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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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앙!
레비즈의 창은 여전히 날카롭다. 창날 겉에 들러붙은 레비즈의 창은 뱀처럼 휘며 내 목덜미를 찌르려했다.
"흐아아아!"
나는 기합과 함께 색스를 힘차게 휘둘렀다. 문신의 버프를 받고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창날을 튕겨낼 수 없다. 전력이 아니면 나는 레비즈를 이길 수 없었다.
카앙--!
불꽃이 튀며 서로의 무기가 빗겨나갔다. 일방적으로 밀리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아주 조금이지만 레비즈 쪽이 뒤로 살짝 밀려났다. 창에 실리는 힘이 줄어든 것이다.
"후하하, 약해졌구나!"
"닥쳐!!!"
레비즈는 빽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창끝을 바닥에 꽂고 격한 숨을 몰아쉬는 게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레비즈는 연신 다리를 베베 꼬며 숨을 헐떡였다.
"흐아, 하아, 주겨, 주겨버릴 거야...!"
"지금 죽이면 되겠군!"
"이, 입 닥쳐 제발...!"
"내 입을 닫게 하고 싶나? 69라면 얼마든지 환영하마!"
"이 개새끼 진짜!!"
흥분한 여자를 상대로 평정을 잃게 하는 건 내 전문이다. 그게 나보다 더한 강자를 상대로 하는 거라면 더더욱 나는 더 잘 입을 놀릴 자신이 있다.
"어떻게 빨아주랴. 비록 네 년은 오크들 사이에 돌려서 능욕해도 모자라겠지만, 네가 지금 항복한다면 나 홀로 능욕하는 것으로 봐주마."
"너...내가 반드시 죽여서 대가리를 소금에 절여버릴 거야...!"
"나는 너를 포획하여 정액속에 절여버리도록 하지. 너는 앞으로 물대신 정액만 마시게 될 것이다. 흐흐흐."
"......."
레비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더이상 참지 못하고 뭔가 저지를 것만 같은 기세에 나는 너무 도발했나 속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또 그 엄청난 기술을?'
사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법한 기술을 다시 사용한단 말인가.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한 손을 들어올렸다. 레비즈를 제압하기 위한 작전은-
"끄으읏...!"
추후로. 레비즈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격하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 요상한 반응의 정체를 금방 깨달았다. 전장의 한 가운데 레비즈라는 암컷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려 환영을 보냈다.
"업그레이드 완료! 축하한다, 레비즈! 네 뒷구멍은 이제 뒷보지가 되었느니라!"
"......."
레비즈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 반응이라도 있기를 바랐건만, 자꾸 뜸을 들이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내가 괜히 민망해졌다.
"뭐냐. 이제 내게 깔리고 싶은 생각이 든 거냐? 항복하면 남은 인간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나 안 해."
"뭐?"
"안 해. 더러워서 못 해먹겠어. 짜증나.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거지...?"
고개를 들어올린 레비즈의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졌다. 나는 이전에 큰 기술을 사용할 때 보았던 그녀의 모습에 주먹이 떨렸다.
"루나!! 대응 준비를-"
우둑, 우두둑.
레비즈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뭔가 뿔같은 것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하얀 피부에 은색의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비늘은 마치 뱀의 피부와도 같았다.
"어, 어, 어...?"
갑자기 무슨, 이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레비즈는 점점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파앗'하는 소리와 함께 등 뒤로 은색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건 와이번-아니 드래곤의 날개와 비슷한 형태였다.
"씨발, 좆됐다."
나는 직감했다. 내가, 우리 군단이 제대로 좆됐다는 걸. 92레벨의 5성이라고 상정하고 싸움에 임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변수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아아, 이것이 폴리모프라고 하는 것인가.
알고보니 레비즈는 변신한 드래곤이었던건가.
"전군, 후-"
"주인님, 저기!"
륜이 내 지시를 끊으며 레비즈를 가리켰다. 내가 퇴각 명령을 내릴 걸 알면서도 내 말을 끊은 륜에 나는 분노보다 의아함이 먼저 앞섰다. 륜이 나를 엿먹이거나 할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뭐여."
나는 입에서 김을 내뱉는 레비즈에 헛웃음이 나왔다. 짐승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의 레비즈는 분명 드래곤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드래고니안이라거나 드래고뉴트 등으로 불리우는, 드래곤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용인(龍人)의 모습이 되었다.
"너 뭐냐?"
"...하프 드래곤."
레비즈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노려봤다. 손에 돋아난 손톱은 안드라스들의 손톱보다도 더 날카로워보였다. 그녀의 겉모습 만큼은 분명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마족보다도 더 마물다웠다.
고오오오-
그러나 레비즈의 몸에서는 언뜻 고귀해보이는 신성력이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인간에서 반인반룡으로 모습을 바꾼 레비즈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짙은 신성력을 가진 채 사방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성녀님과 약속해서 다시는 이 모습이 되지 않기로 했는데...네놈들 때문에 다시 돌아오고 말았어...!"
"뭐야. 인간이길 포기한 거냐? 막 다시 변신 못하고 그래?"
"그래!!"
레비즈는 사납게 소리지르며 내게 손톱을 겨눴다. 핏발선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듯 했다. 나는 괜히 겸연쩍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음...뭐 100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면 인간이 된다거나 하는 그런 것 같은데, 뭐 상관없지않냐. 반인반룡이든 하프 드래곤이든...네가 여자라는 건 변하지 않는데."
문신 활성화로 인해 시야가 붉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눈에 뵈는 게 없다.
"이참에 용박이까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흐흐, 그냥 인간이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하프 드래곤이면 다르지. 너는 꼭 내가 따먹는다."
"넌...정말 미친 놈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지.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려고 하고, 나보다 강한 자들을 이기려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 것 뿐이다. 축하하마, 너는 나보다 강한 존재다."
나는 손으로 엉덩이 쪽을 가리키며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변신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으냐? 네 속에는 스카 트올로지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너는 지금 그걸 스스로 꺼내지 못하고 있지."
"...성녀님께만 가면 충분히 꺼낼 수 있다."
"그걸 순순히 허락해 줄 것 같으냐?"
나는 색스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레비즈는 신성력이 가득한 손톱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분명 잘 단련된 강철 무구였건만, 색스는 레비즈의 손톱 모양으로 무참히 갈라졌다. 나는 그 엄청난 절삭력에 소름이 돋았다. 저 손톱에 닿으면 아무리 나라도 큰 상처를 입고 말 것이다.
"손톱 하나하나가 네가 사용하던 창날같군. 하지만 건방지구나. 남의 물건을 멋대로 훼손시켰으니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겠지?"
"너, 정말 어이가 없구나."
레비즈는 고개를 높이 치켜들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무엇을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한 것이냐. 내가 본 모습을 보였다. 네놈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지."
"야, 지금 전황이 안 보이냐?"
나는 엘프의 포위망 너머를 가리켰다.
마족과 인간이 서로 목숨을 걸고 대치하고 있지만, 전황은 서서히 우리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마왕군과 인류연합의 궁극적인 차이-목숨이 여럿인가 하나인가 하는 부분에서 승패가 결정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고 있지. 하지만 보아라. 서서히 도망치기 시작하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
레비즈는 침묵했다. 당장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수행하던 사제들은 이미 내게 두동강이 났거나 제 목숨 건사하기 위해 도망친 지 오래였고, 지휘체계가 무너진 토벌대의 병사들은 하나 둘 전의를 잃어가고 있었다.
"패색이 짙다 싶으니 모험가들은 바로 전장에서 내빼버리지. 남작령의 병사들은 스피카 성이 점령되었다는 것에 자포자기하고 있지. 간혹 몇몇은 동귀어진하려고 하지만, 애초에 워낙 약한 일반병이라 우리 군단병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꿈틀. 나는 바닥을 기어다니던 스카 트올로지 한 마리를 들어올렸다.
"이 녀석들이 전장을 누비며 병사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너처럼 똥꼬에 힘 빡주고 견디는 인간들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이제야 좀 감이 오는군. 네가 그렇게 기고만장한 이유를 알겠다. 네놈은 '토벌대'를 전멸시키는 게 네 승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지. 이 전투는 우리 군단의 싸움이다. 나 혼자 싸우는 거였으면 여기까지 못 왔지. 능력있는 내 부하들이 내 곁을 지켜줬기에 가능한 거다."
"......그건 동감한다. 곁에 무능한 자들밖에 없으면 이도저도 안 되더구나. 그런 의미에서."
쿵! 레비즈는 바닥을 발로 크게 굴렀다. 신성력이 살기를 띈 채 나를 향해 칼날처럼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네 승리로 만들어주마. 하지만 다음은 다를 것이다. 내가 성기사단을 몰고 오는 순간, 네놈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질 것이야."
"야, 너 왜 네가 순순히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냐?"
"너는 왜 네가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레비즈는 날개를 펄럭이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망갈 준비를 하는 모습에 나는 입이 바싹 말랐다.
"이대로 도망가면 아주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성기사단의 단장이 본모습을 보이고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친다고 말이야!!"
"알 바 아니다. 이런 작은 남작령의 패전 따위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흔들릴 것 같으냐? 성기사단을 몰고와서 다시 점령해버리면 그만이지."
'젠장.'
어정쩡한 도발로는 레비즈가 다시 지상에 내려오게 할 수 없다. 레비즈는 이미 이 전장 자체에 환멸을 느낀 것이다.
"야, 진짜 튀냐? 어? 내가 너 따먹으려고 지금 얼마나 벼르고 있었는데 그냥 튈 생각을 하냐고오오오!! 너 혼자 도망가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쩌라고! 내가 남은 인간들 천 명 넘게 따먹어도 튈 거냐?!"
"그러던가 말던가."
레비즈는 입꼬리를 비틀며 날개를 펄럭였다. 자기 키 만큼 허공에 붕 떠버리더라. 나는 망가진 색스를 내팽겨치고 주먹을 꽉 붙잡았다.
"아이고, 토벌대 인간들아! 저거 봐라! 너희들 대장이 도망간다!"
"흥."
레비즈는 날개를 펄럭이며 높이 솟구쳤다. 륜의 지시에 따라 엘프들이 황급히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지만, 레비즈에게 닿지 못했다. 레비즈는 날개를 가볍게 펄럭이는 것 만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온 바람화살을 모두 쳐낸 것이다.
"어리석은 놈들. 고작 이 정도로-"
"루나포 발사-!"
엘프들의 틈바구니에서 뛰쳐나온 루나가 하늘을 향해 등허리를 젖혔다. 웃옷을 들어올려 보인 하복부에서 성흔이 반짝이며 밤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흐-읍!"
레비즈는 루나포를 향해 손톱을 한 번 더 휘둘렀다. 레비즈의 손톱은 루나포를 좌우로 갈라버렸고, 레비즈를 제압하기 위해 기습작전으로 남겨둔 루나포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젠장, 망할 신성력!"
루나의 힘이 신성력에 기반하듯, 하필 레비즈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자이기에 루나포가 통하지 않았다.
"안녕이다, 이 망할 마족들아. 거지같은 남작령도 조만간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 성기사단과 함께...!"
레비즈는 우리를 조롱하듯 유유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토벌대의 병사들은 밤하늘을 비틀거리며 날아가는 레비즈를 보며 하나 둘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우리를...버린다고?"
"여신이시여...!"
레비즈가 도망친 것으로 사실상 전투는 우리의 승리였다. 하지만 레비즈가 이런 식으로 도망치는 건 우리의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뭔가 방법이...."
하늘을 날아가는 레비즈의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날갯짓이 영 어색하고 중간중간 휘청거리는 걸 봐선 본모습을 드러낸 것에 영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우리가 날아가도 레비즈한테 썰릴 거다. 안드라스나 하피를 붙여도...젠장. 이런 상황에서는...."
사방을 훑던 순간, 나는 한 곳에 눈이 머물렀다. 어쩌면 '저것'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륜, 루나! 나를 도와다오! 목숨을 걸고 레비즈를 쫓는다!"
놓치지 않는다.
* * *
"흐읏, 흐으으...!"
레비즈는 술에 취한 듯 휘청거리며 천천히 날았다. 인간의 육체를 포기하고 본모습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몸이 익숙치 않은데, 뱃속에 왠 더러운 마물까지 날뛰니 레비즈로서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꿀럭, 꿀럭.
"하으으...."
레비즈는 빨리 성녀를 만나고 싶었다. 성녀만이 음충으로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진정시켜줄 수 있었다. 음충이 날뛸 때마다 하복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날개에 힘이 빠질 뻔 했지만, 레비즈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 레오 후작령으로 날아올랐다.
"조, 조금만 더...."
콰-------앙!!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듯한 소름 돋는 감각에 레비즈는 뒤를 돌았다.
"어딜 도망가?"
"뭣-"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오크가 하늘에서 두 팔을 벌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레비즈는 도대체 어떻게 오크가 하늘을 날아왔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갈 때 가더라도 떡은 치고 가야지!"
덥썩. 오크는 레비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허리를 끌어안으며 달라붙는 통에, 레비즈는 엄청난 무게에 날개를 급히 퍼덕거려야만 했다.
"이, 이 미친 놈이...!"
레비즈는 날카롭게 세운 손톱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엄청난 힘에 손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뭐, 뭣?!"
"흐흐, 안녕? 어딜 도망가려고?"
오크의 뒤에는 엘프가 달라붙은 채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오크보다도 강력한 엘프 수호자는 레비즈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양 손목을 꽉 붙잡았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온...?!"
"찾았다! 루나, 꽉 잡고 있어!"
"히익?!"
레비즈는 고간부에서 느껴지는 혐오스러운 감각에 전신의 비늘이 쭈뼛 섰다. 하프 드래곤이지만 인간의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여성기의 입구에 말랑하면서도 딱딱하고 뜨거운 뭔가가 스쳤다.
"야, 레비즈."
오크는 레비즈의 가슴골 사이에 속삭이며 나무늘보처럼 레비즈에게 매달렸다.
"박을게."
찌걱.
========== 작품 후기 ==========
해발 100m 상공에서 펼쳐지는 공중 배틀씬인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