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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23화 (323/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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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군."

엘프에게 30분의 최후통첩을 내려놓은 뒤, 나는 우리 군단의 모든 간부들을 던전으로 소집했다. 엘프 쪽의 문제도 어느정도 정리된 만큼, 나는 군단 전체의 향방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도망치는 엘프들을 향한 협박은 그냥 해본 말이다.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냥 내버려 두는 셈이지."

늑대, 유니콘, 하피로 이루어진 광역 추격대는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위한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엘프들은 내버려 둬라. 쫓는 척만 하고, 그냥 도망치게 하는 거다. 만약에 우리에게 칼을 들이민다면 그 때는 잡아다가 노예로 삼고."

엘프들에 대해서 나는 정말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나에게 있어서 엘프들은 하나의 새로운 과일에 불과했지만, 륜이나 루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살아온 세월의 대부분을 함께한 가족이며 동료들이었다.

"니프엘라. 1장로가 〈버진 엘프〉들을 이끌고 간다면 어디로 갈 것 같으냐?"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인 성녀에게 의탁하는 경우. 이건 인류 연합에 들어가겠다는 말이며,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최악이죠."

기껏 풀어줬더니 적으로 나타나는 상황.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면 그대로 전부 포획해버리면 그만이지. 그럼 나머지 둘은?"

"하나는 다른 숲을 찾아나서는 겁니다. 인류 연합과 마왕군 사이의 전쟁을 피해 최대한 피해가 없는, 그러면서도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숲을 찾아나서는 거죠."

"그럴만한 장소는 있나?"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장소는 물색해뒀습니다. 문제는 1장로가 그 장소에 가느냐,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느냐 하는 문제죠. 기존의 대피처는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제 2의 가능성. 순순히 다른 곳으로 정착하는 경우.

"그럼 마지막은?"

"...이곳에서 사흘 거리 정도 떨어진 곳에 버려진 숲이 있습니다. 근처에 던전이 생겨 과감하게 관리를 포기했던 곳인데, 1장로가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혹시 던전의 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아스타로트. 29위 던전입니다."

"......잘못하면 버진 엘프들이 다크 엘프가 되어 우리와 마주하게 되겠군."

우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에 터를 잡는 경우. 마지막 가능성이라면 우리는 목전에 엘프의 활을 놓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방향은 어디지?"

"이곳에서 반대편입니다."

"...절벽 쪽이군."

우리 던전의 뒷 길, 그러니까 물을 길으러 가는 후방의 절벽 너머에 버려진 숲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사나흘 거리에 29위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올라야 할 벽이다. 천천히 공략하면 돼. 그리고 만약 엘프들이 아스타로트 던전과 붙어먹거나 숲을 호시탐탐 노린다면, 그 때는 철저하게 응징하면 그만이다."

적에게 자비는 단 한 번. 항복 아니면 처형이다. 군단행 막차를 놓친 엘프들이 나에게 활을 겨누는 순간, 유니콘을 몰고가서 전부 다 뿔로 찔러서 던전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울한 얘기는 그만하지. 그럼 이제는 우리가 엘프의 숲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지 정하자꾸나."

어느 곳이든 엘프들은 알아서 숲을 떠나갈 것이며, 우리는 남은 숲을 어떤 식으로 가꾸느냐 하는 문제를 신경써야했다.

"신수를 중심으로 한 영역은 그대로 둔다. 하지만 나머지 영역의 나무들은 전부 벌채하여 군단의 거주지로 삼겠다."

"통나무집을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그래. 내구성은 벽돌집에 비하면 낮겠지만, 후일을 대비하는 거지. 침입자 놈들에게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그다지 눈물 적게 흐를 것 같은 그런 통나무집 말이다. 애초에 지금 기술로는 목조 건물이 한계기는 하지만."

언데드들에 의해 벌채된 목재들은 라스촌을 확장하는데 쓰이거나 라스베가스의 외성에 쓰이게 될 것이다. 석재를 사용하려면 스톤골렘이나 가고일을 갈아서 써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마석 소모가 덜한 목재를 주로 사용하기로 했다.

"주인님, 그러면 목재가 너무 많이 남지 않습니까?"

"나머지 목재는 마을 외곽에 울타리를 친다. 우리의 적은 엘프나 마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연합도 있지."

라스베가스의 내성은 스톤골렘 성벽으로 둘러쌓여있다. 이제 외성을 임시로라도 나무 울타리를 세울 필요가 있다. 라스베가스의 주민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에일라, 라스베가스의 수비 상태는?"

"트리스탄을 비롯하여 오크들이 망루에서 교대로 경계중입니다. 하피 정찰 부대가 주기적으로 라스베가스 주변을 순찰중이고요. 또한 라스베가스의 방어를 철저히 하겠습니다. 적의 주력인 성기사단과 사제들에 대비하여, 신성력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나?"

"방어구를 단단히 만드는 것 외에는 특별히 없기는 하지만, 코스트 조합장이 적절한 방어구를 만들어낼 겁니다. 여차하면 스타킹 두세겹을 껴입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좋다. 쯧,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녀석이 튀어나와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군."

당장 가장 큰 문제는 스피카 성에 남았다고 하는 성기사단장. 상당히 강력하기로 소문난 그녀는 성녀가 던전 토벌의 임무를 맡기고 갔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인 듯 했다.

"스피카 성의 병력들이 얼마나 더 들어올 지 모르지만 충분히 대비해서 나쁠 건 없지. 필요한 병력이 있으면 말하라. 다른 곳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병력 이외에, 잉여병력은 모두 차출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정리하여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수비는 에일라가 도맡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우리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던전의 운영과 쟁탈전이다.

"각 던전에서는 어떻게 할까? 반반엘프들 중 한 대여섯 정도가 군단에 있기를 거부하더라. 그래서 걔들 쫓아내면서 막았던 입구도 잠깐 열렸어. 오지는 않겠지만, 모험가들이 들어올 수도 있을 거야."

"한 가지 확인을 해보도록 하지. 샤이탄, 다른 던전으로 쟁탈전을 걸었을 때, 모험가들이나 적이 본래의 입구로 침입할 수 있나?"

"당연합니다. 던전의 입구를 막아두지 않는다면 바로 침입하겠죠. 물론 던전의 입구를 숨기거나 막아버린다면 모험가들도 쉽게는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안심이다."

플라우로스, 그레모리 던전에는 간혹 모험가가 나타나지만, 오크들의 압도적인 힘에 모험가들은 바로 목장으로 보내졌다.

"입구는 막아둬라. 내 던전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전투는 가급적이면 사양이다. 오히려 우리 던전도 입구를 잠시 틀어막아야 하는 처지지."

"주인님, 어떤 계획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지금은 얘기하기 이르다. 우선 우리가 할 것은 단 하나."

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렸다.

"일주일. 일주일 동안 스피카 성에 들어온 성기사단의 동태를 파악한다."

그 말인 즉슨, 일주일 동안 수비만 굳건히 유지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그레모리, 플라우로스, 안드라스. 이 세 개의 던전에서 동시에 각기 다른 던전에 쟁탈전을 걸어버릴 것이다."

* * *

약속된 시간이 지났다.

1장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프들을 이끌고 떠났다. 그들에게 저주라고 사기를 쳤던 발정은 어느정도 가라앉았고, 엘프들은 우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연신 숲을 뒤돌아봤다.

"장로님. 이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를 계속 장로라고 불러주는 겁니까?"

1장로는 처연한 얼굴로 허탈하게 웃었다.

"이미 엘프 사회는 무너졌습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숲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있을 뿐입니다. 장로는...이제 무의미한 직책이 되었어요. 나는 더이상 당신들의 윗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장로님! 장로님이 아니면 저희를 이끌어주실 사람은 없습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지도자의 역할을 맡기에는-"

"부디 저희를 이끌어 주세요!!"

엘프들은 장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80여명에 이르는 엘프들은 하나같이 장로를 따르기로 맹세했다.

"모든 엘프들이 성욕이라는 것에 이기지 못하고 타락하던 때, 간신히 견뎌내며 발정하던 때, 오직 1장로님만이 저주를 손쉽게 이겨내셨기 때문입니다!"

"......."

그건 오해다. 1장로가 미약의 저주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루나와의 밤놀이를 통해 미약 정도는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성적 인내심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녕 나를 지도자로 여기시는 겁니까? 나는 그대들을 타락으로 몰고 갈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마물과 성행위를 하라고 하는 이들보다는 낫겠지요!"

"누구보다 엘프들을 위해 힘써오신 1장로님 아니십니까. 그런 1장로님께서 저희의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면 누가 엘프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어쩔 수 없군요."

1장로는 한숨을 내쉰뒤, 허리를 빳빳히 세우고 엘프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비록 엘프의 숲에서 쫓겨나는 것은 막지 못했으나, 우리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날 것이다."

1장로는 그들이 숲을 빠져나온 반대편을 가리켰다.

"여기서 아래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버려진 숲이 나옵니다. 우선 그곳에 갑시다. 가서...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겁니다."

1장로의 눈에는 흉흉한 살기마저 엿보였다.

"숲을 되찾을 지, 아니면 다른 숲을 터전으로 만들지."

루나는 용서할 수 있다. 니프엘라도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딸, 솔라를 다크엘프로 만든 오크들은 용서할 수 없다.

"나는...숲을 되찾고자 한다. 엘프들이여."

1장로와 엘프들이 분노의 군단을 상대로 반기를 든 순간이었다.

* * *

그 시각, 스피카 성.

"정말로 이대로 한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남작."

버지나니야 비르고 남작은 기사단장이 내민 작전 계획서에 침음성을 흘렸다. 양피지에 빼곡하게 정리된 병력 운용과 계획은 남작으로서는 기절초풍할 내용이었다.

"정말로 이게 가능한 겁니까?"

"물론입니다. 남작님의 허락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기사단장은 양피지의 가운데 부분을 가리켰다. 성녀의 낙관이 찍혀있는 인장에는 은은한 신성력이 감돌고 있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속전속결로 움직여야합니다. 하지만 자비야바는 이미 적의 손아귀에 떨어졌죠.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안에는 아직 인질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영지민들이."

"그들은 이미 마물에게 겁탈당한 이들입니다. 분명 괴로워하고 있을 테지요.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그게 전부다 불태워 죽이는 겁니까?"

남작은 기상천외한,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잔인한 손속에 기가 질렸다. 하지만 성기사단장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기도할 뿐이었다.

"마를 구제하는 정화작업이라고 해주십시오."

"던전을 공략하는데 방해가 되는 후방을 정리하고자 자비야바에 불을 지른다? 영주인 제가 영지 내의 도시 하나에 직접 불을 지르는 게 말이나 되겠습니까?"

"전쟁 중에는 어쩔 수 없죠. 인류연합과 마왕군의 최전선 싸움에는 영지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전선이 밀고 밀리는 통에 영지나 도시는 없고 오직 요새와 전장 뿐이지요. 도시 하나가 불에 탄다고 한들 남작령이 무너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

남작은 침묵했다. 자비야바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지만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다. 도시 전체를 불태우겠다는 기사단장의 계획에 남작은 강하게 거부할 수 없었다.

"정말 병력이 이대로 모이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성녀님께서 직접 이름을 빌려주시어 소집하는 겁니다. 곳곳의 용사들이 집결하겠죠. 그 수만 하더라도 500명. 다들 던전을 공략해 본 전문가들입니다."

"......."

남작은 양피지에 적힌 성녀의 동원령을 한참동안이나 내려다봤다. 초대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초청명단에는 남작도 귀동냥으로 들은 이름이 가득했다.

"자비야바를 버리면 정말 이들이 제 가신이 되는 겁니까...?"

"가신으로 길을 놓아드리는 것 뿐입니다. 모험가들을 어떻게 가신으로 들이실 지는 남작님께서 정하실 일이죠."

"......."

남작은 양피지를 덮었다. 계속 명단을 봤다가는 꿈에 부풀어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좋습니다. 일단 모이면 생각해보도록 하죠. ...이들이 언제 스피카 성에 모이겠습니까?"

"글쎄요...."

기사단장은 지도 속 비르고 남작령의 위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일주일이면 다 모여서 진격하겠는데요?"

기사단장은 당장이라도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듯 활짝 웃었다.

"......."

남작의 가신으로 옆에 함께 있던 그에이와 메어리는 복잡한 얼굴로 양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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