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회
106일차
<그 시각, 아스타로트 던전 1층.>
"이 던전은 네 개의 구역을 모두 제압해야만 내려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전 병력을 네 개로 나누어 공략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안서니우스는 던전 공략 전문가인 모험가들의 의견을 수합하여 의견을 제시했다. 자신이 결정권자라면 바로 병력을 파견했을테지만, 병력 운용의 결정을 내리는 건 안다이할이었다.
"그건 조금 그런데."
안다이할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 안서니우스의 의견을 거부했다.
"적 병력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줄 알고 병력을 나눠? 괜히 네 개로 쪼갰다가 각개격파 당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휘관 각하, 그랬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차근차근 하나씩 공략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되네만. 기사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안서니우스 경이 책임질 수 있는가?"
"책임의 문제가 아닙니다. 효율의 문제입니다. 각 구역을 공략하며 걸리는 시간 동안 다른 구역의 적들은 방어를 더욱 단단히 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경."
안다이할은 던전의 정중앙에서 사방을 가리켰다. 중앙 구역에서 뻗어나가는 네 구역의 문은 금방이라도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 환영하는 것 마냥 활짝 열려있었다.
"이것은 중앙에 병력을 포진하면 오히려 사방에서 둘러싸이게 될 진형이군. 여기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 쪽이 뚫리기라도 한다면 후방이 위험해지는 구조요."
안다이할의 논리적인 말에 안서니우스는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서니우스는 의견을 굽히지 못했다.
"각하, 최대한 빨리 던전을 정리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이지?"
"저희가 이렇게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엘프들은 적의 마수에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큭."
노기사의 정의롭고 혈기왕성한 목소리에 안다이할은 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안서니우스를 고깝게 생각하더 그로서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경멸이었다.
"왜, 그대도 엘프를 한 명 구해 첩실이라도 들이고 싶은 건가?"
"각하!"
명백한 모욕에 안서니우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안다이할은 어깨를 으쓱이며 뒤의 기사들을 가리켰다.
"다들 그런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마물들이 당장 뒤에 있는데도 말이야."
분노의 군단. 인간들과 협정을 맺은 그들은 오크와 엘프들이 함께 던전 앞에 진지를 구축했다. 마치 장기전을 계획하는 듯 전전기지를 만들었고, 후작가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던전을 공격했다.
"저들이 우리에게 빵을 줄 지, 아니면 칼을 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적진에 들어오는 것도 불쾌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급하게 움직이려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 군. 경은 나보다도 더 혈기가 왕성한 것 같군 그래."
"큭...."
부자가 어찌 이토록 닮을 수 있단 말인가. 안서니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보는 던전이다. 무려 29위나 되는 던전이야. 후작가의 기사단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베테랑 모험가들을 고용했다고 한들, 화살 한 방이 미간에 꽂히면 죽는 건 다 똑같지. 그러니까 위험을 최대한 줄이자는 걸세."
던전의 마물들이 튀어나와 남작령을 점령했음에도 고트다이할 후작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피를 물려받은 후계자 또한 지극히 안정지향적인 마음가짐으로 병력을 운용하고자 했다.
"빨리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각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후작의 성향이 드러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적어도 이런 때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기도 했다.
"무의미한 논쟁이라고 말씀 드린 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효율적으로 움직일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건 낭비입니다."
"......나도 알지. 하지만 요즘 뒤숭숭한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어떤 소문입니까?"
"엘프들을 몽마들이 더 '사용'하기 전에 빨리 구해야 한다더나 뭐라나."
노골적인 안다이할의 말에 안서니우스는 얼굴이 다 붉어졌다.
엘프를 마치 창부취급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저속하다못해 엘프들에 대한 모욕이었지만, 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몽마랑 구멍동서가 되는 건 사양이지만, 그게 엘프라면 얘기가 다르다나 뭐라나.... 설마 엘프랑 하고 싶어서 구하러 온 기사는 있나?"
"........"
기사들은 모두 침묵했다. 다들 한 번 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부 노총각 기사들은 다크엘프라도 좋으니 엘프와 하룻밤 자고 싶다는 음담패설을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대들은 아닐 거라고 믿네. 그건 시정잡배들이나 할 말이지. 설마 빨리 구한다고 몽마들에게 덜 사용된 엘프를 쓸 수 있다거나 하는 그런 파렴치한 자들은 없겠지? 그럼 밖에 있는 엘프들이 몹시 분노할 것이야."
"아니,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안서니우스는 지적을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안다이할의 말 덕분에 여기서 딴지를 걸거나 화를 냈다가는 진짜로 다크엘프라고 한들 엘프들을 빨리 구해서 성교를 하고 싶다는 색욕에 물든 자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차근차근 한 구역씩 공략하세. 설마 붙잡힌 엘프들이 그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지기라도 하겠는가?"
안다이할의 얼굴에는 확신과 여유가 차고 넘쳤다.
"조금 더 빨리 엘프들을 구해야 한다는 건 공감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목숨일세. 물론 그대의 의견은 존중하네. 나도 마냥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결국 노기사는 총지휘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안다이할은 후작가의 기사단을 중앙에 최소한의 수비병력만 남긴 채, 나머지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한 구역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었다.
약 1시간 뒤.
그들은 두 명의 다크엘프를 구출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 * *
<아스타로트 던전 지하 1층 중추.>
"젠장,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죄다 엘프 먹고 싶어서 발정난 새끼들 같으니라고!"
아스타로트는 분통을 터뜨리며 던전 전역의 상황을 살폈다. 정찰용 하급 나이트메어들은 던전 전역에서 그녀의 눈이 되어주었고, 그들의 시야에는 피흘리는 색욕의 군단 병사들만 보일 뿐이었다.
"분노의 군단...오만의 군단...이 앙큼한 것들 같으니라고!"
지상에서 인간들과 결탁한 분노의 군단.
지하에서 엘프들을 구출하느랴 여념이 없는 오만의 군단.
분노의 군단은 인간들을 끌어들여 지상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오만의 군단은 시스템을 이용해 지하를 공략했다. 아스타로트는 적의 병력 구성, 그리고 전투 정황등을 통해 모든 것을 파악했다.
두 군단이 손을 잡았다. 원군을 보내어 서로의 던전을 거리낌없이 드나들 정도로 두 군단은 사이가 돈독하다.
'이건 혼자서는 절대 안 돼.'
단신으로도 자신과 엇비슷하게 강한 38위 할파스가 쟁탈전을 걸었을 때부터 눈치채야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검의 용사를 동원하는 순간부터 눈치채야했다.
"씨발...하나같이 죄다 난교하고 지랄이야."
적은 섹스로 동맹을 맺었다. 분명 서로 난교를 벌이며 끈끈한 동맹을 맺은 게 분명하다. 색욕의 군단장 아스타로트가 가진 마안(魔眼)에는 누가 누구와 얼마나 성교를 나눴는지 한 눈에 보인다.
오크와 엘프가 이어져있는 건 예사고, 심지어 유니콘과 듀라한도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 가장 더럽고 변태같이 날뛰던 오크에게는 아예 전신이 붉은 실로 엮여져 있어, 마안을 켜고 보는 게 눈이 다 아플 정도였다.
'분명 저 놈들 내가 잡은 엘프들도 따먹으려고 들 거야.'
아스타로트는 고뇌에 빠졌다. 단순히 두 군단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가능하기는 했지만, 인간들의 세력까지 들어오는 건 진짜 크나큰 문제였다.
"......엘프들 던져주고 나도 거래를 할까?"
각 구역에 배치된 엘프 포로들의 수는 각각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원래 지하 2층에 모두 배치되어 있던 엘프 포로들은 오만의 군단-을 사칭한 듯한 분노의 군단 오크가 다녀간 이후 모두 위로 이송되었다.
"지금 내 구역에만 30명 정도 있는데...."
각 구역에서의 장기전을 대비하여 성처리 노예로 남긴 3~5명의 다크엘프를 제외하고 모든 다크엘프들은 아스타로트 던전의 지하 1층, 중추로 옮겨졌다. 그들은 모두 공포에 벌벌 떨면서도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하러 왔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지, 아니야."
아스타로트는 혀를 할짝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고간부위에 손을 올려 성마법을 사용했다.
"가만히 당하고 있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지. 멍청하게 뺨만 얻어맞고 있으면 그분이 내게 실망할 거야."
츄릅. 아스타로트의 성마법이 그녀의 클리를 비대하게 키웠다. 단단한 클리를 덜렁거리던 아스타로트는 다크 엘프 한 명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소환 시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녀가 아닌 년들과 하나가 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후후후. 그래도 엘프들이니까 먹는다."
푸욱--!
아스타로트는 발기한 클리로 다크엘프의 음부를 찔렀다. 기습적으로 당한 다크엘프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 눈과 코에서 붉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걸로 하나."
아스타로트는 피흘리며 경련하는 다크엘프를 마법진의 위에 집어던졌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는 다크엘프는 눈을 까뒤집은 채 죽어가기 시작했다.
"엘프들아, 지금부터 나랑 하나가 되자. 내가 자궁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이 위기 넘기면 다시 낳아줄게. 아하하!"
다크엘프들은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아스타로트의 손길을 피하지는 못했다.
* * *
<그 시각, 지하 2층.>
"인큐버스 구역 정리 끝났습니다. 다크엘프 둘을 구했습니다. 둘이 더 있었지만...인큐버스들이 죽였습니다."
"캠비어 구역도 정리가 끝났답니다. 구출한 다크엘프는 넷. 한 명 더 있었습니다만, 저희에게 잡힐 바에는 죽겠다면서 자진했습니다.
"나이트메어 구역도 정리 끝났습니다. 다크엘프 셋을 구하기는 했지만, 다들 정신이 나간 백치상태입니다."
각 구역에서 들려오는 정보에 나는 입안이 쓰렸다.
"아스모데우스가 말해준 정보와는 다르군. ...하긴, 그대로 포로를 여기다가 두는 게 병신이지."
처음 내가 이 던전을 털러 왔을 때, 나는 서큐버스 구역에서 무려 17명의 다크엘프를 구출했다.
아스모데우스는 각 구역별로 15명 전후의 다크엘프가 갇혀있다고 말했지만, 아스타로트도 마냥 멍청이는 아니었다. 포로인 다크엘프를 아주 극소수만 지하 2층에 남기고 위로 올려보냈을 것이다.
"륜, 라임, 하르파스는 다치지 않았나?"
"예. 다친 곳 전혀 없습니다. 세 분에게 각기 따로 붙은 미노타우르스와 오크 호위병들이 몸을 던져서 지켰습니다. 상처는 있지만 다들 무사합니다."
"구출한 가축들을 깨끗이 씻기어 그린 캠프로 보낸 뒤, 상처입은 전사들부터 먼저 조교로 내려보내겠다. 특히 중상을 입은 자들에게는 더욱 고맙다고 전해다오."
내 여자를 몸바쳐 지킨 부하들을 위해 그린 캠프에서 휴양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오크들이야 매일같이 하는 게 좆질이고, 미노타우르스들은-
"...미노타우르스들은 잠깐 보류. 엘프들도 걔들 껀 좀 숙달되어야 가능해. 크림엘프 중에 소잡이 전문가들이 있었지? 걔들을 보내도록 하겠다."
"말씀하신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슬라미아들은 내 바로 아래에서 내 지시를 기억했다. 벌써부터 승리를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아홉 명의 다크엘프를 구한 것도 나름 선방은 선방이었다.
"쯧. 위에서 어떻게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방법밖에는...어우, 이거 또 싸네."
푸슈숫.
레비즈는 어찌나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지 또 유두에 신성력이 맺혔다. 나는 그걸 허공에 대충 휘갈기고 호흡을 골랐다.
"어으, 이제 슬슬 자지 뻐근한데...."
"군단장님. 저희가 촉수라도 집어넣을까요?"
"안 된다. 그러면 꿈이랑 연동이 깨져. 내가 자지를 박고 있으니까 이 년도 꿈속에서 나를 죽이려고 신성력을 쓰는 거거든. 최소한 이 구역까지 정리가 끝날 때 즈음은 되어야-"
"주인님---!!"
구역 안쪽에서 륜과 라임, 하르파스가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모두 알몸으로 벗겨놓은 몽마들의 목줄을 쥐고 돌아왔다.
카임, 오리아스, 포칼로르. 제각기 색욕의 군단에서 구역장을 맡은 이들은 우리 군단에 아주 손쉽게 포획당했다.
"하여튼 약한 새끼들. 색욕의 군단이랍시고 맨날 섹스만 하고 다니니까 그렇게 약한 것이다. 우리처럼 운동도 하고 수련도 하고 그래야 이렇게 강해지는 법이다. 알겠느냐?"
"푸흡."
간부부터 병사들까지 모두 헛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을 풀기위해 던진 농담은 제법 잘 먹혀들었고, 예상치 못한 효과까지 가져왔다.
"닥쳐라, 앉아서 여자나 겁탈하는 발정난 개새끼!"
"아닌데? 서서도 하는데?"
나는 몸을 일으켜 레비즈를 아래에서 찔러올렸다. 완전히 지쳤는 지 자궁구를 찔러도 신성력을 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희 지금 나한테 몇 번이나 죽었는지 아냐? 나도 몰라. 어차피 너희들 기억하는 횟수에 지금 +1 될 거거든. 아, 불켜졌다."
봉인문의 빛이 1/4만큼 밝았다. 서큐버스 구역을 이잡듯이 뒤진 메어리가 아스모데우스 이후에 새롭게 구역장이 된 서큐버스를 죽인 게 틀림없다.
"왜 쓸데없이 넷을 동시에 잡아야 열리는 문을 만들고 그래. 그런 건 같은 구역에서 셋까지 해야하는 게 국룰인 거 모르냐? 아무튼 죽어라, 엘프 귀를 자르는 이 꼴알못 새끼들."
위이잉. 레비즈의 가슴이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을 붙잡고 몽마들에게 겨눴다.
"이건 여신께서 내리는 천벌이니라."
푹, 푹푹.
신성력의 창이 몽마들의 심장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