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회
102일차
엘프의 숲에 있는 엘프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성욕에 눈을 떠 우리 군단에 협력한 쿠앤크 엘프.
그리고 처녀를 지키기 위해 우리 군단에는 들어오지 않은 버진 엘프.
1장로를 중심으로 한 버진 엘프들은 엘프의 숲을 떠났다. 내가 엘프의 숲에 남아있으면 진짜로 범하겠노라 협박을 해서 강제로 떠났다.
그리고 소식도 전해지지 않던 그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고 했다. 눈앞의 뜯어먹힌 귀가 그 증거였다.
"나도 네게 이런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고, 내가 나서면 위에서 귀찮은 것들이 쫑알거리거든."
신수는 테이블위에 엘프의 귀를 다시 나뭇잎으로 감쌌다.
"하지만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임이라고 판단했다. 첫째, 네가 영향력을 미쳤으니까. 둘째, 너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테니까. 셋째, 이 세계에서 너만큼 엘프를 아끼는 이가 없으니까."
"...제가요?"
금시초문이다.
"응. 진짜다."
신수 인증 세상에서 가장 엘프를 아끼는 남자.
나는 그 타이틀에 어이가 없어서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엘프들과의 인연을 차례대로 읊었다.
"륜은 보자마자 데려다가 덮칠 각 재다가 덮쳤습니다만?"
"진짜로 안 잡아먹고 살려줘서 4성으로 키워주는 오크가 어디있나?"
"루나는 금기를 이용해서 제 자지 없이는 못 사는 엘프로 만들었습니다만?"
"애초에 금기는 장로들이 멋대로 만든 것이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그리고 금기를 범하여 자살할 수도 있는 걸 살려주지 않았나. 그 덕분에 여신도 너를 아끼어 루나를 여왕으로 만들어준 거지."
"엘프의 숲에 있는 엘프들한테 미약 풀고 오크들 이용해서, 첫 경험을 벽 구멍에 끼워서 앞뒤로 3P 갱뱅쇼를 벌였습니다만?"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인데, 어차피 그 년들 다 죄다 숲에서는 서로 가지치기 하던 녀석들이다. 정확히는 가지치기 하던 놈들 대부분이 네가 말하는 쿠앤크 엘프가 되었지."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엘프들을 인간, 미노타우르스, 오크, 안드라스 들 사이에 집어던지고 난교파티 하게 했습니다만?"
"네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원해서 한 게 아닌가? 그럼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지."
"......이 세계의 놈들은 도대체 엘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겁니까?"
"붙잡으면 평생동안 제멋대로 사용할 수 있는 좆집? 기본이 성노예지. 특히 인간들은 그 정도가 심하더구나. 마족에게 잡히면 단순히 윤간당해서 다크엘프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만, 인간들에게 잡히면 창관으로 보내져서...으으, 나도 이 이상은 말하기 싫군."
역시 이 세계는 라스로 정화해야 할 세계다. 나는 인간들에게 붙잡혀 성노예가 된 엘프들을 향해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그럼 부탁은 인간들의 도시를 습격해서 노예가 된 엘프를 구출하는 겁니까?"
"아니. 아까 살짝 언질을 줬지만, 나는 이 세계의 존재들이 살아가는 데 간섭하기 힘들다. 그랬다면 진작에 네가 우리 엘프들을 건드리는 것에 조치를 했겠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최소한 힌트 비슷하게라도 있어야 제가 조치를 취하지 않겠습니까?"
"힌트? ......글쎄.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니까 흘려듣거라."
신수는 나뭇잎 속 엘프의 귀를 다시 집어들었다.
"발견한 장소는 나의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이렇게 귀를 뜯어먹는 걸로 보아 인간의 치열같은데...보통 인간은 엘프의 귀를 이런 식으로 진짜 뜯어먹지 않지. 그럼 인간의 형태를 한 마족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가?"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씀이시군요. 차라리 인간들 중에 엘프 귀에 패티시를 가진 변태가 귀를 물고 빨고 핥다가 실수로 깨물었던 걸 버렸다는 게 현실성이 있겠습니다."
"역시 그런가? 그거 아쉽군. 내 생각이 틀렸다면 말이야."
"무척이나 아쉽군요."
들어야 할 정보는 모두 들었다. 아마도 이게 신수가 내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가 분명할 것이다.
"그럼 바로 작전을 수립하여 임무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임무? 부탁이라고 했네만...."
신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엘프들을 구하면 내게 찾아오게. 그럼 그대의 머리칼이 더욱 풍성해지는 발모제를 제공해주지. 성과가 좋으면...그래, 제조 비법까지 공유해주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수 님."
".....흐음."
신수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너무 과례를 표현한 건 아닐까.
"뭐, 됐네. 어차피 그대와는 또 다시 만나게 될테니. 아, 온김에 내 딸아이를 만나고 가도 되겠는가?"
"딸...말씀이십니까?"
누구를 말하는 걸까. 당장 엘프만 하더라도 여기에 80명이 넘는데.
"엘프들이 아니야. 엘프들은 내가 시조 격인 셈이고, 진짜 내가 배아파서 낳은 딸이 네게 있다고 들었는데."
신수. 유그드라실. 드라실...?
"...에이, 설마."
"참고로 내 이 몸은 나무 속에 숨겨놓는다네. 아, 혹시 너무 모습이 달라서 그런가?"
유그드라실은 처음으로 미소를 활짝 지으며 나를 재촉했다.
"나의 딸 꿈틀뭉클나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플라우로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모님."
믿기지는 않겠지만 어찌하겠는가.
본인이 딸이라고 주장하는데.
* * *
잠시 뒤.
세계수와 촉계수가 모녀상봉을 하는 사이, 나는 군단의 중요 인사들을 던전으로 소집했다.
"하극상이다. 쟁탈전이다. 성전이다."
회의는 필요 없었다. 이미 전쟁은 정해졌고, 모든 전력을 다해 적을 쓰러뜨려야 했다.
"상대는 아스타로트. 29위 던전의 주인이자, 우리와 어쩌면 가장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던전이기도 하다."
"위치는 알고있어. 엘프의 숲에서 반대편으로 쭉 달려가면 돼."
"주인님의 던전 이전부터 엘프들한테 잘 알려져 있던 던전이에요.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 어린 엘프들은 밖에 무작정 나서지 말라고 장로님들께서 말하셨어요."
나는 남작성에서 손에 넣은 남작령 전체의 지도를 펼쳤다.
"위치는 대략 어디쯔음일 것 같으냐?"
"숲에서 평야가 펼쳐져있고...산맥으로 올라가는 길이니까...여기야."
엘프의 숲 부분은 그다지 자세하게 나와있지는 않지만, 이미 예전부터 엘프들은 아스타로트 던전의 입구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루나가 단검을 찌른 곳과 우리 던전 사이의 거리를 확인했다.
"하피 에일로를 타고 꼬박 하루를 날아가야하는 거리군."
"유니콘이든 워울프든 타고 가도 2일이나 걸릴 거리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숲을 직진으로 가로지른다고 해도 숲이 워낙 넓으니까요. 애초에 이 던전의 위치가 신수님이 계시던 곳과 가까운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엘프 마을에 전전기지를 만들고 가는 것도 어려운 건가...씁."
물리적인 거리에 대한 확인은 끝났다. 다음은 적의 전력을 확인할 차례.
"샤이탄, 루시펠. 아스타로트 던전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몽마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큐버스, 인큐버스, 밴시, 나이트메어 등이 주력이죠."
"그, 불확실한 정보입니다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똑부러지는 샤이탄의 말과 달리, 루시펠은 다소 머뭇거리며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한 정보조차도 나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해라. 판단은 내가 한다."
"네. ...예전에 할파스 던전에 있을 때, 아스타로트가 전면전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쟁탈전으로 포털을 연 게 아니라, 진짜 입구로 공격을 했었죠."
"뭐? 그게 언제냐."
"......6달 전입니다."
나름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현재 하르파스 던전의 물리적 위치를 생각했다. 우리 던전의 위치와는 며칠이고 날아가야 할 제법 먼 거리에 있었다.
"아스타로트가 던전을 옮겼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엘프들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을 것 아니냐."
"그, 그래서 불확실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분명 아스타로트가 상대가 맞았는데...."
"맞아, 주인. 상대는 분명 아스타로트였어."
하르파스가 루시펠의 말에 힘을 실었다.
"내가 샥스도 아니었을 때 있었던 일이라 잘 알아. 할파스가 직접 싸웠던 걸 봐서 잘 알아. 할파스가 아스타로트를 직접 싸워서 요격했어."
"결과는?"
"...무승부."
"그래. 좋은 정보로다. 루시펠, 발언을 두려워하지 마라. 네 말로부터 시작한 걸 바탕으로 우리는 아스타로트의 대략적인 전투력을 가늠할 수 있으니."
6개월 전에 할파스와 비슷한 전력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보다 더 강해졌다고 봐야한다.
"엘프의 숲 근처에 있는 아스타로트. 하르파스 던전 근처에 있는 아스타로트. 어느쪽이 진짜 아스타로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건 확실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들은 엘프들을 사로잡은 아스타로트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포털 잘못 열면 엉뚱한 아스타로트한테 열리는 거 아니야?"
"그레모리, 반대로 정확히 아스타로트에게 포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포털은 열지 않는다."
내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특히 에일라가 가장 격한 반응을 보였다.
"병력이 대규모로 빠져나가면 인간들이 눈치를 챌 겁니다. 라스피카의 치안도 내려갈 거고, 저희를 주시하는 후작령의 성기사단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치를 수 없는 전쟁이다."
"예. 그런 의미에서 병력을 최정예로 구성하였으면 합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강의 전력입니다. 이 지역에서 최강 전력이지요."
"......?"
모두가 에일라를 향해 눈이 돌아갔다. 그녀는 내가 보기에도 제법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인류를 이용합시다."
작전의 틀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 * *
<그 시각, 레굴루스 성.>
"......집단난교를 벌였다는 것인가? 시장이 만들어진 곳에서?"
"그렇습니다. 정찰대원에 따르면 엘프 스스로 미노타우르스에게 올라탔다고...."
"허어."
후작은 탄식을 감출 수 없었다. 엘프와 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도 있기는 했지만, 미노타우르스가 엘프와 한다는 것에 다소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궁금한 것이 있네, 안서니우스 경. 그들은 미노타우르스에게 박히기만 했는가?"
"아니오. 질내에 사정까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엘프의 신음섞인 비명에 정찰대원들이 제법 고생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크엘프가 되었는가?"
"아닙니다."
안서니우스는 일부러 힘을 줘서 답을 했다. 후작은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 번 더 탄식했다.
"정녕 그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각하, 무엇이 진실이란 말씀이십니까?"
"다크엘프로의 타락."
후작은 짜증이 일렁이는 눈빛으로 테이블 위의 서신을 내려다봤다.
"엘프들이 다크엘프가 되는 건 그들이 다른 종족과 성교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원치 않은 상태로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있었네."
"......그런 거라면 확실히."
"문제는 이것을 세간에 알리면 난리가 날 거라는 점이야. 엘프들 스스로 원해서 마족과 성교를 해도 다크엘프로 타락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마녀 레비즈가 엘프 넷을 강간하여 다크엘프로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싣게 되지요."
후작은 머리를 잠시 쥐어뜯었다. 저들은 후작가의 정찰병들이 시장을 멀리서 감시하는 걸 알면서도 난교를 벌였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것 마냥.
그리고 후작에게 레비즈가 마녀임을 한 번 더 시위하는 것 마냥.
"후우, 그리고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이 것."
후작은 정찰대의 보고 중 가장 글씨체가 흐트러진 문구를 가리켰다.
"그들 중에는 인간 남자들이 섞여있었고, 몇몇은 엘프들과 했다. 진실인가?"
"예. 남작령의 목수들로 추정됩니다. 강제로 동원되었다기에는 그들은 적극적으로 작업에 착수했고, 안드라스에 하피에 엘프에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안서니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인간 여자들 또한 인간, 오크, 미노타우르스 할 것 없이 했다고 합니다. 그 수가 무려 30명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허어. 여신교단에서 알면 바로 이단심문관이 단체로 날아올 만한 이야기군."
"어찌하시겠습니까?"
"......."
후작은 정찰대의 보고문과 스타킹이 든 박스를 좌우로 놓았다.
"안서니우스 경."
"예, 각하."
"자네의 부인과 딸은 스타킹을 받고 좋아하던가?"
"......예. 몹시도 좋아하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아빠, 사랑해요'소리를 들었습니다."
후작은 스타킹 박스를 들어 보고문을 살포시 눌렀다.
"정찰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폐기하도록 하지. 성기사단에 들어가면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날조가 될 수 있다. 이건 우리만 알고 있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각하."
후작은 마족과 본격적으로 손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인류 연합을 배신했다기보다는, 여신 교단과 잠시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마녀 레비즈...."
마녀의 진실이 어떻든, 이미 세간은 그걸 진실로 인식하고 있다. 후작은 후작가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걸 결정하기로 했다.
"모든 것은 여신의 뜻대로."
"아버님, 엘렉트라에요. 급한 일입니다."
"들어오거라."
엘렉트라는 굳은 얼굴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성 밖에 엘프들이 나타났어요."
"......어떻게?"
엘렉트라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을 날고 있어요. 날개달린 마물들을 타고 있어요."
후작은 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