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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91화 (391/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9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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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즈에게 오기 직전.

나는 잠시 방향을 틀어 라스베가스에 있던 그에이를 호출했다.

"그에이, 고생했다. 배신하지 않고 작전을 잘 수행해준 것 만으로도 나는 네게 감사를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제 가치는 없습니다."

그에이는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시간적으로 생각하면 레비즈에게 한 번 더 싸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효율적이었지만, 너무나도 우울한 그에이의 눈빛에 나는 의아함이 생겼다.

"무슨 말이더냐? 네 가치가 얼마나 높은데."

"저는 이번 작전에서 레비즈 경의 옆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그렇다고 기사라고 하기에는 저 스스로 많이 부족한 걸 알고 있습니다. 잘해야...엘프 분들 수준의 전투력일테고."

"그건 그렇지."

우리 군단에서 인간들은 오직 싸워서 경험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라스피카에서 오랫동안 잠입했던 그에이로서는 당연히 레벨을 늘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물론 마액을 통해 레벨링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에이는 남자니까 마액도 먹기 힘들지.'

아무리 강해지고 싶다고 해도 그건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내가 허락하지 않을 문제였다.

"하지만 그에이, 잘 들어라. 인간의 힘으로 엘프와 맞먹는 수준의 힘을 가진 것 만으로도 충분히 너는 강하다."

"하지만 저는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당분간은 서브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것이냐? 네게서 초조함이 보이는 구나."

"......."

그에이는 침묵했다. 단순히 힘이 부족하다면 힘을 기르면 그만. 앞으로 어떤 적들이 나올 지는 모르지만, 힘을 기를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웃한 레오 후작령의 후계자와는 아는 사이입니다."

"응?"

"레오 후작령의 적자인 그와 저, 그리고...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친한 사이였죠."

"호오."

뭔가 재밌는 가십의 기운이 느껴진다. 내 앞에 박혀있던 에일라가 '앗'하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깐. 내가 맞춰보지. 너와 그녀는 연인관계였지만 레오 후작가의 자제가 그녀를 빼앗았다는 건가?"

"......아셨습니까?"

그에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나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냥 던져봤는데 맞췄다고?"

"군단장님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시는...아뇨. 이건 여쭤봐도 의미가 없겠군요. 예. 그녀를 빼앗겼습니다. ...사실 그녀도 칸세르라는 가문의 서열 낮은 후계자보다는 레오 후작가의 적자가 더 마음에 들었을 지도 모르죠."

"그 놈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거냐?"

"복수까지는 아닙니다. 단지 그 놈은 엄청난 검의 천재라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만약 군단에서 그 놈을 처리한다면...제가 직접 상대하여 녀석의 검을 부러뜨리고 싶습니다."

그에이의 눈동자는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눈동자 심연에는 말못할 분노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에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흠...그래? 그에이.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 너 뿐만 아니라 우리 군단 전체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 하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시도하기 꺼렸던 방법이다. 들어보아라."

나는 그에이에게 내가 생각한 계획을 가감없이 말했다. 그에이는 한참동안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고, 나는 엎드린 에일라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그에이가 대답할 때까지 에일라의 속을 즐겼다.

"결정했습니다."

"그래, 어찌할테냐."

"하겠습니다."

"어, 진짜?"

그에이가 선뜻 하겠다고 나서자 내가 더 놀랐다. 마물도 아닌 그에이가 다른 이의 존재를 갈취하며 성장하는, 엄연한 '마물'이 될 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왜? 인간으로 죽고 싶다거나 하지 않나?"

"이미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끝났습니다. 그에이 칸세르가 군단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효용가치, 적진의 스파이로서의 기능은 남작령을 점령한 순간 끝났습니다."

그에이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에이는 남작령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사람이었지만, 칸세르 가문이나 다른 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기사에 불과했다.

"인간으로 계속 지내다보면 도태될 지도 모르죠. 그러니 저는 더욱 강해지고 싶습니다. 애초에 지금 당장은 군단도 마왕군의 일부가 아닙니까. 마족으로 변모한 인간 한 둘 즈음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요. 그리고...."

그에이는 피식 웃으며 스스로의 가슴을 손으로 두드렸다.

"제가 강해야지 저 스스로와 제 가족들을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과연. 네 뜻은 알겠다. ...하지만 그에이, 진짜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모른다. 이건 정해진 결과가 있는 게 아니야."

"하겠습니다. 설령...고블린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보다는 훨씬 더 가치가 있겠죠. 제 합성이 부디 군단장님께 가치있기를."

"...그 말을 하는 건 조금 위험한데. 알았다. 따라오너라."

그리하여.

그에이 칸세르라는 남자는 인간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에일라, 둘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

"주, 주인님! 이런 꼴로 그런 걸 물으면, 햐아앙?!"

"......예."

* * *

마물합성은 합성 대상을 기준으로 했을 때 두 가지 케이스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둘 이상의 마물을 합성할 때. 슬라임 드래곤과 나가를 합쳐 슬라미아를 탄생시킨 것처럼, 이미 성장한 자들을 하나로 모아 합체시키는 것이 첫번째 예이다.

또다른 케이스는 '알'과 합성하는 것.

대표적인 예로 안드라스가 있었다. 5성으로 태어나는게 확정인 안드라스의 알을 부화시켜야 했건만, 나는 별이 5개가 되도록 부하들을 모아 합성시켰다.

후자는 내가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인격체를 하나로 모아버리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으니까. 애초에 마물합성 자체를 구울같은 지성체가 아닌 존재를 제외하고는 잘 실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몇 번의 연습과 실험끝에, 나는 어쩌면 누군가는 '금기'라고 정했을 지도 모르는 방법을 깨우쳤다.

나는 레비즈를 통해 낳은 알을 과감히 마물합성에 사용했다.

'다행히 마물만 가능하다는 얘기는 없었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알이 마물의 것이기만 하면 베이스가 될 자는 굳이 마족이나 마물이 아니더라도 충분했다.

두근, 두근.

코쿤 속 그에이의 몸은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플라우로스에게 그에이가 열매를 맺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었다. 플라우로스는 뿌리를 들어올리며 내게 시간을 표시했다.

"2시간?"

그에이가 새로운 존재로 탄생하기까지 고작 두 시간이라니. 나는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변화 속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인간이라서 그런가? 인간이어서 역시 하프 드래곤으로 변화하기 쉬운 건가?"

코쿤이 어떻게 태어날 지는 미지수이나, 마침 시간도 두 시간으로 얼추 딱 맞아떨어졌다.

"레비즈, 흐흐, 보아라. 네가 버린 알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기절했군."

레비즈는 고개를 떨군 채 실신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듯 했으나 딱히 미안하지는 않았다.

"두 시간이면 잠깐 마실 다녀와도 될 시간이군. 루시펠. 레비즈가 알을 낳기 직전에 깨워라. 그에이가 다시 태어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봐야할테니."

"그러면 두 시간 뒤에 다시 오시는 건가요?"

"그래. 그에이 다음 타자를 섭외하러 갈 거기도 하고, 다른 쪽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남아있거든."

나는 고삐를 잡아당겼다. 중간에 이동하면서 절정에 달한 에일라를 라스베가스에 잠시 쉬게 한 뒤, 나는 슬라베라스를 이끌고 라스피카로 이동했다.

"흐흐, 난장판이 따로 없군."

다시 돌아온 라스피카는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사람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벌벌 떨고 있었고, 길가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었다. 우리 군단의 병사들은 오크와 안드라스가 한 조가 되어 집집마다 드나들며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마물들이 집을 수색하며 재산을 몰수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길거리에 떨어진 재산들은 전부 사람들이 훔치다가 미쳐 수거하지 못한 물건들이었다.

'역시 인간들이란.'

값비싼 물건들은 전부다 챙기고 전부다 헐값에 팔아넘겨도 시원찮을 물건들 밖에 없었다. 구울들은 환경미화원 마냥 긴 팔을 이용해 등 뒤의 망태기에 길가의 쓰레기들을 수거했다.

"라임. 저 낡은 옷들은 한 곳에 모아두거라. 나중에 빈민이나 난민으로 꾸밀 때 사용하면 될 것 같으니."

"여차하면 우리가 먹으면 될 듯."

"그건 조금 힘들지 않겠나? 슬라임 드래곤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건 괜찮아, 주인. 우리 먹는 거 좋아해."

나가가 베이스였던 클리안과 니프란은 조금 난색을 표했지만, 태생이 슬라임인 라임은 도시에서 나오는 온갖 먹을 것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먹는 건 나중에 하도록 하자. 마침 도착했으니."

나는 슬라베라스를 멈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남작성의 지하로, 남작가문의 사람들조차 모르던 지하의 비밀 시설이었다. 나는 천천히 안장에서 내려 두 다리로 걸었다.

"라임. 너는 남작으로 변해 다시 집무실로 가라. 클리안과 니프란이 옆에서 보좌하도록."

""알겠습니다.""

슬라임들은 지상으로 떠났다. 나는 피부를 찌르는 신성력의 기운에 가볍게 호흡하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우웅.

격한 신성력의 파동이 온 몸에 전해졌다. 파종에 의해 산란을 하며 오르가슴의 절정을 느끼는 여인보다도 더 짙은 떨림은 공기마저 흔들리게 할 정도였다.

"나왔다."

"오셨어요?"

수많은 남작 가문의 여자들이 잡아먹혔던 지하실.

이제는 은빛과 분홍색이 적절히 섞인 머리칼의 메어리가 바닥에 쪼그려앉은 채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천천히 메어리에게 다가가 일의 경과를 확인했다.

"어떻게 되었느냐?"

"제법 잘 버티는데요? 아무래도 용량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빠, 싸주세요."

"......누가 들으면 몹시 위험한 말을 하는 구나. 마액을 보내도록 하마."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풋."

메어리는 실실 웃으며 맨발로 무언가를 아래로 꾹 눌렀다. 바깥으로 나와있던 멋드러진 손잡이가 붉고 끈적한 웅덩이 속으로 퐁당 빠졌다.

[꺄아아아앙!!]

공기의 떨림이 마치 여인의 비명과도 같았다. 두려움의 비명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절정의 비명이었다.

"성검도 가버릴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쉬운 애더라고요. 슬슬 꺼내도 될까요?"

"물론."

메어리는 맨손으로 마액이 꾸덕꾸덕하게 묻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바닥의 웅덩이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성검 〈비르고〉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분홍빛 검신에 마액이 한 가득 묻어있었지만.

"흐흐, 잘 진행되고 있군. 메어리, 어떠냐?"

"예상대로죠.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마액에 들어있는 마나를 꾸역꾸역 자기 안으로 집어넣고 있어요. 기존에 있던 신성력과 별개로 마나가 깃들고 있는 거죠."

우우우웅.

성검 비르고는 힘을 잃지 않았다. 막강한 신성력은 검신에 고스란히 깃들어있으나, 우리는 성검을 더욱 강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성마검.

마액 공구리 속에 검신을 절여놓았더니, 성검 비르고는 마액 속 마나를 흡수하며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풋풋한 연분홍빛의 검 손잡이가 점점 색기를 띄는 선홍빛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이대로 계속 작업하면 성검인지도 모를 거예요. 제가 잡으면서 형태도 바뀌었고, 마나만 뽑아서 쓰면 평범한 마법검인 줄 알테니까요."

"좋다. 흐흐, 성검 비르고여. 듣고 있느냐? 듣고 있으면 어서 몸을 바꿔라. 인간의 모습으로."

성검 비르고는 검신을 부르르 떨며 내 손길을 피하려했다. 하지만 메어리와의 계약에 의해 나는 큰 문제 없이 성검을 잡을 수 있었다.

"음...역시 주인이 아니면 그냥 예식용 검이군."

혹시나 나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는 성검 속의 신성력도 마나도 꺼낼 수 없었다.

"흐흐, 그저 부러지지 않는 튼튼한 검이라는 건가."

"그럼 아빠 쓰실래요?"

"뭔 소리냐. 주인은 넌데."

"저는 검사가 아니잖아요. 부러지지 않으면 적을 무조건 벨 수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메어리. 그런 검이라면 더더욱 네가 사용해야한다. 나에게는 한낱 고철덩어리지만, 너에게는 언제든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니."

나는 메어리에게 성검을 건넸다.

"그리고 내게는 이미 성검이 있지 않느냐? 흐흐흐."

"...저한테는 쓰지도 못하시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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