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6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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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주인님?"
"당연하지. 상처 하나 없잖냐. 하하."
"이미 상처를 재생하셨지 않습니까. 찔린 상처가 전부 몇 군데였습니까?"
"...일곱."
역시 속일 수 없었다. 나름 최대한 몸을 보호한다고 보호하기는 했는데, 역시 5성의 창술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왼쪽 어깨, 오른쪽 허벅지, 그리고 그외 기타 등등 도합 일곱 곳이 찔렸다. 다행히 손가락 길이 정도로 찔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나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굴욕이라면 굴욕이었다.
"레비즈 안, 강한 여자다. 꽁으로 기사단장의 자리를 먹은 건 아닌 듯 하군."
"레벨도 루나보다 높습니다. 주요 임무는 성녀의 호위이나, 한 달에 절반 이상은 마왕군과의 최전선에서 싸워 지금까지 살아남은 강자입니다."
샤이탄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성기사단 단장의 정보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다시 싸워보고 나니 체감이 되었다.
"이 정도로 강한데 16~17위 권 수준이라고?"
"정확히는 개인으로서 그 수준의 전력이라는 겁니다. 그녀가 이끄는 성기사단전원이 합류하게 될 경우, 족히 7위권 안의 던전과도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겁니다."
"성기사단이 전부 합류하면 우리는 좆된다는 얘기군."
38위 할파스 던전 조차도 몸비틀어 공략했다. 그런데 7위권 안의 던전과 맞먹는 전력이 우리를 죽이러 온다? 그러면 옛 바알의 던전이고 나발이고 바로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병사들의 전력에 답답해했지.'
본인은 느꼈을 지 모르지만 바로 앞에서 상대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레비즈는 동료와 부하들을 이끌고 함께 싸우는 타입이지, 홀로 단독으로 무쌍을 벌이는 독불장군은 아니었다.
"통제되지 않는 병력들을 이끌었으니 망정이지, 잘 단련된 병사들이었으면 쉽게 물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그 놈들이 합류하기 전에 쓰러뜨려서 침대에 눕혀야겠군. 샤이탄, 보고가 들어온 바가 있느냐?"
작전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샤이탄이 모르면 나도 전체 전황을 파악할 수 없다. 다행히 샤이탄에게는 불과 20분 전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정보가 있었다.
"알로켄 전선, 여전히 대치중입니다. 던전 밖으로 보낸 정찰병에 따르면 적은 황무지에 진을 구축학 입구에서 뛰쳐나오는 즉시 저희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찰병은 살았나?"
"그레모리가 분신으로 확인했습니다."
"......또 바보같이 통각 공유를 해둔 건 아니겠지? 아무튼 다행이다. 적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으면 다른 쪽 놈들을 공략하면 되지."
다행히 사지타리우스 백작가에서 던전 안쪽까지 공격해오는 일은 없었다. 아침해가 뜬 이후로 공세가 짙어질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던전을 공격하지는 않으리라.
"키메리에스, 암두시아스. 라스베가스의 상황은?"
"보고 드립니다."
라스베가스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이들을 상대로 기동전을 벌인 죽음의 기사 부대의 두 대표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지를 구축한 자들을 상대로 기습 돌격을 감행하여 남자 포로들을 납치했습니다. 중간에 자진한 자들을 제외하면 현재 49명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의 상태는?"
"...열심히 아래에 깔려 힘내고 있습니다.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달랠 뭔가가 필요한 지라."
"이해한다. 모처럼 들어온 싱싱한 남자 포로들이니 아껴 먹도록 하거라."
성별을 바꿔보면 여 모험가들을 오크와 워울프 둘이서 먹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우리 군단에 적의를 보인 자들로서 포로로 잡혔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복상사로 보내주니 얼마나 인도적인 죽음인가.'
적어도 마지막 가는 길은 그냥 죽는 게 아니라 복상사로 가버리는 거니 그들도 억울하지는 않으리라. 라스의 즐거움을 깨닫고 우리 군단에 들어오면 좋은 것이요, 죽더라도 구울이 되어 군단의 힘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48명으로 줄어들었겠어. 아군의 피해는?"
"피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습니다만...."
"실수로 그에이 경을 납치했습니다."
"실수?"
나는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 부대의 부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이를 납치하는 게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어두운 밤이라 잘 안 보였는데, 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병사들을 이끌고 저희를 요격하러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암두시아스가 잡고 나서 보니...."
"투구 때문에 못 알아봤어요! 그, 그에이라는 사람이 거기서 그러고 있을 줄 진짜로 몰랐다고요!"
"하긴 그렇지. 너희는 그에이를 대충 알아도 부하들까지는 자세히 모르니."
두 명 왈, 적의 지휘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열심히 부하들에게 지휘를 내리던 남자를 납치하고 보니 그에이라고 하더라.
'그림이 그려진다, 그림이.'
의심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모험가들을 지휘하는 그에이. 첫번째 납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두번째 납치를 결행했으나, 갑자기 두터워진 수비벽에 당황한 키메리에스. 하지만 죽음의 기사은 화살과 마법을 피해 다시 한 번 더 올가미를 던지고, 그에이를 모르던 부하가 전공을 세우기 위해 하필이면 납치한 게 그에이라고 하더라.
"잘못하면 하르퓨이어 과부 만들 뻔 했어."
다행히 먹히기 직전에 에일라가 그에이의 얼굴을 봐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에이는 듀라한과 유니콘에게 박혔을 지도 모른다.
"흐흐, 그런데 사실은 잘생겨서 납치한 게 아니고? 샤이탄한테 들어보니까 납치하는 애들 취향 골라서 잡아왔더구만. 어두워서 잘 안보였다는 것 치고는 꽤나 잘생긴 애들만 잡아오지 않았냐?"
"...아니, 뭐, 저희 애들이 이왕 즐기는 거 잘생기고 몸 탄탄한 애들로 잡아오면 어떠냐고 해서...."
"주인님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셨어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정답이다, 죽음의 기사."
라스베가스에 자리잡은 토벌대 중 잘생긴 남자들만 납치되었다. 반대로 얘기하면 살아남은 이들은 못생겨서 살아남았다. 그들을 배려하여 말하자면 듀라한들의 눈에 차지 않아서 살아남았다.
"잘생긴 남자의 씨를 받으면 분명 태어나는 자식도 잘생기고 예쁘겠지. 마치 내가 메어리와 아더를 낳은 것처럼 말이다. 흐하하."
"......."
듀라한은 전직 인간들이었다. 나는 토벌대를 향해 멀리서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로다. 애들에게 너무 정붙이지 말라고 전해. 괜히 얼굴에 넘어가서 편의 봐주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거라. 특히 미인계에 홀라당 넘어가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그런 애들이 있으면 이걸로 혼내주기로 약속했어요. 제가 직접."
키메리에스는 하복부를 향해 가볍게 손을 터치했다. 그러자 초고속 카메라로 버섯을 촬영한 것처럼, 키메리에스의 갑옷 앞 바지가 텐트라도 쳐진 것마냥 불쑥 튀어나왔다.
"그, 그건 도대체 뭐냐?"
"알고 계셨던 것 아니었나요? 저희 결합하면서 생겨난 건데."
"아, 아니. 니들 쉬메일 된 건 알고 있었는데...혹시 성마법이냐?"
"네. 처음에는 신기해서 다들 달고다녔는데, 자꾸 덜렁덜렁거리는 거 불편해서 성마법 배웠어요. 샤이탄 님 도움을 좀 받았죠."
"아아, 그렇군. 이것이 수납형이라고 하는 것인가."
성마법 대단해-
나야 항상 덜렁덜렁 거리기 보다는 빳빳하게 세운 채 다니고 있으니 별 문제 없지만, 전생과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배워서 넣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정리해보자. 우리가 던전에서 쏴죽인 놈들과 납치한 놈들의 수를 합하면 얼마나 되지?"
"조금 많이 잡아도 150...아니, 100명 정도 될 겁니다."
"이만큼 기동전을 벌이고 고작 100명밖에 잡지 못했나."
초전으로 적 전력의 1할을 깎아냈지만 최고 스파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이를 실수로 납치해버린 게 유감이었다.
'사실 그에이의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기는 해.'
그에이와 모종의 통신 방법이 이어져있는 것도 아니니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도 없다. 그저 그에이가 내부 트롤링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런 것 치고는 그에이도 상당히 유능한 존재였다.
★★★★★. 레벨은 어느덧 60 후반대.
92레벨인 누군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레벨이었지만, 그래도 그에이는 나름 이중생활을 하며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바란 건 첩자로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것이었지만, 그에이는 거기까지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내가 그의 등급을 보기 전까지, 그는 한 명의 서열 낮은 귀족가문의 일원에 불과했으므로.
"뭐...비밀 통신 마도구라도 하나 만들어보도록 하지. 언제까지 샤이탄을 중계기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모든 전장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지 않으니 너무나도 불편하다. RTS의 기본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정보에 대처하는 것이건만, 쟁탈전이든 인류와의 전쟁이든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레모리랑 메어리는 공격 마법이 대부분이고, 샤이탄은 성마법 밖에 모르니 원.'
뭔가 모종의 연락 수단을 찾아봐야겠다.
"그에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라스베가스 하르퓨이어의 집에 있습니다. 어떻게 다시 탈출한 것처럼 연기를 시킬까요?"
"아니, 됐다. 또 던전까지 불러서 서브던전에 있는 안드라스 머리 들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지."
어차피 이제 적도 슬슬 눈치챘을 것이다. 던전보다 라스베가스를 공략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점을.
입구를 막으면 들어올 방법이 뚫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던전과는 달리, 사방 팔방으로 펼쳐진 울타리만 넘어오면 라스베가스는 바로 마을의 중심지로 들어올 수 있다.
"적들의 공세에 대비하라. 던전으로 오는지 파악은...니프엘라에게 연락하여 크림엘프들이 정찰을 하도록 하면 될 터. 나도 라스베가스로 가겠다."
전격적인 기동전치고 고작 1할 정도의 적을 죽이거나 포로로 만들었으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인질은 고작 수 십명이 아니라 수 천 명에 이르게 될 테니까.
"샤이탄. 아직까지 그들의 연락은 없나?"
"예. 아직은 없습니다."
"......릴리를 깨워다오. 당장 스피카 성으로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그럴 필요, 없음...."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막 포털 너머로 얼굴을 들이민 자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도끼를 들어올렸다.
"라임?"
"남작 이미 먹었음."
내 눈앞에는 자는 동안 내게 처녀를 빼앗겼던 버지나니야 비르고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피부를 잡아당겼다. 라임이었다.
"성공했구나! 메어리는 어떻게 되었지?"
"메어리 성검 주웠어."
"뭐라고?"
"메어리가...성검 주웠어. 아니, 성검이 메어리한테 주워졌어."
"???????"
전후사정을 다 자르고 성검을 주웠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보다 여기서 갑자기 왜 성검이 나온단 말인가?
"성검이라니, 도대체 무슨 성검?"
"그게, 메어리가-"
"라임아. 너 슬라임어로 한 번 얘기해봐라."
"......꾸르륵."
라임은 심통한 표정으로 슬라임어로 꾸르륵거리기 시작했다. 라임에게는 미안하지만 라임의 꾸르륵 소리를 '통역'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빨랐다.
"비르고 가문에서 지하실에 보관중이던 성검이 메어리를 주인으로 선택했다는데요? 메어리는 조건 때문에 성검의 주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고요."
"조건?"
"네. 사용자는 죽을 때까지 처녀로 살아야한다네요. 처녀가 아닌 자가 성검을 건드리면 정기가 빨려서 죽는다는데요?"
"......성검이라고? 영락없는 마검인데?"
처녀 이외에는 닿은 자를 죽여버리는 성검이라니. 그게 무슨 성검이란 말인가. 메어리가 성검의 주인이 되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검이라고 하니 뭔가 조금 아쉬웠다.
"흐흐, 역시 내 딸이다.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다니."
"그럴 때, 아님. 지금 메어리랑 성검이 싸우고 있어...."
"싸워? 왜?"
"메어..꾸르륵."
"어, 그러니까."
륜은 통역을 하다말고 땀을 삐질 흘렸다.
"......자기가 평생 처녀 지켜줄테니까, 죽을 때까지 자기랑 함께 살자고-"
"......샤이탄! 작전 변경이다! 나는 지금부터 별동대를 이끌겠다!"
"어휴, 알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나는 도끼를 집어들고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포털을 가리켰다. 목적지는 라스베가스에서 다시 이어지는 곳, 스피카 성의 지하 아발론.
"성검의 마수로부터 내 딸을 구한다! 처녀 아닌 사람들 모두 불러모...."
모두의 시선이 민망해졌다. 나는 민망해져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래. 우리 군단 처녀들 내가 다 없애버렸지. 젠장, 어디 처녀 없나...."
순간, 내 머리에 비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흐흐흐, 그래. 메어리가 굳이 성검의 주인이 될 필요는 없지."
성검의 주인이 나올 필요는 없다.
우리 군단에서 성검의 주인이 나올 게 아니면, 우리 군단 이외에 성검의 주인은 필요없다.
우리 군단에는 메어리를 제외하고 처녀가 없다.
"하지만 마검의 주인이 된다면 어떨까...?"
어차피 처녀 아닌 여자들의 정기를 빼먹는 마검이나 다름없는데, 진짜 마기를 풀풀 날리는 마검으로 만들어도 그만 아닐까.
"주인님, 위험합니다. 어떻게 성검을 마검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성검이 뿌려대는 신성력에 피폭될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지. 흐흐. 방법이라.... 내 성검과 한 번 자웅을 겨뤄봐야지 않겠느냐?"
"주인님...."
"농담이다. 아무리 나라도 구멍이 없으면 안 박아. 그러면...."
나는 포털을 향해 달렸다.
"마액 같은 걸 끼얹나?"
안 되면 말고.
나는 에일라에게 라스베가스를 맡긴 채, 처녀가 아닌 이들을 모아 급히 아발론으로 달렸다.
========== 작품 후기 ==========
생각해보니 성검 비르고가 분노의 군단 하드 카운터네요.
비처녀 킬러니까 처녀가 잡았으면 히로인 전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