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19화 (419/800)

419회

92일차

다시 또 하루가 지났다.

지하 2층은 완벽하게 정리가 되었고, 메어리는 슬라미아들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입맛대로 던전 개조에 나섰다.

"주인, 나 남작으로 돌아감."

"왜? 메어리와 있는게 더 낫지 않겠어?"

"나나 메어리가 라스피카에 있어야 함."

남작이나 가신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사람들이 의심을 할 수 있다. 메어리와 라임, 둘 중 한 명은 남작령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라임이 남작령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 그보다 뒤에 데리고 온 마족 여자는 누구냐?"

"벨리알?"

"...벨리알?"

라임의 뒤에 목줄이 채워진 채 끌려온 상처입은 마족 여자의 이름은 벨리알이라고 했다.

"안드로말리우스가 자기 윗던전 하극상 일으키고 모두 부하로 만듦. 그 중에서 한 명만 남기고 모조리 죽음."

"벨리알만 남았다 이거군. ...이건 운명이네."

나는 창고에서 마석을 꺼냈다. 벨리알은 내가 무엇을 하나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했고, 나는 그 사이 인연소환의 리스트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이를 소환했다.

"......삼가 다시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주인님."

벨리알은 나와 처음 마주했던 검은 머리칼의 남자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다소 의아하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 나는 벨리알에게 벨리알을 가리켰다.

"합성할래, 먹어치울래?"

"...제 다음 벨리알입니까? 먹어치우겠습니다."

"으으읍?!"

벨리알(여)가 날개를 퍼덕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벨리알(남)은 라임으로부터 목줄을 건네받았다.

"그럼 실례."

벨리알(남)이 뱀처럼 입을 쩍 벌리며 씹어먹을 준비를 마쳤다. 벨리알(여)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온몸으로 비명을 질렀다.

"갈! 벨리알 네 이노오오오옴!! 네가 먹으라고했지, 먹으라고 했느냐?!"

"......???"

너무 오랫동안 인연소환의 리스트에 갇혀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벨리알은 우리 군단의 처형방법을 잊고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품안에서 이번에 새롭게 정제된, 주홍빛이 감도는 붉은 액체를 두 벨리알에게 흩뿌렸다.

"윽, 크어억!"

벨리알은 액체가 닿자마자 앞으로 고꾸라졌다. 갑작스레 발기한 자신의 하초에 괴로워했다. 나는 라스투자드를 불러 그를 감시하도록 했다.

"벨리알, 벨리알을 라스해서 죽여라!"

"크윽, 예, 예!"

벨리알은 벨리알의 목줄을 쥐고 동굴 너머로 사라졌다. 벨리알은 피대신 발정난 애액을 줄줄 흘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쟤는 메어리한테 붙여두면 되겠군."

"슬라임 군단 대장 맡기려고?"

"아니, 메어리의 멘토가 되는 거다. 나름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녀석이니 던전 운영에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분명히 있을 터. 메어리가 그 경험을 흡수하면 될 것 같고...놈은 우리 군단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그렇게 떡을 쳐댔는데도...쯧쯧."

"따지고 보면 일방적으로 강간당한 거 아님?"

"라임아, 그냥 넘어가자."

나는 라임과 함께 포털을 넘었다. 던전에 확장된 시설들은 딱히 지금 당장 관리할 것은 없었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판매 루트를 개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멋드러진 기사복을 차려입은 에일라가 광장에서 나를 맞이했다. 뒤에는 엘프의 숲에서 한그루씩 벌채한 나무를 한 통씩 들고 있는 구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선에서 활약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모든 오크들 또한 구울들의 뒤에 서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고 모두 라스피카에서 챙긴 삽을 들고 있었다.

"주인님, 여기."

나는 에일라로부터 삽을 건네받았다. 단상위에 올라서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나는 하늘높이 삽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지금까지의 싸움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싸움은 다를 것이다! 앞으로의 싸움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 오직 힘만을 이용하여 싸우는 건 우리를 자멸로 이끌 것이다!"

나약한 소리에 오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삽으로 내 배를 두드려 북을 올렸다. 단단한 고동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니 우리는 새로운 힘을 이용해야한다! 자본의 힘! 문화의 힘! 종교의 힘! 칼이 아닌 펜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 수단을 사용하겠다! 이것또한 전쟁이다! 칼이 아닌 돈으로, 칼이 아닌 입으로 싸우는 새로운 전쟁인 것이다!"

오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활약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너희는 군인이다! 전사다! 너희들의 전장은 적을 베고 쓰러뜨리며 피를 보는 곳이지, 돈을 잃고 종교에 빠져 가족을 잃는 피눈물을 흘리는 곳이 아니다! 그 역할은 새롭게 군단에 들어온 이들, 인간들의 역할이다! 간교한 세치혀와 영악한 술수로, 인류 연합의 인간들을 절망의 구덩텅이로 빠뜨리는 것이다."

오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새롭게 활약할 전장을 구축하는 것! 칼이 아닌 혀를 휘두르고, 피대신 적의 주머니에서 돈이 흘러내리게 할 자본의 전장을 만들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싸움터의 구축. 에일라는 자신의 뒤에 서있던 남자들을 앞으로 불렀다. 그들은 상당히 어색한 얼굴로 쭈볏거리며 섰지만, 건장한 체구와 다부진 어깨는 그들의 직업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소개하마! 라스피카의 숙련된 목수들이다! 너희는 이들의 지시대로 건물을 지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적과 싸우기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작업! 만약 인간이 명령을 내린다고 태만하거나 명령에 불복종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이들을 통해 벌을 내리겠다!"

끄어어엉!

미노타우르스 여섯이 도끼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소수정예로 길러진 덕분에 오크들보다 훨씬 강력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랜스를 빳빳히 하늘을 향해 세우고 있었다.

절그럭.

미노타우르스들이 제 손에 들린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자신들의 앞에 가려진 천을 치웠다. 그러자 그 아래에는 목에 쇠사슬이 묶여있는 크림엘프가 미노타우르스의 랜스 바로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너희가 태만하면 엘프들이 미노타우르스들에게 따먹힐 것이다!!"

오크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다른 것도 아닌 엘프가 걸리니, 그들의 눈에 불만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엘프들도 미노타우르스들에게 박히지 않을 경우! 너희 모두가 하룻동안 엘프들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도록 해주마!"

"""우오오오오오오오!!!"""

오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걸로 에일라도 아닌 인간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불만은 잠재울 수 있었다. 나는 삽을 들고 유니콘의 위에 올라탔다.

"가자! 우리의 새로운 전장을 만들기 위하여!!"

"""라스으으으으!!"""

진지 구축을 위해 대규모 병력이 후작령을 향해 진격했다.

* * *

라스피카에서 직업이 목수라는 이유로 시장 건설에 차출된 목수, 지브르 자르지어는 살아생전 처음 겪는 경험에 정신을 차릴 줄 몰랐다.

"인간, 조심하거라."

"아, 예, 예."

유니콘을 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이상한데, 앞에 앉은 여자 듀라한의 허리를 꽉 붙잡아야했다. 자신을 비롯한 목수들은 고급인력이라는 이유로 유니콘의 위에 올려졌다.

"인간, 엉덩이에 뭔가 닿고 있는데."

"아, 아닙니다?!"

"그냥 해본 소리다. 꽉 잡아라. 괜히 떨어져서 내가 욕먹게 하지 말고."

"......."

마물이란 존재는 다 이런 식인가. 비록 시체처럼 차갑지만 손의 감촉만큼은 여성의 그것인 듀라한의 몸에 지브르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더욱 강하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듀라한은 시체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전혀 그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약간 알싸한 냄새는 있었지만, 적어도 듀라한에게서 나는 냄새는 그다지 역하지는 않았다.

"그...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대신 나도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자네가 처음 라스한 마물은 누구였는가?"

"......안드라스였습니다. 그럼...제가 진짜 이렇게 유니콘을 타고 가도 되는 겁니까?"

지브르는 자신의 뒤, 삽을 들고 걸어오는 오크 무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왜? 인간이랍시고 목줄이라도 채워서 걸어오게 할까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풉, 그대는 군단장께서 특별히 대우하라고 하신 고급 인력이다. 건물을 만드는데 있어서 군단의 그 누구보다도 특출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

"......."

지브르는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 누구도 자신의 직업을 알아주지 못하던 와중에, 다른 누구도 아닌 마족-그것도 오크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그대에게 관심이 있다."

"......예?"

"흠, 목수가 그렇게 체력이 좋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틀린 말이 아닌 듯 하군. 튼실하고 말이야."

스윽. 듀라한은 살짝 엉덩이를 들어올려 지브르의 위에 걸터앉았다. 포동포동한 엉덩이가 자신의 고간부를 문지르자, 지브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가는 동안 즐기기라도 하지. 저걸 보아라, 군단장께서도 지금 즐기고 계시지 않은가?"

지브르는 한참 앞에 말을 타고 걸어가는 오크를 눈으로 훑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여기사를 태운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설마...."

"원래 유니콘 위에서는 하는 게 정석이지. 물론 임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러는 건 전력 손실이 될 수 있으니...."

스윽. 듀라한은 자신의 허리를 잡은 지브르의 손을 제 가슴쪽으로 움직였다. 엉덩이만큼 탐스러운 가슴에 지브르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는 동안 심심하면 나 좀 만져주겠나?"

"......."

지브르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 * *

<잠시 뒤, 남작령 인근 협곡.>

"여기면 적당할 것 같군."

과거 레비즈가 하늘을 날아 도망치려고 했던 협곡 앞에 우리는 도착했다. 협곡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언덕의 가운데가 비어있는 좁은 가도에 가까웠다.

"좌우로는...그나마 높은 산이 있으니 관리하기는 편하겠군."

"그럼 여기에 시장을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적의 공격을 당하면 금방 파괴될 것 같습니다만."

"아니다. 네 말대로 이곳은 위험하지. 이곳에는 임시 요새를 만들 것이다."

협곡 바로 앞에는 검문소 겸 요새를 만들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시장을 만들 계획이었다.

"이곳은 후작령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가도다. 최소한 가도를 통해 들어오는 자들은 여기서 일차적으로 걸러낼 수 있지."

"산을 타고 넘어오거나 잠입하는 자들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오는 자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나는 요새를 통과하는 자들에게 통행증을 부여할 것이다. 에일라, 이걸 봐다오."

나는 품에서 작은 목패를 꺼냈다. 분노의 인장이 박혀있는 목패에는 우리 군단에서 발행한 것이 확실한 증거가 담겨져 있었다.

"주인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다, 에일라. 마액에 절여놓았던 나무로 만든 조각이다. 설령 위조를 하더라도 냄새까지 구현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요새를 넘어오는 이들에게는 이걸로 신분을 증명하게 할 셈이시군요."

"동시에 자유롭게 상거래를 할 수 있는 자격이기도 하지."

퍼억, 퍼억, 퍼억.

기분좋은 삽질 소리가 울려퍼진다. 인간 목수들의 제안에 따라, 나는 가도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넓게 땅을 다졌다. 구울들이 나무를 내려놓고 땅을 손톱으로 파냈고, 오크들은 삽을 이용해 흙을 다졌다.

"한쪽은 후작령의 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곳이 될 것이며, 한쪽은 우리 군단의 상인들이 물건을 팔 것이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서로 트러블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로 파는 물건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니까요."

"그렇지. 애초에 가도라고 해봐야 3m 정도 되는 폭의 길이다. 횡단보도 하다 깔아두면 지들 알아서 왕래하겠지."

"횡단보도...?"

"아아, 횡단보도라 함은-"

"주인님!!"

하늘에서 정찰을 하고 있던 하피 에일로 하나가 황급히 내쪽으로 날아왔다. 그녀의 위에 올라타고 있던 륜이 굳은 표정으로 협곡 반대편을 가리켰다.

"후작령의 기사단에서 움직임이 있어요! 곧 협곡을 넘어올 것 같아요!"

"쯧, 역시나 우리쪽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건가. 에일라, 탈을 써다오."

"예, 주인님."

에일라는 안드라스의 탈을 머리위에 뒤집어썼다. 인간이 드러나는 건 좋지만, 아직 에일라 '아리에스'가 외부에 드러나는 건 사양이다.

"싸우러 오는 거라면 얼마든지 받아주지. 흐흐, 알아서 명분을 만들어주는군."

나는 색스를 움켜쥐고 유니콘의 위에 올라탔다. 마침 협곡을 가로질러 온 기사단은 협곡 끝에 선 나를 보고 고삐를 잡아당겼다.

"멈춰라! 네 놈들은 누구냐!"

"레오 후작령의 집사장, 에렉타일이라고 하오."

기사단의 한가운데에서 온 노년의 남자는 정중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거래를 하러왔소만...?"

"......어, 음."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 아직 오픈 안 했는데?"

설마 가게가 문을 열기도 전에 손님이 먼저 달려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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