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49화 (449/800)

450회

106일차

달린다.

눈앞에는 식물을 베이스로 한 괴물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고, 뒤에는 몽마들이 원거리에서 마탄을 날린다.

그들의 공격은 나를, 그리고 내 뒤를 따르는 부하들을 향한다. 스치면 다치는 걸로 끝나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빠르게 달린다. 수십 kg짜리 철퇴와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뒤에 바싹 달라붙는 륜보다 앞지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린다.

브레이크는 없다.

돌진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몸으로 막는 것 뿐.

키에엑!!

식물형 마수들이 좌우로 몸을 피하며 내 돌진을 피했다. 바로 뒤에 있던 나이트메어가 혼비백산 놀라 땅으로 도망쳤다.

콰득.

나는 놈의 귓바퀴를 디디려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옆머리 부분이 밟혔고, 나이트메어는 머리와 귀가 으깨진 상태로 바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나이트메어를 디디고 앞으로 튕겨나가지듯 달렸다.

쿠-웅!

육중한 거구를 앞으로 내던진다. 후방에서 마탄을 쏘려던 인큐버스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선다. 누군가는 손을 내게 겨누며 방어막을 펼쳤다.

"당첨."

나의 브레이크는 바로 정면의 몽마-방어막을 펼친 캠비어. 인큐버스와 인간이 반쯤 섞인 몽마를 상대로 나는 철퇴를 수평으로 들고 크게 휘둘렀다.

"귓방망이!!"

캠비어는 정면으로 펼친 보호막을 철퇴의 방향으로 옮기려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모든 관성을 철퇴에 실었다.

빠----악!!

마법진을 으깬다. 철퇴가 닿은 모든 곳을 으깬다. 뼈가 박살나고 근육이 터지는 손맛이 철퇴를 통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귀는 부서지지 않았다.

"벽으로 잘 가고."

보호막으로 막고 몸의 절반이 부서진다고 막을 수 있는 철퇴가 아니다. 나는 허리의 힘을 이용해 철퇴의 관성에 힘을 실었다.

"끄, 으어억!!"

캠비어는 그대로 벽을 향해 날아갔다. 몸이 새우처럼 옆으로 휘어 날아가는 캠비어는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벽에 부딪혔다. 즉사일 것이다. 그리고 귀는 벽에 부딪히며 으깨졌을 것이다.

푸-욱!

아래에서 정확히 고간을 찌르는 감각에 나는 오한이 들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바닥에서 튀어나온 또다른 나이트메어가 손을 송곳처럼 세워 내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내가 한 두 번 당하는 줄 아느냐?"

나는 철퇴를 땅에 찍고 나이트메어의 대가리를 잡아 땅에서 뽑아냈다. 아둥바둥 거리는 나이트메어의 두개골이 서서히 쪼개지는 게 손에서 느껴졌다.

"라스타킹 재질의 팬티 세 장을 겹쳐입으면 철갑보다 단단해지지.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꼭 사라. 두 번 사라."

나는 나이트메어의 귀를 잡고 힘으로 비틀었다. 한 손으로는 두개골을, 다른 한 손으로는 귀를 터뜨리니 나이트메어는 곧 안개가 되어 소멸했다.

키에에엑!!

옆에서 튀어나온 식물형 마수가 아가리를 벌리며 내 정강이를 깨물었다. 겉은 식물처럼 생긴게 이빨은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철퇴를 휘두르기에는 조금 늦고, 이대로 있으면 스타킹 아머가 찢어져 살갗이 긁힌다.

"이 새끼가?"

피슝.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마수의 입을 연 다음, 꽃잎을 잡고 몸통을 들어올렸다.

푸슈우욱.

귓바퀴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머리에 난 바람 구멍은 안에 막대를 찔러넣으면 꼬치로 들고 다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깔끔했다.

"주인님!!"

"이 정도는 다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군단장님."

"아, 네...!"

륜은 당황하면서도 활을 튕겨 천장에서 달려드는 나이트메어를 후려쳤다. 마침 내쪽으로 날아와 놈의 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득!

나이트메어의 관자놀이가 바닥에 찍힌 철퇴에 박혔다. 은은하게 묻어있던 신성력의 기운에 놈은 성불하는 것 마냥 사그라들었다.

"륜아. 나는 너무나도 자랑스럽구나."

"제가요?"

"...너도 자랑스럽지만, 보아라. 승리로 하나 되는 우리 군단의 모습을."

나는 다시 철퇴를 들어올렸다. 아직 적은 한참 남아있고, 통로 반대편에서 이미 1층에서 죽인 몽마들이 좀비마냥 부활하여 다시 뛰어오고 있으나, 나는 우리 군단의 승리를 확신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승리가 확실하지."

"이 거지같은 개새끼! 너 때문에 지금 레벨이 몇이나 깎였는 지-"

퍼--억. 나는 놈의 팔을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추한 자세로 바닥에 떨어진 놈의 등에 철퇴를 놓은 뒤, 오른발을 크게 굴러 양 어깨를 밟아 부쉈다.

"꼬우면 너네 군단장한테 부활 그만시켜달라고 하던가. 에베베."

"이, 이 애새끼 같은-"

"앙 경험치 쩔 개꿀."

나는 놈의 모가지를 잡고 우리 진영으로 멀리 집어던졌다. 인큐버스는 수영을 하는 것처럼 허공에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푸욱! 푸욱!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듀라한들이 인큐버스의 전신을 칼로 쑤셨다. 팔이 망가진 녀석은 변변찮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간부급은 이렇게 처리하고, 저 식물견들은...."

크르륵, 크륵.

몽마들의 전위에 서있던 식물견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다른 몽마들과는 달리 저 놈들 만큼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오, 정강이."

식물견에게 물린 곳이 욱씬거렸다. 상처는 나지 않은 듯 했지만, 물린 흔적 만으로도 타박상을 입은 것 마냥 쓰라렸다.

"아스타로트도 인선을 뭐 이런 식으로 하는 지 모르겠어. 저 새끼들이 몽마 간부들보다 훨씬 세잖아. 차라리 저 놈들한테 구역장 맡기고 부관으로 몽마들 붙였으면 더 빡셨겠구만."

카임, 포칼롤, 오리아스. 셋 중 그 누구도 저 식물견보다 강한 몽마는 없었다. 그 말인 즉슨 놈들은 나와 우리 간부진이 대처하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하다는 말이었고, 최소 70레벨 이상의 부하들은 식물견 대처에 묶여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자랑스럽다.

소수의 고레벨 개체들이 아닌 일반 병사들이, 남작령과 할파스 던전을 상대로 전쟁을 치뤘던 이래 힘을 갈고 닦은 이들이 적 군단의 병사들을 상대로 우세를 점치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내 길은 틀리지 않았어.'

군단 전체가 활약하고 있다. 예전처럼 나 혼자서,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 몇몇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군단 전체가 군단을 상대로 이기고 있다.

분노의 군단이, 색욕의 군단을 압도하고 있다. 라스로 단결된 모두의 힘이 승리를 부르고 있다.

"크흐흐.... 포르네우스여. 보고 있는가?"

나는 철퇴를 높이 치켜들었다.

"네놈은 감히 올라갈 생각도 못한 29위 던전이 이 몸에 의해 박살나고 있는 것을!"

콰득! 아래에서 달려드는 식물견을 향해 철퇴를 내리찍었다. 놈은 가벼운 발놀림으로 철퇴를 옆으로 피해 내게 뛰어들었다.

꽈아악.

나는 놈의 벌려진 아가리를 위아래로 움켜쥐었다. 건틀릿에서 매케한 연기가 솟아올랐지만, 식물견은 내게 붙잡혀 도망치지 못했다.

키이익!!

꽃잎 사이에서 외설적인 모양의 돌기가 나를 향해 튀어나왔다. 마치 수술을 연상케하는 돌기는 정확히 내 눈을 노리고 있었다.

서걱.

은빛의 검이 눈앞을 가로질렀다. 돌기는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바로 식물견에게서 손을 놓고 아래로 내팽겨쳤다.

쿵! 식물견의 몸통이 먼저 떨어지고, 그 위에 내가 내던진 아가리가 뒹굴었다. 식물견의 독액으로 시큰거리는 손 위에 하얀 손수건이 올려졌다.

"손은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하얀 셔츠가 붉고 끈적한 피로 물든 갤러해드는 검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나는 갤러해드의 손수건으로 독액을 닦아냈다.

"미안하다. 나중에 새로 한 장 구해주마."

"손수건 말고 다른 걸로 주시면 안 됩니까?"

갤러해드는 검으로 벽쪽을 가리켰다. 적들이 쏟아지는 통로가 아닌 구석 방면에, 뭔가 교묘히 틈이 보였다.

"인간들이 엘프 구하면 자기 것 되듯, 저도 다크엘프 구하면 그거 제 전용이 되는 겁니까?"

"...그렇기는 한데."

"벽쪽에 연한 초콜릿 향이 납니다.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위험하니 애들 몇 명 데리고 가라."

갤러해드는 셔츠 깃을 정돈하며 벽을 향해 달렸다. 그 뒤로 듀라한 서넛과 유니콘들이 달라붙었다.

"쟤는 다크엘프 넷이나 데리고 있으면서 또 챙기려고 하네."

"군단장 님도 여자 엄청 많으면서 더 챙기려고 하시잖아요."

"편식은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륜아, 지금 오만 모드. 나는 지금 피에 굶주린 학살자니라."

"그 피가 처녀혈이죠?"

날갯짓 소리와 함께 하르파스가 천장에서 착지했다. 하르파스가 구둣발로 짓밟은 식물견은 나를 향해 돌기를 뻗고 있었다.

"방심 금물, 주인."

"방심 안했다. 네가 날아오는 거 느꼈으니까 대처를 안 한 거지. 그보다 처녀혈이 뭐냐, 처녀혈이. 너네 주인이 지금 인간들 상대로 위엄 살리려고 투구로 얼굴까지 가렸는데."

"그 위엄은 나중에 인간들 마주치면 그 때 부리시고. 지금은 괜찮잖아?"

하르파스는 전장 전역을 가리켰다. 내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을 하르파스는 하늘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내려왔다.

"이기고 있으니까 잠깐 숨돌리는 여유 정도는 괜찮잖아."

"...그렇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도 우리는 몽마들을 때려잡았다. 식물견들은 동료가 하나둘 죽어나가자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결국 남은 건 여전히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몽마들 밖에 없었다.

"새끼들, 눈치 빠르네. 전원, 사선에서 회피!!"

나는 옆으로 비켜섰고, 복도를 향한 라인에 서있던 이들이 모두 몸을 피했다. 포털의 입구 쪽에는 분홍빛의 버지니움 실드가 다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성검 비르고가 빛을 뿜어냈다. 몽마들 또한 혼비백산하며 사선에서 벗어났지만, 우리 군단의 병사들은 몽마들을 잡고 사선에 밀어넣었다.

파사삭.

또다시 몽마들은 신성력에 불타죽었다. 보-빔은 공동을 지나 복도를 향해 날아갔으나, 가장 후미에 있던 식물견 하나의 뒷다리를 태우는 걸로 끝나버렸다. 직선 통로의 끝은 오른쪽으로 빠지는 모퉁이였다.

"칫, 아쉽군."

"저기...미로였죠?"

"그래. 길 모르면 함정에 빠져 죽는 곳이지."

중추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도 복잡한 미로이며, 까딱 잘못하다가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 장소였다. 식물견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홈그라운드를 그냥 통과할 이유는 없다. 대규모 병력이 통과하기에는 폭도 좁았다.

어지간하면 그냥 통과하고 싶지만, 식물견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을 것이며, 그 사이 1층의 인간들은 엘프들을 싹 다 구출해버릴 지도 모른다.

"...일단 여기 남은 몽마들은 마저 정리하자꾸나."

심지어 아직 공동에는 도망가지 못한 몽마들이 남아있다. 아스타로트에게 죽을 때까지 응전하라는 명령이라도 들었는 지, 투항조차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며 우리 군단을 노려보고 있다.

"축하한다, 몽마들이여. 그대들은 선택받은 이들이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잔존 병력을 향해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아직 병력의 수는 우리보다 많지만, 고레벨 개체들이 전부 죽고 도망쳐 잡졸만 남았을 뿐이다.

"아스모데우스는 보지를 벌려서 투항했지. 너희도 똑같은 조건으로 대해주마. 자, 투항할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저런. 안타깝군.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니 어쩔 수 없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리는 남자라고!!"

"어쩌라고."

나는 철퇴를 다시 집어들었다. 메어리가 버지니움 실드를 미로의 입구에 펼친 이상, 이곳은 몽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밀실이 되었다.

"딱 한 번만 더 말한다. 아, 보지라고 하면 너무 적나라해서 그러냐? 음부를 좌우로 여는 자들은 항복으로 여기도록 하지."

나이트메어, 캠비어, 인큐버스.

"그러지 않으면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생각하겠노라."

전부다 남성형 몽마다.

* * *

"크어어억!!"

죽었던 오리아스는 온몸이 터지는 고통과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돼지같은 오크 새끼가...나를 일곱 번이나 죽여...?!"

검은 갑옷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지만, 철퇴를 휘두르는 갑옷의 괴물이 변태 오크인 건 모를 수가 없었다. 오리아스는 분을 삭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젠장, 젠장...!"

"어머, 오리아스. 부활하고도 주인한테 인사도 안 하네."

"죄송합...?"

이전과 다른 목소리에 오리아스는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청록빛이 감도는 은발의 다크엘프가 자신을 향해 싱긋 웃고 있었다.

"군단장...님?"

"어, 나야."

목소리는 다르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다크엘프가 아스타로트라는 것을.

"어떻게...?"

"다 먹어치웠어."

아스타로트는 다소 뭉툭한 귀를 쫑긋 세우며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반격할 거야."

"오오...!"

"네가."

콰득. 아스타로트는 오리아스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손에서 마나가 반짝이기 시작한 순간, 오리아스는 몸이 마비되었다.

"강해지고 싶지? 복수하고 싶지?"

크르르.

아스타로트의 주변에 식물견-플라워 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스타로트는 엘프의 가녀린 손길로 오리아스의 볼을 쓰다듬었다.

"복수하게 만들어줄게. 플라워 독 20마리, 그리고 던전 주인이었던 존재 셋을 섞으면 뭐가 만들어지는 줄 알아?"

"서, 설마...?!"

"7번 넘게 부활시켜줬는데 죽기만 하고 너무 쓸모가 없잖아. 그럼 그냥 마물 합성의 조건으로 가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좋습니다."

오리아스는 이를 악 물었다.

"저를 합성시켜 주십시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돼지놈에게 복수를 하겠습니다!"

"그 기개야! 좋아, 좋아."

아스타로트는 소환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식물의 줄기에 의해 구속된 드라이어드 한 명이 묶여있었다.

"아, 근데 네가 메인은 아니다? 쟤가 메인이 될 거거든."

"......예?"

"살아남으려면 뭔들 못하겠어. 어차피 저거 내 거잖아?"

아스타로트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색욕의 인장, 일단은 내 부하인데 내 마음대로 합성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아스타로트의 청록색 눈빛은 광기로 물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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