에 문질렀다.
"아니면 마족이 되기를 바라는 거야? 후후, 궁금한 걸. 죽은 '아스타로트'의 이름을 잇는 게 누가 될 지."
"그게 무슨...?"
"각하."
안서니우스는 사색이 된 얼굴로 안다이할의 귀에 속삭였다.
"던전 주인의 원념이 던전에 남아있던 이에게 씌이는 순간, 그 자에게는 영원히 풀려날 수 없는 저주가 내린다는 소문입니다."
"그건 소문이 아닌가. ...아니, 그 저주라는 게 던전 주인이 된다는...쳇!"
안다이할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아직 기사들은 여전히 검을 겨눈 상태지만, 그들은 슬슬 뒤로 물러난 준비를 마쳤다.
꾸르륵. 오크의 몸이 살짝 위로 떠올랐다. 하르파스는 몸을 뒤로 가벼이 눕히며 자지로 자신의 고간부를 가렸다. 옆으로 드러난 스타킹의 일부가 조금 찢어져있었다.
"그럼 안녕~ 배웅은 안 할게. 내가 좀 바빠서. 아하하하!!"
하르파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앞에 물로 된 가림막이 펼쳐졌다. 기사들의 위치에서는 연결부위가 보이지 않는 교묘한 각도였고, 물의 가림막은 불투명하여 그 너머가 잘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지."
안다이할은 간신히 이성을 챙겨 몸을 돌렸다. 기사들 또한 모두 몸을 돌렸지만, 눈앞에서 대놓고 성행위를 하겠다는 하르파스의 자유분방함을 더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듯 했다.
"아쉬워마라. 그대들은...엘프를 구하지 않았나. 올라가자. 위에 우리가 구한 엘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안다이할의 격려에 기사들은 모두 몸을 돌렸다.
모든 인간들이 떠나고 남은 공동에는 시체 타들어가는 소리와 살과 살이 부딪히는 추잡한 물소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 * *
화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작은 픽시들이 꺄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호수에서 나는 눈을 떴다.
"이곳은...."
"만나서 반갑다, 오크."
호수의 가운데에는 척 보기에도 성스러워보이는 여인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요정 여왕같은 모습에 내 자지가 절로-
<요정왕 티타니아>, ★★★★★★, Lv.248
수그러들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일단 허리부터 숙였다.
"처음뵙겠습니다, 요정여왕님."
"호오,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요즘 자주 이런 상황을 겪기에."
에스투 이래로 6성급 절대자를 만나면 바로 허리를 숙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자지도 함께 숙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하나 여쭙겠습니다. 혹시 마왕님 부인 되십니까?"
"부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지. 나는 그 놈의 씨는 가져본 적이 있어도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으니."
역시 마왕. 요정왕도 이미 건드렸구나.
"후후, 나를 취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구나. 하지만 나는 이미 몸도 마음도 그의 것이다. 그리고...이미 너도 어느정도는 눈치채고 있지 않느냐?"
"딸입니까?"
"그래. 아스모딘. 색욕의 인장이 된 그녀가 나와 그의 딸이다."
"우.와.그.것.참.놀.라.운.사.실.입.니.다."
이미 신수의 경우에서부터 나는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아니면 요정왕이라는 존재가 나를 이런 식으로 부를 이유가 없으니까.
"근데 저는 어떻게 부른 겁니까? 혹시 제가 오랫동안 잠들어서...."
"아니다. 네가 의식을 잃고 네 던전으로 돌아온 순간, 내가 '그'의 양해를 구해 네 정신에 접속했다."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 좋게?"
"다 보고 있었거든. 우리 딸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싸움인데 내가 그걸 보지 않고서야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실시간으로? 혹시 전부다?"
요정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좌절했다.
"...진짜로 구경하고 있었나."
"군단간의 전투니까.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만 제법 재밌더구나.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네가 처음이다. 앞으로 잘 지켜보도록 하마."
요정왕의 손이 반짝거렸다. 금빛의 가루가 반짝이며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였다.
"나의 가호다. 경험치적으로 도움도 안 되고, 군단 운영에 도움도 안 되겠지만...그대에게는 큰 도움이 될 테지."
"이게 뭡니까?"
"요정왕의 가호다."
티타니아는 엄한 눈빛으로 가호라고 말했으나, 나는 가호의 실체가 눈에 보였다.
<정령결정> 흡입한 이에게 정령의 기운이 깃든다.
"마셔라, 오크여. 그리고 정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금빛의 가루는 내 앞에서 꼬리를 치듯 살랑거렸다. 요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제안에 나는 잠시 혹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오크로 살다가 죽겠습니다. 아니, 설령 다시 태어나도 아직은 안 됩니다."
"왜지?"
"오크로서 꼭 복수해야 할 년이 있습니다."
오크의 자지로서 뺨을 때리기 전에는 결코 오크의 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한 가지 허락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무슨 허락?"
"따님을 제가 가지겠습니다."
그-랜-절. 나는 또다른 장모에게 절을 했다. 장인은 한 명일지라도 장모는 여럿이라, 만날 때마다 각각 절을 해야했다.
"적어도 아스타로트의 아래에 있던 때보다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자지로 자궁을 때리면서 '흐아앙 오크 자지 굉장해요오옷!'하려는 건 아니고?"
"......."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요정왕은 싱긋 웃으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괜찮다. 나도 예전에는 '솔로몬 자지 굉장해요오옷!'했으니까. 물론 지금은...후후. 아무튼."
티타니아는 인자한 미소로 내 머리를 토닥였다. 머리 위에 닿은 그녀의 손바닥에서 따스한 기운이 내 머리에 닿았다.
"정령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싫어도 정령을 태어나게 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네게 가호를 내려주마. 앞으로 정령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파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요정왕의 가호> 정령을 상대로 한 파종 시 최소 ☆☆☆ 보정.
"그거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이왕이면 나의 딸과 무수히 많은 요정들을 낳아다오. 요즘 요정들은 애들을 안 낳으려고 해서...쯧쯧."
세상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내 의식이 붕뜨는 느낌이 들었고, 티타니아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거라. 대머리가 정력도 좋다던데, 부디 내 딸을 잘 부탁한다."
"물론입-"
네?
나는 대답할 틈도 없이, 의식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