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27화 (427/800)

427회

95일차

스타킹 중에 가장 꼴리는 스타킹은 무엇일까.

속살이 살짝 비칠랑 말랑 하는 검스? 아니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흰스? 그도 아니면 다소 어려보이는 티를 내고자 하는 줄무늬 스타킹?

보기에는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나는 딱 한 가지는 확신했다.

"검스가 꼴리오, 흰스가 꼴리오?"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대답할 수 있다.

"갓 벗은 스타킹이 가장 꼴리오."

나는 후작에게 엘프가 갓 벗은 스타킹을 선물했다.

* * *

잠시 뒤. 에일라에게 시장의 경비를 맡기고 급히 본진으로 돌아온 나는 샤이탄과 함께 급히 회의에 들어갔다.

"스타킹이 어떻게 퍼져나갔는가 하는 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스타킹이 수도에까지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것도 저희 예상보다 상당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는 게 이상하군요. 판매가 된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이죠."

우리는 아주 헐값에 스타킹을 팔아넘겼다. 일부 인간들을 스타킹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그 스타킹이 수도에서 아주 극소수라도 유통되고 있는 것에,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는 걸 배아파 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자본가라면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나의 이득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직접 스타킹을 판매하기는 힘들 것 같지?"

"그렇습니다. 스타킹은 마물들이 만든 물건이라는 인식이 퍼질 것입니다."

"젠장, 역시 검스를 인류의 것으로 하고 흰스를 마물의 것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는가...."

일부러 구분을 지으려고 했지만 역시 세상은 흑과 백으로 쉽게 구분지어지지 않았다.

검스든 흰스든 예쁜 여자가 입으면 음심이 올라가는 건 마찬가지니까.

"젠장. 아무래도 안 되겠다. 작전을 전면 변경하지."

"후작가에 모든 종류의 스타킹을 판매하실 계획이십니까?"

"그렇다. 이렇게 된 이상 스타킹을 우리 군단의 특산물로 삼자꾸나. 고간부에 분노의 인장을 새겨, 인장을 손으로 누르면 쉽게 찢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왠지 저희 군단의 상징이 찢어지는 것 같아 다소 그렇습니다만.... 인장을 새겨넣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샤이탄의 물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현대적 관점에 가장 가까운 부하라고 하더라도, 샤이탄은 역시 이 세계의 마족이었다.

"중요하다. 이름값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아아, 그것은 바로 '메이커'라고 하는 것이다. 같은 드워프제 무기라고 해도,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 장인의 문장이 새겨진다면 엄청 비싼 값에 팔리지 않겠느냐."

"...과연. 일상 소모품인 스타킹에도 메이커가 들어간다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겠군요. 아!"

샤이탄은 박수까지 치며 놀랐다.

"가짜 또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군단의 상징이 들어간다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군단의 상징이 들어감으로서, 우리는 이미 세상에 유통된 스타킹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킹을 세상에 퍼뜨릴 수 있다.

"방법이...흠...잠깐 샤이탄, 실례하마."

나는 샤이탄을 일으켜세워 치마를 강제로 벗겨버렸다.

하얀 와이셔츠 아래 드러난 샤이탄의 다리는 스타킹과 함께 매끄러운 각선미가 돋보였다. 나는 샤이탄의 다리를 이곳저곳 만지며 인장이 박힐만한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면적이 넓은 발등에? 아니야. 신발에 가려. 종아리? 허벅지? 안 돼. 좌우로 해야하잖아. 그럼 역시 고간부...는 찢어야 하니까 안 되고."

"흐읏...."

샤이탄은 내 손길이 올라갈 때마다 약한 신음을 흘렸다. 나는 우리 군단의 상징이 들어갈만한 장소를 찾아 샤이탄의 하반신 전체를 훑었다.

찰싹.

"샤이탄, 여기는 어떠냐?"

"좌, 좌우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샤이탄의 엉덩이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탐스러운 엉덩이가 스타킹의 보드라운 감촉과 함께 내 손아귀 힘대로 마구잡이로 형태가 반죽되었다.

"그럼 여기는?"

"흐앗...!"

꾸욱. 나는 샤이탄의 애널 구멍을 찾아 중지로 강하게 눌렀다. 스타킹의 올을 손톱으로 긁어 찌르니, 그곳에는 서큐버스 답지 않은 순백의 팬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 이참에 팬티도 같이 팔아버릴까? 팬티 라인에 달린 레이스 문양을 우리 인장의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그러면 스타킹과는 별매가 되지 않습니까.... 이미 팬티는 세상 전체에 보급되어있는, 하으, 흐읏!"

"아니면 여기 점점 젖어들어가는 곳에다가 인장을 박을까?"

봉긋하게 솟아오른 둔덕 사이를 손가락으로 튕기자, 샤이탄은 내 머리를 붙잡으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응?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 거기다가 박으면 인장이 꿰뚫리는 셈이 됩니다. 흐응, 뚫리지 않으려면 스타킹을 내려야 할 겁니다."

"그렇지? 이렇게 스타킹을 잡아 끌어내리면.... 유레카!"

찾았다.

나는 우리 군단의 상징이 박힐 곳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 * *

<그 시각, 레굴루스 성.>

"...이것이 정녕 진짜란 말인가?"

"예. 제가 각하께 거짓을 말씀드리겠습니까?"

후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나무상자에 한참을 고민했다. 안서니우스가 후작을 위해 즉석에서 나무함에 봉인하여 가져온 물건은 분명 상자 안에 들어가기 전과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안서니우스 경. 이들은 어쩌면 우리를 위해 일부러 여신께서 보내준 자들이 아닐까?"

"각하?"

"그렇지 않은가. 어찌 우리들의 약점을 이리도 잘 노리고 이런 것만 제시한단 말인가."

"정신차리십시오, 각하. 지금은 그들이 말한 정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집사장은 테이블 위에 두 개의 종이 상자를 올려두었다.

하나는 그들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수도에서 값비싼 보석과 함께 바꿔 온 중고 검은 스타킹.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단단한 종이로 포장되어 봉인도 뜯지 않는 신품 스타킹.

분노의 군단은 후작을 위한 선물에 더불어, 스타킹이 든 상자를 무려 10개나 제공했다. 정확히는 후작가에서 판매한 물건들의 대금이라는 명목이었지만, 호의가 섞여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과한 물물교환이었다.

"그, 그렇지. 에렉타일 집사장. 확인해야지. 안서니우스 경, 그들은 이것을 두고 별 말은 없었는가?"

"입어보면 자연히 그 차이를 알게될 거라고 했습니다."

"......입어보면이라니."

후작은 절망했다. 맞는 말이지만 이걸 누구에게 입힌단 말인가.

"스타킹은 여성용 물품이 아니던가. 그걸 어찌 우리가 확인해."

"몇몇 귀족 분들은 입고 다니시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그 놈들이 변태라서 그런 거야. 나이도 나보다 10살은 어린 놈들이 늘그막에 이상한 변태끼가 생겨서 그런 거지. 사이즈부터 여성용 제품이거늘 이것을 어찌 입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합니다. 보온성도 우수하고 어지간한 가죽갑옷보다 더 한 방어력을 자랑하지요. 모험가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 놈들이 문제야."

후작은 한참동안 스타킹을 내려다보며 고뇌에 빠졌다.

"우리는 분노의 군단과 싸움을 원치 않아. 아니, 최소한 안다이할이 후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전까지는 전쟁을 일으켜선 안 돼. 내 아들이지만 영지전에 준하는 전투를 맡기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자네들을 중용하면 또 모르겠지만...."

"도련님께서는 낡은 가신들을 쓰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다네.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치기 전까지는 최대한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 스타킹이 분노의 군단에서 나온다는 걸 세상 사람들이 알면 어찌되겠는가?"

"......모험가들이 사러 온다면 다행. 빼앗으러 올 가능성이 높지요."

예정된 혼란이다. 후작은 장고에 빠졌다.

"우리가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이것을 중간에서 유통할 가치가 있는가? 안서니우스 경, 그대는 보았지? 이것을 입은 엘프의 모습을."

후작은 나무상자를 톡톡 건드렸다. 안서니우스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며 당당히 외쳤다.

"예!"

"어땠는가?"

"제 아내의 젊은 시절만큼 예뻤습니다! 그리고...발검했습니다!"

안서니우스는 돌려말했지만 후작과 집사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네가 발검할 만큼 시각적인 효과를 가진 물건이란 말인가.... 끙. 난감하군. 직접 입어봐야 효과를 본다는 건데."

"뭘 입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

안서니우스는 순간 진짜로 검을 뽑아들 뻔 했다. 하지만 안서니우스의 격한 반응에 오히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 엘렉트라가 화들짝 놀랐다.

"안서니우스 경...?"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과민반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안다이할 님 드리려고 크림파이를 구워왔는데 서재에 계시지 않아서 혹시나 와봤는데...."

"......."

후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또 서재에서 빠져나간 게 틀림없었다.

꼬르륵.

갓 구운 빵의 냄새가 그들의 코를 간질였다. 마침 식사시간도 가까워졌고, 엘렉트라가 구워온 크림파이는 제법 큼직했다.

"아가, 괜찮다면 우리가 그걸 먹어도 되겠느냐?"

"아버님께서요...? 네! 얼마든지요! 호호, 따뜻한 차도 있답니다."

엘렉트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테이블 위에 파이를 올렸다. 차를 정리하던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 상자를 집어들었다.

"이거는 뭐예요?"

"아, 그것은...."

"어머! 이거 스타킹 아니에요?!"

엘렉트라는 눈을 반짝이며 스타킹이 든 상자를 집어들었다. 세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 오해하지 말고 들어다오. 이번에 수도에서 스타킹을 좋은 기회에 얻을 수 있었는데, 서로 종류가 달라서 고민하던 참이었다."

"네? 그 말씀은...."

"아마도 누군가가 가짜를 유통하고 있는 게 아닐까합니다. 문제는 둘 중 하나는 진품일텐데 저희가 구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스타킹은...직접 입어봐야 차이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씨익. 엘렉트라는 두 상자를 품안에 안아들었다.

"제가 직접 입어봐도 될까요?"

"무, 물론이지."

"감사합니다. 금방 입고 올게요!"

엘렉트라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생일 선물을 받은 것 마냥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후작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저게 그리도 좋을까."

"사교계의 유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녀님께서 저걸 입으신 이후로 영애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유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꼭 영애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건 아니지요. 흐흐."

안서니우스와 집사장은 음흉하게 웃었다. 후작은 하얗게 샌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만큼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이지. 우리는 싸우지 않는 길을 선택해서 아주 수월하게 거래할 수 있고.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후작은 복잡한 얼굴로 크림파이를 집어들었다.

"왜 이렇게 기분은 찝찝한 거지? 꼭 독이 든 스프를 먹는 것 마냥 뭔가 잘못되는 것 같지? 애초에 마족을 믿는 게 잘하는 일인가?"

"각하...."

후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찝찝함을 느꼈고, 그것이 의심암귀를 낳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거 마족의 함정 아닐까...?"

"아버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거라."

엘렉트라가 들어오자, 세 남자는 숨을 헛들이켰다.

"후후, 어때요? 예쁜가요?"

엘렉트라는 드레스 앞을 안쪽으로 말아, 무릎 위까지 다리를 훤히 드러냈다. 후작을 비롯한 세 남자는 엘렉트라가 후작가의 며느리라는 걸 잠시 잊을 정도로, 그 아름다운 각선미에 넋을 잃었다.

"어떤가요...아버님?"

"아름답구나, 엘렉트라."

"......진심으로 고마워요."

엘렉트라는 한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발그레 웃었다. 후작은 테이블 한 켠에 놓여있던 나무 상자로 시선을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정녕 이것이 여신의 뜻이란 말인가."

성녀도 입고 다니는 데 아무 문제...없지 않을까? 후작은 더이상 고민하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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