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3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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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르스들은 제각기 구분에 맞춰 분류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른 전리품을 확인해야했다.
"상급마석 떴냐아아!!"
"2개 나왔습니다."
"젠장. 용공도 이거보다 모으기 쉽겠다."
루시펠이 낳은 1개에다가 하겐티 던전에서 얻은 2개. 하겐티는 마석을 얻으면 바로 쓰는 타입인지, 어째 마석이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오리아스보다 더 적을 수 있지?"
"오리아스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모아둔 겁니다."
플라우로스가 점령한 오리아스 던전의 마석은 족히 백 단위를 훌쩍 넘을 정도였다. 상급이 하나도 없는 게 아쉬웠으나, 그 아쉬움을 달래 줄 정도로 중하급 마석이 아직도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최하급 섞인 거 감안하더라도 잘하면 네 자리수 찍겠다. 흐흐, 오리아스 놈. 나중에 만나면 잘해줘야지."
"오리아스 던전에 대한 관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플레어 판테라들을 오리아스 던전으로 보내겠다. 아그니에게 전권을 맡기마. 그래, 그...아무르였지? 내가 먹었던 수인 여자가. 그 녀석에게 오리아스의 이름을 주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해두겠습니다."
오리아스는 플라우로스보다 몇 단계 위의 던전이지만, 이제 플라우로스에 딸린 멀티 던전이 되어 방패막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럼 기존에 있던 플라우로스 던전은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놀려두면 안 될 텐데?"
"함정을 실험해보겠다. 어차피 플라우로스가 있는 조교실만 지키면 돼. 루시펠에게 한 번 맡겨보도록 하지."
"무슨 뜻?"
"본인이 내게 교육받은 걸 그대로 모험가들에게 연습하라는 말이지. 나중에 자기 자매들이 들어오면 격하게 환영해줄 수 있도록."
플라우로스 던전은 이제 파리지옥과도 같은 던전이 될 것이다. ★★★★ 촉수 나무도 언제까지 우리가 수액을 집어넣든 경험치를 넣어줘야 할 수는 없다.
'슬슬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때가 되었어.'
안드로말리우스. 벨리알. 그리고 그 외 기타등등.
내가 아래에서 차근차근 밟았던 놈들의 이름의 던전들이 새로운 놈들에게 부여될 시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부활하여 하극상을 일으키면 64위 방지턱에 걸리게 될 것이다.
"누구든 간에 상급 마석 좀 나왔으면 좋겠군. 이제 마지막으로 하겐티 던전을 어찌할 지 정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정하기는 했다. 나의 모든 판단은 귀두가 솟아오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하겐티 하지 뭐.'
확인해보니 미노타우르스는 번식용으로는 적당해도 식용은 그닥이었다. 잡내가 조금 나기는 해도 사자 고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 사자 고기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했다.
그렇다고 냉큼 수용하기에는 면이 서지 않는다. 나는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깔았다.
"샤이탄, 승부다. 라스로 결착을 내지."
"주인님, 당장 침대로 가시겠습니까? 륜의 말대로 이 승부,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조건 소고기다."
"하겐티 하세요. 푸흡."
샤이탄도 내 속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륜이나 루나도 내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샤이탄과의 의견 대립을 핑계삼아 떡각을 잡았을 뿐이다.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도록 하자. 어떻느냐?
"좋습니다."
지면 샤이탄의 의견대로 간다.
이기면 승자의 넓은 아량으로 샤이탄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어느쪽으로든 내 승리다.'
남은 것은 어떤 체위로 샤이탄을 공략하느냐. 그것만을 생각하며 나는 쿠키엘프들을 모았다.
"너희가 증인이 되어다오. 자, 샤이탄. 오너라."
"...하겐티의 등 위에서 하시겠다는 겁니까?"
"내가 눕는 곳이 곧 침대이니라."
"...후후, 알겠-"
웃으면서 다가오려던 샤이탄의 표정이 굳었다. 샤이탄은 걸음을 멈추고 시스템창을 급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인님, 급보입니다."
샤이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레모리, 오크 라이더들을 이끌고 후퇴중입니다."
"뭐?"
* * *
고오오오--!!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하늘에 걸린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높이 떠오른 불기둥의 가운데에는 한 인영이 불타고 있었다.
파스스.
불기둥의 불이 꺼지고, 인영-알로켄은 전신이 숯검댕이 되어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고 달궈진 창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한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대단하구나, 그레모리."
연기를 토해내는 알로켄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졌다. 쇳소리가 잔뜩 나서 듣기 조차 소름끼칠 정도였다.
"할파스의 아래에서 이렇게까지 강해졌을 리가 없지.... 어떻게 되었나?"
"이겼어. 우리 군단이 할파스 먹었지."
"...흐흐흐, 우습구나. 나는 내 던전의 전력을 쏟아부었건만, 너희는 군단의 힘 중 일부만 내게 쏟았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도...."
알로켄은 사방을 가리켰다.
"이 황야에 서있는 건 너희들이다."
자랑하는 트롤전차들은 진작에 트롤과 전차로 분리되어 불리한 전투를 하게 되었고, 트롤은 오크에게 제압당하고 전차를 이끌던 기마견들은 모두 워울프에게 목이 물어뜯겼다.
"트롤전차 절반이 죽었다. 너희는 워울프 몇 마리가 죽은 것 말고는 아무 피해도 없어. 완패로구나, 완패야."
"정상이 아닌 자가 없지만...."
그레모리는 알로켄에게 다가가며 쓰게 웃었다.
기마견에 전신이 깨물려 피칠갑을 한 것도 모자라 죽기까지한 워울프들.
트롤의 단창에 전신이 베이고 쑤셔져 구멍이 숭숭 뚫린 오크들.
그리고 한쪽 날개가 뜯겨나간 그레모리.
"승패는...자명하지."
분노의 군단은 알로켄 던전의 무리와 더불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몸 상태만 두고보면 누가 있겼는 지 모를 정도로 분노의 군단은 부상이 심했다.
"그래. 우리가 이겼어, 알로켄."
"나의 패배다, 그레모리."
알로켄은 피식 웃으며 목을 들어올렸다. 그레모리의 옆에는 가장 크게 활약한 오크 하나가 트롤로부터 빼앗은 창을 손에 꼬나쥐고 있었다.
"언젠가 죽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 그게 지금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흐흐, 죽여라. 이제 미련은 없다."
알로켄은 시원섭섭한 얼굴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너무나도 담담한 패배 선언에 그레모리는 산발이 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던전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냥 죽는 것 보다는 우리 군단에 들어오는 건 어때? 우리 군단장, 트롤이라도 부하로 받아들여줄 걸?"
"......? 지금 나를 모욕하는 것인가? 그 누가 패배한 자를 부하로 들인단 말이더냐."
"아니, 화내지 마.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나도 지금 주인한테 쟁탈전 걸었다가 졌는데도 군단에 들어갔거든."
그레모리는 자신이 군단에 들어간 계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알로켄에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알로켄도 점점 그레모리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과연. 할파스의 계략으로 어쩔 수 없이 안드라스를 공격했지만, 군단의 주인이 된 안드라스가 역으로 너와 손을 잡고 할파스를 도모했다는 건가?"
"그렇지."
"56위가 63위에게 쟁탈전을 걸어 졌는데도, 63위는 네 이름을 빼앗지 않고 너와 힘을 합치고자 했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싸움 속에 싹트는 전우애? 흐흐. 내 매력에 아주 뻑 가버렸지 뭐야."
옆에 있던 오크 라이더의 부대장, 퍼시발은 그레모리의 체면을 생각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지금이 기회다? 우리 군단장이 종족 하나씩 다 모으고 있거든. 네가 우리 군단의 트롤 부족장이 될 수도 있는 거야."
"...그건 상당히 끌리는 제안이다. 더군다나 그런 강자라면 우러러 볼만 하지."
알로켄의 따뜻한 시선이 퍼시발과 오크 라이더들을 스쳤다.
"강력한 전사들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알기에 더욱 처절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전사들이야. 저런 강인한 전사들을 키워낼 수 있는 자가 군단의 장이라면 분명 너희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크흐흐, 그 비결이 궁금하군."
"......욕망이지."
차마 성욕이라고 그레모리는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답조차도 알로켄은 마음에 들어하는 듯 했다.
"흐하하! 그래! 그것만큼 마족에게 강한 동기가 되는 것이 없지! 좋다! 그레모리, 제안은 고맙다!"
알로켄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레모리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다가 알로켄의 말을 곱씹었다.
"제안은 고마워?"
"그래. 제안은."
"...말장난 하는 거야?"
"제안에 응해, 그대의 군단장과 만나고 싶다. 과연 우리 트롤들을 이끌만한 자인지,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 이 말이다."
알로켄은 씩 웃으며 창을 쿵쿵 찧었다. 오크들은 퍼시발의 손짓에 따라 트롤들을 일으켜세웠다.
"분노의 군단, 과연 어떤 곳인지-"
푹-!
어디선가, 무언가가 날아와 알로켄의 가슴을 꿰뚫었다. 알로켄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흐억...."
"그레모리 님!"
퍼시발이 황급히 그레모리의 등을 눌렀다. 그의 팔뚝에는 날카로운 화살이 박혔다.
"뭐, 뭐야?!"
"적입니다!"
고개를 돌리니 하늘에 화살비가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그레모리는 지평선 너머에 바글바글한 기마병의 존재에 이를 갈았다.
"인류 연합 놈들이...!"
결착을 위해 던전 내부에서 황야로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을까. 인류 연합은 비겁하게도 전투 후의 마족들을 향해 화살세례를 퍼부었다.
"퍼시발!"
"타이즈 아머 덕분에 괜찮습니다. 다만...."
퍼시발은 중무장한 기마의 위에 선 궁기병들을 가리켰다. 그 수가 족히 기백은 훌쩍 넘어보였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싸웠다가는 몰살입니다. 그레모리 님, 도망치십시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야...!"
"저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으나, 그레모리 님은 다릅니다."
퍼시발은 등으로 화살을 받아내며 던전을 가리켰다. 전투는 끝났어도 쟁탈전의 정산은 아직 끝나지 않아, 양방향 포털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
"너희...모두 가라...."
피를 흘리던 알로켄은 퍼시발과 그레모리를 던전 쪽으로 밀었다.
"트롤...마지막 명령이다.... 인류와 싸우다...죽어라."
알로켄의 지시에 트롤들은 하나 둘 부서진 창을 들고 비틀거리듯 일어났다. 그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거나 몸으로 맞으며 단창을 집어던졌다.
히히힝---!!
철갑을 두른 말 한 마리의 눈에 단창이 박혔다. 화살을 쏘던 기병은 아래로 고꾸라졌고, 트롤들은 포효를 내지르듯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오크여, 나를 죽여라...."
알로켄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말을 할수록 뚫린 목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나를 죽여...너희 던전에서...차원석으로...."
"알로켄!"
"전사여...!"
알로켄은 핏발이 선 눈으로 퍼시발의 손목을 붙잡았다.
"부디 군단에...마왕군에 영광을...!"
"......잊지 않겠소."
퍼시발은 창을 높이 치겨들었다. 공교롭게도 그 창은 알로켄이 그레모리와 싸우다가 파손된 단창이었다.
푸--욱.
단창이 알로켄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레모리는 표정없는 얼굴로 알로켄의 시체를 옆에 다가온 유니콘의 안장 위에 올렸다.
"던전까지 내가 직접 데려간다. 서브 던전으로 만들어서...포털을 넘어가면 돼. 그러면 포털이 막혀. 우리는...퇴각한다. 여기는 저들에게 맡겨."
퍼시발은 착잡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이미 트롤들은 한참 멀리 궁기병들을 향해 창을 두 자루씩 들고 질주하고 있었다.
"...다음 생에 전우로 태어나기를."
퍼시발은 짧게 기도하고 워울프에 올랐다. 그레모리 또한 한쪽 날개를 펄럭여 안장에 올랐다.
갸르르....
상처입은 워울프들은 힘겹게나마 던전 안으로 달렸다.
"놓치지 마라---!! 던전까지 뚫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황야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궁기병들이 활을 버리며, 옆에 있던 종기사들에게서 창을 건네받으며 돌진을 시작했다.
"마왕군을 섬멸하라---!!"
중무장한 기사들이 후퇴하는 그레모리와 오크 라이더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트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중갑의 군마는 트롤을 향해 오히려 달려나갔다. 앞을 가로 막으면 발로 차고 가버리겠다는 듯.
"크르르르...!"
그에 트롤들은 콧김을 내붐었다. 몇몇 살아남은 기마견들이 트롤의 옆에 섰다. 서로 마주보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크어엉--!!
트롤이 기마견의 위에 올라탔다. 기마견은 앞도 보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이미 가속도가 붙은 인류의 기마 돌격에 비해 한없이 모자란 속력. 하지만 트롤들은 단창을 꼬나쥐고 기마견의 등 위로 올라섰다.
"마왕군을 위하여---!!"
트롤들은 창을 들고 높이 뛰어올랐다.
창끝은, 기수를 향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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