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5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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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마석, 넌 내꺼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주시죠. 잘 보관해두겠습니다."
현재까지 우리 군단에서 확보한 상급 마석은 네 개. 그 중 두 개가 광역 쟁탈전을 통해 얻었고, 나머지 두 개가 루시펠을 통해 낳아서 얻었다.
"진짜로 라스가 답인가?"
"글쎄요. 단순히 가버린다고 해서 상급 마석이 나온다면 확률이 왜 있겠습니까?"
"그렇지? 하하, 너무 좋아서 가버린다고 상급 마석 나올 확률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지."
절정의 정도에 따라 나오는 마석이 다르다면, 나는 나의 여자들을 상대로 매일같이 최상급 마석을 뽑아낼 자신이 있다.
"그래도 하나 얻었으니 다행이군. 플라우로스, 루시펠의 구속을 모두 풀어라. 그리고 이 곳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 24시간 자유를 주겠다."
상급 마석을 낳았으니 그만한 노력의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루시펠의 손발목에 채워진 구속구를 풀어버렸다. 여전히 목줄은 채워져 있지만.
"음? 샤이탄, 뭘 찾는 거냐."
"입힐 옷을 찾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샤이탄은 쏜쌀같이 어디론가 다녀와 옷가지를 한아름 챙겨왔다. 이미 뿌리 통돌이를 들어갔다 나와 뽀송뽀송해진 루시펠을 향해 샤이탄은 이런저런 옷을 시험하고 있었다.
"후후, 이거 어떻습니까?"
".....역시 샤이탄이다."
자고 일어났을 때 루시펠은 본인의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나는 샤이탄과 함께 그녀가 가져온 옷을 하나 둘 입혔다. 완성을 하고 나니 나는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금발 메이드...!"
"심지어 날개 잃은 천사라는 속성도 있습니다."
"대꼴--잠깐만. 날개 잃은 천사?"
"예. 루시펠의 어머니는 천족입니다. 아버님의 은총을 받은 천족이 알을 낳은 것에 여신이 신벌을 내린 건지, 알을 낳은 천족은 죽고 루시펠은 날개를 빼앗겼습니다."
"......흠."
뭔가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음을 눈치챈 샤이탄이 슬며시 내게 운을 띄웠다.
"주인님, 혹시 지난번의 꿈-"
"그건 나중에. 검증을 위해서는 최소 세 가지 경우를 확인해야하니."
현재까지 내가 확보한 종족은 서큐버스, 그리고 타천사.
'서큐버스의 처녀혈이랑 날개 잃은 타천사의 날개라. 역시 환생시켜야하나.'
"샤이탄. 혹시 마석이 아닌 일반 파종이 되도록 할 수는 있나?"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영원히 마석은 낳지 못하게 될 겁니다. 제가 에스투 님의 마법은 어느정도 손을 볼 수 있어도, 다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서."
"이지선다로군."
환생시켜서 약을 만드느냐, 아니면 계속 마석을 낳게하느냐.
"루트가 갈리는 군. 여신쪽이냐 마왕쪽이냐."
어쩌면 여신이 말한 재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곱 인장을 모아 '마왕을 24시간 절정하게 만드는 미약'을 만드느냐, 아니면 마왕의 딸과 혼인하고 다른 자매들을 그 딸의 하녀로 만드느냐.
"...샤이탄, 네 의견은 어떻느냐?"
"저는 주인님의 편입니다."
"그래. 그렇지. 괜히 흔들릴 뻔 했군.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지."
좆이 흔들리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언젠가 답이 있을 것이다.
"루시펠이 깨어나면 내일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 군단의 구조를 알려다오. 하녀로 부리든 노예로 부리든 그건 네 몫이다. 나는 하루에 한 번, 마석을 파밍하러 올테니."
"주인님, 정녕 제 도움이 필요없겠습니까?"
샤이탄은 내 옷깃을 잡으며 눈을 굴렸다. 쟁탈전에서 의지할 수 있는 부관으로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샤이탄의 차례가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너는 후방에서 두 전선을 잘 조율해다오."
내가 직접 이끄는 라스베가스 사단과 알로켄 전선의 그레모리 사단. 샤이탄은 둘 사이에서 던전 운영을 맡아 서브 던전의 마석과 재료를 파밍하고 적절한 보급 역할을 해야했다.
"...주인님, 그럼 언젠가 루시펠도 저같이 되면 주인님께서도 이런 역할을 맡기실 겁니까?"
"왜? 흐흐, 너 루시펠한테 맡기고 내 곁에 있으려고?"
"그렇습니다."
".....진심이군."
나는 샤이탄을 끌어안았다. 사이단과 달리 날개와 뿔, 꼬리가 있었지만, 이게 원래 샤이탄의 진실된 모습이었다.
두근, 두근.
그리고 거짓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에서 샤이탄의 진심이 느껴졌다. 샤이탄은 뭉클한 가슴을 누르며 나를 향해 웃었다.
"항상 주인님의 곁에 있고 싶지만...때로는 떨어져야하는 게 아쉽군요. 가끔 원망스럽습니다."
"뭐가?"
"주인님이 처음으로 소환하는 자가 저였으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러면 륜이고 뭐고 애들 다 네가 없애지 않았을까?"
제법 잔혹한 소리였지만, 샤이탄은 씩 웃기만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샤이탄의 머리와 뿔을 쓰다듬으며 정수리에 입술을 맞췄다.
"언젠가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아랫것들에게 모두 맡기자꾸나. 그리고 우리 다 함께 어디론가 떠나는 거다. 그래, 섬이 좋겠군."
"이름은 라스토피아구요?"
"그래. 나와 나의 아내들만이 갈 수 있는 사랑의 이상향으로 만드는 거지."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나만의 왕국. 내가 진리며 내가 법인 세상에서, 나는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나의 사랑을 마음껏 뿌리고 다닐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저도 혼수를 준비해야하는데...."
샤이탄은 내 얼굴을 붙잡으며 요염하게 웃었다.
"저 닮고 예쁘고 섹스도 잘하는 하녀 여섯 명, 혼수로 데려가겠습니다. 거절은 거절합니다."
샤이탄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감았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보라색 라벤더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라스베가스 인근 남작령 정찰부대 야영지.〉
"젠장, 오늘도 또 텃구만."
남작령 정찰부대의 대장, '아이가 안조아'는 작게 피웠던 모닥불을 꺼뜨렸다. 적진에서는 보이지 않을 위치에 감시용 초소를 마련하고 있으나, 유사시 불빛을 보고 적이 기습을 할 수 있었다.
"대장, 어차피 안 오는데 불 좀 켜두면 안 됩니까? 춥습니다."
"시끄러워. 마물들 속내를 어떻게 알고."
아이가 정찰대장은 부하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당연히 부하들의 얼굴에 불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마물 한 마리 여기 온 적 없지 않습니까."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작은 불씨라도 쬐어서 손을 녹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안 오다가 오늘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는 거고, 날씨가 추우면 내가 가져온 거 입으라고. 지난번에 다 두 개씩 돌려줬잖아?"
정찰대장은 바지를 슬쩍 들어올렸다. 그의 발목에는 두 겹이나 겹쳐입은 스타킹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으으, 남자가 어떻게 그런 걸 입습니까?"
"대장, 그거 마물의 털로 엮었다고 합니다. 뭔가 부정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새끼들, 얼어뒤지겠다면서 어떻게든 안 입으려고 하는 거 봐라. 에이, 됐다. 한 30분만 기다려보고 그 때도 반응없으면 불을 피우자."
부하들의 불만을 일부 수용한 그는 부하들을 위해 밤새 뜬눈으로 적진을 지켜보기로 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자신들보다 훨씬 더 활기 넘치는 정찰대장의 모습에 부하들은 의아해했다.
"대장, 어제 쉬는 날 어디 뭐 좋은 거 먹고 왔습니까?"
"흐흐, 좋은 거 먹고오기는 했지."
아이가 대장은 손가락을 고리로 만들어 그 안에 손가락을 푹푹 쑤셔넣었다. 적나라한 그의 제스쳐에 부하들의 귀가 쫑긋 섰다.
"누굽니까? 혹시 지난번에 노리고 있다던 그 과부?"
"대장은 그럴 용기 없을 걸? 분명 자비야바 난민 중에 예쁘장한 여자 하나 꼬셔서 하룻밤 했을 거다."
"이 자식들, 내가 어디 다녀온 줄 아냐?"
아이가 대장은 안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둔 종이를 하나 꺼냈다. 부하들은 말로만 듣던 물건을 실제로 보자 눈이 돌아갔다.
"쿠폰북!"
"아아, 이게 바로 밤의 아발론에서 발행하는 쿠폰이다. 여기에는...짠!"
대장은 쿠폰을 열어젖혔다. 그곳에는 붉은 립스틱 자국 모양과 함께, 아발론의 상단을 상징하는 작은 도장이 두 개 박혀있었다.
"흐흐, 요정님 맛있더라. 나 요정님이랑 결혼할까봐."
"대장, 그거 다 상술이요. 요정님이 어디 대장 이름 불러주면서 사랑한다고 한 적 있습니까?"
"이 놈아, 몸정이 얼마나 무서운 지 모르냐? 이거 10번 채울 때까지 퍽퍽 두드리면 열리게 되어있어."
"...돈 받고 하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이 놈아. 내가 돈주고 여자를 산 줄 아냐?"
대장은 정색하며 부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밤의 아발론에서 내는 돈은 그냥 술이랑 안주값 뿐이다. 바가지도 아니고 성 어디 여관 술집보다도 저렴하고 맛있는 곳이라고. 니들 거기 음식도 못 먹어봤지? 10명 중에 1명은 밤의 아발론에 식사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럼 9명은요?"
"다들 요정님 꼬실 생각으로 가득차있지. 그러다가 요정님의 마음에 드는 자는...흐흐흐."
아이가 대장은 손뼉을 치며 음흉하게 웃었다.
"너희, 여자 앞에서 말은 좀 잘 하냐? 거기 요정님들 돈으로 못산다? 누구 하나 요정님한테 10골드 주고 떡치자고 했다가 후장에 10골드 꽂혀들어갔어."
"......그거 나도 들어본 것 같은데. 외지에서 온 모험가들 아닙니까?"
"어디 밖에서 여자 돈주고 사던 놈들이 혼쭐이 난 거지. 누가 알았나? 보니까 다들 퇴역 모험가 출신이더구만. 흐흐, 역시 단련된 여자가 안쪽도.... 잠깐."
농을 지껄이던 아이가 대장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전부 정숙. 적진에 이상있음."
아이가 대장의 지시에 부대원들이 황급히 적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대장은 자비야바의 동쪽 울타리를 열어젖히고 나오는 부대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젠장. 어쩐지 어제 재수가 좋더라니."
아이가 대장은 쿠폰에 기도를 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동쪽으로 나온 검은 새대가리 마물들은 수가 눈으로 살펴도 족히 100은 훌쩍 넘어보였다.
"그, 그냥 정찰 나온 거 아닙니까?"
"정찰이면 좋겠지만...."
아이가 대장은 오와 열을 맞춰 움직이기 안드라스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들은 북쪽, 스피카 성으로 향하는 다리로 야간 행군을 시작했다.
"이 새끼들, 설마 스피카 성을 공격하려고 하는 건가?"
잠시 뒤, 스피카 성에 급보가 울렸다.
〈안드라스〉라고 불리우는 마물 100여 마리가 북상 중.
스피카 성 전체에 비상이 떨어졌다.
* * *
〈새벽 1시 경, 라스베가스.〉
"주인님 입에서 샤이탄 냄새가, 주인님 방망이에서 루시펠 냄새가 나요!"
"하고 왔다. 상급 마석 하나 뽑았지."
"와! 그럼 이제 세 개 남은 건가요?"
"그래. 샥스 부활까지 이제 세 걸음이다."
륜은 꺄르르 웃으며 나의 뽑기 운을 축하했다. 은빛 갑옷에 녹색의 망토를 두른 에일라는 그런 나를 보며 황당해했다.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셔서 가시더니...."
"나의 운을 실험해보고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상급 마석을 뽑았다. 이번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내가 운이 좋으니까."
"운이 나빴다면 어쩌시려고 했습니까? 최하급이 나왔다면?"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하고 작전 캔슬했지."
"...안드라스와 안드라스들, 지금 진군 중입니다만."
"원래 훈련도 실제 작전처럼 하는 거야. 다음에 길일이 있으면 그 때...."
농담이지만 에일라의 표정이 굳었다. 일반병과 간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 확실히 내가 한 말이 어지간히 미친 짓이기는 했다.
"미안하다. 내가 배려가 부족했다. 너희가 이걸 준비하는데 엄청 시간이 걸렸을텐데."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라스베가스의 주민들은 주인님에 대해 조금 감정을 가지게 되겠죠."
"농담이야, 농담. 내가 설마 뺑이치도록 하겠느냐. 오늘 같은 날."
밤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둠에 파묻히면 밤눈이 좋은 자가 아니고서야 우리의 진격을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확인하지. 샤이탄, 알로켄 전선은 어떠한가?"
[계속 대치중입니다. 몇 차례 교전 이후 쉽게 던전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부상병은 있으나 다행히 중상은 아닙니다.]
후방의 전황은 교착상태를 이루고 있다. 재빨리 눈앞의 위협을 제거한 뒤, 알로켄 전선으로 넘어가 트롤들의 복수를 해야했다.
"그럼 됐다. 그레모리에게 전해다오. 남작령을 통째로 삼킬테니, 반드시 후방을 지켜달라고."
[그레모리 님의 전언입니다. '네 후장은 내가 지킬테니까 안심하라'. ......진짜 그레모리 님의 말씀입니다.]
"...그래, 덤으로 자기 몸도 잘 지키라고 하고."
믿음직한 부하가 있으니 확실히 심적으로 안정된다. 이제 나머지는 또다른 부하들을 동원하여 작전을 펼칠 차례.
"라스 군, 작전 개시."
이 전투가 끝난다면 정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 대륙 '최초'가 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지휘봉을 넘겨받은 에일라는 하늘 높이 깃대를 들어올렸다.
"작전명, 〈아다 폭격기〉를 시작하겠다."
마왕군, 그리고 전 세계 최초.
던전의 주인, 군단의 주인이 인간 왕국의 남작령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걸 전 세계가 보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