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37화 (437/800)

438회

104일차

<레오 후작령 레굴루스 성 외, 기사단 주둔지.>

"들으라, 병사들이여. 우리는 마족과 연합하여 던전을 공격할 것이다."

시작부터 단서를 단 후작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후작과 후작가에 충성을 바친 기사들이라고 한들, 이미 후작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 내용인지라 선뜻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마왕군과 연합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류로서, 이 세계를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도리를 다 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사들의 눈이 단상 위로 꽂혔다. 후작의 옆에는 로브를 쓴 여인이 후작과 나란히 서있었다.

"우리는 마녀 레비즈가 저지른 행위를 알고 있다. 엘프들은 인간에게 충격을 받고 마왕군에 들어갔다. 하지만 몇몇 이들의 생각대로, 모든 엘프들이 마왕군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위이잉.

허공에 마법진으로 지도가 펼쳐졌다. 엘프의 숲을 연상케 하는 숲에서 두 패로 갈린 엘프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마왕군에게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엘프들은 기존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주치고 만 것이다. 남작령에 있던 또다른 던전에서 튀어나온 마족을."

위이잉.

마법진의 그림이 변했다. 고블린 수 백 마리가 튀어나와 엘프들을 습격하였고, 거대한 오우거들이 엘프를 잡아 납치했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잘려나간 엘프의 귀가 땅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엘프들은 대부분 납치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쩌면...적에게 먹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만에하나, 적 마족들이 엘프를 죽이지 않고 범하여 다크엘프로 데리고 있다면, 아직까지 엘프들은 살아있는 것이다. 다크엘프가 되었다고 한들, 그들의 숨은 아직 붙어있는 것이다!!"

위이잉.

마법진의 그림이 변했다. 이번에는 어두운 동굴 속 쇠사슬에 묶인 허름한 차림의 다크엘프의 앞에 비릿한 미소를 짓는 오크가 다크엘프를 희롱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사들은 눈에 핏발이 섰다.

"능욕을 당했다고 한들, 강제로 범해져서 다크엘프가 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정녕 '타락'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대들의 아내, 딸, 누이, 어머니가 적군에게 범해졌다고 한들 그것이 타락이라고 할 수 있는가!"

후작의 외침이 사자후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따라서 우리는 엘프들을 구하기 위해 의기를 다잡았다. 이것은 연합이 아니다! 우리는 마왕군의 동맹인 엘프들의 요청에 따라, 다크 엘프들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 결정적인 증인이 있다!"

사락. 후작의 옆에 있던 이가 로브를 벗었다. 기사들은 햇빛이 반짝이는 가운데 피부를 드러낸 다크엘프에 숨이 넘어갔다.

"저는...마녀 레비즈에게 범해져 다크엘프가 된 엘프, 솔라라고 합니다."

초췌한 몰골의 그녀는 기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침울한 미소를 지었다.

"다크엘프는...본인이 원치 않는 성교에 의해, 강제로 범해졌을 때 피부가 검게 변하는 법. 분명 납치당한 언니 동생들 대부분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숲을 떠났겠지요."

솔라의 쳐진 눈동자에 고인 눈물에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단상위로 뛰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 이들이 마족에게 납치당했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인간 여러분. 엘프들은 동맹을 맺은 군단의 도움을 받아, 던전에 납치된 엘프들을 구하러 가고자 합니다. 부디...도와주셔요."

뚝. 솔라의 눈에 맺힌 눈물이 땅에 떨어졌다. 후작은 칼을 빼들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기사들이여! 레이디가 눈물을 흘리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간악한 마족에게 엘프들이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도록 가만히 지켜볼 것인가!!"

"""아닙니다!!"""

"그렇다! 이제 이 싸움은 더이상 인간과 마족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싸움이 아니다! 엘프들을 구하기 위한, 엘프들에게 인류의 정의로움을 알려주기 위한 진정한 성전인 것이다!"

"""우오아아아아아!!"""

후작의 뒤에서 잔뜩 긴장한 청년 안다이할이 앞으로 나섰다. 후작은 그에게 검을 검집째 내어주고 크게 소리쳤다.

"그대들이 원래 믿고 따라야 했을 주인, 안다이할 레오가 기사단을 이끌 것이다! 명령이다! 엘프들을 구출하라!"

주둔지 전체가 함성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 * *

"...그거 아는가? 마족에게 구출받은 다크엘프들은 구해준 사람을 평생동안 지아비로 모신다는 걸."

"예끼, 이 사람아. 그런 게 어디있어? 농담도 작작해라."

"아니 진짜라니까? 저 멀리 다른 영지에서 있었던 일인데, 모험가 한 명이 다크엘프를 구하고 한 달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더군. 이미 피부가 검게 변했으니 돌아갈 곳도 없는 다크엘프는 은퇴한 모험가와 사랑에 빠진 거지. 그 뒤로 어떻게 됐는 지 아는가?"

"자식 새끼 낳아서 백년해로 했다냐?"

"백년해로 뿐이겠냐. 남자는 다크엘프의 도움으로 마법사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다가 다크엘프의 품에서 복상사로 죽었다더군."

"그러니까 너는 이번에 엘프를 구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 속보이는 새끼. 나도 그렇다, 시벌."

솔라는 기사들의 잡담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남들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로브를 뒤집어 쓰고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자신의 주변을 흘기며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은 다소 따가웠다.

"미안합니다, 솔라 공. 저들은 엘프를 보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그렇소."

"......다크엘프라고 하셔도 되어요, 인간."

"그렇지 않습니다. 엘프는 모두 엘프. 그 중에서도 다크엘프와 하이엘프 등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인간 중에서도 왕국의 사람과 제국의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말이죠."

솔라는 자신의 옆에서 차를 건넨 이를 올려다봤다. 사람들의 앞에서 크게 호령하던 고트다이할과 닮은 청년이었다.

"안다이할 레오입니다."

"솔라. 다크엘프에요."

"피부색으로 종족을 구분하는 건 차별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안다이할은 헛기침을 하며 솔라의 옆 빈 자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잠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조금...."

휘이익--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솔라는 자리에서 냅다 일어나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

허공에는 거대한 괴조가 강철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주둔지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미 언질은 들었지만, 마물이 주둔지 한 가운데에 착륙하는 것에 기사들은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하며 침을 삼켰다.

"검은...거대 까마귀?"

강철의 까마귀는 주둔지에 내려앉았다. 까마귀의 등 위에 올라탄 중갑의 기사는 후작가의 그 어떤 기사보다도 고귀하고 기품있는 자세로 까마귀에서 내렸다.

와락!

솔라는 기사에게 달려가 바로 안겼다. 기사는 투구를 벗어 자신이 타고 온 까마귀의 안장에 올렸다.

"허."

안다이할은 기사의 정체를 보자마자 경악했다. 몸집이 비상하다 싶었더니, 기사는 오크였다.

오크는 오크인데, 엘프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잘생긴 오크였다. 피부가 녹색만 아니었다면, 오크 특유의 요상한 귀만 아니었다면 정말 같은 남자조차도 순순히 인정할 정도로 훤칠하게 생긴 미남이었다.

"솔라, 잠깐만."

"네...!"

오크 기사는 솔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후작을 향해, 고트다이할 후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기사단 한 켠에 모여있던 여기사들은 후작가에서조차 보기 힘든 미남의 모습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분노의 군단, 기사 갤러해드라고 합니다. 솔라 양을 데리러 왔습니다. 비행에 양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만나서 반갑소."

고트다이할은 안다이할을 슬쩍 바라봤다가 갤러해드를 맞이했다. 눈앞의 오크 성기사는 수도에서도, 아니 제국에서도 통할 법한 깍듯한 예법으로 후작을 대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소?"

"말씀하십시오."

"군단에서는 엘프들을 구출하기 위해 어떻게 할 참인가?"

"......실례지만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습니다."

갤러해드의 말에 기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안다이할이 뛰쳐나와 갤러해드에게 물었다.

"그, 그 말은 이미 던전을 향해 진격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사절을 보낸 날, 이미 군단의 병력이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절을 거절하고 남작령을 탈환한다면?"

"안다이할!"

너무나도 무례한 질문에 고트다이할이 소리를 질렀지만, 갤러해드는 그저 살포시 미소지으며 솔라의 손을 붙잡았다.

"인류에게 대의가 있다면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이다. 군단장 님과 엘프 여왕 님의 말씀이십니다."

휘이잉.

오크 기사 갤러해드는 다크엘프 솔라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사들은 동쪽 하늘로 날아가는 검은 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후작 각하."

안다이할은 주먹을 꽉쥐며 후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빠르게 구출대를 편성하여, 저들보다 빠르게, 저들과 싸우지 않고 던전에서 엘프들을 구출하겠습니다."

"......장하다, 안다이할!"

고트다이할은 안다이할을 와락 끌어안았다.

반나절 뒤.

모든 준비를 마친 기사단은 던전이 있다고 하는 곳을 향해 빠르게 진격했다.

* * *

<그 시각, 아스타로트 던전 서큐버스 구역.>

"이제 좀 편안해졌군."

"사, 살려주세요! 다리 벌릴게요! 제발요!"

내 손에 꼬리가 잡힌 서큐버스는 바닥에 질질 끌려다니며 애원했다. 이미 다른 서큐버스들은 모두 피떡이 되어 죽었고, 눈앞에 살아남은 서큐버스는 내가 잡고 있는 서큐버스 하나 뿐이었다.

"이미 늦었어. 아까 말했을 때 벌렸어야지. 다리 벌리라니까 손가락 벌리면서 나를 할퀴려고 들더라? 내 허벅지에 여기 상처난 거 안 보여?"

나는 드워프제 갑옷의 겉면에 난 상처를 가리켰다.

"비싸게 뽑은 물건인데 긁혔잖아! 어떻게 보상할 거야."

"살려주세요! 몸으로 갚을게요!"

"그래, 몸으로 갚아야지. 그건 당연한 거야. 근데 그걸로 끝이야?"

나는 서큐버스의 꼬리끝을 잡고 와락 움켜쥐었다. 성감이 몰려있어서 약간의 자극도 강한 쾌감이 되는 건 이미 샤이탄을 통해 파악한 지 오래.

"으힉, 으히이익!!"

"너네 구역 대장 어디있는지 말하면 살려줄게."

"아, 아으, 으아아아...!"

서큐버스는 땅을 손톱으로 긁으며 괴로워했다. 마치 말하지 못하는 봉인이 걸려있기라도 한 것 마냥 쾌감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바닥만 긁었다.

"좋아, 너는 살려줄게."

"아...!"

"너는 앞으로 영원히 라임의 안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라임, 얘도 먹어치워."

"오, 살아있는 서큐버스."

죽은 서큐버스들의 시체를 먹어치우던 라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요염히 걸어왔다. 메어리와 닮은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방금 먹어치운 서큐버스의 몸으로 다리를 꼬며 걸어와 서큐버스의 위에 올라탔다.

"언니가 맛있게 먹어줄게?"

"시, 싫어----!!"

꿀럭, 꿀럭. 라임은 서큐버스를 그대로 위에서 짓누르며 집어삼켰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갈기갈기 찢어진 로브를 벗어던졌다.

"쯧, 비싼 물건이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드워프 갑옷은 덜 긁혔잖아요."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지. 아고고, 륜 너는 이 마음을 모를거다."

중고차라도 기스가 나면 마음이 아픈게 사람 마음. 나는 내 갑옷에 사정없이 긁힌 손톱자국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사이즈에 맞는 갑옷이 이것 하나 뿐이라 더 구하지도 못하건만, 갑옷의 겉은 상당히 보기 흉하게 상처가 많았다.

"쯧. 그래도 사람 안 다친게 다행이지. 메어리, 괜찮냐?"

"아빠, 새로운 걸 알게 되었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니?"

"버지니움 실드 잘 봐봐요."

메어리는 성기방패의 중앙에 성검을 찔러넣었다. 내가 싸우는 도중 숱하게 서큐버스를 집어던졌던 성기방패는 빛의 입자가 되어 성검 비르고의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아무래도 죽인 적을 양분삼아 신성력으로 삼는 것 같아요."

"점점 성검이 아니라 마검 같아 보이는 구나. 흐흐, 기원이야 어떻든 지금 당장 도움이 되면 그만이지."

나는 바닥에 엎어져 기절한 다크엘프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귀가 잘린 그녀의 귀는 흉한 상처가 아물어 분명 보기에 좋은 형태는 아니었다.

"야, 정신차려. 일어-"

순간, 바닥에 기절해있던 엘프가 나를 덮치며 멱살을 움켜쥐었다.

"너만, 너만 없었어도...!"

"기껏 구해주러 왔더니 무슨 짓인지."

"너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어쩌라고. 불만있으면 힘 키워서 죽여보던가."

퍼-억.

나는 다크엘프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마른 기침을 토하며 배를 움켜쥔 그녀를 강제로 바닥에 눕힌 뒤, 나는 그녀의 가슴에 라임의 점액을 슬쩍 문지르고 강하게 빨아당겼다.

후루룹.

"아아악?!"

"......약해! 초콜렛 파우더에 물탄 느낌이야. 아아, 역시 라스로 쿠앤크가 되지 않는 이상 맛이 별로인 건가."

스스로 다크엘프가 된 솔라의 우유맛은 초콜렛을 녹여 우유에 태운 것 같은 맛이건만. 강제로 다크엘프의 맛은 그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 조금 놀랐다.

"안되겠군. 너는 '품종개량'이 필요하겠다."

"커흑, 뭐...?!"

"우리 구출대가 너를 구하러 올 때 까지, 너는 얌전히 있어줘야겠다."

륜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배낭에서 물건을 꺼냈다. 나는 가죽 스트랩으로 된 구속구를 넘겨받아 다크엘프의 손목과 발목을 구속했다.

"마차 떠난 손님들 다시 태우러 오기는 했지만, 내가 그렇다고 너희들 순수하게 받아들이려는 건 아니거든?"

쭈우욱.

내가 다크엘프의 젖통을 움켜쥐자, 그녀의 유두에서 갈색의 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밍밍한 설탕물같은 맛이라 바닥에 흩부려져도 딱히 감흥이 없었다.

"그러니까 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가축'이 될 거다."

"뭐...?"

"엘프와 공존을 추구하는 분노의 군단에 너희 안버진 엘프들을 들일 수 없지.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너희는 오만의 군단 목장에서 일하게 될 거야. 그래...."

나는 다크엘프의 가슴을 움켜쥐고 아랫도리에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젖으로는 초코우유를 뽑고, 아래로는 오크를 낳는 거지.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평-생."

다크엘프의 눈에 절망이 깊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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