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40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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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카 성을 점령하여 라스피카로 만든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오늘도 수고했다, 라임. 죄인들의 앞에서도 열심히 허리를 흔드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슬슬 옷은 입혀줬으면 하는데."
"너는 이미 옷을 입고 있지 않느냐? 남작의 껍데기라는 옷을."
"그렇다고 나를 개처럼 데리고 다닐 이유는 없지 않음?"
비르고 남작, 라임은 자신의 목에 채워진 목줄을 잡아당겼다. 라임의 건방진 앙탈에 나는 라임의 가슴을 쥐어뜯고 바닥에 네 발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실험을 해보도록 하자꾸나. 흠흠, 남작이여. 지금부터 영내 산책을 하겠다."
나는 남작을 데리고 영주성을 나섰다. 입구부터 우리를 보는 영지민들의 반응은 크게 세 부류 중 하나였다.
"크흠."
대낮에 야외 알몸 목줄 산책 플레이를 보이는 나와 남작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시선을 피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안녕하십니까, 군단장님. 그, 오늘도 식사하러 오신 겁니까?"
"그렇네. 사람 수만큼 주시게."
"그럼 옆에 있는 남작님은...?"
"애완동물이 사람과 같은 식사를 하던가?"
"알겠습니다. 그릇에 스프를 내어오겠습니다."
우리의 플레이를 이제는 일상으로 여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군단장님, 저희도 야외 목줄 플레이 해도 됩니까?"
"안 돼.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하다가 들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 형량은 지금 살렘과 인간들이 정하고 있을 것이다. 대충 발가벗고 광장 한 바퀴 돌고 가는 형벌이면 되겠군."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쇼. 저희는 목장에 젖짜러 갑니다. 라스."
"라스."
마지막으로 한 술 더 떠서 완전히 우리 군단에 적응한 자들이라던가. 나는 일행과 함께 우리의 지정 식당과도 같은 곳에 왔다. 아침부터 내내 일을 했으니 식사는 중요했다.
"메어리. 레오 후작령으로 간 엘프들은 어떻게 되었지?"
"무사히 레굴루스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에 목줄이 채워진 메어리는 태연한 얼굴로 스푼을 집어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군단에 강제로 협력하게 된 인간임을 표방하기 위해, 메어리는 스스로 가죽으로 된 목줄을 목에 걸었다.
"이제 교단의 귀에도 분명히 들어가게 될 겁니다. 성기사단도 물러서게 될 것이고요."
"다행이군. 엘프의 이름값으로 한 달 벌었으니 다행인 건가."
남작령 점령 이후, 우리는 쿠앤크 엘프를 대대적으로 흩뿌리며 인간들을 견제했다. 마물이 아닌 엘프들을 상대함에 있어 인간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했고, 우리는 그 혼란을 이용해 남작령을 완전히 군단의 것으로 만들었다.
"오늘의 메뉴, 바퓰라 스테이크입니다."
"고맙네. 아 참, 이 녀석에게는-"
"당연히 준비했습니다."
쉐프는 남작의 앞에 '비르고 전용'이라고 적힌 개밥그릇을 내려놓았다. 안에는 노르스름한 스프가 걸쭉하게 담겨있었다.
"마셔라, 버지나니야."
"...큭."
남작은 굳이 '큭' 소리까지 내며 밥그릇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굴욕적인 표정으로 혀를 할짝거리고 있지만, 스프에 녹아든 마액의 맛에 점차 능동적으로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서 들도록 하지.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신 여신과 마왕님을 향해 기도하자꾸나. 라스."
"""라스."""
우리는 짧게 기도를 한 뒤 바퓰라 스테이크를 썰었다. 화염 사자의 안심을 통으로 구워낸 스테이크는 실력있는 요리사의 기술이 섞이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자네의 요리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군. 혹시 원하는 마물이 있나? 금방 재료를 구해주도록 하지."
"혹시 코카트리스도 가능합니까? 그 전설의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걸 재현해보고 싶습니다만."
"얼마든지."
마석으로 소환하면 코카트리스도 금방이다. 신재료를 약속받은 쉐프는 식탁에서 물러났고, 나는 테이블에 앉은 이들과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륜, 그건 언제까지 입고 있을 생각이냐?"
"주인님 박아주실 때 까지요?"
"교복은 안 돼, 교복은."
"엄밀히 따지면 교복 풍 제복이니까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만."
샤이탄은 피식 웃으며 우아하게 나이프를 들었다. 여전히 비서 차림을 고수하는 그녀는 남작령에서 노획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인님께서는 교복이라는 것에 조금 껄끄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륜, 이참에 앞으로 잡아들일 여자포로들의 옷은 전부 교복으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글쎄요. 이거 어차피 코스 씨가 만든 거니까 주인님께서 박으시려고 만든 옷이잖아요. 그럼 포로들 입히면 주인님 박으러 갈 거니까 좀 그런데요."
"......의복을 이용한 문화승리라고 하는 것이다. 륜, 절대 내가 박고 싸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시안만 제공했을 뿐이다. 그것을 완연한 교복으로 실현시킨 건 코스트 윰 프레이, 그러니까 라스베가스의 방적공장 조합장이었다. 지금은 우리 군단의 전속 디자이너 〈코스프레〉로 개명했다.
"스타킹으로부터 시작한 꼴림의 미학이 점점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수영복, 핫팬츠, 교복, 비서복, 간호사복. 코스프레가 만드는 모든 의복들이 인류에게 보급될 것이다."
"저희는 그걸 통해서 마석을 버는 거고요?"
"그래. 이제 레오 후작령으로 판매 루트를 개척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방법은...아닙니다. 주인님께서는 분명 답을 찾아내시겠죠. 늘 그랬듯이."
샤이탄은 나를 믿었다. 인류에게 착의 섹스의 미학을 전파하는 건 내게 주어진 사명 중의 하나였다.
"식사는 맛있었다. 대금은 장부에 남작가의 이름으로 달아두도록 하라. 메어리, 월말에 일괄 정산하여 정확히 계산하도록."
"예. 영수증을 하나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메어리는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수증을 만들었다. 종이 끝에 박힌 붉은 루즈 자국은 명백한 우리 군단에서 발행하는 영수증이었다. 입술에 바른 루즈에는 마액이 함유되어 있어 위조도 불가능했다.
'메어리 입술에 마액이 묻은 게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어, 주인님 섰다."
"저희에게 후식을 주시려는 겁니까? 압니다."
"츄르릅."
륜과 샤이탄이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다가왔다. 밥그릇에 든 스프를 전부 다 마신 남작도 혀를 내밀며 후식을 재촉했다.
"일단 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나도 후식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으니."
식후섹.
나는 레오 후작령에 간 엘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세 가지 맛으로 나뉜 후식을 즐겼다.
* * *
〈그 시각, 레굴루스 성.〉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아무리 엘프라고 한들, 저들의 말을 일방적으로 믿을 이유는 없지."
"근거도 빈약합니다. 저는 레비즈 경과 전장에서 함께 싸워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엘프든 여인이든 강간할 여자가 아닙니다."
"허나 다크엘프가 레비즈에게 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흥, 혹시 모르죠. 오크들에게 겁간당해놓고 레비즈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걸지도."
"말조심하게. 엘프들은 귀가 밝아. 괜히 우리가 허튼 소리를 했다가는 긁어부스럼이 된단 말이네."
레오 후작이 모은 가솔들은 저마다 제 생각을 말하며 엘프들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그들 대부분은 엘프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집사장, 생각해보시오. 정말로 레비즈 경이 금기를 범하는 마녀고 엘프들을 강간했다고 생각해보시오. 그럼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소?"
"아인들이 너도나도 마왕군의 편에 부랴부랴 서게 될 것이다. 드워프들도 인류 연합에 판매하던 병장기를 끊어버릴 지도 몰라."
"그뿐만이겠습니까? 수 천년 동안 숲에서 힘을 기른 종족입니다. 그들이 활을 들고 유격대를 편성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더군다나 유니콘을 타고 오지 않았습니까?"
"기마궁수인가. 끔찍하군. 결코 적으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자들이야."
후작가의 가솔들은 사실상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아무리 엘프들이 여신교단과 전면전을 벌인다고 한들, 결국 싸우게 되는 건 당장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레오 후작가였다.
"여신교단에서 병력 동원을 요청하면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단장을 잃은 성기사단은 후작가에 지원을 요청함과 동시에 독자적으로 레비즈 구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난민들이 밝힌 마왕군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레비즈는 마왕군에 붙잡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성기사단이 차라리 레비즈 경을 구했으면 좋겠군. 그럼 모든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질 것이 아닌가."
"그건 그녀가 강간마가 아닐 때의 이야기지요."
"끙. 미쳐버리겠군. 제법 그럴싸한 말이라서 더 미칠 것 같아. 여신교단의 이야길르 들어본 적 있는가? 레비즈와 성녀의 추문 말일세. 둘이서 동성애를 즐긴다고 하던."
"성녀는 최근 타우러스 용사와 여행하며 풋풋한 사랑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그 추문은 사실이 아닌가? 성녀님께서 레비즈와 몸을 섞다가 타우러스의 사용자에게 갈아탔다거나 할 리가 없고."
"...그만. 그만하지."
레오 후작은 손을 들어 회의를 중지시켰다. 지리멸렬한 가정과 추측만 가득하여 회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우선 엘프들을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게. 그들에게 우리의 정성을 보이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후작가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야."
"각하."
집사 한 명이 쪼르르 달려와 레오 후작의 귀에 속삭였다.
"막내 도련님께서 엘프들의 방에...."
"이런 씨부럴."
레오 후작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정정하지만 지팡이의 도움이 없으면 걷기조차 힘든 그는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듯 몸을 움직였다.
"이 노오옴...."
레오 후작과 가솔들은 급히 엘프들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놔, 놔! 이 가슴괴물아!"
"엘프를 상대로 그런 표현을 하다니. 역시 인간이란...."
"안다이할!!"
레오 후작은 니프엘라의 손에 목덜미가 붙잡힌 청년을 보며 탄식했다. 그리도 날뛰지 말라고 부탁했건만, 분명 청년-안다이할은 엘프들의 근처를 서성이다가 걸린 게 분명했다.
"레오 후작, 역시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는 마녀에게 겁간당한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마치 걸레를 보는 것 같은, 저 인간의 시선은 너무나도 모욕적입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니프엘라의 말에 레오 후작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위에서 가솔들과 나눈 이야기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선전포고는 날렸으니 굳이 이곳에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 뒤에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라스토피아."
니프엘라는 손을 다소곳이 모아 중얼거렸다.
"꿈과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그곳. 라스토피아로 우리는 갈 것입니다. 강제로 엘프들을 가져 성노예로 만드려는 인간들이 있는 곳에 우리는 더는 머무를 수 없습니다."
"기, 기다리시오!"
막 떠나려던 니프엘라를 레오 후작이 불러세웠다.
"궁금한 것이 있소! 어떻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오?!"
"아. 후훗."
레오 후작은 니프엘라의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처음 보았다.
"그 분께서 세례를 내려주시어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분...? 설마 여왕?"
"자세한 것은 알려줄 이유도 없죠. 저희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니프엘라는 엘프들을 데리고 레굴루스를 떠나려했다. 레오 후작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안다이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 놈!! 도대체 손님께 무슨 짓을 한 거냐?!"
"아, 아버지! 저는 그냥 다크엘프들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을 뿐이에요!"
"이 바보같은 놈, 그냥 다크엘프가 아니지 않느냐!"
"알아요! 마녀에게 당했다고 주장하는 다크엘프 인 거. 근데 궁금한 걸 참을 수는 없잖아요!!"
"뭐? 네 녀석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그, 그냥 훔쳐봤을 뿐이에요!"
"커헉!"
레오 후작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저자세로 그들을 모셔도 시원찮을 판에, 유일한 후계자가 이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통한이 병세로 나타났다.
"아버지!"
"호들갑 떨지 마라...! 아직 괜찮다."
"후작님!!"
기사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여신교단이 성기사단이 엘프들이 탄 유니콘을 추격한다고 합니다!!"
"...커헉."
레오 후작은 한 번 더 각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