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비만 오크 3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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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후우-하겐티 전선, 포털 입구.〉
[주인님, 급보입니다. 릴리가 이끄는 모험가들이 오리아스 던전을 점령했습니다.]
"잘했다. 누구 다친 애들 없지?"
[물론입니다. 여차하면 플레어 판테라를 투입하려했습니다만, 역시 던전 공략의 숙련자들 다웠습니다. 다소 건방지기는 하지만.]
"적당히 넘겨줘라. 애들이 칼밥 먹고 살던 애들 아니냐. 다친 사람 없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지."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한 곳에서 승전보가 울렸다.
샤이탄이 보좌하는 플라우로스 군은 플레어 판테라가 침입자들을 무사히 격퇴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인간 모험가들이 선두에 서서 오리아스 던전으로 침입했다.
'일부러 제일 약한 곳에 투입했는데 다행이군.'
다들 던전을 공략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 그런지 아주 손쉽게 오리아스 던전을 공략했다. 아마도 플라우로스에게는 오리아스의 처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재촉하는 시스템창이 뜨지 않았을까 싶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머릿속에 온갖 가정이 떠올랐다. 샤이탄의 목소리는 심각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혹시 던전에 쌓아놓은 재물이 하나도 없더냐? 혹시 상급 마석 안 나왔냐? 혹시 다른 세력의 끄나풀이거나 그랬냐? 그것도 아니면 당첨이야?"
[진정하시죠. 우선 재화와 마석은 차고넘칩니다. 저장고에 상당히 많은 양의 물건을 쌓아뒀습니다. 상급 마석은 지금 모험가들이 열심히 분류하고 있습니다.]
샤이탄의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전리품이 많은게 문제라면 확실히 문제긴 했다.
"모험가들 괜히 빼돌리지 않게 관리 잘 해야한다."
[안그래도 지금 플레어 판테라를 일부 파견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릴리가 감시할 겁니다.]
"릴리라면 괜찮지."
견물생심. 모험가들이 마족이 아닌 인간인 이상, 자연히 막대한 재화를 보고 그릇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릴리는 금전욕보다 권력욕이 강한 여자니까.'
눈앞의 금은보화와 마석을 조금 빼돌려봤자 무엇하겠는가. 군단 내의 경제활동이 재화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기껏해야 군단에서 도망쳐서 다른 곳에 정착해서 쓸 종잣돈 정도가 끝일 것이다.
'그럼 저승길 노잣돈 되는 거지.'
전리품을 빼돌리는 자, 사형.
릴리는 내 성품을 알고 있다. 나 또한 릴리의 속내를 알고 있다. 릴리는 적어도 눈앞의 작은 재물을 탐내 자신이 그리는 큰그림을 스스로 찢을 소인배가 아니다.
"릴리 비르고 남작이라...흐흐."
릴리가 남작가문의 혈통은 아니다. 하지만 남작위에 오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를 위한 준비도 차곡차곡 스피카 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꼭 릴리가 아니어도 되기는 하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하고 어필을 하며, 이렇게 오리아스 던전을 공략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응당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줘야만 했다.
"금은보화는 라스베가스로 옮긴다. 에일라가 알아서 처분할 터. 마석은 본진에서 구분하라. 상급 마석이 있으면 바로 확보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인님, 진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또 뭔데?"
[오리아스가 도망쳤습니다.]
순간, 나는 사고가 멈췄다. 내가 알고 있는 도망이라는 단어와 샤이탄이 말한 도망이라는 단어가 다른 뜻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오리아스가 던전을 버리고 튀었단 말이더냐?"
[예. 부하들로 시간을 끌면서 주인만 도망쳤습니다. 비밀 통로를 발견했으나 이미 한참 전에 도망친 것 같습니다.]
"미친 놈."
그레모리의 경우처럼 점령군의 적장-내가 오리아스를 던전 주인으로 계속 인정해주면 죽은 부하들도 되살려 줄 수 있다.
그런데 아예 버리고 도망쳤다? 그건 진짜로 부하들을 칼받이로 쓰고 본인만 내뺀 미친 짓이었다.
"혹시 안 죽고 살아있는 놈 있나? 그 새끼 몽타주라도 따서 우리 군단 블랙리스트에 올릴까 하는데."
[없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었습니다. 던전을 버리고 떠난 탓에...플라우로스에게 〈오리아스〉의 선택권이 넘어왔습니다.]
"젠장. 그러면 어디가서 '예전에 오리아스 하면서 부하들 버리고 도망간 놈 찾습니다!!'해야만 튀어나온다는 얘기잖아. 썩을 놈."
언젠가 찾으면 반드시 주리를 틀어버리리라. 나는 오리아스라는 이름을 속에 곱씹으며 샤이탄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름에 관한 정산, 오리아스가 도망친 진의에 대해서는 모든 던전 공략이 끝나고 난 다음에 하도록 한다. 쳇, 던전 주인이 도망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이런 식으로 알아버리게 되는군."
오리아스의 부하 리자드맨들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저 주인을 잘못만난 것이니, 다음 생에는 나같은 군주의 아래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레모리쪽은 아직이지?"
[예. 한창 싸우고 있는 듯 합니다. 혹시 인연소환에 오크 라이더들이 올라갔습니까?]
"아니, 아직은."
완전히 다른 던전으로 가버렸으니 전황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지만 아직까지 죽은 부하가 없고 '예비군'을 추가 요청하지 않는 걸 봐선, 그레모리가 우세인 듯 했다.
'이러다 내가 꼴찌하겠는데.'
상대가 48위기는 해도 그에 맞춰 전력 또한 차등을 두어 배치했다. 이러다 가장 강한 전력을 가지고도 가장 늦게 쟁탈전을 마무리하는게 아닐까.
'그건 안 되지.'
자기가 먼저 공략에 성공했다고 기고만장할 그레모리가 침대에서 어디까지 기를 펴고 있을 지 모른다. 물론 살짝 기대되기는 하지만, 환생한 그레모리를 상대로라도 내가 리드해야했다.
"그레모리보다 먼저 공략해서 그걸로 걸고 넘어져야지. 샤이탄, 그레모리 쪽을 지원해다오. 나는 이제 슬슬 시작하겠다."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뚝. 샤이탄과의 연락을 끊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몸을 돌려 쿠키엘프들이 구축한 진의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미안하다! 아내 연락이라서!"
"오크 주제에 아내라니, 건방지기 짝이없구나!"
"딱봐도 결혼도 못하고 머리만 벗겨지면서 독수공방하는 미노타우르스 새끼가 대화를 재개하자마자 지랄이네?"
쾅쾅쾅!!
황금갑옷의 미노타우르스-하겐티는 발로 땅을 구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내가 잠깐 아내랑 연락하는 거 기다려준 건 고마운데, 그렇다고 남의 여자한테 그렇게 질투하면 되냐?"
"네 여자? 흥, 내 여자겠지! 네가 방금 연락을 취한 그 년, 내가 침대에서 노예로 써주마!"
"저 개씨발놈이?"
아차. 나도 모르게 그만 쌍욕이 나왔다. 옆에 륜과 루나, 그리고 다른 쿠키엘프들이 있는데 언행에 주의를 해야만 했다.
'욕하면 지는 거다.'
비속어는 쓰지않고도 상대방을 열받게하는 방법은 많다.
'공성전에서 상대를 욕해서 욱하게 만드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그러니까 내가 하겐티를 열받게 만들 지언정, 내가 화가 나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안된다.
"흐하하, 좌우로 검고 흰 엘프를 데리고 다니다니! 오크 주제에 사치로다! 내 앞에 좌우로 앉히고 내 세번째 뿔을 빨게하면 되겠는 걸!"
부-----웅!!
하겐티의 머리 위로 해머가 날아갔다. 하겐티는 급히 머리를 숙였고, 해머는 허공을 가로질러 하겐티의 뒤로 날아갔다.
어디서 날아간 해머인가 했더니, 내 손이 비어있었다.
"어이쿠. 나도 모르게 그만."
욕보다 손이 더 먼저 나가버렸다.
"미안하다, 얘들아. 무기 잃어버렸다."
"아뇨, 괜찮아요. 저희가 죽여버리면 돼요."
"언제든지 말만 해. 아니다, 나도 너처럼 그냥 루나포 쏴버릴까?"
나와 륜, 그리고 루나는 서로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었다. 군단의 이름이 분노의 군단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싸구려 도발인 걸 알면서도 자꾸만 화가 치밀어올랐다.
"던전 구성도 마음에 안 들어, 종족도 마음에 안 들어. 던전 주인 놈은 하나같이 다들 쓰레기 뿐이고. 좋다. 이 던전은 서브 던전으로 하자. 매일매일 들어가서 미노타우르스들 모가지를 꺾고 뿔을 잘라버리는 거야."
샤이탄이 하겐티의 이름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했지만, 저런 모욕을 두고도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하겐티가 저지른 짓은 미노타우르스 종족 전체에 분풀이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참상이었다.
"후하하! 겁먹었나?! 지금이라도 엘프들을 바치면 목숨만이라도 살려주도록 하지! 옷을 입은 것부터 아주 내 몸 좀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구나!"
"하. 진 치고 있으니까 선공 못 걸어서 끌어내려고 하는 속셈을 누가 모를까봐."
수성의 이점을 포기하고 먼저 달려들면 우리가 불리. 그러나 여기서 가만히 버티고만 있으면 쿠키엘프들의 속은 말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한 방 먹여야 한다.'
하겐티를 빡치게 만들면서 그들이 먼저 우리 쪽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할 방법.
"륜, 루나. 너희 둘 중 한 명이 나를 도와줘야겠다."
하겐티의 도발은 분명 화가 나지만, 그 도발을 역이용하여 하겐티가 먼저 우리가 친 진으로 돌진하게 만들어야했다.
"뭔가 방법이 떠오른 거야? 말만 해. 화살처럼 정확히 심장을 저격할 자신 있어."
"말씀해주세요. 하겐티 혀를 잘라오라는 임무라면 제가 맡을 게요."
"......둘 다 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둘을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답은 라스다."
* * *
"흐흐흐, 보았느냐? 열받아서 진지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을?"
"대장. 엘프들 하나같이 대장한테 화살 쏘려고 벼르고 있던데?"
"그게 다 이 몸의 뿔에 박히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까. 다크엘프라는게 뭐냐? 나 처녀 아니오, 나 마족한테 범해졌고 하고 대놓고 드러내고 다니는 거다. 아주 변태들이 따로 없지. 복장봐라."
하겐티는 진지 위에서 여전히 활을 겨누고 있는 다크엘프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모두 가슴과 고간부를 제외한 모든 곳을 검은 천옷으로 가리고 있었다.
"흉부랑 아래는 검은 가죽으로 된 옷으로 보호하고 있지. 아주 대놓고 몸매들 드러내고 말이야. 흐흐, 꼴리게 해서 판단력을 흐트리게 하는 거라면 오산이다. 그렇지?"
"대장 말을 들으니까 더 먹고싶어졌소."
"그래, 그게 정상이지."
다크엘프들의 복장은 미노타우르스들의 정복욕을 대놓고 자극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크엘프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 또한 음심을 부풀어오르게 하는데 크게 한몫했다.
"제일 젖통 큰 다크엘프, 그리고 유일하게 하얀 하이 엘프는 나의 것이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마음껏 써먹거라."
"대장, 나 예전부터 엘프를 먹어보는게 꿈이었소."
"어느쪽으로?"
"둘 다, 크흐흐."
하겐티와 미노타우르스들이 엘프들을 상대로 저열한 말을 주고받는 사이, 굳게 닫힌 나무 울타리의 위로 엘프들의 대장인 오크가 올라왔다.
쿵!
망루 한 쪽의 난간이 부서졌다. 덕분에 망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훤히 드러나게 되었다. 오크는 사방이 훤한 판자 위에 서서 고개를 오연히 치켜들엇다.
"하겐티. 네놈은 우리 군단과 함께 할 수 없다."
"크흐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강한 자의 특권이지. 네가 아니다, 하찮은 오크여."
"하찮은지 아닌지는 직접 보면 알겠지."
펄럭----!!
오크는 자신의 로브를 좌우로 펼쳤다. 다크엘프들이 화살을 쏘아 만들어낸 로브를 뒤로 펄럭이게 만들었고, 하겐티는 오크의 모습을 보고 구토감이 치밀어올랐다.
"씨발."
오크는 다크엘프들과 마찬가지로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있었다. 하겐티는 자신의 눈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하게 좋은 것을 순간적으로 저주했다.
하필이면, 보고말았다.
"이 더러운 새끼!"
"고작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으냐?"
오크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뼉을 두드렸다. 그러자 오크의 로브를 흩날리던 바람이 멈췄고, 두 명의 엘프가 오크의 양 옆에 섰다. 하얀 엘프와 검은 엘프. 하겐티가 미리 점찍어 둔 두 명의 엘프였다.
"이게 바로 엘프들을 이끄는 자, 여왕의 품격이다."
"푸흡."
"히힛."
두 엘프는 웃으며 오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겐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기에 있어야 할 게 난 데...씁...."
두 명의 엘프가 오크를 향해 복종한다. 하겐티는 저들을 산 채로 잡아 오크가 보는 앞에서 똑같이 하게 만들 것이라 다짐했다.
"흐흐, 고작 무릎을 꿇은 것으로 뭘...."
하겐티는 말문이 막혔다. 오크는 로브를 좌우로 펼치며 두 엘프를 감쌌다. 오크의 앞에 아주 작게 벌어진 틈이 있기는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사락, 사락.
무언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미노타우르스들의 귀가 쫑긋 섰다.
할짝.
무언가, 핥는 소리가 들렸다. 미노타우르스들의 입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할짝, 할짝, 쮸릅, 후아.
"이, 이거 설마...."
사락.
로브 아래에 감춰진 두 엘프가 로브 밖으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두 엘프는 미노타우르스들에게 과시하듯, 볼 사이에 굵은 막대기같은 것을 대고 더할 나위없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쪽.
두 엘프는 좌우로 막대를 핥으며 로브를 닫았다. 오크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겐티를 비웃었다.
"네 세번째 뿔을 빨게한다고? 미안하지만 안 되겠는 걸."
오크는 손바닥으로 얼굴 앞을 흔들며 비릿하게 웃었다.
"둘은 지금 내 좆을 빨아야 하거든."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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