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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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소랑 관련된 다큐를 본 적 있거든? 근데 거기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눈망울이 너무 똘망똘망한 거야. 그게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그게 미노타우르스들을 살려주신 이유입니까?"
"...아니, 뭐. 불쌍하잖냐. 주인 잘못 만나서 개처럼 고생하던 애들인데. 한 번 기회는 줘야지."
던전 공략 이후.
플라우로스-오리아스 전선에서 승전보를 알렸던 샤이탄은 나의 승전보 화답에 곧장 하겐티 던전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살려준 17명의 미노타우르스를 보며 난감해했다.
"이들도 영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원하는 놈들은?"
"...미노타우르스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평균 3.7성 정도 되니 우수한 전력은 충분하죠. 충성심은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미노타우르스들은 무릎을 꿇은 채 나와 샤이탄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엘프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휴식 중입니까?"
"휴식이라면 휴식이지. 전리품을 챙기러갔다."
륜과 루나에게 하겐티 던전의 안으로 들어가 재화를 챙겨달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라임이 슬라임 드래곤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으니, 깊숙히 숨겨놓은 마석도 최하급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찾아낼 것이다.
'괜히 포로들에게 찾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샅샅이 뒤지는 편이 나아.'
하겐티같은 놈의 부하였다는 동정과는 별개로, 포로에 대한 관리와 구분은 철저히 해야했다. 미노타우르스들은 이번 쟁탈전에서 우리가 붙잡은 포로다.
"미노타우르스들아. 너희에게 세 가지 선택권을 주마."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쳐들었다.
"하나, 이곳을 떠나는 것. 약간의 마석은 쥐어줄테니,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라."
버진 엘프들을 상대로 제안을 했던 것과 똑같은 추방령이었다.
"둘, 우리 군단에 투항하는 것. 분노의 군단은 언제나 새로운 인재를 환영한다. 특히 너희처럼 우수한 피지컬을 가진 존재라면 더더욱."
평균 3.7이라는 높은 등급, 평균 60레벨을 훌쩍 뛰어넘는 육성상태, 일 대 일로 싸우면 쿠키엘프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전투력, 그리고 눈으로 대충 훑어봐도 아랫도리에 30cm 자를 하나씩 달고다니는 피지컬까지.
"개인적으로 나는 너희들을 몹시 환영하는 바이다. 물론 너희들이 우리 군단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조건이 하나 있지."
"무엇입니까?"
"인간박이."
미노타우르스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우리 군단에 들어오는 모든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었다.
'토익 같은 거지.'
"우리 군단은 종족간의 차별이 없다. 오크가 엘프와 하는 것처럼, 인간이 하피와 하는 경우도 있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너희들 모두 수컷이라면...미노타우르스가 거대 조인을 상대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기본적으로 인간 여성과 하게 되기는 하겠지."
"으...."
역시나 미노타우르스 중 몇몇은, 아니 대부분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편견과 종족에 대한 선입견을 뛰어넘는 관계. 그것이 내가 그리는 우리 군단의 이상향이다. ...플라토닉 뿐만 아니라 에로스도 섞인 라스토피아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에이, 젠장. 내가 소들 데리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거근의 우수한 전사. 미노타우르스들은 할파스 던전에 배치된 하피 에일로들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였다. 몸집도 비슷하고 마침 그곳 사이즈도 얼추 비슷하니 하피 에일로들도 몹시 좋아할 게 분명했다.
"군단에 투항하거나, 아니면 여기서 사라지거나. 이 자리에서 선택해라."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절개를 지키는 것?"
나는 내가 걸터앉은 하겐티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너희들이 알고 있던 하겐티 던전은 오늘부로 영영 끝이다. 원하는 자가 있으면 말하라. 하겐티의 곁에 눕게 해줄테니. 하나 실험해볼 것도 있거든."
마족들은 대게 그 근간이 되는 짐승과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미노타우르스는 머리 빼고 전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또 ★~★★의 낮은 등급에서는 짐승의 모습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소머리 인간을 죽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어도, 엄연한 육우를 도축하는 것은 또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선택하라. 10분의 시간을 주마."
나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줬다. 그리고 잠깐의 짬을 이용해 샤이탄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샤이탄. 네가 양보하거라."
"이번만큼은 안 됩니다. 주인님의 것으로서 드리는 직언이자, 군단의 방향을 제시할 군사로서 드리는 말이옵니다."
"싫다. 정녕 내 뜻을 꺾을 셈이냐?"
"이번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다른 건 몰라도 던전 운영과 군단 전체 운영에 있어서 나와 의견을 기탄없이 교환할 수 있는 사람은 군사 역할을 맡은 샤이탄 뿐이다. 그런 나와 샤이탄의 의견이 갈리게 된다면, 중재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마땅찮다.
"하겐티 던전, 서브던전으로 간다."
"이름을 취하시죠. 하겐티가 되어주십시오."
쟁탈전의 전리품.
〈하겐티〉라는 이름과 48위 던전의 주인.
나는 지금까지 숱한 던전을 점령하면서-심지어 할파스 던전에서까지도 선택하지 않았던 쟁탈전 이후의 이름에 대한 세 가지 선택 중 두 가지 방향에 대하여 샤이탄과 의견 대립이 생겨버렸다.
"서브 던전으로 만들어서 소가 나오면 우리 소고기 실컷 먹는다니까!!"
"언제까지 63위 등위로 계실 겁니까...! 군단장이면 슬슬 높은 등위로 올라가셔야죠!"
"싫다! 삼시세끼 소고기 구워먹을 거야! 모닝 스테이크! 서브던전에서 소 세 마리씩만 도축해서 끌고 나와도 으아, 업진살 살살 녹을 것 같다!!"
"육우 말고 진짜 미노타우르스가 나오면 인간형은 찝찝하다고 안 드실 거잖아요!"
미노타우르스들이 들리지 않게, 나는 샤이탄과 사뭇 유치해보이는 말싸움을 시작했다.
"사자 고기도 질렸어! 소고기 먹자!"
"등위 바꾸셔야죠!"
"...생각보다 목소리가 높았다. 일단 저 놈들 안 들리게 하자꾸나."
"예. 그쪽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님, 제가 감히...."
샤이탄은 시스템창을 열었다. 나 또한 시스템창을 열었다.
"주인님께 키배를 걸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 * *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던전 주인 고유의 것이다.
던전 주인이 아님에도 시스템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건 군단장을 보좌하도록 하복부에 시스템 사용 권한을 부여받은 인장-마왕의 일곱 딸들만 가능하다.
"재밌네."
그리고 여기, 던전 주인도 마왕의 딸도 아니지만 남의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는 존재가 파후우의 시스템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확실히 샤이탄을 잘 보낸 것 같아."
"후우, 뭐가...?"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흑발의 소년은 자신과 닮은 흑발의 여인-에스투에게 질문했다.
"우리가 점찍은 차기랑 우리가 가장 아끼는 딸. 케미가 정말 잘 맞는 걸."
"네가 점찍고 네가 가장 아끼는 거지. 나는 모두 똑같이 사랑해."
"그런 사람이 루시펠에 대해서는 왜 그런 꼴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을까? 흐흐."
"......어디가서 윤간 당하는 것보다는 첩실이라도 하게 해야지. 그래서 보자. 무뭐가 잘 보냈다는 거야?"
"지금 둘이 싸워."
"뭐?"
소년은 식겁하며 에스투의 곁으로 다가갔다. 둘이서 함께보는 화면이 크게 확장되었고, 한 명의 오크와 한 명의 서큐버스가 장문의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서브던전으로 만든다고 하여 반드시 육우가 나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높은 확률로 미노타우르스, 소머리 인간이 나오겠죠. 결국 마석과 경험치만 파밍할 수 있고,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소고기는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높은 던전의 등위가 필요하다면 굳이 하겐티가 아니더라도 다른 40위권으로 노리면 그만이다. 솔로몬의 던전이 전부 몇 개더냐? 72개다. 우리가 점령한 38위 할파스 던전부터 48위 하겐티 던전까지 전부 공략 가시권이다. 당장 47위의 던전을 공략하고 이름을 가지면 그만 아니겠느냐?]
[47위는 부알입니다, 부알.]
[......그럼 46위로 하지.]
"아무렴 내가 짓기는 했지만 부알보다는 비프론스가 더 낫지."
"어감만큼은. 그보다 쟤 말 잘하네. 굳이 48위 할 필요가 없기는 하지."
소년과 에스투는 화면의 아래에 문구를 적었다.
〈라스토론. 하겐티의 이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차피 전부 다 때려잡을 놈들이다. 높은 이의 이름을 굳이 당장 취해야 할 이유가 있더냐?]
[40위권 63위 던전의 주인이 계속 하극상을 일으키는 건 몹시 위화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 번 설명해보거라.]
[솔로몬 72 던전을 9개의 등급으로 나누면 안드라스 던전은 하위 8등급에 해당하는 던전입니다. 8등급의 던전에서 어느날 갑자기 5등급, 4등급에 해당하는 던전을 상대로 싸움을 걸면 던전 주인은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이 놈이 미쳤나? 꽁승이군. 적당한 병력을 보내서 주제도 모르는 놈을 박살내버려야지.]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63위가 나한테 싸움을 걸어? 왜? 이 놈 혹시 든든한 뒷배가 있는 거 아닌가? 아, 그렇구나! 63위는 군단에 소속된 던전이다!]
"샤이탄이 머리 잘 돌아가네."
"1자리 수 안에서 하극상 일으키는 거면 몰라도 20계단 넘게 껑충 뛰어서 도전하는 건 의심할만 하지."
둘의 의견은 샤이탄의 쪽으로 기울었다. 파후우 또한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하지만 오히려 기만책이 될 수 있지. 우리 군단의 본진은 63위, 나의 던전이다. 그 누가 38-56-63-64 중 63이 본진이라고 생각하겠느냐? 앞으로 멀티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적들은 본진을 더욱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맞지."
"상식적으로 제일 높은 38. 한 번 꼬아서 생각한다면 그 다음 56...정도가 되려나?"
둘의 의견이 이번에는 파후우 쪽으로 기울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주인님. 기존의 63위 던전은 이미 '허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님의 쟁탈전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적의 침입을 허용했을 때 치명적으로 당할 수 있는 본진에서 포털을 여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포털을 열고 직접 공격하러 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직접 전진기지로 거처를 옮기고 네가 보급을 담당하겠다? 확실히 내가 뒷방에서 부하들에게 일임하는 스타일은 아니기는 하지. 그 말이 옳다.]
"...얘네들 그냥 전장으로 부를까?"
"아서라. 아직 덜 여문 애들이야. 성검 날아다니는 전장은 위험해. 최소 10위 안으로 들어오면 모를까."
[그렇다면 더욱더 보급의 중요성을, 식량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 않느냐? 자고로 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귀중한 가축이다. 우리 던전에서 확보하고 있는 서브 던전 중에 식량이 나올만한 곳이 있더냐? 슬라임은 우리가 간식 겸 흥분제로 먹는 것이니 논외고, 그나마 최근에 나온 사자 고기는 잡내가 너무 심해 주식으로 먹을 건 못 되지.]
[보급에 대한 문제는 십분 공감합니다. 던전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비하는 식량도 늘어나게 되겠죠. 미노타우르스까지는 괜찮을 지 몰라도, 계속 더 늘어난다면 식량 수급에 난항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주인님, 기존에 있는 마물을 마석소환 한다면 어떻습니까?]
"누구 딸인지는 몰라도 어휴, 무섭네. 지금 마왕군에서 보낸 병력들을 식량으로 쓰겠다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마석 소환으로 파견을 보낸 시점에서 나의 손을 떠난 문제다. 어떻게 쓰는 지는 던전 주인의 문제지."
"어머, 말 돌리기는. 그래서 귀하게 낳은 병력을 제멋대로 써먹어도 좋다 그거야?"
"식량보다도 더한 용도로 쓰는 던전 주인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 정도로 책을 잡을까? 저리도 열심히 마왕군을 위해 애쓰는 이들을."
파후우와 샤이탄의 의견 대립이 소년과 에스투의 논쟁으로 치달았다. 그 사이 둘의 논쟁은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뭐야, 뭐 문제 생겼나?"
"지금 둘은 어디있지?"
"48위 하겐티 던전이니까...야!"
소년은 다짜고짜 전방으로 마나를 흩부렸다. 에스투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소년이 쓴 〈천리안〉의 마법에 의해, 파후우와 샤이탄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거 다른 애들이 보면 편애한다고 뭐라고 할 걸?"
"하든지 말든지. ......하이엘프? 지금 하이엘프 때문에 이 대화가 멈춘 건가?"
파후우와 샤이탄은 마치 하이엘프에게 누구의 의견이 옳은 지 결정해달라는 듯 말로써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 음.... 제 생각은 말이에요....
소년과 에스투는 직감했다. 둘의 논쟁은 저 하이엘프의 의견에 따라 결론이 날 것이라고.
- 싸우지 말고 섹스하시는 게 어때요? 침대에서 이긴 사람 의견이 정답인 걸로.
"......푸하하하하!!!"
소년은 배를 잡으며 광소했다. 어찌나 크게 웃는지 에스투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싸우지 말고 섹스.... 흐하하! 정답이다, 하이엘프! 그래, 명안이로다!"
소년은 물개박수까지 치며 눈을 반짝였다.
"분노의 군단이라.... 물리적으로 제일 가까운 던전이 어디지?"
"누구한테서?"
"63위."
"아스타로트."
"오호. 그 아이가?"
소년은 여성보다도 더 단아한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이왕 이름을 갈아치울 거라면 29위의 이름이 더 낫지 않겠나? 흐흐."
"...싸움붙일려고?"
"그 정도 역경은 이겨내야지. 걱정마라. 못해도 3:7 정도의 전력비가 되도록 도와주기는 할테니."
소년은 에스투를 번쩍 들어올렸다.
"오랜만에 수명 좀 깎아볼까. 환생결정 하나 만들게 좀 도와주겠나?"
"...어머나. 누구 덕분에 내가 대단하신 분 손길도 오랜만에 받아보네. 맨날 바쁘다고 핑계대시던 분이-흐읏?!."
"조용."
소년의 몸이 검은 안개에 휩싸이며 변하기 시작했다.
"하이엘프 말 못 들었나? 싸우지 말고 뭐하라고 했어?"
"......섹스♥."
에스투는 남자의 목에 팔을 걸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륜은 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