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40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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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끝났다.
군단 내 주요 거점에 대한 시찰은 완료하였고, 거점별로 전력을 파악하여 방어할 수 있는 병력들을 모두 완벽하게 배치하였다.
"군단 내의 모든 병력들을 각 거점으로 파견했다. 오히려 본진 던전이 가장 전력이 취약하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주인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흐흐, 그건 그래."
현재 본진 던전에 남아있는 이는 단 다섯 명 뿐이다.
나, 샤이탄, 륜, 그리고 혹시나 몰라서 본진에 남겨둔 라스투자드와 하서스.
오크, 서큐버스, 하이엘프, 그리고 언데드라는 네 종족 중 한 명씩 본진에 남았다.
샤이탄이 라임으로 바뀌면 사실상 우리 군단의 초기 멤버나 마찬가지인 셈이었지만, 라임은 지금 남작으로서 남작령을 운영해야했다.
"이제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준비는 됐나?"
"저희는 예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어요."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희가 옆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안심하고 시작하십시오."
"...그래, 가자."
마음을 먹었으면 이제 남은 건 실천할 때. 나는 모든 각오를 가다듬고 시스템창을 열었다.
"최소 필요 시설, 클리어. 위험도, 클리어. 전력, 클리어. 모든 조건...클리어."
〈개조〉 던전 등급을 상승시키겠습니까?
# 예상 결과 : 쿰처쿠 척의 던전 (C)
# 소요 시간 : 24시간
# 보상 : ????
〈알림〉 던전 개조 중에는 일부 시설 및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
구구구궁!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던전 천장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떨렸다. 천장에서 흙무더기가 우리의 머리 위를 덮쳤다.
"...어, 음, 씨벌?"
이거 잘못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순간.
파지직!!
던전 전체에, 보랏빛 안개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 *
던전 주인은 끊임없이 늘어난다.
65위부터 72위까지의 던전 주인은 주인이 없으면 자동으로 시스템이 아무 마족이나 랜덤하게 시스템을 이용할 권능을 부여한다.
등위가 낮을수록 부활의 텀은 점점 더 길어지나, 이전 주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제법 긴 시간이 지나면 그 이름을 이은 새로운 던전 주인이 탄생하기 십상이다.
"마왕님께서 시스템으로 속삭이셨다. 너는 군단의 주인이 될 운명이라고."
남자는 공터의 한가운데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남자의 주변에 자리잡은 마물들은 하나같이 남자의 앞에서 박수를 치며 남자의 말에 호응했다.
"시작은 72위 안드로말리우스 일 지언정, 그 끝은 제 2대 솔로몬으로 끝나리라. 나는 모든 던전의 주인들을 나의 아래에 무릎꿇게 만들 것이다."
남자, 안드로말리우스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하나 둘 가리키며 으스대기 시작했다.
"단탈리안, 세에레, 데카라비아, 벨리알, 암두시아스, 키메리에스, 안드레알푸스. 너희 모두 내가 하극상을 일으켜 이긴 자들이나, 나는 너희를 죽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주군께서 솔로몬 72 던전을 통째로 집어삼킬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운데에 큼지막한 눈동자가 박힌 별 모양의 보석마물, 데카라비아가 안드로말리우스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 있던 이들도 하나 둘 데카라비아의 말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음? 벨리알, 너는 왜 아무 말도 없느냐."
"...주군, 분명 주군께서는 저희를 이기셨습니다. 그 용병술과 전술에는 감히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지요."
검은 머리칼의 작은 소녀 마족, 벨리알은 떨리는 목소리로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재고하여 주십시오. 64위부터는 확연히 다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 몇 주간, 63위와 64위의 주인이 바뀐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름이 바뀐 적이 없습니다. 그건 그들이 이미 하극상을 일으키고 난 뒤 던전 정비를-"
"입 닥쳐라! 그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대계를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이더냐!"
안드로말리우스는 호통을 치며 벨리알의 말을 끊었다.
"63위가 대수냐! 안드레알푸스는 65위다! 언제까지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며 적을 밟아야 한단 말이냐! 이제 2계단씩 올라갈 때가 되었어!"
"그치만...!"
"더이상 반론은 받지 않겠다. 만약 한 번만 더 내 의지를 거스르려 들 경우, 나는 너를 환생조차 할 수 없는 시스템의 지옥 속으로 보내버릴 것이다."
"......죄송합니다."
벨리알은 고개를 숙였다. 한 번 던전 주인의 부하가 된다면, 던전 주인이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시스템의 명부 속에 갇혀 환생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죽음을 바라고 있는 벨리알로서는 차라리 안드로말리우스가 솔로몬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이 무모하고 파격적인 하극상의 길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가자! 포탈의 문을 열어라! 상대는...!"
안드로말리우슨 힘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드라스!!"
위이이잉.
포털이 열렸다. 안드로말리우스가 모은 정예병들이 하나 둘 병장기를 들고 포털의 앞에 섰다.
"주군,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 키메리에스가 거대한 곤봉을 들고 앞에 나섰다. 안드로말리우스는 군마에 올라 고삐를 잡아당겼다.
"전군 전진! 진격하라!"
안드로말리우스는 병사들을 이끌고 포털을 넘었다. 언제나 그렇듯 안드로말리우스는 승리를 확신하며 포털을 넘었-
"어...?"
꿈틀, 꿈틀.
"이게...다 뭐야?"
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
"이, 씨바아아아아아!!"
그곳에는, 수 천 마리가 넘는 슬라임 드래곤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던 슬라임 드래곤과는 사뭇 다른, 길이가 한 마리에 무려 5m는 훌쩍 넘는 녀석이었다.
"이, 이런 것들은 처음봐! 이거 슬라임 맞아?!"
"히, 히이이익! 주군, 이,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수가 너무 많아요!!"
"나도 알아! 근데, 근데...!"
쾅! 안드로말리우스는 포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곳은 마치 굳게 닫힌 철벽처럼 그 어떤 물건도 통과할 수 없었다.
"이제 사흘동안 돌아가지 못한다고, 젠자아아앙!!"
안드로말리우스의 비명에 거대 슬라임 드래곤들이 서로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좌우로 갈라진 그들의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의 존재가 모습을 비췄다.
"아...좆됐다."
안드로말리우스는 천장까지 닿는 길이의 거대한 뱀-슬라임에 졸도할 뻔 했다.
"저, 여기서 나갈게요."
안드로말리우스는 손을 흔들며 포탈을 다시금 두드렸다. 몇 번이고 포털을 두드리는 게 시스템도 열이 받았는지, 안드로말리우스의 앞에 경고의 의미를 담은 붉은 메세지가 떠올랐다.
〈알림〉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알림〉 포털의 방향이 바뀌려면 아직 71시간 58분이 남았습니다!
"으, 으아아아아악!!"
안드로말리우스의 비명과 함께, 슬라임 드래곤들이 꿈틀거리며 병사들을 향해 파도처럼 몰려왔다.
* * *
"아니, 진짜 세상 너무한 거 아니냐. 어떻게 던전 등급 올리자 마자 핀포인트로 저격을 하는 거지?"
"그냥 우연 아닐까요?"
"아냐. 이건 세상이 분명 나를 엿먹이려고 작정한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포털이 열릴 이유가 없잖아."
혹시나 싶어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전 병력을 분산시켰다. 그랬더니 정확히 저격을 하듯 내 던전을 상대로 하극상이 일어났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72 안드로말리우스가.
"정말 기분이 더러워. 어디서 72위짜리가 감히 나를 상대로 하극상을 일으켜?"
"주인님께서 싸움을 거신 자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어서 새로운 이름으로 누구의 이름을 쟁취할 지 정하시지요. 개인적인 제안으로는 36위 스톨라스, 31위 포라스, 25위 글라샬라볼라스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너무 노골적이라서 싫다!"
"헉.... 충격...."
"뭐가 충격이야?! 이름 끝에 섹스 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스톨섹스, 포섹스, 글라샬라볼섹스! 그리고 이미 생각하고 있는 이름이 있으니 걱정 마라!"
파후우 쿰처쿠 척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던전 주인의 이름을 차지한다면 역시 단 하나의 존재밖에 없다. 나는 분을 삭히며 지하 1층의 끝자락에 다다랗다.
"정지. 지금부터 격한 손님맞이를 시작하겠다. 퉤."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 도끼를 높이 들어올렸다. 레비즈와의 싸움에서 파괴된 이래 새롭게 마련한 색스 Mk.2는 반월과도 같은 도끼날을 반짝이고 있었다.
"자, 돌격 준비...!"
나는 앞으로 달렸다. 내가 선두에 서서 모퉁이를 돌았다. 만약 누군가가 포털을 넘어왔다면 핼버드에 대가리가 두동강이 날-
부----웅!!
색스 마크3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핼버드의 도끼날은 허공을 가르고 땅을 쪼개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포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포털이...없네요?"
지하 1층의 가장 깊은 곳. 그러니까 던전의 중심지인 소환 시설이 있는 곳으로부터 가장 먼 곳. 원칙적으로 포털은 그곳에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포털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
"시스템이 에러났나? 그러면 운영이 떠야하는데?"
"음...주인님, 혹시나 하는 생각입니다만."
샤이탄은 양손을 각각 위아래로 가리켰다.
"포털은 이미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중심보다 더 깊은 곳에 열렸을 가능성이 있지요. 이곳이 아닌, 이곳보다 중앙에서 더 먼 곳이."
"...샤이탄, 설마 너는 지금 이걸 말하고 있는 것이냐?"
쿵쿵. 나는 발로 바닥을 가볍게 굴렀다.
"던전 등급 상승으로 던전이 확장되면서, 하필 거기에 적이 하극상을 일으키며 만든 포털이 생겼다? 그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냐?"
"그 작위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겁니다. 공교롭게도."
"젠장, 인생 미쳐버리겠군. 이러다 잘못하면 새 층이 적의 소굴이 될 수도 있겠어."
상대가 안드로말리우스-72위 던전의 주인이라 딱히 심각한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72위 던전의 주인이 아랫놈들 다 건너뛰고 63위를 일부러 저격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한 수 있는 놈일 거다. 그러니까 나를 건드렸을 터. ...그런데 샤이탄. 뭔가 이상하구나. 포털은 분명 우리 중심과 '연결된' 길에 만들어질텐데?"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길은 열렸을 수도 있습니다."
샤이탄은 창백한 얼굴로 아래를 가리켰다.
"...어쩌면 플레어 판테라들이 뚫어놓은 지하에, 혹은 라임이 뚫어놓은 천장에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허."
나는 큰 절망에 빠졌다.
"...구멍 존나게 많이 팠는데, 그걸 다 찾아야 한다고? 이 인원으로?"
"어쩌면요...."
함정 좀 적당히 파놓을 걸.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아래를 가리켰다.
"...찾자, 찾아야지. 찾자고."
"우웅, 다 찾으려면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겠죠."
언데드 둘은 딱히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질색을 하는 것처럼, 륜과 샤이탄은 던전 전체를 훑어야 한다는 생각에 의지를 잘 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솔선수범해야한다. 나는 플레어 판테라가 뚫어놓은 지하 1층의 토굴 아래로 내려가며 소리쳤다.
"젠장, 던전 개조 시간동안 3P 섹스나 하면서 지내려고 했는데!!"
""......!!""
타닥, 타다닥.
륜과 샤이탄이 달려가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층으로 올라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침입자 놈들, 꼭 죽일 거다."
[진짜 섹스하시면서 시간을 보내려하셨습니까?]
아직 떠나지 않은 둘 중 구울 리치, 라스투자드가 마법으로 내게 물었다.
"여러 가지 일들 다 끝내고 시간 남으면?"
[일들이라 하심은?]
"너희들 강화. 내가 왜 일부러 너희 둘을 본진에 남겼겠냐. 던전 개조되는 시간 동안 너희들 강화시키려고 했지."
[저희를 강화...하지만 저희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나, 군단장의 역할이다. 이미 저장고에 필요한 재료들은 모두 구비해뒀다. 남은 건 소환 시설의 기능이 얼마나 남아있냐하는 건데.... 젠장."
나는 아래로 마저 내려가며 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어떤 놈들이 어디다 포털을 열었는지부터 찾자. 그 새끼들 전력 상태 봐가면서 너희 강화하든지 말든지 하자꾸나."
[저희는 버려진게 아니었습니까?]
"미친 소리. 내가 너희를 왜 버려?"
구울 주제에 참 이상한 소리를 한다 싶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둘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설마 너희들 라스 못한다고 버릴 것 같았냐? 뭐...지금은 없더라도 혹시 모르잖냐. 4성 되면 생길지도. 흐흐흐."
그리고 나는 그 4성을 위해, 둘은 남겼다.
"야, 걱정마라. 내가 너희들 반드시 좆 달아줄게. 똑같은 언데드인 듀라한들도 유니콘에 박고 다니는데, 우리 던전 개국공신인 구울들이 없어서야 되겠냐? 그치? 구울도 섹스할 수 있는 세계, 라스토피아! 흐흐, 너희도 우리 군단의 일원이다. 그걸 내가 모르겠느냐. 조금 섭섭한 걸?"
[.......]
라스투자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둘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잘 부탁한다. 언젠가 너희들 꼭 데나리치로 얼라...아니 인류 연합 놈들 뚝배기 깨고 다니게 만들어주마."
나는 플레어 판테라가 만든 토굴 아래로 빠르게 몸을 던졌다. 위에서 두 구울이 턱뼈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덩이 속으로 울려퍼졌다.
[난 원래 없는데.]
"......환청인가?"
적이 나타나서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했다. 나는 토굴을 기어다니며 혹시나 모를 포털의 위치를 찾아다녔다.
잠시 뒤.
가장 먼저 포털이 열린 곳을 발견한 자는 하서스였고, 그 위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한 장소였다.
========== 작품 후기 ==========
언데드도 떡칠 수 있는 환상의 나라.
라스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