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회
103일차
신성력을 사용하는 침입자를 찾는 것도 제법 긴 시간이 지났다.
중급 마석을 통해 부활한 오리아스는 바닥에 적이 있음을 알렸고, 전 구역의 몽마들은 삽을 들고 바닥을 파헤쳐내려갔다.
"이게 의미가 있나? 이대로 계속 바닥을 파내려가봐야 결계로 막힌 곳이 나오잖아."
"아무렴 삽질하라면 삽질해야지 말이 많아. 빨리 땅이나 파. 괜히 또 오리아스 님한테 걸려서 꿈속에서 까지 갈굼당한다."
"너희, 뭐라고?"
삽을 들고 지나가던 오리아스는 캠비어 둘을 불렀다. 둘은 기겁을 하며 달려와 오리아스의 앞에서 머리를 박았다.
"내가 아무리 몽마라고 한들 꿈에서까지 갈구겠냐? 어? 내가 갈구는 이유가 뭐야. 다 이 바닥에 있는 침입자 새끼들 찾으려고 그러는 거 맞냐 아니냐?"
"맞습니다!!"
"그래? 그럼 뒤지게 한 번 맞자."
오리아스는 삽을 들고 캠비어들을 패죽였다. 말 그대로 패죽였고, 둘은 피떡이 된 채 목숨을 잃었다.
"어디서 농땡이를 피워, 이 망할 놈들."
오리아스는 죽인 캠비어 둘을 잡아다가 질질 끌었다. 복도에 길게 핏자국이 이어졌고, 오리아스는 바닥에 원형으로 난 성기방패의 앞에 섰다.
"죽고 나서 더 도움이 될 놈들."
휘릭.
오리아스는 두 캠비어를 성기방패 위에 집어던졌다. 신성력의 결계는 두 몽마의 몸이 닿자마자 분홍빛 신성력을 일으켰고, 마족의 시체는 불에 타는 것 마냥 재가 되어 소멸했다.
"야, 이 개새끼야!"
멀리서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큐버스와 인간이 절반 정도 섞인 듯한 외형의 남자는 다짜고짜 오리아스의 멱살을 잡았다.
"이거 포칼로르 아니신가. 왜 이러는 거지?"
"누가 내 부하들 멋대로 죽이래!"
"열심히 일하지 않는 나태한 놈들을 죽였을 뿐이다. 인간의 피가 반쯤 섞인 몽마들은 전부다 이 모양 이 꼴인가?"
"이 개같은 새끼. 40위권도 되지 않는 놈이 군단장께서 좋게 봐주셔서 간부로 들여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어이쿠, 잘들 싸운다. 그래, 싸우다 둘 다 뒤져라 그냥."
허공에 검은 로브가 떠다니며 모습을 나타냈다. 영체 마족인 나이트메어 부대의 대장, 카임은 둘을 비웃으며 성기방패를 가리켰다.
"그냥 둘이서 같이 여기 점프하지 그래. 그러면 바로 이 거지같은 결계도 뚫릴텐데."
"카임, 이 새끼가...!"
"무슨 일만 있으면 새끼 새끼. 다크엘프는 삼시 세 끼 끼니마다 간식으로 처먹는 놈이 좀 닥쳐라. 캠비어들이 지금 제일 일을 안 해. 우리 구역은 확인이 끝났다. 나머지는 네놈들 차례다."
카임은 바닥을 가리키며 아래로 내려갔다. 나이트메어인 그는 삽질을 하지 않아도 땅 아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잘난 힘으로 우리쪽 구역도 확인하시지 그래?"
"우리 구역을 제외하고는 파악이 안 돼. 이 복도는 군단장 님의 영역이다. 나이트메어가 확인 할 수 있는 구역은 나의 구역 뿐이다. 꼬우면 너네 구역 우리 애들한테 내놓던가."
오리아스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삽을 내던졌다. 이미 복도에는 많은 몽마들이 나와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셋은 서로 반목을 일으키는 걸 숨길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구역으로 들어가려던 오리아스는 굳게 닫힌 서큐버스 구역의 문을 발로 걷어찼다.
"젠장! 남자들은 이렇게 개같이 일하는데 어찌 서큐버스 년들은 코빼기도 비치질 않아!"
오리아스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마족들은 포칼로르의 지시 하에 빠르게 작업을 이어나갔다.
"야, 카임아. 우리 이러다가 던전 바닥까지 긁는 거 아니냐?"
"......한 5m 정도만 다 파버리면 돼. 그러면 어디든 다 나오게 되어있어."
"던전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적도 상당히 힘들 걸? 우리 넷 동시에 죽이지 않으면 문 안 열리잖냐."
카임은 봉인문을 가리켰다. 오리아스가 죽었던 순간 1/4만큼 반짝였던 봉인문은 다시 빛이 꺼져 평범한 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봉인문 안 열리면 윗층으로 올라가는 포털도 안 열리는 거 모르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해줘야 해, 이 반쪼가리야."
"뭐래, 유령이라 좆도 없는 게. 다크엘프들 실제로 따먹지도 못하는 새끼가."
"닥쳐라. 나는 꿈속에서 따먹으면 되거든?"
"현실에서 따먹는 맛이 그리도 일품인데 그것도 모르면서. 에휴, 됐다. 상종을 말아야지."
카임과 포칼로르는 서로를 향해 쌍욕을 내뱉으며 자신들의 구역으로 사라졌다. 여전히 복도에서 공동작업을 하는 몽마들은 난감한 표정과 함께 삽질을 이어나갔다.
그 순간까지도 서큐버스 구역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 * *
<아스모데우스 구역.>
"이야, 서큐버스들 열심히 저항하네. 그러고 살아남을 수 있겠어?"
나는 내 멱살을 잡은 서큐버스의 뿔을 붙잡았다. 서큐버스는 손톱을 휘둘러 내 목을 그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내가 뿔을 잡고 그녀를 휘두르는 게 더 빨랐다.
"휠윈드 간다아아아!!"
나는 서큐버스의 뿔을 꽉 붙잡고 몸을 회전시켰다. 문신의 힘까지 동원하니 좌우로 빙그르르 돌아가는 서큐버스의 발끝은 어지간한 발차기보다도 강력했다.
"여신 곁으로, 라스!"
나는 서큐버스를 내동댕이쳤다. 수평으로 날아가던 서큐버스는 급히 날개를 퍼덕이며 저항하려 했으나, 나의 힘으로 인한 관성으로 인해 그대로 벽을 향해 날아갔다.
벽-메어리가 버지니움 실드를 설치한 서큐버스 구역의 문을 향해 날아갔다.
파지지직!!
날개부터 닿은 서큐버스는 날개부터 소멸했다. 신성력은 마족을 원자단위로 분해해버렸고, 나는 손을 털어 새로운 서큐버스를 잡을 준비를 마쳤다.
"자, 다음 손님!"
"밖에 있는 남자 새끼들은 뭐하는 거야!!"
서큐버스들은 비명을 지르며 손에 마력을 움켜쥐었다. 손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마력의 손톱은 분명 위협적이었고, 이미 나의 로브도 일부나마 조금 찢어져있었다.
"열심히 삽질하고 있단다!"
"이 무능한 새끼들!"
"뭐래, 지들은 땅도 하나 안 팠으면서!"
나는 한 걸음에 앞으로 달려가 서큐버스에게 뛰어들었다. 서큐버스는 뿔이 잡히지 않으려고 머리를 뒤로 내뺐으나,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뿔만 있는 게 아니다.
"배를 까는 건 배빵을 놓아달라는 말이렷다!"
퍼--억.
나는 배를 훤히 드러낸 서큐버스의 배에 정권을 질러넣었다. 서큐버스는 피를 토하며 눈이 뒤집혔고,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무릎을 들어올렸다.
빠각!
턱관절을 정확히 니킥으로 날렸다. 서큐버스의 눈은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은 듯 초점이 없어졌고, 나는 붙잡은 머리칼을 질질 끌어 성기방패에 내던졌다.
"한 놈 추가요!"
파지지직.
서큐버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멸했다. 마족이 타들어가는 바람에 성기방패의 겉면도 순간 소실되었으나, 옆에서 레이피어를 찌른 채 벽에 기대고 있는 메어리는 태연자약했다.
"아빠, 진짜 이러고 계속 싸우실 거예요?"
"물론! 나도 좀 레벨링 좀 하자!"
아무리 89레벨이라고 한들 너무 오랫동안 이렇다 할 전투가 없었다. 분노의 군단은 비폭력주의지만, 지금은 오만의 군단으로서 싸우러 온 것이기에 나는 얼마든지 폭력적이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서큐버스들 붙잡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미 서큐버스들은 우리 군단 애들로도 충분해! 만약 투항할 거라면 다리를 벌려라!"
구역내에 자리잡은 그 어떤 서큐버스도 다리를 벌리지 않았다.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거지? 그래, 어디 한 번 계속 싸워보자!"
"어디 한 번 계속 날뛰어 봐!"
서큐버스 한 명이 인질을 데리고 왔다.
"이 년의 목숨은 없다!"
인질은 피부가 검어진 다크엘프였고, 머리칼이 찰랑거리는 은빛인 쿠키엘프와는 다른 다소 푸석푸석한 회색이었다. 더군다나 귀는 세로로 잘려져, 인간의 귀와 똑같은 크기나 마찬가지였다.
"너 머저리냐? 우리가 걔 구하러 온 것도 아닌데 인질 잡아서 뭐해."
나는 색스를 겨누며 서큐버스를 비웃었다. 다크엘프는 눈에 절망이 가득한. 이미 삶을 포기한 눈동자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크엘프들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희 색욕의 군단을 박살내기 위해 온 것이다."
사실 구하러 온 거 맞다. 하지만 인질을 잡은 인질범에게 인질 협상을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애초에 어이가 없네. 내가 왜 엘프를 구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거야 네 놈의 뒤에 저 하이엘프가 있으니까...."
"어리석은 놈! 어딜 다크엘프와 하이엘프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이냐!"
내 호령에 서큐버스들이 겁을 먹었다.
"나는 다크엘프를 취하지 않는다! 내가 취하는 것은 오로직 하이엘프와 쿠앤크엘프 뿐!"
"그, 그건 또 뭐야!"
"설명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는 이미 죽어있는데."
나는 특유의 포즈를 취하고 앞으로 달렸다. 다크엘프를 인질로 잡고있던 서큐버스는 성기방패 쪽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곳에는 메어리가 레이피어의 끝을 서큐버스에게 겨누고 있었다.
"이런 썅-"
피융.
보빔보다 더 빠르게, 바람 화살 하나가 내 정수리 위를 스치고 비스듬히 날아갔다. 다크엘프의 목을 움켜쥔 손목은 바람화살에 관통되어 찢겨나갔고, 나는 다크엘프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그러게 진작에 오크들이랑 떡쳤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냐."
나는 다크엘프를 성기방패 쪽으로 내던졌다. 서큐버스들이 상대인 이상, 나보다는 신성력이 있는 메어리 쪽이 훨씬 안전했다.
"캬아아악!!"
서큐버스들이 손톱을 세우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덮치는 육탄공격에 나는 두 팔을 크게 벌렸다.
"흐하하, 그렇게 나랑 떡을 치고 싶으냐?! 원한다면 해주지! 다만!"
고오오.
문신의 붉은 오라가 내 전신을 휘감는다. 시야가 온통 붉어지고, 전신에 혈류가 끓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피떡을 치게 될 것이다!"
퍼--억.
나는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코뼈가 으스러지고 이마쪽의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주먹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꽈아악.
나는 그대로 주먹을 시계방향으로 비틀었다. 서큐버스는 머리째 옆으로 밀려나가며 바닥을 향해 튕겨나갔다.
서걱, 서걱.
검은 로브가 손톱에 긁히기 시작했다. 안드라스의 깃털로 촘촘하게 짠 로브건만, 서큐버스들도 제법 강한지 로브를 아주 손쉽게 갈라버렸다.
"응, 안에 중갑."
카각, 카가각!!
칠판 긁는 소리와 함께 서큐버스들의 손톱이 모두 튕겨나갔다. 로브 아래에 받쳐 입은 드워프의 갑옷은 서큐버스들의 손톱을 죄다 막아냈고, 나는 그 사이 내 앞에 있는 서큐버스의 뿔을 잡아당겼다. 양의 뿔처럼 휘어진 뿔은 잡기도 편했다.
"이것 좀 빌리마!"
나는 서큐버스의 뿔을 잡고 수도를 정수리에 내리쳤다. 뼈처럼 단단한 뿔이 '뽀각'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아아아악!!!"
서큐버스는 뼈가 부러진 것 마냥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는 그 괴성이 너무나도 시끄러워, 뿔을 역수로 쥐고 목에 꽂아넣었다.
푸쉬이이---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큐버스는 스스로의 뿔에 목이 찔려 피분수를 쏟아냈다. 나는 서큐버스를 발로 걷어낸 뒤 뿔을 뽑아 뒤를 향해 휘둘렀다.
"크억-"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들려던 서큐버스의 관자놀이에 뿔이 찔렸다. 서큐버스는 바로 무릎을 꿇으며 고꾸라졌고, 나는 그걸 발로 치우고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7초에 셋.
안면강타, 뿔을 꺾어 목 찌르기, 그걸 다시 관자놀이에 찌르기. 순식간에 세 명의 동료를 잃은 서큐버스들이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흐흐, 왜? 아까의 기개는 어디로 갔느냐."
"너...보통 오크가 아니구나!"
"그걸 이제 알면 어떡하니, 머저리 같은 놈들아."
적진에 게릴라전으로 하루 이상을 버티는 존재가 아무렴 보통의 존재겠는가.
물론 군단장이 직접 침투했다고는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눈앞에 자신보다 강자가 있으면 그걸 빨리 알아채야 하는게 마족으로서 기본이다.
"빨리 너네 대장 불러와. 이 구역 보스가 언년이냐?"
"......."
서큐버스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대답을 피했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서큐버스들의 수를 헤아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20명. 크으, 내가 서큐버스 아내만 없었어도 니들이랑 떡치고 복상사로 보내버리는데."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크게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 서큐버스 중에 어디 처녀가 있을 리도 없고, 또 샤이탄 수준의 여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흐흐, 나중에 내가 때려잡은 서큐버스들 수만큼 떡쳐달라고 해야겠다. 그래. 네가...."
퍼-억. 나는 천장에서 나를 향해 내려온 서큐버스의 손목을 붙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의자로 체어샷을 때리는 것 마냥 바닥에 던져진 서큐버스는 입을 쩍 벌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커흑!"
"네가 샤이탄의 24번째 섹스다, 서큐버스여."
콰득.
나는 서큐버스의 뿔을 짓밟았다. 강철 군화는 아주 손쉽게 서큐버스의 뿔을 부러뜨렸고, 나는 그 뿔을 이용해 그녀의 명치에 말뚝처럼 뿔을 꽂아넣었다.
"자, 빨리 너희들 대장 나오라니까. 이미 다 듣고 왔거든?"
짝짝짝.
나는 손뼉을 쳐서 서큐버스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누구냐? 지금 얘기하면 보-빔으로 깔끔하게 보내주마."
나의 뒤, 메어리는 성검 비르고를 서큐버스들에게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저한테 보-빔 당하실 분?!"
서큐버스들은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좋아. 아스모데우스 나올 때까지 다 때려죽이면 되겠지. 어차피...."
나는 밖으로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당연히 버지니움 실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너희들이 여기서 나가려면 죽어서 나가는 방법 밖에 없거든."
맞아죽거나, 스스로 신성력의 방패에 몸을 던지거나.
"항복하고 싶은 녀석들은 다리 벌리고 꼬리를 자기 질속에 찔러넣어라. 뭐, 그게 싫다면...."
우두둑. 나는 바닥에 쓰러진 서큐버스에게서 뿔을 부러뜨려 손에 움켜쥐었다.
"내가 뿔로 마음껏 찔러주도록 하마."
어디를 찌를 지는, 서큐버스들 하기 나름. 나는 뿔을 양손에 움켜쥐고 천천히 서큐버스들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