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회
103일차
라스란 무엇인가.
안드라스들에게는 섹스를 다르게 표현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로 표현하면 분노(Warth)와 같은 발음이 되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다. 단순히 내가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우리 군단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좁게는 인간과 마물의 성행위를 의미하며, 넓게는 종족을 초월하여 남녀가 성교를 나누는 행위를 의미한다.
전제조건은 단 두 가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인가?
남들의 앞에서 당당히 섹스를 할 수 있을만큼 자신이 있는가.
그 모든 퍼즐은 기존의 금기를 타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오크는 인간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왜 마족은 인간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마족은 엘프나 드워프 등 아인종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왜 인간과 통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고 혐오하고 쓰레기처럼 바라봤는가.
마족에게 있어서 인간은 적이기 때문에?
마족에게 있어서 인간은 단순히 지배해야할 가축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금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세계에서 환생한 자인 만큼, 오크로서 환생한 자인 만큼 최대한 이 세계의 룰을 따르려고 했다.
그래서 단지 태어난 곳의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포르네우스의 부당한 지시에 따라야만 했고, 그저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죽이며 오크로서 살아갔었다.
하지만 틀렸다.
오크가 인간과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촉수계 마물들은 여자 모험가들을 납치하여 산란하는 걸 두고 잘했다며 칭찬과 포상을 받고, 인큐버스들은 여자 모험가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강간하여 정기를 흡수하는 것에 찬사를 받는데, 오크가 인간을 상대로 섹스를 한다고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다.
왜 인간을 상대로만 할 수 없다는 말인가.
마왕 조차도 다양한 종족을 상대로 허리를 흔들며 매일매일 720명의 마족을 태어나게 하건만, 왜 인간만 별개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유전적 특징만 다를 뿐 모든 종족에게는 자지와 보지가 있다. 오크가 인간에게 박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인간이 엘프에게 박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노타우르스같은 거근의 남자가 드워프만한 키의 인간 여자를 상대로 박는 것에 신체적 무리가 있다면, 성마법으로 내장을 강화하여 무리 없이 들어가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악법도 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존의 악법을 타파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겠다.
모든 종족이 섹스로 하나가 되는 세상.
지금은 온갖 종족으로 다양한 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언젠가 먼 훗날의 후손들은 서로 아무 편견없이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안드라스 남성의 유전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나와 륜과 에일라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슬라브돌 여성의 유전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나와 라임과 그레모리와 레비즈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륜이 낳은 자손이 나와 에일라가 낳은 자손과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들에게는 유전적 특징은 있더라도 종족으로서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 종족은 다를 지언정, 서로가 사랑하면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종족 때문에, 태어날 아이 때문에, 혹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만 섹스 할 수 없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나는 새로운 이상향 라스토피아를 만들 것이다.
그런 세계를 만드는 길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에 나는 분노하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낳을 자식의 자식의 자식 오크가 인간과 사랑에 빠져 서로 섹스를 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 라스토피아에서만큼은 서로 인간박이와 마물박이라고 모욕받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의 취향은 존중하라.
단, 몇 가지 금기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표리부동이라고 욕할 것이다. 인간박이라는 금기를 타파하겠다고 하는 자가 어째서 새로운 금기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하고 따지는 자사 있을 것이다.
그럼 라스토피아 말고 다른 곳에 가서 그러시던가. 라고, 나는 그에게 당당히 외칠 것이다.
라스토피아는 내가 만들 왕국이다.
새로운 질서와 법에 따라 성관념에 대하여 기존의 억압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운 사회가 될 테지만, 엄연히 사회인 만큼 법과 규칙과 질서가 필요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 규칙을 정하는 것은 나다. 내가 정한 규율과 법이 곧 우리 군단의 법칙이며, 라스토피아를 이루는 헌법이 될 것이다.
모든 생명은 종족을 초월하여 서로 섹스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군단의 법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을 무참히 힘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나는 나 스스로 정한 새로운 이름을 당당히 밝힐 것이다.
감히 저항하는 자,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 우리에게 자신들의 규율과 관습을 강여하는 자.
그리하여, 자유로운 섹스를 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자. 그들 모두 마액을 코로 들이킬 것이다.
라스란, 모든 관념을 넘어 서로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섹스하는 것.
분노란, 그걸 막는 모든 장애물과 역경을 이겨내는 것.
한 번 더 라스란, 사랑 가득한 섹스.
그리하여 나는 진정한 사랑의 독재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진면목을 알아본 솔로몬이 내게 분노의 인장을 보낸 이유일 것이다.
* * *
"주인, 그러니까 한 마디로 섹스하고 싶은데 방해하는 것들을 다 박살내고 싶다는 거지?"
"다르다, 라임! 4성이 되어 똑똑해진 지능으로 너의 주인을 팩트로 때리지 말거라!"
"음...그냥 맨날 자지가 화나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륜아, 그런 이유로 분노의 군단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식욕의 군단이라고 하자꾸나. 지나가는 아무나 따먹고 싶으니까 식욕의 군단. 어떠냐?"
"맞는 말 아니에요?"
"으으…다르다. 이건 관념적인 것이야. 금기라는 이름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내 자지가 항상 화나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분노의 군단은 아니다!"
" 음...이상하네요. 아빠,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솔직하게 답해주셔야 해요."
메어리가 성검을 바닥에 찍으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에스투라는 분 처음 봤을 때 어땠어요?"
"따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 안 그러셨어요?"
"그야 나보다 강하니까."
"그럼 아빠는 아빠보다 강한 사람에 대해서는 화도 내지 못하는 소인배에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당장 메어리와 관계되는 존재가 하나 있어, 나는 선뜻 다른 예시를 들어 반박하지 못했다.
<알림> 대상은 파종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 대상 : 메어리
시스템은 나를 향해 안 된다고 외치고 있다. 나는 아직 시스템의 힘을 이용해야만 했기에, 격렬히 들끓는 화를 삭힐 수밖에 없었다.
설령 내가 지금까지 나보다 강한 포르네우스, 루나, 할파스, 레비즈 등등을 상대로 나의 모든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들, 메어리 입장에서는 솔로몬이라는 자에 대해서만 분노를 삭히는 내가 미울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진짜로 찐따처럼 느껴지지 않느냐. 메어리, 지금은 약하지만 언젠가 강해지는 날이 오면, 그들도 나의 먹이가 될 것이다. 내가 왜 마왕을 넘어서려고 하는데!"
"흠, 흠. 그러시구나. 알았어요. 아무곳에나 화를 내는 건 분노조절장애나 마찬가지니까, 그건 인정할게요. 언젠가 강해진다면 꼭 화내주셔야 하는 거예요?"
"물론이다. 그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마. 슬슬 쉬었으니 다시 일을 해야지."
나는 무기를 들어올렸다. 이전까지는 단순한 저격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인질이 된 다크엘프들을 구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전 2페이즈다.
"흐흐, 이 새끼들 아마 골 좀 때릴 거다."
메어리는 포털 앞에 설치된 버지니움 실드를 해제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
* * *
"보지가 열렸, 아니 방패가 해제되었다!!"
오리아스와 카임, 포칼로르는 동시에 복도로 빠져나왔다. 포털 앞에 설치된 꽃잎 모양의 방패는 사라졌고, 눈앞에는 적이 침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포털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미친!"
오리아스는 좌우로 난 좁은 길에 경악했다. 적들은 던전을 마치 지렁이처럼 파먹으며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카임, 우측은 내가 확인하겠다! 좌측은 네가 확인해!"
포칼로르의 외침에 두 몽마는 좌우로 흩어졌다. 홀로 남은 오리아스는 떨리는 주먹을 움켜쥐며 주위를 살폈다.
"이 새끼...!"
이미 동생이 살해당한 것으로 화가 잔뜩 올라있는 오리아스에게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각 구역의 모든 몽마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구역 외곽에다가 칼로 쑤셔!"
복도를 나온 몽마들은 오리아스의 지시에 다소 의아했다.
"이 멍청이들아! 벽 너머에 적이 만든 통로가 있다고!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빨리 찔러서 확인해 봐!"
오리아스의 외침에 각 구역의 몽마들은 황급히 오리아스의 지시대로 벽을 칼로 찔렀다. 그러자 칼이 움푹 들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칼을 여러 번 찔러대니 어떤 구역은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 쥐새끼같은 놈들이...!"
적이 아군 병사들을 살해한 방법과 위치를 알아냈다. 카임과 포칼로르가 길을 따라 달리는 이상, 적은 금방 위치가 발각될 것이다.
'동생이라면 여기서 분명 적이 일부러 방패를 해제했다고 얘기했을텐데.'
오랜 기간 옆에서 훈수 아닌 훈수를 들어온 오리아스는 제법 머리가 똑똑해졌다. 그는 곧장 성기방패의 주변을 살핀 뒤 주변을 살폈다.
시간이 다 지나서 해제되었다?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다. 오리아스는 급히 좌우를 훑었다.
"저 년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바깥의 소동에도 전혀 미동조차 없는 서큐버스 구역을 바라보며 오리아스는 혀를 찼다. 아스타로트 아래에 있는 같은 간부이건만, 자기만 30위권의 던전 주인이었다고 유세를 떠는 것 같았다.
"야! 아스모데우스! 나와!"
쾅쾅쾅.
오리아스는 서큐버스 구역의 입구를 거칠게 두드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리아스에 반응하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오리아스는 굳게 단힌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다른 네 구역 중 아스모데우스가 맡은 구역이 문제가 생긴다면, 그 이상으로 심각해지는 상황이 또 없었다.
"이런 젠장...! 빨리 문을-"
주륵.
오리아스의 코에서 붉은 피가 떨어졌다. 과로로 인한 코피인가 생각했지만, 곧 오리아스는 힘을 잃고 벽에 풀썩 쓰러졌다.
"이, 이런 젠장...."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오리아스는 자신의 발 바로 아래에 있던 분홍색 꽃잎 모양을 보고 의식을 잃었다.
"아, 아래...."
그는 죽기 직전에 적은 아래에 있다는 표시를 손으로 남겼지만, 그 누구도 신성력에 고간부터 정수리까지 꿰뚫린 그의 시체를 손대지 못했다.
대신.
"카임! 적의 결계를 찾아냈다! 봉인문 바로 앞에 있는 바닥이다!!"
적이 이번에는 바닥에 구멍을 내고 그 입구에 꽃잎 모양 방패를 설치한 것을 확인한 포칼로르는 카임과 함께 죽은 오리아스의 시체를 결계의 위에 집어던졌다.
"어우, 깔끔하게 소멸하는 구만!"
"좀있다 다시보자. 미안하다!"
위이잉.
봉인된 문의 마법진에 1/4만큼 빛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마왕성.>
"재미있네. 성검의 용사를 던전의 부하로 활용하다니. 이건 마왕군 적으로 에러 아니야?"
"알게 뭐냐. 애초에 성검이라는 것 부터 인간들이 멋대로 붙여다가 써먹은 이름이다. 어떻게 구했든 저 놈 쓰기 나름이지."
"그치만 저러면 위에 놈들 다 때려잡고 다닐텐데?"
"언제까지고 성검만 쓰면 벽에 도달하게 될 터. 마치 밸런스 조정이라도 해달라는 듯 말하는 군. 저 놈을 아끼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일텐데?"
솔로몬의 지적에 에스투는 어깨를 으쓱였다. 둘은 다시 영상 속 군단간의 전투를 다양한 각도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분노, 오만 대 색욕이라. 마왕님께서는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했을까?"
"무슨 의미지?"
"그렇잖아. 지금 마계 전체를 통틀어서 변태 2인자를 뽑는 결정전 아니야?"
"어쭈, 1위는?"
"당연히 대단하신 마왕님 아니겠어? 지금 요정왕도 유심히 보고 있잖아. 자기 딸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 보냈을 거라면서 벼르고 있던데?"
"......제발 낳아달라고 역강간하려고 할 때는 언제고, 쯧."
"응, 빡치니까 한 번 더 낳게 할 거래."
"주제에? 웃기는 군."
솔로몬은 비릿하게 웃으며 소파에 몸을 눕혔다.
"한숨 잔다.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그 때 깨워."
"어머. 분노가 색욕을 삼키는 장면을 보기 싫은 거야?"
"벌써부터 누가 이길 지 확신하는 건가? 마족간의 싸움이라는 건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만약 분노가 승리한다면...."
솔로몬은 본격적으로 이불까지 덮었다. 베게는 당연히 에스투의 허벅지였다.
"원래 저 놈에게 돌아갔어야 할 색욕이 주인 찾아 가는 거지."
"어머. 그 말은 색욕으로 점지해놨다는 거?"
"아니."
솔로몬은 눈을 감았다.
"저 새끼가 저 정도로 씹변태인 줄 알았으면 색욕을 남겨뒀겠지."
"본인은 온갖 논리를 붙여서 자기가 분노인 걸 자랑하던데?"
"...나는 절대 그런 의도 없었다."
솔로몬은 하품을 하며 수마에 잠겼다.
"애초에 다른 애들 먼저 다른 인장 주고 남은 인장이 분노 뿐이었는데 무슨. 애초에 샤이탄을 가장 마지막에 보내자고 한 건 너잖냐."
솔로몬은 에스투의 허벅지에서 고요히 잠들었다. 에스투는 솔로몬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싱긋 미소지었다.
"그래. 내가 쟤한테 샤이탄을, 분노의 인장을 보냈지."
"티타니아, 얘 잔다."
"잘 먹겠습니다."
"이런 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