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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29화 (329/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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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우로스-오리아스 전선, 포털 너머.〉

"다들 오크, 하피랑 떡치느라 실력 죽은 건 아니지?"

릴리는 음흉한 얼굴로 모험가들을 둘러봤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모험가들이 남녀구분없이 전부 똑같은 경험을 해온지라, 릴리의 수위 높은 말은 그저 평범한 농담에 불과했다.

"방어구 상태 잘 확인하고. 혹시나 중간에 다치면 후방으로 바로 빠질테니까 그렇게 알아."

"다칠 일이 있겠나? 이게 얼마나 튼튼한 건데."

남자 모험가는 가죽 갑옷 사이의 얇은 내의를 살짝 들어올렸다. 스타킹과 똑같은 재질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게 제작된 '타이즈'는 남성 모험가들에게도 필수품이었다.

"페일 라이더들 상대할 때는 조금 긁히긴 했었지."

"그거 초기형이잖아. 그리고 지금은 지난 번 할파스 던전 때보다 더 두껍게 입었고. 어지간한 마물 발톱은 긁히지도 않을 걸?"

"그걸 실험하기 위해서 우리가 동원된 거긴 한데, 그렇다고 진짜로 막 몸 들이밀고 하지는 마. 지금 우리 지켜보고 있는 뿔달린 악마가 화낸다고."

[화 안 냅니다.]

릴리의 옆에 떠오른 투명한 수정구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릴리에게는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원격 통신이 가능한 마도구가 지급되었다.

[적이 눈앞에 있습니다. 괜히 잡담하다가 진짜로 상처입으면 주인님 뵐 면목이 없으니 집중하시길.]

"너 솔직히 말해. 이번에 크게 성과내면 얼마나 박히기로 했어? 한 세 번 싸주시는가?"

[...시끄러워요.]

릴리를 비롯한 모험가들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모험가든 용병 시절이든 놀려먹기 좋은 신입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호호, 상급 마석 하나 얻으면 우리한테도 좀 어떻게 침대 자리 빌려주나?"

[그건 안 됩니다.]

"칫, 까탈스럽기는."

구구구.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릴리와 모험가들은 무기를 들어올렸다. 통로의 맞은 편에는 리자드맨들이 무기를 들고 분노의 군단을 맞이했다.

"침입자들, 죽어라!"

"......풉."

릴리는 검을 움켜쥐고 앞으로 달렸다. 다른 모험가들 또한 릴리의 뒤를 따라 달렸다.

"이, 이 겁도 없는 것들!"

리자드맨이 모험가들을 향해 창을 찔렀다. 모험가들은 몸을 비틀며 공격을 피했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몸으로 받아냈다. 창날은 가죽갑옷을 스치며 빗겨나갔다.

"뭣?!"

"우리 다 겁쟁이야...라스. 죽는 것도 무섭고."

릴리의 허벅지를 스친 창날이 땅에 파묻혔다. 릴리는 리자드맨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래서 이길 수 있는 싸움 말고는 안 해."

서걱.

리자드맨의 목이 하늘 높이 튕겨올라갔다. 릴리는 로브의 겉에 묻은 리자드맨의 피를 닦아내며 호흡을 골랐다.

"그 분이 우리를 여기로 보냈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까 보낸 거야."

서걱. 파바박.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릴리와 모험가들은 날붙이에 묻은 리자드맨의 피를 털어내고 앞으로 전진했다.

"모험가로 구른 짬밥이 얼만데, 밥값은 해야지."

오리아스 전선에 투입된 모험가들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 * *

〈그레모리-알로켄 전선, 알로켄 던전 지하 1층.〉

"전멸...이라고?"

휘황찬란한 재물을 몸에 두른 트롤 왕, 알로켄은 부하가 가져온 소식에 화가 치밀었다.

"나의 자랑스러운 전차부대가 지금 전멸을 했다...그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트롤은 구부정한 허리를 굽히며 시선을 피했다. 알로켄은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듯한 기세로 석장을 내리쳤다.

"그게 말이 되냐?! 마녀의 던전에 전차 부대를 보낸지 고작 20분도 지나지 않았어!!"

"그, 그 20분 안에 전부다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이, 썩을 놈들!"

알로켄은 황급히 시스템을 열었다. 부하의 보고보다 솔로몬의 시스템이 더 믿을만했다. 그리고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진짜 다 뒤졌어!"

인연 소환의 리스트는 자신이 보낸 전차 부대가 그대로 목록에 올라있었다.

트롤과 돌연변이 늑대 마물을 하나의 개체로 묶은 〈전차트롤〉은 지금까지 숱한 도전자들의 목을 베어왔으나, 이번 만큼은 임무에 실패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거야?!"

"간신히 살아온 놈들에 의하면...."

부관은 온몸이 불탄 트롤의 보고를 전했다.

낙타 괴인을 고기방패로 세우고 적의 간부급으로 추정되는 이가 마법을 투하. 그런데 그 마법이 어지간한 4성 고레벨 마물의 대규모 마법이라, 전차트롤 부대가 손도 쓰지 못하고 전멸했다고 하더라.

"멍청한 놈들! 방어벽을 못 뚫어?!"

"고, 고기방패에 특화된 놈들인 듯 했습니다."

"남의 병력 품평을 해서 뭐해! 젠장, 내가 직접 나간다!"

알로켄은 휘황찬란한 황금전차의 위에 올라탔다. 전차의 앞을 몰고 있는 마물은 머리가 세 개 달린 숫사자였다.

"그레모리 년,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어딜 감히 나를 건드리는 것이냐! 할파스 따까리나 하던 년이!"

알로켄은 분통을 터뜨리며 저장고를 살폈다. 사용하기는 너무나도 아깝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병력만큼 의욕적인 병사들이 또 없다.

"중급마석 싹다 긁어와! 트롤전차 부대 되는대로 싹다 부활시켜서 역공을 펼친다!"

부관이 곳곳에 퍼진 중급마석을 모으는 사이, 알로켄은 인연소환으로 죽은 부하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며 던전의 동태를 살폈다.

〈알림〉 던전에 침입자 발생!

"이 썩을 놈들. 건방지게 포털로 넘어왔네?"

하나 둘 오와 열을 갖춰나가는 트롤전차들은 하나같이 씩씩거리며 울분을 삭혔다. 조 카멜의 벽을 뚫지 못하고 대형 폭발 마법에 몰살당한 분노는 응당 그레모리 세력을 향하고 있었다.

"너, 가서 정찰하고 와라!"

"끄어어어!"

가장 먼저 부활한 전차트롤은 고삐를 당기며 던전을 달렸다. 던전 내에서도 전차들이 달릴 수 있게 넓은 통로로 개조가 이루어져, 사실상 알로켄 던전은 천장있는 황야나 다름없었다.

"그레모리 년의 병력이라고 해봐야...허어."

정찰병의 시야를 통해 그레모리의 침투조를 본 알로켄은 짜증과 허탈감에 한숨을 토해냈다.

"이 년이 나를 엿먹이네?"

던전 주인마다 각자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전술이 있다.

"마냥 침대에서 엉덩이만 깔고 앉는 년인 줄 알았더니, 흐흐."

알로켄에게 있어서 전차의 기동성을 통한 야전이 장기라고 한다면, 그레모리는 휘하 병력으로 벽을 쌓아 강력한 마법을 투사하는 수비전이 장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 어디 한 번 나를 상대로 말 한 번 타보자 이거지!"

그래서 그레모리를 아주 제대로 깔아버리기 위해 먼저 선공을 했다. 그런데 그레모리가 먼저 공격을, 아무리 자신의 군대가 한 번 졌다고 해도, '기병'을 투입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얘들아!! 안방 마녀가 회전을 걸었다! 쳐진 엉덩이 들고 오셨으니 빨리 오와 열을 갖춰라!!"

부활한 전차트롤들은 알로켄을 중심으로 넓게 퍼졌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멀찍이 떨어진 넓은 통로에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왔구나, 할매젖마녀...?"

"누가 할매젖이야, 누가. 탄력있는 거 안 보여?"

전차트롤은 선두에 선 붉은 머리의 천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이전에 한 번 봤던, 이 남자 저 남자 잡아먹던 마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왠 순결한 처녀 천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레모리?"

"그래. 나야. 새로 다시 태어났지."

"너 원래 천사였냐? 그냥 꼬부랑 할매 마녀 아니었어?"

"던전 주인이되 남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 알아듣겠어?"

"......."

알로켄은 트롤이지만 제법 똑똑한 남자다. 그래서 그레모리가 하는 단편적인 말에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남의 아래에 들어갔군. 던전 주인이기를 포기한 거야. 할파스가 인장을 가진 건가? 그럼 네 뒷배는 군단인가? 그런데 왜 원래 이름말고 그레모리를 자처하는 거지?"

"질문 한 번 더럽게 많네. 다시 태어나고도 〈그레모리〉의 이름을 받았다니까?"

"......그건 참 부럽군. 좋은 주군을 얻었어. 축하한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제안할게. 우리 〈분노의 군단〉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푸하하하하!!"

알로켄은 허리를 젖혀 광소하며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트롤전차들은 저마다 고삐를 쥔 채 등에 묶어 둔 창을 꼬나쥐었다.

"난 누구의 아래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내 위에는 오직 솔로몬 님 뿐!"

"그래, 일단 한 번 형식상 말해봤어. 아깝네. 자지 하나는 튼실해서 종마 역할은 충분히 해낼 법도 한데."

"뭐...?"

알로켄은 칭찬인듯 조롱인듯 애매한 그레모리의 한탄에 당황했다. 그 바람에 선수를 그레모리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진격! 알로켄의 목을 가져와! 트롤의 피가 정력에 끝장이니까!!"

"네 년이 아무래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구나!!"

워울프를 탄 오크 전사.

돌연변이 늑대가 모는 전차를 탄 트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며 동시에 외쳤다.

"""죽여-------!!"""

* * *

〈플라우로스-오리아스 전선, 오리아스 던전 최심부.〉

"쪽팔려서 어떻게 살지? 자살할까?"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시기 전에 도망칠 생각부터 하시죠."

"야, 64위한테 발려서 도망친 거 알면 세상 마족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냐?"

"64위한테 발린 병신으로 알겠죠. 그래도 일단 사는게 중요하니까 도망칩시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겁니다."

도마뱀을 닮은 수인, 오리아스는 부관과 전황을 논의하며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포털을 통해 보낸 정찰대는 이미 전멸당했고, 오히려 적은 포털을 넘어와 정체불명의 진지를 구축했다.

"남의 던전에 진을 만들다니. 저거 좀 대단한데. 나도 나중에 해볼까?"

"자중하시죠. 저건 진을 만들면서 수비할 수 있는 병력이 충분하니까 가능한 겁니다. 우리는 그럴 힘이 없어요."

"64위는 가능한데? 그것도 우리 던전 상대로?"

"저게 64위 전력입니까? 못해도 40위권에서 파견되어 내려온 놈들이구만. 이 전력으로는 못 이겨요. 후퇴해야합니다."

오리아스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상대의 세력이 더 강해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나, 마족의 본성과 감성은 도저히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망할 놈들. 윗놈들한테 병력 받아서 하극상 일으켜서 이기면 좋더냐? 그거 다 고인물들이 청정수 데리고 재롱잔치하는 건데! 플라우로스 이 멍청한 것 같으니."

"그 멍청이한테 지게생겼잖습니까. 선택하셔야합니다."

부관은 오리아스에게 하얀 깃발을 건넸다. 항복을 의미하는 깃발에 오리아스는 표정이 복잡해졌다.

"어디로?"

"그걸 선택하라는 겁니다."

부관이 내민 하얀 깃발은 두 개였다. 하나는 절찬리에 던전의 부하들을 학살하고 달려오는 검은 로브의 무리를 향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리아스의 뒤에 놓인 비상 탈출구를 향해 있었다.

"이미 마계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께서 일곱 군단을 만드신 순간부터, 약자가 강자의 아래에 들어가는 건 필연이 되었습니다."

"어떤 강자를 따를 지 선택하라는 거잖아."

"예. 빈손으로 가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분께서는 주인님의 성품을 크게 마음에 들어하셨으니까요."

"...너는 이미 내 미래를 정했구나? 이 썩을 놈. 거기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거지? 너는 내 동생 아니었으면 뒤졌어."

"오리아스님이 제 형님이 아니었으면 제가 진작에 오리아스 하고 다른 편에 붙어먹었을 겁니다. 자, 빨리 선택을."

오리아스는 한참동안 부관-겸 동생을 노려보다가 하얀 깃발을 들어올렸다.

"좋아. 항복은 하지.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까. 그러니까 네가 선택해라. 지금 침입자들한테 무릎을 꿇을까, 아니면 네가 그리도 지지하는 그분에게 갈까?"

"주인님도 이미 정하셨잖습니까?"

오리아스는 비밀 통로로 향한 깃발을 들어올렸다.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부관이 비밀 통로의 문을 여는 사이, 오리아스는 저장고에 수북히 쌓인 마석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높으신 분을 찾아뵙는데 빈손은 그렇지 않냐?"

"지금 그거 챙기다가 저 미친 놈들한테 모가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주인님은 몸만 떡하니 갖다바치면 됩니다."

"...이 씨발새끼. 형을 남창으로 팔아먹고 자기는 높은 자리 차지하려하다니."

"꼬우면 여기서 죽으시던가."

"씨발, 나 뒤지면 너도 갈 곳 없잖아. 그래, 간다. 가."

오리아스는 들어올렸던 마석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부관이 벽을 두어번 두드리자, 마법으로 봉인되었던 석벽이 무너져내리며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야, 야. 시스템이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지금 여기로 가면 패배를 인정하고 던전 버리는 거라고. 다시는 던전의 주인이 되지 못할 거라고."

"군단에 들어가서 형님이 허리 좀 놀려서 기둥서방 하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던전의 주인은 되지 못해도 군단장의 침대 주인은 되겠구만."

"와, 던전 버렸다고 이제 오리아스 주인님이라고도 안 부르네? 너 내 동생이지만 좀 대단하다?"

"됐고, 형님은 인사 어떻게 할 지 그것부터 정하십쇼. 일단 갑시다."

부관은 오리아스가 잡고있던 깃발을 대신 흔들며 앞을 가리켰다.

"색욕의 군단장님께."

"......젠장."

잠시 뒤.

오리아스 던전을 진격하던 모험가들은 백에 이르는 리자드맨을 학살하고 심처에 도착했다.

그들을 맞이한 건 막대한 금은보화와 마석이었으나, 정작 던전의 주인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색욕(리얼)!

※스토리 전개상 화이트 크림이랑 다크 쿠키를 둘 다 먹기는 할 건데, 뭐부터 먹을지 투표갑니다. 선호하는 맛을 정해주세요.

#화이트   (흰 거, 하양, 하이트 미인정, 오로지 〈화이트〉만.)

#다크

(블랙, 까망, 검정 등 미인정, 오로지 〈다크〉만.)

참여하는 독자분여러분께는 라스가 함께합니다.

농담이고 12딱지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15일 오전 9시까지.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100명 선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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