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356화 (356/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56편

<--  -->

진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후퇴가 시작되었다.

토벌대가 돌격하자마자 뒤돌아서 혼비백산 도망치는 모습은 겁을 먹은 듯 했으나, 레비즈는 아랫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노렸다는 듯 도망쳤다. 유인을 하듯. 자신을 지금까지 이 자리까지 끌고와 준 '직감'이 말하고 있다.

저들은 자신이 돌격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시간벌이?'

가능성이 있다. 오크들이 인간들을 던전으로 안전하게 옮길 때까지 시위를 벌이려고 한 눈속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실제로 검은 까마귀 부대, 안드라스들은 그렇게까지 강한 종족이 아닌 걸로 전해들었다.

'아냐. 이건 유인이다.'

적들은 자신들을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점령한 도시 자비야바든, 아니면 던전이든 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야해.'

직감과 본능은 후퇴를 종용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100% 승리하는 방법은 당장 기수를 돌리고 스피카 성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우어어어어어-----!!"

"달려어어어어-----!!"

"내 동생, 기다려라!! 형이 간다!!"

하지만 성난 군중을 되돌릴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들은 안드라스를 밟고 지나가겠다는 듯 성난 발걸음으로 다리를 넘어 달렸다.

'이건 글렀다.'

침착함을 되찾기에는 군중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레비즈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선두에서 방향을 정했다.

"안드라스들을 우회한다! 여기서 싸우면 시간이 걸릴 터!"

"""와아아아!!!"""

레비즈의 말에 토벌대는 환호하며 따르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의 인원이 남작령에서 차출된 병사들이었다.

"사제 체이서! 엑트라! 두 명은 모험가 150씩 이끌고 안드라스들을 추격하라!"

""여신의 이름으로!!""

토벌대는 두 패로 갈렸다. 900명의 본대와 300명의 추격대는 동서로 흩어지며 각자 목적지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대는 오크들의 추격을, 그리고 별동대는 안드라스 부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빤스런이라스---!!"""

안드라스들은 허겁지겁 땅을 달렸다. 까마귀 머리를 하고 있음에도 날지 못하는 불쌍한 조인들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달려 도망쳐야했다.

"저것들 잡아--!! 마석 나온다!"

"돈, 돈이 도망친다! 저것들 잡아서 마석이랑 재료 파는 것다!!"

모험가들은 도망치는 안드라스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달렸다. 대열은 금방 흐트러졌고, 도망치는 안드라스의 후미를 향해 마법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본대는 계속 진격! 오크들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인질들을 구한다!!"

레비즈는 뒤따른 병사들을 향해 소리치며 말의 허리를 발로 찼다. 교단에서 직접 기른 말은 밤의 초원을 가로질러 자비야바를 스치듯 지나갔다.

"요새...!"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나무 울타리. 그리고 그 뒤에 단단하게 늘어진 성벽. 그리고 레비즈는 그 성벽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크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저, 저...!"

오크는 보란듯이 금발의 여기사를 능욕하고 있었다. 그에이로부터 들었던 말-마족들이 인간을 범한다던 것은 사실이었고, 레비즈는 그만 눈으로 직접 보고 말았다.

"미친...!"

오크가 금발의 여기사가 움직이지 못하게 두 팔을 당겨 잡고 뒤에서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고 있는 광경을. 레비즈는 구토감이 절로 치밀어 올랐지만, 그게 더욱 토벌대를 자극했다.

"""으아아아아악!!!"""

오크에게 범해지는 여기사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린 걸까. 토벌대는 비명을 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크들과 조우했을 때 과호흡으로 싸우지도 못할 것 같았으나, 그들에게 체력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아내가, 나의 가족이 저렇게 오크들에게 당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앞으로 달렸다. 넘어져서 코피를 흘려도 바로 몸을 일으켜 레비즈의 뒤를 따랐다.

"...사제 캐터펄, 트라스엑! 그리고 그에이 경! 셋은 여기서 각각 150명을 이끌고 진을 구축하라! 오크들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는 진을 만드는 거다!!"

""여신의 이름으로!!""

900명 본대에서 또다시 300명이 떨어져나갔다. 처음 토벌대가 출발했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600명이었으나, 그들의 사기는 마왕군과의 전선에서 싸우는 역전의 용사들보다도 대단했다.

"짜인 판에서 놀아나는 이 굴욕...잊지 않겠다...!"

던전의 주인은 비록 던전 안에 있겠지만, 레비즈는 성벽 위를 한 번 눈으로 흘기고 다시 앞으로 기수를 돌렸다.

기호지세.

가족을 구하겠다는 군중의 열의는 아무리 성기사단의 단장이라도 꺾을 수 없었고, 레비즈는 그 불꽃에 순풍을 불어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가자, 던전으로----!!"

레비즈가 이끄는 본대는 던전으로 미친듯이 달렸다.

* * *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기는?"

"이, 일단 싸셨으니까 빼주십시오...!"

내가 팔을 붙잡고 있는 바람에 에일라는 스스로 빠져나가질 못했다. 나는 그녀의 팔을 놓고 자지를 뽑은 다음,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정액이 뚝뚝 떨어지는 아래를 닦아냈다.

"설마 병력을 나눠버릴 줄이야. 일부는 진을 구축하고 일부는 추격이라니. 에일라, 비긴 걸로 하자꾸나."

"따지고보면 던전으로 간 병력이 더 많은 것 아닙니까? 그러면 제 승리같은데요."

"서로 소원하나씩 들어주기로 하자꾸나. 어떠냐?"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에일라는 내게서 건네받은 손수건으로 제 고간을 슥슥 닦으며 팬티와 바지를 끌어올렸다.

"적군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나가서 짓밟을까요?"

방금 전까지 좋아 죽으며 신음을 흘리던 여인은 어디로 사라지고, 금방 카리스마 넘치는 공주기사이자 라스베가스의 지휘관으로 변모하는 모습에 나는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아직 정액이 뱃속에 남아있는데 그런 표정을 짓다니. 누가보면 계속 전투를 기다려온 장군 같구나."

"주인님께서 저를 이렇게 만드신 겁니다. 익숙해진 거죠. 그보다 주인님, 선택을."

"...그래. 나도 진지해져야겠지."

짝! 나는 손바닥으로 양볼을 때려 정신을 가다듬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찌르니, 자연히 정신이 맑아졌다.

"에일라, 적들의 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부분, 아니 전부가 모험가로 추정됩니다."

"그럼 아까 달려간 본대는?"

"...모험가 같지는 않았습니다. 장병들의 복색이나 장비의 상태를 생각하면 아마도 영지군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와 에일라는 같은 판단을 내렸다. 중구난방이었지만 워낙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던 덕분에, 우리는 던전으로 향하는 토벌대가 어떤 자들로 주로 이루어져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인질들의 가족이거나, 친척이거나.'

이미 우리는 1,2차 토벌대를 상대하면서 그런 이들을 숱하게 봐왔다. 나는 그들을 보았기에 이번 작전에서 과감하게 인간 포로들을 라스베가스에서 라스촌으로 이동시켰다.

"희망이란 정말 무서운 법이야.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게 만들거든."

"주인님을 보면 가끔 정말 무섭습니다. 정말...인간에 대해서 너무 잘 아셔서."

"...인간의 여체도 잘 알고 말이야. 에일라, 그럼 네 의견을 물어보마. 진지를 구축하는 걸 그대로 내버려둬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둬야할까?"

라스베가스 바로 앞에 멈춘 300명의 토벌대는 익숙한 손길로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인근의 숲에서 마법으로 나무를 잘라 필요한 재료를 조달하는 게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바로 달려와 지친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냐?"

"......그대로 두는 걸 추천합니다."

의외였다. 나는 에일라가 당장이라도 저들을 박살내자는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에일라는 저들을 방치하기를 주장했다.

"왜지?"

"그래야 적들이 자신들이 구축한 '본진'에 모여들테니까요."

"아하, 나중에 싹다 라스베가스 앞에 모아서 처리를 하겠다?"

"예. 안드라스 부대가 아직 귀환하지 못한 게 첫 번째 이유며, 지금 있는 병력으로 야습을 해도 궤멸까지는 시키지 못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며, 나중에 진지를 상대로 저희의 장기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세 번째 이유입니다."

"장기?"

에일라는 내게 귓속말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속삭였다.

"...를 하는 겁니다."

"세상에. 아니,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저 정도 공간이면...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다."

"그리 대규모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문제라면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겠죠. 라임이 부재중이기는 하지만, 다른 새로운 전력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샤이탄에게 일러두겠다. 그 외에 또 필요한 것은 없나?"

"......주인님께 드릴 부탁 하나를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일라는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붉은 입술을 살포시 내 귀두에 맞추며, 에일라는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승리를 위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제 윗 입에도."

"...그럼 나도 하나 부탁을 하지."

나는 상체를 숙여 에일라의 몸을 번쩍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엄지로 그녀의 입술을 슬쩍 훔쳐, 허리를 끌어안았다.

"승리의 기운은 이걸로 하마."

"......더 좋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기약하며, 성벽 위에서 진한 키스를 나눴다.

* * *

라스베가스를 에일라에게 맡긴 뒤, 나는 포털을 통해 던전으로 돌아와 초대 손님을 환영할 준비를 마쳤다.

"샤이탄, 에일라의 지원 요청이다."

[예. 그럼 슬라미아 부대는 전부 다 라스베가스로 보내는 겁니까?]

"그래. 던전 내의 기믹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슬라임이 필요하지만, 던전에는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

쿵!

나는 날카롭게 벼려진 거대한 토마호크를 집어들었다. 라스베가스에서 노획한 무기 중, 언젠가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겠다고 다짐하며 아끼고 아끼던 양손도끼였다.

"이거까지 쓰고 나면 어디 다른 곳에서 무기 좀 구해와야겠어."

[예전에 제법 많이 구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거 다 깨먹었다. 메이스고, 도끼고, 해머고. 내가 험하게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어디 내구도가 제대로 버텨주기는 해야지."

이제는 좀 부서지지 않는 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토마호크를 붕붕 휘두르며 라스촌의 입구에 섰다.

"샤이탄, 적은 지금 어디즈음에 있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진격 속도를 생각하면...앞으로 15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빠르군. 아주 독해."

상대의 진격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정찰하는 하피들이 시시각각 본진으로 귀환해야 했을 정도로 인간들의 진격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싹다 죽여서 어디 시체 쌓아둔 다음 두고두고 구울들 강화했으면 좋겠어. 1200명이라니, 씁. 마석 개수가 얼마냐."

[중간중간에 여자 모험가들도 있을텐데요.]

"마물과의 행위를 받아들이면 목장행이고, 아니면 구울행인 거지. 다른 전선에는 이상없나?"

내가 손님을 기다리는 사이, 다른 곳의 상태는 과연 어떨까. 다행히 모든 정보는 던전 중심에 자리잡은 샤이탄에게로 모여 내게 바로 보고되었다.

[라스베가스 전선에는 슬라미아 부대가 파견되어 공작을 시작했습니다. 안드라스 부대에 추격대가 붙었지만, 다행히 안드라스보다 속도가 느려 쉽게 따돌릴 것 같습니다. 알로켄 전선 대치 상태 유지. 그외 다른 전선 이상 무.]

"큰 문제는 없단 얘기군. 좋다. 그럼 이제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 모두, 전투 준비---!!"

내 지시에 검은 가죽 갑옷으로 중무장한 오크들이 무기를 들어올렸다. 한손에 든 무기는 전부 각양각색이었으나, 다른 손에 들어올린 거대한 나무방패는 모두 똑같았다.

목재 파비스(Pavise).

오크의 반신마저 가리는 거대한 방패는 라스촌 인근 숲을 전부 깎아내어 만든 것으로, 사실상 사람 키만한 나무 울타리나 다름 없었다.

"모두 방패 들어."

인간들은 들 수 없는 무게의 방패였으나, 오크들은 번쩍 들어올리며 몸을 보호했다. 저 멀리서 수풀을 헤치며 달려오는 거대한 인파에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내 던전에 침입자가 생긴 것도 오랜만이네.'

어그로는 라스베가스가 받고, 지하 1층이 열리며 그곳으로 포털이 생겼기에 단 한 번도 라스촌이 공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과거 릴리가 있던 화전민 사냥꾼 마을의 침입을 받은 이후, 대규모 인간 부대가 우리 던전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히히힝---!!

저 멀리서, 창을 든 여인이 말을 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눈에 핏발이 선 인간들이 뒤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흐하하! 늦었다! 이미 인간들은 던전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으아아악!!!"""

인간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브레이크는 없었다. 애초에 적 기사단장 부터 나를 향해 창을 꼬나쥐고 달려오고 있었다.

적 병력은 600.

라스촌 바깥에 방패를 들고 선 오크들은 전부 80.

따라서 당장 라스촌에서 싸우는 병력의 비는...6:1.

적은 우리의 여섯 배에 이르렀다.

"새롭게 재편된 라스군의 힘이다. 어디 한 번 뜨겁게 환영을 시작해볼까. 쿠키---!!"

내 외침과 함께, 던전의 입구 양옆으로 난 수많은 구멍에서 무언가가 쏘아졌다.

파바바박---!!

무작정 달려오던 인간들은 심장에 바람구멍이 생겨났다. 정확히 20명의 인간이 픽 쓰러졌고, 갑작스런 죽음에 토벌대의 진격이 멈췄다.

"흐흐, 어서오너라."

라스베가스에서 온 80의 오크 방패병, 그리고 그 뒤에 던전을 벙커삼아 숨어 화살을 쏘는 '쿠키엘프' 20명.

따라서, 현재 라스촌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총 100명.

'오크와 엘프 혼성부대는 처음이지?'

나는 괜히 정보를 주기 싫어, 뒷말을 간신히 삼켰다. 대신 우물쭈물하는 토벌대의 선두를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손으로 목을 그었다.

"어둠 속에서 쏘는 화살...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던가. 안그래도 피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을텐데. 흐흐."

파바바박.

지하 1층에서 올라온 쿠키엘프들은 자신들이 오크들에게 박혔던 구멍 속에서, 토벌대를 향해 신나는 화살 샤워를 퍼부었다.

========== 작품 후기 ==========

오크 - 탱커

쿠키엘프 - 원딜

섹포터 - 파후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