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311화 (311/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11편

<--  -->

솔로몬은 ★등급 마물도 ★★★★★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놓았다.

그것이 동족포식이든 환생이든 레벨 확장이든, 한 번 태어난 이래 끝나버리는 성장의 한계를 확장해 줄 수 있는 등급 상승의 기반을 마련해놓았다.

'근데 그건 시간이 오랜 기간 필요한 거고.'

당장 활용해야 할 전력이 필요한 나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포르네우스 던전에서의 기억이 나를 계속 얽메어왔다.

- 생긴 거 가지고 뭐라하지 말자. 등급 낮다고 뭐라하지 말자. 지가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겠는가.

자라면서 삐뚤어지는 경우라면 모를까,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걸 어찌하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인간형'이나 '아인'에 해당하는 마물들은 마물 합성을 꺼려했다. 안드라스의 경우를 생각할수록 더 그러했다.

'안드라스가 다른 남자들한테 박히던 애들 넷으로 합쳐놓은 거였지.'

종마 사냥꾼 셋을 상대로 무한 펌핑을 하듯 알을 낳았던 하피 셋, 그리고 라스촌 사냥꾼들을 상대로 벽에 박혔던 안드라스 하나.

그들이 전부 합쳐져서 안드라스(★★★★★)가 되었으니, 나 이외의 남자를 탐하려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그만큼 인격체를 섞는 마물합성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고, 그래서 구울들로만 그걸 한정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더 좋은 마물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원이 줄어야 했다. 할파스 던전을 포함하더라도 우리 군단이 과포화 되지 않을 정도의 수는 대략 600.

이제 그들 모두가 즉시 투입 가능한 전력이 되어야한다. 과거 중세 시대 농민을 바로 전쟁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군단의 식량 생산자들도 알을 들고 도망치는게 아니라 알을 지키기 위해 싸울 필요가 있다.

여러모로 딜레마에 놓이는 상황.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기존 마물들을 죽이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고, 강력한 마물로 만들어내는 합성 방법을.

"......할파스 던전도 점령했는데 혹시 그 거대 갈까마귀 구하는 방법 없나?"

나를 그리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거대 까마귀-나중에 알게 된 〈블랙 레이븐〉이라는 이름의 마물종. 내 피부를 찢어버리던 그 강력한 회전부리를 우리 군단에 접목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마침 잘 됐네. 너 정말 운 좋은 줄 알아. 안그래도 별 중요한 놈은 아니어서 나중에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런 생각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알려줄 걸 그랬어."

그레모리는 목장으로 우리 둘을 안내했다. 축제를 벌이고 난 뒤 포로 인간들과 하피, 안드라스들이 제각기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정리하는 가운데, 한쪽 구석에 목에 나무줄기로 목줄이 채워진 거대 까마귀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시체 처리를 하다가 발견한 건데, 딱 한 마리 살아있더라고. 시체 무더기 속에 파묻힌 놈이었는데, 아마 죽은 척을 한 게 아닐까 싶어."

"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블랙 레이븐 대부분은 내가 계단을 틀어막고 달려드는 놈들을 죽였을 뿐이고, 누가 부상을 입었거나 전투에서 도망쳤거나 하는 건 그리 눈여겨 살필 수는 없었다.

"이거 포로로 살려둔 이유는?"

"일부러 죽이기도 그렇고, 전투 끝나자마자 한 바탕 마시고 놀았잖아. 골아 떨어진 군단장님께 의견을 구하려고 그런건데?"

"끙."

그레모리는 예전의 그레모리가 아니다. 나 몰래 뭐 하나 꿍쳐놓고 분신으로 밤놀이를 즐기는 그런 일은 이제 더이상 하지 않는다.

'믿어야지.'

아무리 과거에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고 해도 그레모리는 이제 변했다. 나는 그레모리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휴우. 난 또 엄청 큰 까마귀 몰래 한 마리 숨겨뒀다가 나중에 분신이랑 질펀하게 하는 줄 알았지."

"......몸도 갈아치웠잖아. 이제 그렇게 안 놀아."

발라크의 몸에 들어가서 그런지 몰라도 그레모리는 생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 했다. 상대를 먹어치우는 방식의 합성도 이런 식으로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너 변했네. 예전같았으면 '허락만 해주면 한 번 질펀하게 즐겨보는 거지~'하면서 나 놀려먹었을텐데."

"몸을 바꾼 건 그런 과거의 나랑 결별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괜히 타천사 몸으로 들어간 줄 아니? 정절을 지키겠다는 거야."

"......."

고블린 박이 오크 박이 낙타 박이 스캇러 그 외 기타 등등 과거 전력이 화려한 그레모리가 이런 말을 하니 믿기지도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몹시 반가웠다. 말로는 정절을 지킨다면서 몸을 베베 꼬며 내게 붙는 그레모리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존재였다.

"지아비에 대한 정절을 지키겠다라...흐흐,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다."

"누가 지아비야."

"그래서 싫냐?"

"그건 아닌데...."

조금은 순박해보이는 그레모리의 반응에 아랫도리에서 절로 반응이 나타났다. 로브 앞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달아오른 내 주니어는 당장에라도 무언가를 찢어버릴 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일단 할 건 하고.'

나는 그레모리의 허리를 토닥인 다음 거대 까마귀의 앞에 섰다. 깃털은 흙먼지가 묻어있을 뿐 크게 상한 곳이 없었고, 정수리 부분에 피멍이 든 것만 제외하면 큰 상처가 없었다.

"내 말이 들리느냐? 들리면 대답해라."

꾸르륵.

블랙 레이븐은 구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쉽게도 인간의 목소리는 내지 못하는 듯 했다.

"새들끼리는 언어가 통하나? 거기 하피, 이리로 와서 통역을 좀 해다오."

나는 꽃단장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하피를 불러세웠다. 블랙 레이븐은 은근슬쩍 하피를 곁눈질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 보게?'

"부르셨나요, 군단장님?"

"그래. 이 포로의 말을 번역해다오."

꾸르륵, 꾸륵.

"음...살려달라는데요?"

블랙 레이븐은 깃털이 날리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내게 무언가를 간청하고 있었다. 하피가 통역을 해주기는 했지만, 나는 블랙 레이븐의 말을 경청했다.

꾸르륵, 꾸륵, 꾸꾸르륵.

요약.

"블랙 레이븐(★★★)은 가고일에서 파생된 아종이다? 강철같은 부위는 가고일의 흔적이고, 나머지는 할파스의 것이다???"

"그렇습니다. 안드라스 종과 마찬가지로, 블랙 레이븐이라는 마물은 마왕군에서 나오지 않은 특이개체입니다. 할파스 던전 고유 개체일 수도 있지요."

"그 말인 즉슨...."

나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할파스 이 미친 새끼, 가고일에 박았다는 거냐?"

"남성형 던전 주인의 특권이지. 여성형은 씨를 받아야만 알을 낳을 수 있어도, 남성형은 그냥 씨만 툭 뿌리면 그만이잖아? 솔로몬님께 감사드리렴. 가고일이든 스톤골렘이든 뭐든지 알을 낳게 해서 번식이 가능하게 했으니 말이야."

여신을 범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솔로몬은 구멍만 있으면 뭐든지 박아대는 가능충이었던 것인가.

'아니, 솔로몬은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있다고 박는 미친 놈들이 잘못이지.'

고로 할파스가 문제다. 그러므로 할파스를 탓하자.

"......에휴, 됐다. 태어난 배경이 어떻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래, 블랙 레이븐. 살려주마. 대신 우리 군단의 부하가 되어라."

꾸르륵, 꾸륵!

블랙 레이븐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하 목록에 떠오른 그의 정보를 확인한 뒤, 나는 곧장 다른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좀 미안한데.'

나는 시스템을 통해 보고 있지만, 블랙 레이븐은 그저 내가 허공을 두드리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

'미안한데 어쩌겠어.'

감히 내 자지를 꿰뚫으려 한 종족이다. 감히 라임을 죽게 만든 종족이다. 얌전히 우리 군단의 힘이 되는 것 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다.

〈마물합성〉 2개체 이상의 마물을 합성하여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냅니다.

# 합성개체 : ★★ 이하의 하피 종(주) + ★★★ 블랙 레이븐(객)

# 새로운 종족이 탄생하지 않고 레벨만 오를 수 있습니다. (상위개체 합성 보정)

# 합성하시겠습니까?

"예. 하피야, 통역해주느라 고생했다. 네가 오늘 주인공이다."

"네...?"

"그러니까...."

나는 블랙 레이븐이 듣지 못하도록 하피에게 상황을 모두 밝혔다.

합성을 하되 그레모리와 발라크가 했던 것처럼 몸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온전히 섞이는, 그야말로 융합에 가까운 합성이었다. 어떤 존재가 태어날 지 그 누구도 모르는 돌연변이 마물합성.

"블랙 레이븐이라는 종 자체가 합성으로 태어난 종족이거든. 거기다가 하피까지 섞이면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르지만, 일단 합성이 이루어지면 강해질 수 있기는 하다."

"진짜요? 그럼 할게요!"

"...내가 설명했지만, 상대의 성질도 흡수되는 거야.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어차피 하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피로 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다른 하피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걸요?"

"...그래,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결과가 좋게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나는 둘을 그레모리 던전의 소환진에 올려두었다.

꾸륵, 꾸르륵?!?!

블랙 레이븐은 그제서야 내 의도를 깨닫고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도록 내가 주둥이를 팔로 꽉 붙잡고 있는 탓에 날개를 퍼덕여도 제대로 저항을 하지 못했다.

'거대 하피가 나오든 아니면 화이트 레이븐이 나오든 그건 나중에 결과가 말해주겠지.'

어느쪽이든 우리의 공중 '병력'이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 그리고 블랙 레이븐이 한 번 '부하'로 등록된 이상, 조건만 맞으면 계속해서 소환할 수 있다.

〈마석소환〉 마석을 사용하여 부하를 소환합니다.

# 블랙 레이븐 446 / 33 (중급)

할파스 던전을 공략한 덕분에 중급 마석은 차고 넘친다. 더군다나 바퓰라 서브 던전에서 중급 마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정기적인 공급책도 마련되었다.

'중급 마석이 은근히 사용할 곳이 많아.'

마액으로도 만들어야 하고, 또 슬라임들에게 직접 먹여 경험치로 사용하게 할 수 있다. 혹은 3성짜리 마물을 마왕군에서 불러올 수 있기도 하다.

'괜히 신입사원 초빙해서 인턴으로 굴리는 것보다 우리 군단 문화에 적응한 애들을 진급시키는게 훨씬 낫지.'

하피들은 우리 군단의 문화-특히 성적 부분에 있어서의 특유의 성문화-를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우리 군단의 모든 존재들에게 먹여준 알을 생각한다면 그 노고에 이런 보답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마물합성〉 하피(★) + 블랙 레이븐(★★★)

# 조류계의 마물이 합쳐졌습니다.

# 예상 결과 : 〈?? ???〉 ★★★

# 합성 시간 : 1시간

"......성공이군."

나는 눈앞의 거대한 검은 코쿤에 절로 짜릿해졌다. 가고일이라는 변수가 섞여있기는 했지만, 역시 비슷한 새끼리 합성을 하니 뭔가 새로운 마물이 나오기는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레모리. 하피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절호의 찬스다. 참가 제한은 없다. 하피든 하피 엔젤이든 누구든 참가해도 좋다."

"어떻게 하려고?"

"누가누가 더 많은 알을 낳는지 겨루는 산란 페스티벌?"

"미친 소리. 그러고 부상은 블랙 레이븐이랑 합성이게?"

"잘 아네."

합성 결과가 하피들이 부러워할만한 모습으로 나온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참가하지 않을까. 마물들은 자신들이 강해지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만큼, 전 안드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필요에 따라서 알을 낳기도 한다.

"블랙 레이븐 애들한테는 미안하지 않니?"

"블랙 레이븐은 우리 군단의 일원이 되어 살아갈 거야. 그래, 하피들의 힘이 되어줄테지. 내가 직접 공략해봐서 알지만, 할파스 던전 2층의 탑을 막기에 블랙 레이븐은 최적화 된 애들이 아니야."

"그래서 하피랑 섞었다?"

"그래. 팔 다리가 온전해야 계단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거지, 그냥 거기다가 놔두면 계속 날아다니기만 하고 쉴 곳이 없잖냐. 뭐 이런 저런 변명들 다 집어치우고...."

나는 그레모리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올렸다.

"내 군단의 부하들을 강화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당장 눈앞의 그레모리가 그 대표주자였다. 그레모리가 마녀의 육체를 버리고 그저 깨끗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 하나 만으로 기존의 던전 주인인 발라크를 먹어치워버리지 않았던가.

"너 사실은 좀 찔려서 자꾸 그런 말 하는 거지?"

"......아니, 뭐, 합성당하는 대상에게 쪼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런 걸 두고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는 거다. 흐흐, 머릿속에 잡념이 많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 아냐. 내가 잡생각 금방 날려줄게."

나는 그레모리를 안고 소환진의 반대편에 놓인 침실로 향했다. 그레모리는 날개를 고이 접으며 내 허리에 다리를 휘감았다.

"잡념 날리기에 딱 좋겠는 걸."

"그렇지? 흐흐, 샤이탄아. 이번 만큼은 밖에서 있어다오."

"물론입니다. 대신...."

"그래. 합성 끝나기 전에 나오마."

나는 침실의 문을 닫았다. 그레모리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내 품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야, 그레모리."

나는 그레모리를 침대에 내던졌다. 그레모리는 침대 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를 게슴츠레 올려다봤다.

"어디 한 번 처녀빗치 클라스 좀 보자."

나는 훌러덩 로브를 벗어던졌다.

========== 작품 후기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