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37편
<-- -->
그 시각, 스피카 성 아발론 지하.
"다녀왔다...."
그에이는 지친 얼굴로 방에 들어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땀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지만, 그는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혹사당했다.
"고생했어요."
"...너도."
그에이를 맞이한 메어리 또한 얼굴이 핼쓱해져있었다.
"남작님이 뭐래?"
"기사단장은 뭐라시니?"
"...조만간 준비가 끝나는 대로 정찰대를 보낸다더군. 라스베가스, 던전 양쪽으로."
"이쪽도 마찬가지에요. 대규모 병력이 움직일 수 있게, 그리고 스타킹을 방어구로 활용할 수 있게 개조해도 되겠냐고 물었어요."
메어리와 그에이는 서로 다른 방면에서 수집한 정보를 하나로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은 정보는 하나의 결론을 향해 귀결되고 있었다.
"슬슬 움직일 것 같지?"
"...이 정도 대규모 병력은 위험한데."
"모험가 1000명으로 구성된 병력이야. 대대적인 걸로 모자라서, 이 정도면 인류연합 최전선에 불려나가도 될 숫자라고."
"어중이떠중이는 아닐 거에요. 남작령이 두 번이나 졌고, 피스케스가의 적자가 납치까지 당했으니 모험가들도 왠만한 약골들은 걸러지겠죠."
성기사단의 단장이 이끄는 1000명의 모험가.
그들이 모두 스피카 성을 떠나 라스베가스와 던전으로 진격을 하면 막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스타킹...잘못 판 것 같은데."
"침대에서 쓰라고 하는 걸 전장에서 쓸 줄을 누가 알았겠어."
문제는 스타킹이었다.
"모험가들 진짜 입어? 남녀가리지 않고?"
"그래. 어떤 미친 놈들은 남자인데도 스타킹만 신고 싸우겠다고 하더라. 고간부만 갑옷을 덧대서."
"...으, 진짜 싫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자도 아니...흐흠."
파후우의 가격 책정과 스타킹의 품질이 문제를 일으킨 순간이었다. 라스베가스에 보급된 구형 스타킹 두 세 장을 겹쳐 입으면 어지간한 가죽갑옷 수준의 방어력이 되는게 문제의 화근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스타킹을 우리 군단에서도 입는다는 거야."
"타이즈."
메어리는 로브의 소매를 걷어올렸다. 스타킹을 억지로 잘라 덧댄 누더기와는 다른, 엄연히 메어리만을 위해 제작된 검은 옷은 이너아머나 다름없었다.
메어리 뿐만 아니라 분노의 군단 모두가 입고 있는 옷, 그것이 스타킹이었다.
"들키면 추궁당하는 걸로 끝나지 않겠지?"
"마왕군에도 납품하는 어둠의 상인이라고 의심받게 되겠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더이상은 무리였다.
분노의 군단에서 스타킹을 입지 않는 이상, 이미 인간 세상에는 너무 많은 스타킹이 배포되고 말았다. 그에 따라 자연히 아발론에 있는 메어리와 그에이로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이러다가 진짜 큰일나는 거 아니야?"
"한 철 장사 했다고 생각하면 돼. 스피카 성에 있는 마석들은 전부 다 긁어모았어. 서큐버스들도 쌓인 걸 먹어야 높은 마석이 나오지, 매일같이 찾아오는 놈들 상대로는 과로사야."
낮의 아발론은 외지에서 오는 모험가들로 호황.
밤의 아발론은 매일같이 찾아오는 성욕의 노예들로 호황.
벌이는 확실히 괜찮을 지 몰라도 기사단장이 전면전을 벌이면 사실상 끝장이었다. 무조건 들킨다.
"...안되겠네. 최후의 수단을 쓰자. 아빠 설득하러 가야겠어."
"뭔데?"
"우리 아빠가 제일 잘 하는 거."
메어리는 살기어린 눈빛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선빵."
* * *
"환영한다. 시스템은 역시나군. 흐흐."
나는 내 앞에 떠오른 창을 슬쩍 손으로 치웠다. 그리고 다른 ★4들에게도 물었다.
"너희는 어떠냐?"
"...나도 함께하겠소."
"나도."
"음머."
한 명이 나서니 다른 이들도 용기를 얻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도합 여섯의 미노타우르스가 인간박이가 되기를 자처했고, 나는 그들을 모아 포털 쪽을 가리켰다.
"너희는 우선 우리 군단의 본진에 가서 환영식을 기다리고 있거라. 승전의 축하연에서 너희를 소개하도록 하마. 루나, 쿠키엘프들을 붙여 이들을 본진으로 보내다오."
"알았어. 너희들, 혹시 자원자 있니?"
루나는 혹시라는 단서를 붙였으나, 쿠키엘프 중 셋 정도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새로이 우리 군단에 들어온 여섯 미노타우르스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머지 놈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럼 그렇지. 눈길이 다 그쪽으로 돌아가는 데 아닌 척 하기는. 흐흐, 짖궂기는."
"호기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하지요. 그러는 주인님도 참 짖궂으십니다?"
샤이탄은 능글맞게 웃으며 다른 미노타우르스들을 눈으로 가리켰다.
"거짓말도 잘 하시고. 사실 살-"
"불만이냐?"
"아니오, 역시 주인님이다 싶어서요."
샤이탄은 허공을 손등으로 툭툭 두드렸다. 같은 시스템창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역시 샤이탄은 내 진의를 진작에 눈치챘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만들었다.
"너희, 통로에 있는 놈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어깨에 '1++'라는 문신을 그렸다. 그리고 ○로 문신을 마감했다.
"너희는 가만히 이곳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던전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오?"
"입 다물어라. 쫓아내기는 할 거다. 잠깐 네놈들과 쟤들의 구분이 필요해서."
나는 이번에는 함정의 앞에 선 미노타우르스들에게 다가가 각각 '♂++'라는 문신을 그렸다.
"흐흐, 궁금하지? 문신의 모양이 다른 거."
둘 다 우리 군단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하지도 않은, 던전을 떠나겠다는 선택을 내린 이들이건만 왜 다른 표시를 하고 따로 모아두었나.
"그건 말이다, 네놈들 대가리가 반골이가 그런 것이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통로앞의 미노타우르스-1++-들의 표정이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함정 쪽-♂++-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다 왜 갈렸는 지 이해를 못하는 얼굴들이구만. 어디 4성 부하들도 포털로 넘어간 것 같으니 본색을 드러내볼까."
짝짝!
내가 손뼉을 치기 무섭게 쿠키엘프들이 반은 통로를 향해, 그리고 반은 함정을 향해 신속히 대형을 갖췄다. 한쪽으로 몰아둔 미노타우르스를 원형으로 둘러산 포위섬멸진이었다.
"나 군단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내가 보낸 수신호에 루나와 쿠키엘프들이 활을 다시 들어올렸다. 죽이지 않고 던전에서 내쫓겠다는 선택지를 골랐건만, 나는 그들을 향해 무기를 들이밀었다.
"뭐, 뭐하는 것이오! 약속이 틀리잖소!"
"약속? 약속같은 소리하네.
나는 통로 쪽의 놈에게 중지를 들어올렸다.
"내가 우리 군단에 들어오지 않을 놈들을 상대로 왜 편의를 봐줘야 하지? 애초에 너희는 나의 〈포로〉가 아니던가."
"그, 그런?!"
"마물은 던전 주인의 것. 던전 주인인 하겐티가 죽었고, 이제 내가 이 던전의 주인이 되었으니 네놈들 또한 나의 것이지. 그래, 포로. 죽이든 살리든 구워먹든 번식용으로 쓰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다."
이제 이 던전은 내 거다.
그러므로 이 던전에 소속된 모든 것들 또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겐티보다 잘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하겐티를 이긴 자. 그렇다면 너희는 당연히 내 말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그렇게 좋게좋게 얘기할 때 넙죽 감사하다며 받아들여야지."
아군이 되지 않은 자들을 풀어주는 건 버진 엘프들로 족하다. 그리고 그들은 일부러 풀어줬다가 나중에 우리 던전을 공격하면 포로로 만들어 합법적으로 범할 계획으로 풀어준 자들이다.
'엘프들 때랑 지금이랑 경우가 다르지.'
무차별 참수를 한다고 하여 내 여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어디 죽은 하겐티가 부하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겠는가.
"새, 생각해보니 인간과 해도 좋을 것 같소! 군단에 들어가겠소!"
"네 놈의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내 시스템으로 이미 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인단 말이다!"
던전의 부하에게는 보일 리가 없다. 일반 부하들에게도 보일 리가 없다.
"포로인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 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말이다!"
〈굴복〉 자신보다 강한 적에 굴복은 하였으나, 인간과 박았다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떠나 힘을 기르면 더러운 인간박이들을 없애 마족의 명예를 되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면종복배.
통로에 선 놈들은 하나같이 나를, 오크들을, 우리 군단을 싸잡아 경멸하며 뒷통수를 칠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흐흐, 몰랐지? 포로가 된 놈들에 대해서는 시스템만 있으면 참 편하단 말이야. 상대가 진짜로 굴복한 건지, 아니면 뒤에서 칼을 갈고 있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거든."
내 예상이지만 솔로몬이 예전에 한 번 부하에게 크게 뒷통수를 맞은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포로가 된 존재에 한해서만 그 본색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설정해 둘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한 쪽은 아예 뒷통수를 치려고 하고 있고, 한 쪽은 우리 군단을 싸잡아 경멸하고 있군. 인간박이라고 말이야. 안타깝도다, 안타까워. 이 땅에 살아가는 다같은 생명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 모자라거늘, 어찌 네놈들은 인간과 화합할 줄을 모르는 것이냐."
"올커니! 저 악귀가 본색을 드러냈소!"
"인류 연합의 끄나풀이다! 마왕님이시여, 저자에게 저주를!"
"그 마왕님이 예뻐해주셔서 군단의 주인이 된 게 나다, 이 소갈딱지 없는 놈들아."
나는 놈들 대신 하겐티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부하 교육을 잘못했으니, 두 번 죽어 마땅하다.
"요, 용서해주시오! 앞으로 잘하겠소!"
"버스 떠났다. 호의로 대했을 때 주제파악을 해야지."
이미 6명의 미노타우르스를 영입했다. 이곳에는 그저 세기도 귀찮은 미노타우르스 여러 마리가 있을 뿐이다.
"나는 하겐티 던전을 점령하러 오면서 하나 계획을 세웠다. 그건 우리 사랑스러운 라임과 슬라임 드래곤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육성 플랜이었지."
레벨링.
공병 역할을 주로 하는 슬라임들이 레벨을 올리려면 마석을 먹어치우거나, 아니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먹어치우는 방법 뿐이다.
"1++. 너희는 우리 군단에서 추방한다. 어라? 왜 우리 땅에 외부인이 있지? 침입자는 죽어야지."
"이, 이런 억지를…!"
"내가 억지 부리기 전에 군단에 들어왔어야지. 위험의 싹은 제거한다. 우리 군단의 적은 사형에 처한다."
나는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얌전히 슬라임들의 경험치가 되어라."
파바박!!
쿠키엘프들은 미노타우르스들이 저항하지 못하게 급소를 정확히 사격했다.
쿵, 쿠궁!
힘줄이 저격당한 미노타우르스들은 하나 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통로 너머에서 꿈틀거리는 형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라임, 배부를 때까지 먹어라."
꾸르륵.
"...그래, 나머지 남은 건 애들 나눠주되 남기지 마. 라인이 거는 나중에 하나 구해주마."
라임과 슬라임 드래곤들은 살아있는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물고 통로 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 놈들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경련과 함께 축 늘어졌다.
"마음 속으로라도 우리 군단에 반기를 들면 이렇게 되는 거다. 생각은 할 수 있지. 근데 저 놈들은 계획까지 세웠어. 흐흐흐."
원망할 거라면 속내까지 시스템으로 알아채게 만들어준 솔로몬에게 원망하기를. 나는 함정 앞에서 제대로 굳어버린 숫소들-〈♂++〉들에게 몸을 돌렸다.
"너희는 속으로 반기를 들지는 않았으나,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지. 포로는 놔둬봐야 아무 쓸모가 없이 인구수만 차지하거든."
내 말에 ♂++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내가 딱 한 번만 기회를 더 주겠다. 쿠키엘프들은 모두 미노타우르스를 구속하라. 스스로 발만 움직일 수 있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을 묶어라."
쿠키엘프들이 활을 내려놓고 잽싸게 미노타우르스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죄인이 되었다.
"나의 영입을 거절한 죄, 죽어마땅하다. 하지만...감히 1++처럼 우리 군단을 도모하려고 하지 않은 걸 감안하여, 너희에게 내 마지막 자비를 베풀도록 하마. 이게 나의 마지노선이다."
♂++ 미노타우르스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하는 즉시 통로 밖으로 끌려나가 오도독오도독 씹히게 될 게 뻔했기에.
"너희는 복상사형에 처한다."
"좋소. 슬라임에게 먹히는 것보다는...뭐요?"
"너희는 목장이 아닌 '둥지'로 갈 것이다."
하피 에일로들은 자지가 필요하다. 하피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몸집에 어울리는 딱 맞는 사이즈의 자지가.
"가서...싸다 죽어라."
다 죽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미노타우르스는 이미 여섯 명 들어왔으니까.
========== 작품 후기 ==========
라스타니스 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