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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53화 (353/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5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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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야바의 대규모 병력 이동 소식은 금방 비르고 남작과 기사단장의 귀에 들어갔다. 자정이 훌쩍 넘긴 시각이었으나, 적 병력의 진군에 스피카 성 전체가 환하게 불이 밝았다.

"그 간악한 마물들이...진짜로 우리 성을 향해 진군을...."

비르고 남작은 소식을 들은 이래 정신이 나가버렸다. 남작령이 점령당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질 미래를 상상하니 구토가 쏠렸다.

"겁탈당한다...분명 오크에게 겁탈당할거야...!"

꿈과 현실은 달랐다. 분명 고통스럽고 괴로울 게 뻔했다. 귀족의 작위와 영지는 한순간에 불쏘시개 속으로 들어간 장작처럼 타버릴 것이다.

"진정하십시오, 남작님."

"메어리...!"

남작은 메어리를 향해 달려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간 한 침대에서 생활한 것도 있지만, 이제 영주성에 믿을만한 가신은 메어리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적은 분명 여자를 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마물들이다...!"

"...물론 그건 맞습니다만, 저희에게는 토벌대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분도 아닌 성기사단의 단장님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1200명의 토벌대가."

"그치만...! 그들마저 몰살당하면...!"

"남작님."

메어리는 남작의 입을 조용히 막았다. 행여나 누구라도 들었다가는 부정을 탈 소리였다.

"기사단장님께서는 어지간한 용사급의 실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그, 그렇다."

"1200명의 토벌대 중 용병들, 그들 중에는 저 멀리서 온 A급 용병들도 섞여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

"몇 번의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기사 그에이가 기사단장님을 보필할 것입니다. 남작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곁에서 지켜드리겠습니다."

메어리는 남작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묻고 등을 토닥였다. 남작은 붉어진 얼굴로 메어리의 품에서 몸을 떨었다.

"메어리...다른 모두가 나를 떠난 이 순간에도 그대만은 오직 내 곁을 지키고 있구나...."

남작은 절박한 얼굴로 메어리를 끌어안았다. 손톱이 메어리의 등허리를 파고 들 정도로 남작은 애절했다.

"도대체 내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나는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여자다. 그런데 어째서-"

"제 부친...상단의 주인께서 남작님을 마음에 들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남작님을 좋아하고요."

"......그 분의 정체가 무엇인가?"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왜냐면...."

찌걱.

남작은 자신의 하복부를 꾹꾹 누르기 시작하는 단단한 촉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메어리는 남작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요염했다.

"그 분께서 조만간 이곳에 방문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남작님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제가 직접 소개해드릴 거니까요. 제...."

메어리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남작은 메어리의 우수에 젖은 눈빛에 그 속내를 짐작했다.

아. 메어리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메어리 양이 남자였으면 정말 큰일났겠어."

"저도 남작님이 남자였으면 큰일 났을 겁니다."

두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속내는 달랐지만.

"그럼 남작님...성에서 부디 마음편히 기다려주십시오. 기사단장이 승전보를 가지고 올 때 까지."

"아닐세. ...메어리 양과의 백년가약을 위해서라도 내가 이러고 있을 수 없지. 메어리 양, 지금부터 이 일은 철저히 그대만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야."

"...예?"

너무나도 진지한 남작의 목소리에 메어리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금 비르고 남작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비르고 남작령에는 오랜 전설이 하나 있지. 우리 가문의 오래 전 조상께서 성검을 사용하신 용사였다고."

"그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있네, 그 성검. ...그리고 내가 그 위치를 알고 있지."

"......!"

남작의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메어리의 주먹에 힘이들어갔다. 메어리의 그 분-군단장이 가장 싫어하는 예측 못한 변수가 나타나버렸다.

'하필 여기서...!'

꾹, 꾹꾹.

칼날은 남작을 향해 놓여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있다. 지금 당장 죽이기에는 남작이 말한 떡밥이 망설여졌다.

"...성검이라뇨. 농담도 참. 제가 안심을 시켜드리려고 했는데, 남작님께서 그런 농을-"

"농담이 아니야. 진짜로 성검이 있어. ...내가 그것 때문에 내 선친을 죽였어. 성검을 막대한 금은보화에, 그것도 마족에게 팔아넘기려고 해서."

"......예?"

메어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성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메어리 양,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물어보겠네."

비르고 남작은 겸연쩍은 얼굴로 메어리에게 물었다.

"메어리 양은...혹시 처녀인가?"

"......."

오직 영원히 순결한 처녀만이 성검 비르고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문을 이어야 하는 입장일세. 성검을 사용하면 비르고 가문의 맥은 끊기게 되겠지. 메어리 양, 나는 그대를 신뢰하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세. 부디...성검의 주인이 되어주겠는가?"

"...그럼 그 대가는 뭐죠?"

"순결."

남작이 밝힌 성검의 비사에, 메어리는 그만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았다.

* * *

안드라스 부대가 빠져나감에 따라 정찰대도 몸이 바빠졌다. 이미 스피카 성을 향해 달려간 정찰대원을 제외하고, 남은 대원들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지금 다가가서 적진을 살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개소리. 그러다 뒤질 수 있어. 우리가 밤눈이 좋겠냐, 저것들이 밤눈이 좋겠냐?"

"그래도 가까이서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잖습니까!"

"너 네 여동생 때문에 그러지? 아서라. 상대는 마족이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달콤한 미래는 있을 수 없어. 현실을 직시해."

정찰대원 사이에 이견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중재하고 이끌어야 하는 아이가 정찰대장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자비야바의 안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고, 상식과 이성으로 판단해 무의미한 개죽음을 할 수 없다는 판단도 이해가 갔다.

"...신입, 이름이 뭐였지?"

"스네이크 입니다!"

"좋다, 스네이크. 너와 내가 자비야바의 울타리 근처까지 가보자.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하라."

아이가 정찰대장은 그 말을 하고 옷을 훌러덩 벗어버렸다. 그는 얼굴을 제외한 모든 곳에 스타킹을 쓰고 있었다. 달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숨으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신 나도 적에게 들켜서 죽는 건 사양이다. 너도 들키고 싶지 않으면 이 정도는 해라."

"...예!"

스네이크는 곧장 자신의 짐을 향해 달려가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부대원들은 착잡한 눈으로 정찰대장을 바라봤다.

"위험합니다."

"위험하지만 까마귀들이 빠져나갔지 않냐. 감시병이 절반이나 줄어든 셈이지. 나머지라고 해봐야 오크들 밖에 없지 않냐."

"대장 아까 아발론의 요정님이랑 어떻게 해볼 거라고 하지 않았소?"

"결혼까지 생각해서 손자손녀 볼 생각까지 했다. 젠장, 그래도 한 번 질펀하게 떡치고 왔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다. 너희, 반드시 거기 가봐라. 인생을 통틀어서 그만큼 잘하는 여자는 처음이었으니."

"준비 끝났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게 물든인 스네이크는 보란듯이 두 팔을 벌렸다. 하얀 피부는 잿더미를 비벼 숯검댕은 만들어 놓았다.

"저...쯧."

스네이크의 엄청난 의지에 다른 부대원들은 침묵했다. 스타킹의 고간부에 구멍을 뚫어, 그곳에 머리를 들이미는 행위는 어지간한 의지로는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좋다, 준비는 됐구나. 가...또 뭐야. 전원 정숙."

정찰대는 급히 몸을 숙였다. 안드라스 부대가 나가고 한참 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비야바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

아이가 정찰대장은 경악했다. 자신의 눈에 비친 광경이 현실인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현실이었다.

"도대체 이건...?!"

"조용! 침착해라.... 침착해."

정찰대원들은 멀리서 어둠을 틈타 자비야바를 나온 무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비벼 확인했다.

"오크들이...인간들의 목줄을 잡고 있습니다?"

스네이크는 멍한 목소리로 자신이 본 광경을 그대로 읊었다. 그에 다른 정찰대원들도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크 한 마리에 서넛씩...?"

"오크들 저런 복장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검은 가죽을 무슨 저런 식으로 입고 있지?"

"사람들 얼굴봐. 죽어라 고생한 얼굴이야. 다들...걷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어."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정찰대장이 단 한 명의 남자를 끌고가고 있는 녹색 피부의 여인을 가리켰다. 피부가 녹색인 엘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크는 상당한 미형이었다.

"대장, 아무리 예뻐도 그게 눈에 들어옵니까?!"

"아니, 저 엘프...아니 오크가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을 봐봐!"

오해를 받은 아이가 정찰대장은 버럭 소리까지 지르며 삿대질했다. 그곳에는 낡은 사제복을 입은 채 목에 가죽 목줄이 채워진 청년 사제가 있었다.

"프란시스 사제님...?!"

"기네비어 피스케스. 납치당했다고 들었는데 살아...있었어!"

정찰대원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안드라스들이 스피카 성을 향해 진격한 것보다 눈앞의 광경이 더 중요했다.

삐이익.

선두의 오크가 휘파람을 불자, 오크들은 인간들을 노예처럼 목줄을 잡아당기며 '남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피카 성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행군에 아이가 정찰대장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도대체 뭐지...?"

"대장, 쫓읍시다!"

스네이크는 눈을 불태우며 오크들을 가리켰다. 희번득 뜬 눈은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미치겠군.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해야지. 너는 당장 스피카 성에 달려가 상황을 알려라. 너희 둘은 남아서 혹시나 있을 추가적인 움직임을 감시해라. 나는 스네이크와 함께...."

아이가 정찰대장은 중무장한 오크들의 뒤를 가리키며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저들의 뒤를 쫓겠다."

* * *

정찰대가 '인간 노예를 끌고가는 광경'으로 비치는 모습과 달리, 라스베가스에서 나온 인간들은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봐요, 조금 더 세게 잡아당기지 못해요?"

"미, 미안하다. 다칠까봐...."

"정말. 당신, 고블린들이 어떻게 당기는 지 못봤죠? 걔들이 인간을 장난감 취급하는 걸 당신이 봤어야 하는데!"

"...우리 군단은 고블린을 형제로 취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군단장님께서 마음을 바꾸시지 않는 한, 고블린이 우리 군단에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 포로는 디테일을 살리라며 목줄을 잡아당길 것을 강요하고, 목줄을 쥔 오크는 몹시도 난감해했다. 그들의 선두에 선 인간 청년과 오크 여인-기네비어와 랜슬롯은 쓰게 웃었다.

"긴장감이 하나도 없네."

"다들 이 생활에 익숙해진거지...."

"자기는 어때? 익숙해졌어?"

"밥 먹고 너랑 침대에서 뒹굴고 기도하고.... 매일 똑같은 반복이지."

"하지만 체위는 매일 다르게 하는 걸? 자기도 좋아하잖아."

"......."

기네비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뒤를 따르던 몇몇 여자 인간 포로들이 숨죽여 키득거렸다.

"군단 유일의 여자 오크와.... 그것도 엘프 뺨치는 외모의.... 큭, 부럽다...!"

"사제님, 사제님. 랜슬롯 양과는 도대체 어떻습니까? 역시 밤에는 대단합니까?"

"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 합니까...?"

기네비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남자에게 핀잔을 줬다. 분노의 군단은 이런 쪽으로 공공연하게 말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나,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었다.

"내가 말해줘? 언제 이러더라? 여신이 내린 보지라고. 깔깔깔!"

"랜슬롯...!"

노골적인 랜슬롯의 표현에 기네비어는 화들짝 놀랐다. 다들 힘든 척을 해야하건만 웃음이 나올 뻔해서 난리였다.

"우리는 지금 오크들에게 끌려가는 노예들이야...! 그런데 자꾸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면 안 돼!"

"미안, 미안. 자기 되게 부끄러워하네. 라스베가스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뒤에서 그렇게 때려박았으면서."

"랜슬롯."

"...미안, 장난이 심했어."

차갑게 굳은 기네비어의 표정에 랜슬롯은 목줄을 잡아당기는 척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화났어? 가슴 만질래?"

"......라스촌 들어가서."

싫다고는 하지 않는 기네비어였다.

잠시 뒤.

오크들이 이끄는 인간들의 뒤에 작은 그림자가 따라붙었으나, 오크들은 일부러 그들을 방치했다.

마치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쫓아오라는 듯.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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