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303화 (303/800)

# 303

나의 첫번째 부하.

라임은 내게 있어서 정말 많은 의미를 가진 마물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비어있는 던전을 나의 것으로 강탈하면서 나는 70여마리의 슬라임 중에서 유일하게 라임을 선택하여 나의 부하로 만들었다.

오크 인생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로부터 대여받거나 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나의 '부하'를 가지게 되었다. 오크의 부하가 슬라임이라는게 참 우습기도 했지만, 라임은 내가 던전을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던전을 파낼 수 있게 해주었다.

천장 공사를 하다가 차원석을 발견하여 우리 던전이 발전할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내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을 잡아먹고 완연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내가 계륵처럼 여기던 마법사 여인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여인이 되었다.

성행위를 하고 나면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나의 자지를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그 외에도 정말 온갖 분야에서 라임은 큰 역할을 했다.

비록 내가 륜의 처녀를 깨뜨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륜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투자하느라 다소 소홀해지기는 했지만, 라임은 우리 던전의 개국공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런 라임에게 너무 무심했다. 어쩌면 나는 라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그저 슬라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닫아버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라임은 스스로를 희생하는 법을 알았다. 더이상 단순한 슬라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크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군단장으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관념들을 일부는 내려놓아야 했다.

나의 여자.

비록 대화는 아직 통하지 않지만, 분명 진화를 하고 나면 충분히 의사가 통할 것이다. 나는 계단을 틀어막고 라임과 함께 싸우며 언어가 아닌 몸으로 서로의 의사를 파악했다.

갑자기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포르네우스 던전에 있던 시절, 한 마물 놈이 슬라임딸이라며 긴급할 때 사용하는 오나홀 마냥 슬라임을 취급한 적이 있었다. 나 또한 호기심에 던전을 가지고 나서 한 번 직접 해보기도 했다.

슬라임은 그런 단순한 마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임은 다르다. 이제부터는 다르다.

〈인연소환〉 〈라임〉을 부활시킵니다.

# 최대레벨 1 감소.

부활에 따른 패널티는 마석의 소모와 최대레벨의 감소. 그건 즉 모종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55레벨을 도달해야 가능한 진화가 막힌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마물강화권은 많아.'

안써서 썩어 넘치는게 최대레벨을 올릴 수 있는 마물강화권이다. 맘 같아서는 최대 레벨이 100이 되도록 주고 싶기도 하다.

'뭘 하려거든 일단 부활부터 해야지. 처음이니까.'

사실 이미 부활의 첫 단추는 다른 이가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그건 샤이탄이 나를 대신하여 시스템을 이용한 것이고, 내가 사용하기에는 진짜 처음이었다. 나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시스템창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인연소환, 승인!"

우우웅---!!

소환진에서 막대한 보라색 빛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보라색 안개가 몽실몽실 거리며 피어나고, 그 안에서 붉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오오, 오오오!!"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키던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이 먹어치운 인간 마녀의 모습과 똑같은 붉은 슬라홀, 라임은 쓰게 웃으며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부활을 축하한다."

죽었다 살아난 이에게 뭐라 말을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할 말은 해야했다.

"하지만 멋대로 죽은 죄! 벌을 내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군!"

나는 라임을 번쩍 들어올려 바닥에 눕혔다. 라임이 당황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어지는 내 행동에 피식 웃으며 그대로 누워버렸다.

"체벌을 내리겠다, 라임! 너는 '라스형'에 처한다!"

정액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파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라임이 살아났다는 것 만으로도 나의 자지는 빨딱 서버렸다.

"모두 축배를 들어라! 먹고 마시며 가식 따위 내던지고 오늘 하루 행복해지는 거다!"

나의 포효는 통로를 통해, 포털을 통해, 전령을 통해 군단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와 나의 여자들은 비록 당장 하기 어렵더라도, 사지 멀쩡한 부하들은 다르지 않은가.

"라스가 함께하기를!"

군단장이 모범을 보여야 진정한 축제가 시작될 터. 원래는 그냥 조촐하게 음식을 먹고 마시며 가벼이 축제를 열려 했지만, 어차피 알음알음 다들 뒤에서 할 거 꺼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시원하게 내질러 버렸다.

"보아라, 이것이 우리 군단이 승리한 원동력이니라!"

종족을 초월한 에로스.

"사랑의 힘이다!"

나는 라임을 향해 자지를 푹 찔러넣었다. 슬라홀 특유의 미약 성분이 넣자마자 내 자지를 아프게 만들었지만, 나는 그 고통을 참아냈다.

후훗.

라임은 나를 향해 팔을 뻗으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찰팍거리는 소리와 함께,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이 날, 나의 첫번째 부하가 나의 첫번째 인연소환을 가져갔다.

* * *

"마침 있는 거랑 잘 맞네요…."

메어리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거한을 보며 속으로 천불이 났다. 안드라스 사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진 장인의 로브는 겉보기에도 상당히 고급스러워보였다.

"감사합니다, 메어리 양. 이런 비싼 물건을 그냥 주신다니…."

성녀는 여러 정치공학적 시각을 지우고 순수히 감탄했다. 스타킹과 같은 재질로 보이는 로브 같기는 했으나, 스타킹보다 훨씬 더 많은 손길이 들어간 최고급 로브였다.

"색의 하얀 색이 있었다면 제 로브로 삼고싶을 정도입니다."

"특별히 제작된 물건이니까요."

거구라고 할 수 있는 군단장을 위해 마련된 로브였다. 남작을 상대로 몰래 저지를 때, 행여나 들킬수도 있으니 정체를 숨길 수 있도록 여분으로 아발론에 마련해놓은 군단장 전용 로브였다.

"풍채가 크신 분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둔 겁니다. 팔리지도 않는 물건이라 창고에 두면 그대로 먼지가 쌓였을 겁니다. 한 벌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메어리 양, 정말 감사합니다."

"아녜요. 인류를 위해 힘써주시는 성녀님의 노고에 감사드릴 뿐이에요. 저같은 상단의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금전적으로 도와드리는 것 뿐이라…."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녀는 갑자기 두 팔을 벌리며 메어리에게 다가갔다. 포옹을 하자는 듯한 제스쳐에 메어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와락.

성녀는 메어리를 꽉 끌어안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 메어리는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성녀는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일부러 허그를 해서 자신의 가슴을 몸으로 느끼려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성녀가 레즈비언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지.'

메어리는 여전히 포옹을 풀지 않는 성녀에 진심으로 당황했다. 심지어 메어리의 등허리에 손을 감은 성녀는 메어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전에는 자리가 자리다보니 미안했어요. 다른 이들의 앞에서 괜히 이상한 짓 하면 성녀의 체면이니 뭐니 시끄러워서."

"아, 예…."

"메어리 양, 저희 좀 친해질 수 있을까요? 저, 메어리 양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메어리는 심정이 복잡해졌다. 성녀는 허투루 볼 상대가 아니고, 괜히 남작처럼 쉽게 이용해먹으려 들면 오히려 잡아먹힐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녀를 군단장에게 바친다면, 메어리는 부친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성과를 내면 그만큼 보답을 주니까.

'해? 말아?'

메어리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갈등했다. 성녀는 그저 웃으며 자신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저 은은한 미소 아래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성녀님."

메어리는 선택을 내렸다.

"이런다고 더 드릴 건 없습니다. 성녀님이 입으시기에는 여러모로 저속한 물건들이 많아서."

"아, 아쉽다. 들켰네요."

성녀는 메어리의 등을 토닥이며 허그를 풀었다. 꽉 달라붙어있던 가슴이 떨어지니 자연스레 메어리도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앞으로도 메어리 양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싶네요. 메어리 양이 제게 호의를 보여주셨으니까, 저도 메어리 양에게 선물을 드릴게요."

성녀는 옆구리에 걸친 작은 가방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물병을 건넸다. 물병 안에는 투명한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성수에요. 제가 직접 기도를 드리고 은총을 받은 성수."

"감사합니다. 너무 큰 호의를 받은 게 아닌지…."

성녀의 성수.

일반 사제가 만든 성수를 무기에 뿌려도 마족 상대로 절세의 명검이 되건만, 성녀의 성수는 그 궤를 달리하는 물건이었다. 고작 검은색 로브 한 벌을 공짜로 준 것 치고는 상당히 큰 대가였다.

"...성녀님.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여쩌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혹시 성녀님께서는 저 분을 마음에 두고 계신 건지…?"

메어리는 눈으로 검은 로브를 입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거한을 가리켰다. 그러자 성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 그렇습니까?"

"뭐죠? 그 다 안다는 표정은? 제가 혹시 좋아하는데 본심을 숨기느라 빽 거린 것 같아요? 아니에요!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요."

"저런. 제가 성녀님을 화나게 한 것 같군요. 후후, 그에 대한 벌충으로 성녀님께 한 가지 좋은 걸 선물하겠습니다."

"아, 아녜요. 선물은 저걸로 충분."

스륵.

메어리는 허리를 숙여 치마 앞을 잡았다. 그리고 성녀를 향해 아주 천천히 자신의 치마를 위로 들어올렸다.

"무, 무슨…!"

"서비스입니다."

메어리는 윙크를 하며 치마를 계속 올렸다. 검은 스타킹을 통해 보이는 각선미에 성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메어리 양, 이건…!"

"저희 상단의 새로운 제품입니다. 하이니삭스 스타일로,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이죠."

성녀는 가슴처럼 탐스러운 허벅지의 라인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검은 스타킹과 하얀 허벅지의 조화는 그야말로 예술.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걸작이건만, 메어리의 손은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 새로 출시할 물건의 시제품입니다."

"......여신이시여."

성녀는 코에 피가 쏠려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스타킹의 밴딩 부분을 작은 집게로 잡은 정체불명의 옷감에 성녀는 넋이 나간 채 질문했다.

"...그건 무엇입니까?"

"후후, 이것은…."

메어리는 성녀만 볼 수 있게, 성녀가 이런 쪽으로 흥미가 깊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며, 자신이 입은 속옷까지 활짝 치마를 들어올렸다.

"〈가터벨트〉라고 하는 것입니다."

* * *

"과연. 적의 구성은 오크와 까마귀 괴인, 그리고 유니콘과 워울프 부대로 구성되어있다는 말이렸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공중을 날아다니는 하피들까지 있습니다."

"흠, 과연. 이해했다. 이 던전의 주인은 마물들을 이용한 전술 싸움을 좋아하는 것 같군."

성기사단장은 성녀의 방 앞에서 자비야바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불러모아 정보를 모았다. 남작을 모시는 노기사나 병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소상히 밝혔다.

"자비야바를 꼭 되찾아 주십시오, 성기사단장님."

"나는 던전을 우선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네만...인간의 도시가 마왕군에게 점령당했다는 건 참을 수 없지. 알겠네. 자네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수립하도록 하지. 또 특별한 사안 없나?"

"......."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듯,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괜찮네. 말해보게."

"그...감히 여신께 불경한 말씀입니다만, 저희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래. 무엇인가?"

노기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자비야바 공략전에서 병사들이 암묵적으로 없었던 일로 만들었던 비밀을 꺼내들었다.

"...적의 오크는 아주 극악무도한 자들입니다. 특히 오크들 중 로브를 입은 자가 더욱 그렇구요. 피가 찐득하게 묻어서 검은색처럼 로브를 입은 오크인데, 배가볼록한 오크가 있습니다. 그 자가 아마 적의 대장이 아닐까 합니다."

"그 자를 주의해야한다는 건가? 과연, 나와 검을 맞상대할 적의 대장이라 이거지?"

"......목책의 위에 알몸으로 올라서 여인을 겁탈했습니다.

"......뭐라고요?"

기사단장은 순간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근엄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하대를 하던 것도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로 내뱉어버렸다.

"아, 아니. 잠깐만. 겁탈? 여인? ...인간을 범했다 그 말인가?"

"크흑, 예...!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묻겠네."

기사단장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크가, 여인을, 강간했다?"

"과연. 스타킹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도구인가. 효율적이군. 전투 중에 땀이 차서 흘러내리지는 않겠어."

"......당신 지금 저로 상상했죠? 제가 스타킹을 신고 가터벨트를 착용한 모습을?!"

"아니, 내가 착용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가운데 벨트 부분을 천이 아닌 체인메일로 만들면...."

"행여나라도 입을 생각 추호도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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