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6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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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토벌대의 정찰대원, 스네이크는 열심히 상자를 옮겼다. 인식 저하 마법을 걸어둔 상자는 어둠을 틈타 자비야바에 무사히 잠입하는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스네이크의 마력이 다해 빠져나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
마나포션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나포션이 전부 다 떨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가면 마나가 회복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스네이크에게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빨리 돌아가야해.'
당장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토벌대에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야, 스네이크야. 아무래도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스네이크와 함께 자비야바에 잠입한 정찰대의 대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여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건 마치 죽음을 앞둔 이가 의지를 다지는 것 같았다.
"대장!"
"이호네한테 안부 좀 전해줘라. 내가...좀 많이 잘못했거든."
정찰대장은 상자를 들어올리려했다. 하지만 스네이크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대장, 미쳤어요?!"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 못하지. 방금 내가 다 얘기했잖냐.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너는 이 도시를 탈출해서 본진에 우리가 본 걸 그대로 알리라고."
정찰대장은 단검을 꺼내들며 으르렁거렸다.
"스피카 성에 포털을 열어뒀어. 마물들은 단순한 놈들이 아니야. 병력들을 움직여놓고 기만책을 벌일 정도로 대가리가 좋은 놈들이라고."
"그렇다고 대장이...!"
"난 이미 글렀어, 이 놈아."
정찰대장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스네이크에게 건넸다.
"가라. 살아서 마물들이 포털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걸 본대에 알려. 그리고...이호네한테 사랑한다고, 미안했다고 꼭 전해줘. 대장으로서의 명령이자 남자로서의 부탁이다."
"대장...."
정찰대장이 넘긴 아주 작은 유리병은 마나 포션이었다. 딱 한 명이 마실 수 있는 양이었고, 그걸 스네이크에게 건넨 의미는 단 하나였다.
"계속 여기서 밍기적거릴 틈은 없다. 알지?"
"......네!"
스네이크가 유리병의 뚜껑을 연 순간, 정찰대장은 상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으로 존재가 드러나지 않던 상자가 부서지며 정찰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요오옷!"
"적이라스!!"
까마귀 탈을 뒤집어 쓴 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빼어들었다. 마물들이 무기를 뽑아든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스네이크는 급히 마나포션을 마시고 마력을 가다듬었다.
"〈투명화〉!"
스네이크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정찰대장은 스네이크가 출구를 향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단검을 들고 골목 안으로 도망쳤다.
"누가 죽을 줄 알고!"
자신을 미끼로 스네이크를 도망치게 했지만 죽을 생각은 없다. 정찰대장은 잠입하면서 확인했던 자비야바의 내성 구조를 떠올리며 서쪽으로 향했다.
"잡으라스!!"
한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최초로 정찰대장을 발견한 까마귀 괴인은 빠른 속도로 정찰대장을 추격했으나, 발재간이 특기인 정찰대장보다 조금 뒤쳐지기 시작했다.
'됐다! 그리 빠른 녀석들은 아니야!'
인간들 중에서도 준족을 자랑하기에 정찰대장에까지 오른 남자다. 정찰대장은 하나 둘 자신을 노리며 달려드는 순찰병들을 피해 계속 서쪽으로 달렸다.
'강물에 뛰어들면 아직 기회는 있다.'
스네이크는 울타리 사이의 개구멍으로 빠져나갔을 터. 정찰대장은 강물에 몸을 던져 급류를 타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놓치지 말라스!!"
광장에 도착하니 맞은 편에서 까마귀 괴물들이 정찰대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찰대장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검을 피한 뒤, 사방을 살피며 이를 악물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쓰러뜨리고 간다. 스네이크는 이미 훌쩍 떠나버린 지 오래. 다행히 적 중에는 정찰대장을 쫓을 만한 존재가-
카앙-!
불똥이 튄다. 정찰대장은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검기에 화들짝 놀랐다. 저항을 위해 들어올린 단검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뭣-?!"
인간의 검법이다. 검법 중에서도 망명있는 귀족가문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깔끔한 일검이었다.
"무릎꿇려."
자신을 일검에 제압한 까마귀 괴물은 아래에 기사와도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까마귀의 눈은 무심한 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살짝 벌어진 부리 사이로 비친 형형한 눈동자에 정찰대장은 소름이 돋았다.
"서, 설마---!"
정찰대장은 까마귀 괴인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스네이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알려야 한다.
"당신들은-"
"너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라스."
까마귀 기사는 손으로 부리를 당기며, 정찰대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 *
"이 자는 던전의 감옥으로 끌고가라. 나중에 주인님께 말씀드려 직접 심문하겠다라스."
"대장님, 그럴 때는 그냥 하겠라스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라스."
"...시끄럽다."
라스베가스 수비대의 대장, 에일라는 안드라스의 탈을 고쳐쓰며 이죽거렸다. 자신이 제압한 남자는 칼등에 목뒤를 얻어맞아 기절했고, 안드라스-로 위장한 인간 모험가들은 그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투명화 마법을 사용한 거라스. 어, 음, 설명이 길어질 것 같은데...."
"짧게 요약해서, 라스빼고."
"마도구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음.... 가문에 있을 때도 이런 건 들은 적이 없는데.... 알았다. 성벽에 횃불을 올려 경계를 강화해라.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잘 틀어막아."
병사들은 안드라스의 탈-투구를 고쳐쓰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에일라는 모험가들에 의해 끌려가는 정찰대장을 눈으로 흘기며 혀를 찼다.
"어쩌면 작전이 노출되었을 수도 있는 건가."
자신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작전이 드러났을 수도 있다. 평원에 진을 친 토벌대의 본대는 여전히 아무 움직임이 없지만, 작전이란게 항상 뜻대로 되면 마왕군은 진작에 인류를 이겼을 것이다.
"...우리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야겠군."
에일라는 성호를 그렸다. 습관처럼 여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지만, 그 기도로 안녕을 바라는 자는 마족인 주인이었다.
"부디 주인님께서 무사히 작전을 마치시길."
그리고 인간의 영지를 점령하고 마왕군의 '첫 영지'로 삼는 쾌거를 달성하기를. 에일라는 여신과 마왕을 향해 기도했다.
* * *
"단장님, 실례합니다. 적진에 이상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무슨 반응?"
"바위 성벽 위로 불이 켜졌습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합니다."
"...내가 직접 보겠다."
레비즈는 눈을 비비며 막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제의 말대로 나무 울타리가 허물어져 훤히 보이는 바위 성벽 위에는 횃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지금 시각이 어느 때인데...."
"여신의 종 가브리엘이 세상의 안식을 거두는 때-"
"몇 시냐고. 마도구 없나?"
"4시 30분 입니다."
4:30. 레비즈는 예정된 기상 시각보다 30분 더 일찍 일어났다는 것에 짜증이 일었다. 맘 같아서는 당장 들어가서 30분이라도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적진의 용태가 이상하니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일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의견을 물은 거네만."
"...모르겠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쯧. 레비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성녀의 호위를 위해 데려온 성기사단의 사제 대부분이 추기경이 끼워둔 사람으로, 레비즈의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성기사단은 전장에 묶여있었다.
'도대체 뭘까.'
단순히 봉화를 울린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다. 곧 태양이 떠오를 시각인데, 고작 1~2시간 어둠을 밝힐 이유는 없었다.
"음?"
레비즈는 저 멀리 달빛에 비친 수풀이 사락사락 밟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고, 그건 꼭 모습을 숨긴 사람이 달려오는 것만 같은-
"여신의 가호를--!!"
레비즈는 한 걸음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창 대신 사제가 들고있던 횃불을 집어들고 달려간 레비즈는 전방을 향해 횃불을 투척했다.
화륵--!!
은빛으로 물든 불꽃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 히익?!"
"증명하라! 마족이면 죽고 인간이면 산다! 신성력의 불꽃이니!"
"저, 저는 인간입니다!"
은색 불꽃을 넘어 왠 청년 한 명이 나타났다.
"스, 스피카 토벌대 정찰대원 스네이크! 클러브가서 미아네 정찰대장의 명령에 따라 적진을 정찰하고 왔습니다! 급히 보고 드립니다!"
토벌대의 본진에 비보가 울렸다.
* * *
꺄아아악---!!
도시가 비명에 휩싸였다. 하늘에는 서큐버스와 하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람들을 감시중이고, 오크들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저항하는 자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꿀럭, 꿀럭.
클리안과 니프란이 이끄는 슬라임 부대는 곳곳에 땅을 파 사람들을 땅속에 묻었다. 일일이 구속을 할 방법이 없기에, 우리는 남작령의 주민들을 목 아래를 전부 땅에 묻어 가벼운 공구리를 치는 쪽으로 사람들을 구속했다.
"포로로 잡은 대부분이 어린 아이, 젊은 여자, 노인들인가. 상대적 약자들만 남았군."
"젊은 남자들은 다 토벌대로 끌려가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것도 있고, 이미 탈출한 것도 있고."
나는 스피카 성 전체의 지도 곳곳에 X자를 그렸다. 구울들이 제각기 동서남북의 네 개 문을 틀어막았으나, 성벽 아래에 뚫린 개구멍까지 막지는 못했다.
"쯧쯧. 위험 재난 상황에서 노약자를 먼저 구하는 것이 기본인 것을."
"자기 목숨이 위험한데 그런 걸 신경쓸 겨를 이 없을 것 같은데요."
"륜.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인류애에 대해 운운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아무튼 실망스러워."
완력으로 저항하는 자는 오크들이 힘으로 제압하거나 서큐버스들이 재워버렸다. 힘없는 자들은 그냥 가죽으로 손목을 묶어 창고나 교회와 같이 수용 인원이 많은 곳에 몰아두었다.
그들은 행여나 몰살당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눈앞에서 저항하는 이들이 (복상사로) 살해당하는 걸 보았기에 저항이 잦아든 것 도 있다.
"지금 인질로 잡은 사람의 수는 얼추 파악이 끝났나?"
"100명 단위로 묶어서 파악중이래요. 지금...대략 1500명 정도를 잡았어요. 땅에 박힌 사람의 수는 300명 정도 되고요."
"...생각보다 많이 빠져나갔군. 다음에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포위해야겠어."
새벽을 노린 기습이었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빠르게 대처했다. 그게 개구멍을 이용한 도망이어서, 우리가 병력을 보내기도 전에 주민들은 개구멍으로 성을 빠져나갔다.
'외성 밖에 사는 난민들도 마찬가지.'
라스베가스의 기존 주민들은 일찌감치 소란을 느끼자마자 짐을 싸고 도주했다. 그들까지 전부 잡았으면 족히 3천 가까이는 잡을 수 있었을텐데. 나는 진심으로 아쉬웠다.
끼이익.
나는 철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내성의 통로 곳곳에는 땅에 박힌 병사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영주성을 지키던 병사들은 이미 서큐버스들에 의해 제압당했다.
"후후, 후."
나는 남작성의 정중앙. 마치 왕처럼 의자에 앉은 버지나니야 비르고 남작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남작의 주변에는 메어리를 비롯하여 아발론의 서큐버스, 요정들이 시립해있었다.
"고생했다. 라임."
"남작성...제압 완료."
라임은 남작의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라임을 가볍게 토닥여준 뒤, 마치 나를 위해 꾸며진 옥좌같은 의자에 앉았다.
"주인님, 여기요. 히힛."
륜은 언제 준비했는지 월계관을 내 머리에 씌웠다. 마치 작위를 수여하는 듯한 느낌에 나는 기분이 얼떨떨해졌지만, 나는 남작령을 제압했다는 느낌에 쾌감이 들었다.
"흐흐흐. 뭐...좋다. 잠깐이지만 귀족이 된 기분을 즐겨보도록 할까. 여봐라, 걔 아무도 없느냐."
"푸훗, 뭐예요, 그 말투는."
"...내가 아는 높으신 분의 말이 이런 거라서. 이상하냐?"
"네. 이상한데 더 좋은 것 같아요. 주인님만의, 우리 군단만의 특별한 게 생긴 것 같은 느낌? 히힛."
륜이 좋다면 앞으로 우리 군단의 공식석상의 대화는 사극 느낌으로 근엄하게 나가는 건 어떨까. 나중에 샤이탄과 상의를 해봐야겠다.
"모두들, 지금까지 이곳에서 남자들 상대하느라 고생했노라. 그대들의 노고는 내 잊지 않겠다, 요정들이여. 서큐버스들이여."
낮으로는 스타킹을 판매하고 밤으로는 웃음을 판 여인들의 노고를 어찌 내가 모를 수 있으랴. 서비스직은 원래 괴로운 법이다.
"작전이 완전히 끝날 때가지는 애써다오. 작전이 끝나면...그대들에게는 사흘 휴가를 내리마."
"네?"
"휴가요?"
요정들과 서큐버스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왜? 휴가가 이상해?"
"아뇨, 그...휴가라는 게 뭐죠? 혹시 군단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사흘동안 마음껏 쉬라는 얘기인데? 아, 혹시 그냥 쉬는 게 찝찝해서 그러냐? 아니면 기간이 짧아서? 그럼 일주일동안 쉬어라. 플라우로스 던전쪽으로는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조치해둘테니, 그동안 짧은 거리는 어디 다녀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금화도 좀 챙겨서 보내주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요정들은 이해를 하는 듯 하면서도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그들의 긴장된 모습에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언했다.
"아아, 이것은 유급휴가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 우리 군단이 이겼을 때의 이야기지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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