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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79화 (379/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7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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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알로켄 전선.〉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된다. 포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인류 연합과 마왕군의 전통적인 전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퍼시발. 지금까지 우리가 죽인 인간 병사의 수가 얼마지?"

"50명입니다."

"그럼 우리 군단에서 죽은 사람의 수는?"

"...5명. 모두 한 사람입니다."

퍼시발의 보고에 그레모리는 환하게 웃었다. 병력 교환비만 따지고 보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과였다.

"괜찮으십니까?"

"후후, 어차피 실제로 죽은 것도 아닌데 뭘. 분신의 죽음은 나한테 100% 피드백이 오지 않아."

"...그래도 조금은 고통이 들어가실텐데."

"그 정도야 뭐. 분신 제작에 드는 마력이 부족할수록 고통도 그만큼 커지겠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마냥 바보도 아니고, 내가 엄청나게 아프면서까지 지킬 바보는 아니니까."

알로켄 전선은 여전히 대치 상태에 놓여있었다. 사지타리우스 백작가의 공격은 점점 더 잦아들었지만, 동시에 계속된 전투로 오크와 워울프 부대는 상당한 전투 경험치를 쌓고 있었다.

죽은 자는 오직 그레모리의 분신 뿐.

그레모리 사단은 꽤나 성공적으로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여기는 임무를 잘 해내고 있는데...설마 자기가 망하지는 않겠지?"

"설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무조건 승리하실 겁니다."

"그래. 승리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레모리가 날개를 펼쳤다. 퍼시발도 자신의 파트너 워울프의 위에 올라타, 적으로부터 빼앗은 검을 양손에 꽉 움켜쥐었다.

"이번에야말로 사지타리우스 백작가의 병사들을 완벽하게 던전에서 쫓아내는 거야."

"라이더 부대, 돌격 준비--!!"

퍼시발의 외침과 함께, 그레모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던전안에 진을 차린 사지타리우스 백작가의 병사들이 하나 둘 방패를 들어올리며 싸울 준비를 마쳤다.

"개전이야---!!"

그레모리가 머리 위로 모은 화염구가 날아가 폭발함과 동시에,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쿠---웅!

색스를 수평으로 크게 휘두른다. 내 앞을 가로막았던 모험가의 목은 뎅겅 날아가 피보라를 일으켰다. 짙은 혈향이 코를 간질였고, 나는 모험가의 몸을 옆으로 밀치며 앞으로 달렸다.

"우오오오!!"

모험가 셋이 긴장된 얼굴로 나를 향해 검을 겨눴다. 강철로 된 판금갑옷을 입어 도끼날을 때려박아도 베일 것 같지가 않다. 더군다나 갑옷과 짜맞추기라도 한 듯 한 손에 든 강철 방패가 거슬린다.

"죽어라, 인간 놈!!"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색스를 휘둘렀다. 비스듬한 각도에서 휘둘러지는 색스에 모험가는 방패를 들어올리며 색스를 튕겨내려고 했다.

쿠-웅!

방패의 아래를 때린 색스는 그대로 비스듬히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험가의 뒤에 있던 놈들이 마법을 쏘려는 게 보였다. 여기서 내게 마법을 쏘려는 놈들을 건드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눈앞의 갑옷부터 처리한다. 나는 미끄러지는 색스를 그대로 땅에 찧듯 내던졌다.

퍽-!

도끼날이 땅을 움푹 파고들었다. 방패를 든 모험가는 공격이 빗나간 것에 나를 보며 입꼬리를 들어올렸지만, 내 공격은 빗나간 게 아니다. 무기를 바꾸기 위해 무기를 잠시 내려놓은 것이다.

"중갑은 때려잡아야지!"

나는 허리춤에 달아놓은 메이스를 집어들었다. 곤봉처럼 생긴 메이스는 이미 여럿을 피떡으로 만든 만큼 겉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런!"

방패병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몸을 피하려했다. 하지만 무게가 무게인 만큼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나는 방패가 몸을 보호하지 못할 방향으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우두둑!

"으아악!!"

허벅지를 얻어맞은 방패병은 순간적으로 자세가 무너졌다. 일격을 날렸으니 이제 다음 공격을 이어나갈 차례. 그러나 방패병이 시간을 번 만큼, 뒤에 있던 모험가들도 놀고 있는 게 아니다.

"머리 숙여-!"

방패병이 급히 머리를 숙인다. 그 너머로 붉은 불덩이가 내 눈앞에 넘실거렸다. 도깨비불이 아닌,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염구였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메이스를 들어올렸다.

"우오오오!"

노리는 것은, 당연히 방패병의 머리. 나는 지척까지 다가온 불덩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이스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뭐, 뭣?!"

화염구에 얻어맞아도 상관 없다는 내 행동에 방패병이 경악한다. 마치 내 가 자신을 죽이고 함께 죽겠다기라도 하겠다는 듯 놀란다. 미안하지만 죽는 건 한 명이다.

새---액.

등 뒤에서 바람이 살랑거렸다. 좌우로 날아든 보이지 않는 화살은 휘어지듯 날아와 화염구를 맞췄다.

퍼엉!

화염구는 터졌다. 불꽃 덩어리라고는 하지만 결국 마나로 발현된 것인 만큼, 똑같이 마나를 담은 바람 화살이라면 충분히 요격할 수 있다.

"잘했다, 륜!"

나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메이스를 내리찍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패병은 '우두둑' 소리가 나며 목이 꺾였다.

"끄어억...."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방패병은 뒤로 넘어졌다. 나는 놈의 명치를 발로 걷어차 밀어뜨렸다.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마자, 전위가 무너지자마자 뒤에 있던 모험가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

나는 들고있던 메이스를 전방으로 투척했다. 빙그르르 돌며 날아간 메이스가 로브를 입고있던 모험가의 뒷통수를 때렸다.

퍼---억.

붉은 피보라가 일며 메이스는 하늘로 튕겨올라갔다. 기적처럼 날아올라간 메이스가 자유낙하하며 다른 모험가를 때리는 걸 상상했지만, 아쉽게도 다른 놈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제가 처리할게요."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바람화살이 수평으로 날아갔다. 나는 바닥에 박힌 색스를 회수하고 호흡을 골랐다.

"아악!"

모험가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엎어졌다. 로브에 생겨난 구멍 너머에는 꿰뚫린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도망치는 사냥감을 움직이지 못하게 쏜 셈이었다.

"한 번 더."

륜은 내 옆으로 다가와 화살을 쏘았다. 엎어진 모험가는 바닥을 기어가다 그대로 픽 쓰러졌다. 그의 관자놀이에는 손가락만한 바람 구멍이 생겼다.

"륜, 괜찮으냐?"

"아직 멀쩡해요. 주인님은요?"

"쌩쌩하지. 후우, 드럽게 많군."

전장은 난전이었다. 어둠을 틈타 돌격하기는 했어도 당연히 진동이 느껴지는 만큼 적들은 우리의 기습에 충분한 대비를 했다.

우와아아아--!!

죽어, 죽어, 죽어버려!

이 더러운 마물 새끼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난무하고, 서로를 향한 증오와 살의가 넘실거린다. 던전에서의 전투와는 사뭇 다른, 피와 살육이 넘쳐흐르는 전장의 기운에 나는 더욱 몸이 고양되었다.

"전황은...백중세인가."

군단장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전황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군단의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벌대와 50:50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게 참 우스웠다.

"그냥 붙었으면 난리가 났겠어. 그치?"

"그래도 승률이 50%나 되는 거잖아요?"

"그래. 이기거나, 지거나. 물론 이기려고 싸우는 거지."

군단의 병사들은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주변에 10명의 인간 시체가 보이면, 적어도 그 곁에는 한 구의 마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륜, 숨고르기는 끝났다. 다시 가지."

"저 오크를 잡아라---! 저 놈이 대장이다--!!"

고급스러워보이는 로브의 사제가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험가들 여럿이 무기를 들어올리며 다가왔지만, 내가 색스를 겨누고 위협하자 선뜻 다가오지는 못했다.

"그래! 내가 대장이다! 너희들 대장은 어디에 있느냐!"

"뭐, 뭐하는 거야! 당장 저 놈을 죽여! 저 괴물을 죽이는 자에게는 죽어서도 여신께서 굽어살피실 것이다!"

"개같은 소리!"

나는 색스를 움켜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제법 무거운 방패를 든 모험가 둘이 앞으로 나오며 나를 막아서려했다.

"나를 죽이고 싶으면!"

나는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땅을 디디고 점프했다. 비스듬하게 들어올린 철방패를 발로 디디고 모험가의 벽을 뛰어넘었다. 모험가의 벽 뒤에 있던 사제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부터 죽을 각오를 하라!"

서걱.

아래를 향해 비스듬히 휘두른 색스가 사제를 대각선으로 갈라버렸다. 신성력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다면 몸을 보호했을텐데, 도끼날은 완벽하게 사제의 몸을 갈라버렸다.

"어, 어...?"

"흥, 어디 먼저 뒤져서 확인해보던가. 여신께서 너를 굽어살피시는지."

사아아.

달아오른 몸의 붉은 불빛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문신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걸어두었던 버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신을 다시 켜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기, 기회다!"

"칫!"

눈치 좋은 모험가 놈이 나를 향해 검을 겨눴다. 다른 모험가들도 나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겨누며 베고 찌르려했다. 바닥에 박힌 색스를 다시 크게 휘둘러 힘이 살짝 모자랐다.

베이고 찔린다. 륜이 호응하기에는 조금 늦다.

하지만 륜이 아니더라도 나를 도와주는 다른 부하들이 있다.

"키이잇!"

나를 향해 돌아본 모험가 셋의 뒤로 안드라스들이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그들의 목덜미에는 새의 검은 발톱이 박혔다.

"군단장님을 보호하라!!"

오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나를 노리려던 모험가 둘이 급히 몸을 되돌려 오크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위로 쏴주세요!"

륜이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근처에 있던 엘프들이 하늘로 화살을 쏘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화살의 일부가 나를 노리던 모험가들을 위협하며 쫓아냈다.

"이 더러운 오크 놈이!!"

내게서 가장 가까이있던 모험가가 내 가슴을 향해,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나는 색스를 움켜쥔 채로 몸을 살짝 비틀었다.

푸-욱.

"흐흐, 설렜나?"

"무, 무슨 짓을-"

"아아, 이것은 칼날잡기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 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팔에 힘을 넣었다. 모험가는 검을 빼려 안간힘을 썼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살고 싶으면 검을 빼는게 아니라 검을 놓고 튀었어야지."

"으, 으아악!!"

"늦었다."

콰득. 나는 모험가의 팔을 잡아당겨 머리를 붙잡았다. 모험가는 내 팔을 잡고 아둥바둥 저항하기 시작했다.

"왜, 왜 로브가 찢어지지도 않-"

"이거 방검로브다, 이 새끼야. 됐냐?"

우드득. 나는 모험가의 고개를 360도 돌려버렸다. 가급적 피가 튀지 않게 한 번에 저승으로 보내줬다.

"아아악!"

내 주변에 가득한 모험가들도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했다. 칼에 베이고 화살에 찔리고 손톱에 박혀 죽은 모험가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후우, 고맙다. 다들 괜찮...."

"실수했라스."

안드라스 하나가 가슴에 단검이 찔린 채 주저앉아있었다. 깃털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척보기에도 독에 당한 듯 피부가 썩어가고 있었다.

"군단장님, 부탁이 있는 거라스."

"말하지 마라."

"손에 힘이 안들어가는라스. 깔끔하게...죽여달라스."

안드라스는 체념한 얼굴이었다. 옆에 있던 안드라스가 손톱을 들어올렸지만, 나는 그를 제지하고 도끼를 집어들었다.

"꼭 부활시켜주마. 안심하고 쉬어라."

"믿는 거라스...."

서걱. 나는 전력을 다해 안드라스를 편안히 보냈다. 던전에 돌아가 시스템을 열면, 분명 인연소환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후우.... 슬슬 지치는데."

육체가 지치는 게 아니다. 정신이 지치고 있다. 적 병력들을 죽이는 거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죽어가는 아군 병사들을 내 손으로 보내줘야 하는 것이 씁쓸했다.

"더욱 강해지자꾸나. 더욱 강해져서...아무도 죽지 않도록 해보자꾸나."

언젠가는 분노의 군단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백기를 내걸도록하는 그 날을 위해. 우리는 피로서 역사를 쌓아나갈 것이다.

찌릿. 나는 따가워진 피부에 색스를 꽉 붙잡았다. 동시에 옆에 있던 마물들이 하나 둘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제야 주인공이 나타나는군."

고오오오오---!!

저 멀리서 하늘을 향해 거대한 빛의 창이 솟아났다. 신성력의 폭발에 오크와 안드라스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폭사했다.

"엘프 이외의 모든 병력들에게 명령한다. 철저히 피해라. 인간 모험가들을 중점적으로 사냥하고, 우리의 싸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신성력에 치명적인 병사들을 뒤로 물리고, 나는 신성력에 문제가 없는 병사들을 데리고 앞으로 달렸다. 즐비한 우리 마물 병사들의 시체 한 가운데에, 창을 바닥에 꽂고 숨을 헐떡이는 사냥감이 보였다.

"찾았다! 이 년...?"

나는 레비즈를 부르며 앞으로 달려가려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레비즈의 움직임에 나는 잠시 발걸음이 멈췄다.

"으극, 흐그으...!"

레비즈는 요상한 신음을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신성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반동인가 싶었지만-

킁킁.

냄새가 난다. 다른 이들과는 사뭇 다른, 신성력을 가진 여인들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흐, 흐흐, 으흐흐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레비즈는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고 흠칫 놀라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히야, 월척이 걸렸군. 전혀 걸릴 거라고 예상조차 안 했는데, 설마 걸렸을 줄이야. 크흐흐흐!"

"이, 이 더러운 오크 놈...!"

레비즈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창날을 내게 겨눴다. 여전히 위협적인 손짓이었지만, 붉게 상기된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덜 위협적이었다.

"더러워도 좋다! 이길 수만 있으면!"

"이, 이딴 식으로 이겨서 뭐가 좋단 말인가!"

"당연히 좋지. 네년을 내 아래에 깔아 뭉갤 생각만으로도 지금 발기할 것만 같은데."

레비즈를 중심으로 거대한 포위망이 만들어졌다. 나는 색스를 들고 레비즈에게 다가가며 사방을 가리켰다.

"흐흐흐.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를 상대로는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무, 무슨...."

"결투를 신청한다, 레비즈!"

우우웅! 붉은 문신이 전신에서 타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붉어진 세상을 향해 색스를 움켜쥐고 달렸다.

"지금, 정정당당히 승부!"

"이 개같은 새끼가!!"

나는 레비즈를 상대로 일기토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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