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350화 (350/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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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여신교 교단의 본청.〉

"머, 먼 길 오신 걸 환영합니다."

퀘르벨스 추기경은 기어이 추위를 뚫고 1만 계단을 올라온 성녀에 소름이 돋았다. 독한 기질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계단을 올라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말이 계단이지, 턱의 높이가 1m 가까이 되는 층이 연이어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계단을 올라온 성녀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뒤돌아섰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전설에 따르면 여신이 내려온 곳. 그곳이 바로 여기랍니다."

"과연."

성녀의 뒤를 따르던 트랄은 허리에 걸쳐둔 검집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추기경의 뒤를 따르던 사제들이 하나같이 기겁을 하며 추기경의 앞을 가로막았다.

"성녀! 이게 뭐하는 짓이요!"

"그러는 추기경이야말로 무슨 설레발입니까."

"드디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증명을 하는 겁니다, 증명."

성녀는 한숨을 내쉬며 트랄에게 신호를 보냈다. 트랄은 아주 천천히 허름한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고오오오--

휘몰아치던 폭풍이 잠잠해졌다. 트랄이 뽑아든 성검 〈타우러스〉의 신성력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 설마...!"

"네. 새로운 성검의 용사입니다. ...비켜주시겠어요? 여신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무,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느 가문에서 오신 귀인이시길래-"

"저 멀리 이국의 부족 마을에서 태어난 잡종이오."

트랄은 빈정거리며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성녀는 트랄을 앞장세우고 예배실로 향했다.

아-아-아-

성스러운 성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누구도 노래를 부르는 이가 없건만, 예배실에서 들려오는 성스러운 노랫소리에 사제들은 모두 몸을 벌벌 떨었다.

"오오오, 이건 설마!!"

예배실의 천장에서 은색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성녀는 신단에 올라 하늘을 향해 기도했고, 트랄은 점점 더 격한 빛을 발하는 성검을 자신의 앞에 꽂았다.

"누구인가?"

"여신께서 보내신 대리인입니다."

성녀가 트랄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제들은 성녀와 마찬가지로 모두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발의 천사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건 추기경도 마찬가지였다.

[성녀. 임무를 마친 그대에게 여신의 축복이 있기를. 이곳까지 잘 인도하였습니다.]

분명 사람의 모습으로 말하고 있건만 별세계에서 말하는 듯한 위압감이 서려있었다. 트랄은 영혼을 흔드는 듯한 목소리에 상대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금방 깨달았다.

"천사?"

"보통의 천사가 아니에요."

[나의 이름은 미카엘. 소개는 성녀에게 들어라, 용사.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야하니.]

미카엘은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며 트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천사의 가루가 트랄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사아아---

트랄을 중심으로 바닥에 여신교의 문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트랄은 미카엘이라는 천사의 등장에 흠칫 놀랐으나, 적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흐름에 몸을 맡겼다.

[여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찾고자 하는 바를 찾고자 한다면 나의 대리인을 지켜라. 나의 대리인과 함께 하면 자연히 그대가 찾는 '자'와 만나게 될 지어니.]

"......!!"

트랄은 여신의 신탁에 오한이 들었다. 여신은 어째서 오크인, 마족인 자신에게 이런 신탁을 내린단 말인가. 정말로 자신이 성검의 사용자-용사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대가 나의 대리인을 지키기 위한 선물이자 축복이니라.]

사아악.

트랄의 몸에 천사의 숨결이 닿았다. 동시에 트랄은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가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손을 들어올린 트랄은 자신의 변화를 직감했다.

"......굳이?"

[어딜 가더라도 나의 대리인을 지켜라. 그리고....]

고오오오---!

트랄은 천사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초월적인 존재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서부터는 네게만 들려주는 신탁이다, 오크 용사여.]

쿵.

세계가 멈췄다. 은색으로 물든 세계 속에서, 트랄과 미카엘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찾고자 하는 너의 반신을 찾을 때까지, 나의 대리인을 지키도록 하라. ...누군가를 위해 바칠 순결까지도.]

"......!!"

[이 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듣겠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너는 목숨을 걸고 나의 대리인을 지켜야 할 것이다. 여러 의미로.]

"......여신의 뜻대로."

트랄은 눈치껏 배웠던 성호를 손으로 그었다. 그에 미카엘은 인자한 미소로 트랄의 검은 로브를 벗겼다. 그와 동시에, 은빛으로 멈춰있던 세계가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아-?!"

성녀는 화들짝 놀랐다. 동시에 다른 사제들 또한 깜짝 놀랐다. 미카엘은 검은 로브 속 '남자'의 정수리에 입술을 맞추며 축복을 내렸다.

[그대에게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타우러스의 용사여.]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미카엘은 은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성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트랄을 향해 삿대질까지 하며 혼란에 빠졌다.

"다, 당신...?"

"음."

트랄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장갑을 벗었다. 일부러 녹색 피부를 가리기 위해 꼈던 장갑의 아래에는 하얀 피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건 예상 못했군."

"에, 엘프가 어째서 용사인 건가---!!"

추기경은 트랄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성녀 또한 변해버린 트랄의 모습에 허탈해졌다. 추기경은 트랄의 외형에 엘프냐고 소리쳤지만, 그의 귀는 오크의 귀 그대로였을 뿐이다.

그저, 색깔이 녹색이 아닌 하얀색-인간의 피부색이었을 뿐.

"...여신님의 선물이 이런 거라고? 세상에."

설마 오크가 싫다고 찡얼거렸더니 오크에서 바꾸어버릴 줄이야. 성녀는 하늘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싶었던 마음을 참았다.

"성녀."

트랄은 싱긋 웃으며 성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신님께서 말씀하셨소. 내게 운명이 찾아올 때까지, 그대를 지키라고."

"아...."

성녀는 괜히 얼굴이 붉어져, 트랄을 직접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그대를 지킬 것이오. 그대의 모든 것을."

그대의 순결까지도.

트랄의 녹색 눈동자에는 강렬한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늦은 밤, 라스베가스 관청 작전회의실.〉

적은 스피카 성에서 힘을 응축하고 있다. 적당한 때가 되면 분명히 뛰쳐나올 것이며, 그 힘은 어마무시할 것이다.

"적의 흐름을 빼앗는다. 에일라, 적은 분명히 라스베가스를 정찰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주인님의 방치도 있기는 하지만, 적은 상당히 날랜 병사들로 저희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적이 라스베가스를 실시간에 가깝게 감시하고 있다. 그 감시를 역이용하여, 나는 기사단장의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리게 할 생각이었다.

"퍼시발의 워울프 부대를 제외한 모든 오크들을 라스베가스에 투입한다. 그리고 라스베가스의 주민들, 목장의 인간들을 모두 투입하여 작전을 펼친다. 그림을 그려보자꾸나."

검은 가죽으로 된 구속구가 채워진 인간 포로들.

그리고 그들을 연행하여 어디론가 끌고가는 대규모 오크 병력들.

"우리 군단은 철저히 라스베가스를 포털로 오다녔지. 그래서 놈들은 아직까지 라스베가스 수성전 당시의 병력이 고스란히 우리 군단에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래, 인질마저도."

"대부분은 인질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성벽에서의 시위를 벌인 이후, 스피카 성에서는 마물에게 범해져도 살아만 있어달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밤의 아발론은 정말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개중에는 남작령에 나타난 던전, 우리 군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정말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가령, 스피카 성까지 점령당한 경우 남작령을 버리고 떠나겠다던가.

가령, 기사단장까지 패배하게 되면 도망치는 게 능사라던가.

가령, 자비야바에 사람이 살아있다면 적어도 이 던전의 마물들은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다거나.

가령, 포로로 잡힌 가족을 구하기 위해 토벌대에 몸담았다거나.

기사단장의 생각은 읽을 수 없어도, 스피카 성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내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중의 바람을 모두 긁어모아, 우리는 그들의 민심을 동요하는 작전을 하나 꾸며냈다.

"야심한 시각, 대규모 병력의 오크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 정찰병들은 어떻게 할까?"

"음, 그들이 왜 나왔는지 궁금해하겠죠?"

"그래. 그렇다면 거기서 추가로. 오크들이 인간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어디론가 끌고간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던전으로?"

"그렇지."

지금까지 라스베가스에서 인간이 빠져나간 적은 없었다. 또한 물리적인 동선으로 식량이나 기타 물건이 보급된 적은 없었다.

"마왕군의 병력만 족히 200이 넘는다. 그들이 몇 주 동안 라스베가스에서 죽치고 앉아있어. 그러다가 갑자기 인간 포로들을 데리고 빠져나와. 그러면 그 정보를 들은 지휘관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식량이 다 떨어졌구나. 자비야바에 비축된 식량이 모두 동났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 에일라. 더군다나 대규모 포로까지 살아있는 게 확인되었으니, 오해를 하기 더 쉽겠지. 아, 오크들이 이제 먹을 게 없으니까 던전으로 인간들을 데리고 가는 구나. 그럼 륜아, 이제 기사단장이 어떻게 움직일까?"

"음.... 저라면 라스베가스를 점령하기 위해 병력을 진군시킬 것 같아요! 오크들이 빠졌으니까!"

"라스베가스를 점령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희가 가진 첩보대로 던전으로 직행할 수도 있습니다. 던전으로 돌아가는 오크들의 뒤를 밟아서. 어디까지나 저희가 흔적을 남겨줘야 한다는 가정이 붙습니다만."

"그래. 어느쪽이든 마냥 지켜보지는 않을테지."

소규모 부대라도 병력을 파견할 것이다. 모든 병력들이 빠져나오면 더욱 좋고.

"오크들은 라스촌으로 들어간다. 니프엘라, 너희 크림엘프들은 엘프의 숲에 잠시 머물러라."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40명의 크림엘프들은 라스촌의 입구에서 던전이 아닌 척 잘 연기를 해왔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장소, 원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갈 시작이었다.

"엘프의 숲으로 가라. 그리고 전황에 따라서 계획서대로 움직여야한다."

우리가 승기를 잡았느냐, 아니면 이기기 어려운 난전이냐에 따라 크림엘프들의 역할이 달라졌다. 어느쪽이든 엘프의 숲을 지키며 경계해야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엘프의 숲으로 돌아온 버진 엘프들이 있다면 잡아다가 구속해버려라. 앞으로 버진 엘프들을 쿠앤크로 만드는 건 너희의 몫이다."

"후후, 영광입니다. 배려에 감사를."

인류와 싸우는 데 버진 엘프들이 갑자기 휘리릭 나타나 훼방을 놓는 건 사양이다. 나는 테이블 위의 지도에 라임이 굳혀서 만든 슬라임 미니어쳐 병정들을 움직였다.

"라스촌에 오크들, 엘프의 숲에 엘프들. 그러면 자연히 라스베가스의 병력이 비겠지? 이곳은 누가 가면 좋겠느냐."

나는 두 마리의 새를 라스베가스에 배치했다.

"안드라스와 하피 엔젤들이 이곳에 있을 것이다. 이중 성벽 외곽에는 스톤골렘들도 있으니, 오크들이 포털을 통해 라스베가스로 귀환하기까지 그들이 충분한 방어선이 되어줄 거다."

라스베가스에 안드라스들, 하피들, 그리고 스톤골렘들. 스피카 성에서 빠져나온 엄청난 수의 인간 부대는 라스베가스-라스촌-엘프의 숲이 그리는 거대한 삼각형 한 가운데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이 포위섬멸진의 마지막 꼭짓점."

스피카 성. 이곳에는 다른 곳처럼 수십 명 단위의 병력이 파견되지는 않겠지만, 적의 수뇌부를 습격하는데 있어서 최적의 상대가 나갈 것이다.

"라임, 잘 부탁한다."

"맡겨둬. 암살, 가능."

슬라브돌, 라임에게는 스피카 성의 성주이자 남작령의 주인인 〈버지나니야 비르고〉 남작의 암살을 맡겼다. 그를 위한 모든 포석은 이미 마련되어있다.

고립무원.

1200명이나 되는 대규모 토벌대가 졸지에 어디도 가지 못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작전대로만 되면 여차할 경우 평원에서 일거에 쓸어버려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다시금 정리해보자꾸나."

동쪽, 엘프의 숲. 크림엘프 40명. 부대장은 크림엘프 니프엘라.

남쪽, 라스촌. 오크 약 100명. 부대장은 아더.

서쪽, 라스베가스. 안드라스 약 130명, 하피 종 약 100명, 스톤골렘 20기. 지휘관은 에일라.

북쪽, 라임 1명. 그리고 메어리.

그리고 그 외에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비전투계 병력 약 50명.

조금 더 넉넉하게 잡아서 총합 450명 가량 되는 병력으로, 정원이 고작 40~60명 정도가 평균인 던전 주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규모 병력이었다.

'하지만 이러고도 인간들에게 숫적으로 불리해.'

성녀의 명령과 자본의 힘이라는 두 가지 조건에 이끌려 온 용병들.

스스로 모험가를 자처하며 마왕군의 부하들을 죽이고 죽은 가족의 복수를 하거나 인질을 구출하겠다고 나선 일부 영지민들.

이전의 자비야바 공략전에 참가하지 않고 예비대로 스피카 성에 있다가 이번에서야 결국 참가하게 된 상비군들.

그 모든 이들이 던전을 공략하는 '모험가'라는 이름으로 뭉쳐, 1200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이 성기사단 단장의 지휘에 따라 우리 던전을 노리고 있다.

"머릿수는 밀릴지라도, 그 인원 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전술과 용병술이지. 모두 준비는 되었느냐?"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 꿈 속 세상, 조교실 등에서 수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짠 대규모 작전이 드디어 시작될 때가 왔다.

"에일라. 나는 던전으로 돌아가겠다. 신호를 보내면 바로 작전을 시작하도록 하라."

"신호요...? 어떤 신호입니까?"

"원래 이런 전쟁을 치르기 전에 천지신명께 기도하고는 하지. 이번에는 나의 '운'을 테스트하고자 한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 직전. 다른 이들이 모두 저마다 작전을 위한 위치로 이동하는 사이, 나는 샤이탄과 함께 내 운을 시험할 장소로 이동했다.

플라우로스 던전. 조교실의 앞.

"일퀘를 거를 수 없지. 흐흐흐."

일일 일 가챠.

소환 시설을 통해 부하를 소환하는 것, 파종을 하여 알을 하나 까는 것, 그리고 '마석'을 파밍하는 것.

"내가 왔다!"

"......."

플라우로스의 뿌리속에 파묻힌 루시펠이 나를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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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스트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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