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회
91일차
<아침, 라스베가스.>
분명 메어리의 보-빔은 공동 전체를 휩쓸었다. 당연히 신성력의 힘이 닿은 슬라임 드래곤은 빛이 되어 마석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하지만 그 폭격으로도 이무길라임의 몸은 전체가 터지지 않았다. 90레벨답게 신성력의 폭격에 직접적으로 닿은 곳만 구멍이 뚫렸고, 이미 드러난 상처는 불에 지져지듯 신성력의 불빛에 타버렸다.
따라서 이무길라임은 죽었어도 이무길라임의 시체는 절반 정도 남게 되었다. 말이 절반이지 슬라임 드래곤 오백 마리를 하나로 뭉쳐야만 비슷할 정도의 점액이 남아버렸다.
"처음에는 이걸 그대로 팔려고 했지. 보시다시피 원액 그대로 피부에 접촉하면 나조차 바로 사정할 정도니까."
나는 이무길라임의 노란 점액이 든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달콤한 꿀같은 향기가 공기중으로 퍼졌고, 한 자리에 모인 여인들은 바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달칵.
나는 바로 뚜껑을 닫았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나와 륜조차도 버티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최음 성분이 들어있는 거다. 이대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라임과 슬라미아들이 전부 먹어치우고 나면 그들의 몸을 빌리도록 하지."
슬라임 드래곤 4호기부터 12호기까지, 나는 남는 마석을 이용해 나가를 소환하여 슬라미아로 만들었다. 그들은 라임과 함께 이무길라임의 몸 안을 헤엄치며 노란 점액을 몸에 담게 될 것이다.
"주황색이 될 지, 아니면 그대로 붉은 색을 유지할 지는 모르지만 최음 성분은 점점 숙성되는 거다. 우리는 그걸 이런 유리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거지."
희석했다고 한들 단순히 신체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수준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건 일종의 던전에서 얻는 부산물 중의 하나로, 스타킹처럼 복잡하게 세상에 유통시킬 귀찮은 절차가 필요 없었다.
"에일라, 분명 슬라임 체액은 미약으로 대중에 유통되는 것이렸다?"
"그렇습니다. 단순한 슬라임은 약하지만, 슬라임 드래곤 정도 되면 제법 많이 사용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험가들이 주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최음 성분과 ★이 비례한다고 한다면, 이 미약은 분명 엄청난 효과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님, 왜 하필 이것을 '정력제'로 판매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임시 명명 이무길라임의 체액 포션.
"발라도 효과가 있건만 왜 섹스할 때 사용하지 않도록 하냐 그거냐?"
"예. 그러면 금방 구매자들도 늘어날 텐데요."
다양한 효과가 있지만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홍보할 효과는 역시 정력제였다. 항상 발기해있는 나조차도 2단 발기를 시킬 정도로 강력한 효과가 있는 만큼, 인간 남자들에게 큰 호평을 누리게 될 것이다.
"흐흐, 샤이탄아. 첫인상이란게 중요하지 않느냐. 스타킹을 처음 판매하려고 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했지?"
"바니걸로 컬쳐쇼크를 일으켰죠."
"그래. 그에 따라 '스타킹은 꼴리는 물건'이라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잡았지. 물론 인간들이 다른 용도에 중점을 둔 덕분에 더 잘 판매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튼 이 정력제가 생긴 것을 보아라. 이런 작은 유리병에 담겨있으면 어떻게 하고 싶어지지?"
이무길라임의 체액은 피클통처럼 생긴 원통의 유리병 안에 들어있었다.
"음...퍼먹는 것?"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유리병이 조금 더 줄어든다면?"
"......마시는 거?"
"이그젝틀리."
마셨을 때 정력이 강해지는 물건. 효과는 즉시 나타나게 되어있고, 많이 마실수록 효과는 더 배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것이다. 물론 바퓰라 고기라거나 스타킹과 같이 우리 군단에서 생산하는 물건들도 판매할 계획이지만, 이런 사치품도 만들어 놓아야 많은 상인들이 우리를 찾아오겠지."
스타킹처럼 알아서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물건을 우리만 판매하니, 자연스레 정력제는 암암리에 퍼져나갈 것이다. 이런게 대놓고 양지에서 유통될만한 물건도 아니고.
"음...그럼 주인님, 여성용은 따로 안 만드세요? 여자한테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자지에 바르고 쑤시면 자동으로 효과가 있을 거니까 괜찮다. 그리고 이런 걸 구매하러 오는 사람은...여자가 아니야."
"왜요? 저희 사람들 그런 거 전혀 신경쓰지 않을 텐데."
륜의 의문은 일견 타당했다. 우리 군단은 슬라임 점액은 어른 간식으로까지 유통될 정도로 성에 관대해졌지만, 아직 인류는 우리의 성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건 륜 네가 군단에 익숙해져서 그런 거다. 아직 인류는 성적으로 그렇게까지 개방되어있지 않아. 오히려 보수적이지. 여신교단 때문에."
"하지만 마녀 때문에 여신교단도 위축되었잖아요?"
"일상생활 속에 박혀있는 여신교단의 세력을 고작 마녀 한 명으로 뿌리를 뽑을 수는 없지. 성녀를 라스하고 여신교단의 성지를 점령해도, 광신도라는 건 잡초처럼 나타나는 법이거든."
아직까지 인류를 라스토피아의 길로 인도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세계를 위해, 레오 후작령은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려야 할 곳이 아니야. 경제, 문화, 종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군단의 힘을 퍼뜨리는 거다."
그 첫번째 시작은 물물교환. 그리고 그걸 위한 장소의 마련.
"지금부터 우리는 후작령과 남작령 경계에 자유시장을 만들 것이다."
자본주의, 만만세.
* * *
벨리알은 점액 속에 갇혀 움직이지를 못했다.
신성력의 여파로 인해 몸의 마나가 전부 불타버린 것도 있지만, 이미 슬라임 드래곤들에 의해 점액 속에 갇혔을 때부터 그녀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
점액이 떨린다. 동시에 역한 자신의 체액이 입가를 스쳤다. 벌써 몇 번이고 절정에 가버리며 싸버린 조수가 점액 사이를 가득 채우며 벨리알의 전신을 휘감았다.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
먹이를 먹기 위해 이무길라임은 벨리알을 자신의 점액으로 휘감았지만, 먹히기 전에 먼저 죽어버리고 말았다. 벨리알은 점액의 감옥 덕분에 살아남기는 했지만, 무너지는 천장의 잔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대로 계속 여기서 있으면 어떻게 죽는 걸까.'
태생이 마족이라 생명력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피부를 비롯한 온갖 점막으로 마주하는 점액의 미약 성분에 벨리알은 감옥 속에서 가버리고 또 가버렸다.
기약없는 절정의 연속에서 벨리알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기라도 한다면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리라 마음먹기도 했다.
그 순간, 벨리알의 눈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를 발견-'
크르르.
눈앞에는 시체와도 같은 구울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고작 ★ 구울 같은 상대의 모습에 벨리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크르르르.
구울이 뒤를 향해 머리를 흔들자 누군가가 다가와 불쑥 손을 밀어넣었다. 탄탄한 중갑의 기사는 점액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어, 벨리알의 몸통을 불쑥 들어올렸다.
"푸하아아!"
벨리알은 격한 숨을 내뱉으며 콜록거렸다. 똑같은 던전의 공기지만 점액 속의 호흡은 몹시도 괴로웠다.
"구, 구해줘서 고맙다. 나는 벨리알, 그, 안드로말리우스 던전의 부하로...."
"벨리알? 흐음, 여기도 벨리알있음."
짝. 벨리알이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자신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벨리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선대...!"
"선대? 흠, 그런 건 난 모르겠고. 딸, 이건 어떻게 할까?"
남자는 분홍 머리칼의 여인, 성검의 용사를 불렀다. 아무리봐도 마족같은 자가 성검의 용사를 딸이라고 부르는 것에 벨리알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음...진짜 벨리알이에요?"
"본인이 그렇다는데."
"안드로말리우스가 65위까지 도장깨기라도 하고 다녔나.... 뭐, 좋아요. 단탈리안이든 안드로말리우스든 싹다 긁어 모아볼까요. 하서스, 던져주세요."
휘릭. 벨리알은 공중을 날아 원형의 공간에 떨어졌다. 그곳에는 자신과 함께 이곳에 공격을 들어온 전 던전 주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아아, 집중. 지금부터 설명을 안 듣는 사람은 수박바로 찔러버릴 거예요."
성검의 용사는 수박바라는 이름의 검을 휘두르며 마족들을 위협했다.
"아빠가 지금 벨리알 몸 찾고 있는데, 마침 당신들이면 적당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딱 한 명 받아줄게요."
크르르르.
구울들이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우며 원형의 결투장을 만들었다.
"선착순으로 딱 한 명만 스카우트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를 죽일 기회를 줄게요."
"으으읍?!!"
그곳에는 사지가 묶인 채 슬라임 드래곤에게 뒤를 강간당하고 있는 안드로말리우스가 있었다. 성검의 용사는 안드로말리우스의 목 바로 위에 신성력을 흩뿌리며 웃었다.
"이 놈 죽이고 저희 군단에 들어오실 분?"
벨리알은, 생전 처음으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앞으로 치고나갔다.
* * *
<그 시각, 레굴루스 성.>
"정녕 이것이 함정이 아니란 말인가...."
고트다이할 레오 후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양피지와 작은 상자를 두고 새벽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죽으면 곧 전쟁이 일어날 터. 적은 그걸 알면서도 독약을 선물할까?"
마왕군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엘프는, 엘프의 여왕은 믿을 수 있다. 설령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자신의 안목은 믿을 수 있다.
"적은 진짜로 싸우기를 원치 않고 있다."
엘프 여왕의 힘이 있음에도 싸우지를 원치 않고 있다.
"그렇다면 힘을 기를 준비를 하고 있다?"
제법 그럴 듯한 가정이다. 어리석은 자라면 남작령을 점령한 스스로에 취해 싸움을 걸었을 것이며, 현명한 자라면 레오 후작령의 강대함에 감히 싸움을 걸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적 교류를 건 이유는 그저 레오 후작령을 염탐하기 위한 것일 터. 레오 후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리병을 집어들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군. 쯧."
완벽하게 휴전 조약을 맺은 건 아니다. 상대를 영지전을 벌이는 귀족처럼 대하기는 했지만 전혀 믿지 않았다.
단지 지금 당장 병력을 이끌고 가기에는 명분은 있어도 여론이 좋지 않았다. 마녀 레비즈가 일으킨 사단을 잠재우기 전까지는 병력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마녀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후작령을 지키기 위함이거늘...."
당장 마왕군과 전면전을 펼쳐야 할수도 있다는 것에 불안해진 영지민들을 다독이는 것도 힘들다.
성기사단은 하루가 멀다하고 마왕군의 부당함과 레비즈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엘프들이 레굴루스 성에 다녀간 이후로 마녀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제발 후작령에는 아무 일이 없기를."
여신교단으로 인해 빚어진 문제가 사실이라면, 성녀가 직접 오든 추기경이 직접 오든 여신교단에서 남작령에 준동하는 마왕군을 처리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후작은 인생의 모든 것이 레오 후작령에 달려있었다.
"그래서 이건 도대체 독약인가, 아니면 진짜 뭔가 특이한 약인가."
여왕이 스스로의 명예를 걸고 공언한 바, 독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찰랑거리는 노란 액체는 아무리봐도 평범하게 마실 건 아니었다
"...진짜로 '그런 물건'이란 말인가?"
여왕은 액체의 정체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그 말에는 거짓이 없어보였고, 그 말이 맞다면 이건 자신이 아니라 아직 아이를 보지 못한 젊은 후계자들이 먹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내가...한 번 시험해봐도 문제는 없지."
독약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 엘프 여왕이 명예를 걸고 인증한 약이 사실은 독약이라면, 엘프들은 완벽한 마왕군의 끄나풀이 되어 인류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면 후작령도 아무 거리낌없이 남작령의 마왕군을 토벌할 수 있을 터.
이미 후작은 후계자에게 자신이 죽어도 후작령이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놓았다. 후작은 후작령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목숨조차 내놓을 수 있었다.
"......나의 죽음이 우리 후작령을 위해 헛되지 않기를."
후작은 종이에 유서를 쓴 뒤, 노란 액체의 뚜껑을 열었다. 꿀처럼 달콤하고 치즈처럼 고소한 냄새는 후작의 몸을 절로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후우, 후우."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작은 포션을 들어올렸다.
"내가 이걸 먹고 죽는 즉시...엘프들은 그 권위를 잃게되리라."
쭈우욱.
후작은 한 입에 액체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깔끔하게 흘러내려가는 액체는 꿀을 탄 우유를 삼키는 것처럼 매끄럽게 넘어갔다.
"독이 진짜 아닌가...?"
후작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손에 모았던 마나가 괜히 무안해졌다.
"장난인 건가...후우, 괜히 겁먹었군. 그럼 마나를 이용해 다시 토해낼, 으어어억?!"
후작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난 채로 굳어버렸다.
벌컥!
"각하!!"
집사장이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모든 상황을 전해들었던 그는 후작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역시 엘프들이 간교한 계략을...!"
"문을 닫게! 어서!!!"
후작은 사자후를 내질렀고, 집사장은 곧장 문을 닫고 걸어잠궜다. 후작은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으나 독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후작님, 어찌된...."
"섰네!!"
"......예?"
후작의 바지 앞은 단단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같은 고통을 겪고 있던 집사장은 후작의 상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 섰다네.... 서버렸다고!"
뷰르륵.
20년만에 흐른 후작의 눈물은 바지를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