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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93화 (293/800)

# 293

더럽다. 역겹다.

완벽하게 배신 당했다는 것에 역겨웠고, 하는 공격도 역겨웠고, 그 공격에 죽어나가는 부하들의 행동도 역겨웠다.

"쌀려쭈씹쑈, 천뚱꾼쭈님!"

"넌 제발 아가리 닥쳐!!"

가만히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놈이 자꾸만 옆에서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마나를 끌어올려 보호막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죽을 지경이건만, 부하와 부관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파스스슥.

샥스가 쏘아대던 산성 브레스-그래도 옛 정을 생각하여 차마 원래대로 말하기에는 그랬다-의 힘이 사그라들었다. 천둥군주는 보호막 주변에 두둥실 떠다니는 산성액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옳지! 마나가 다 닳았구나!"

중간중간 마나포션 같은 것으로 마나를 회복하는게 보인 이상, 무한히 버티다보면 한계가 있기 마련. 천둥군주의 예상은 적중했고, 샥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끼요오옷!!"

천둥군주는 날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동시에 전신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할 정도로 막대한 전격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물을 분해하겠다---!!"

천둥군주가 날개를 아래로 내리쳤다.

파지지직!!

두 날개는 각각 다른 성질의 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둥군주를 중심으로 물이 증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증기가 아니라 분해되기 시작했다. 전류가 흐르기에 충분한 입자-누군가가 뿌려던 액의 물질-은 충분했고,ㅡ마기를 머금은 마나는 호수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지직.

전류가 머금은 마기가 신성력과 부딪혀 중화되었다. 전기는 산성을 띈 위액을 완전히 중화시키지는 못했으나, 코카트리스들에게 신성력은 위액보다 더 치명적었다.

"내려와! 역공이다!"

천둥군주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앞으로 달렸다. 하지만 뒤따르는 코카트리스들은 아무도 없었다.

"너희들 뭐하는 거냐!"

"그, 그치만!"

"물에 들어가기 찝찝-"

"이 멍청한 놈들!"

천둥군주는 훼까닥 고개를 돌려 코카트리스 하나를 입에 물었다. 코카트리스는 깜짝 놀라 날개와 다리를 아둥바둥거렸으나, 천둥군주는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리며 부리를 놓았다.

"끼이이이익!!"

코카트리스는 수 바퀴를 회전하며 뭍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막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굴렀고, 그 물은 전부 샥스와 갤러해드가 뒤집어썼다.

"".......""

예상 외의 기습에 당황했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설마 호수의 물을 뒤집어 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걸까.

샥스와 갤러해드는 미동도 하지 못했다. 물에 젖은 생쥐가 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젠장."

"쳇."

서로가 서로 호수에 한 짓거리를 알기 때문에, 둘은 서로를 욕할 수가 없었다. 대신 그 분노의 방향은 애꿎은 대상에게 넘어갔다.

"끄에에엑?!"

마침 바닥을 굴렀다가 몸을 일으키려던 코카트리스는 목이 잘리고 심장이 꿰뚫렸다. 갤러해드의 철검은 코카트리스의 목을 일검에 날려버렸고, 샥스가 손가락으로 튕긴 압축수탄은 탄환이 되어 코카트리스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설마 저런 식으로 부하를 집어던지면서 공격할 줄은 몰랐는데."

"부하를 아끼는 녀석은 아니야. 애초에 이 던전의 간부들 자체가 부하를 감싸고 도는 자들이 아니지."

샥스의 뒤로 물방울들이 하나 둘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갤러해드 또한 검에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맞서 싸울 준비를 마쳤다.

"진작 이렇게 싸울 걸 그랬나?"

"고생 안하려고 하다가 결국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군. ...이봐, 샥스 양. 그대가 나의 조모 후보가 될 지는 모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지."

갤러해드는 표정을 굳히며 천둥군주를 응시했다.

"우리는 검을 휘두르고 수탄을 날려 적들을 학살한 것이다. 맞지?"

"...우리 이제 전투 시작하는 거 아니었나?"

둘은 서로 동시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찝찝하고 불쾌한 상황에 대한 분노를 다른 이에게 쏟아붓기로 했다.

"내가 저격할테니 앞을 지켜줘."

"물론. ...잠깐만, 이러면 내가 또 앞에서 뒤집어 쓰는-"

첨벙----!!

또다시 코카트리스가 날아왔다. 갤러해드는 돌려차기로 코카트리스를 쳐날렸다.

"......."

갤러해드는 자신의 정장 바지에 묻은 물기에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서있었다.

아무튼.

갤러해드와 샥스, 두 명에 의한 지하 공략이 시작되었다.

* * *

아무리 점액을 공중에서 뿌려댄다고 해도, 그게 반드시 살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야 건물 옥상에서 벽돌을 집어던지면 당연히 죽겠지만, 보기만 해도 단단해보이는 3성 가고일이나 거대 까마귀들은 점액 개틀링을 몸으로 받아냈다.

"가죽 더럽게 단단하네!"

점액 개틀링은 그다지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슬라임 드래곤을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고일을 향해 계속 점액을 날렸다.

두두두두!!

이전에는 양 조절에 실패하여 몸이 쪼그라들 때까지 점액을 발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적당히 데미지를 입을 정도로 점액을 뿌렸다.

적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는 못하지만, 점액 개틀링은 나의 작전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우오오오!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시간 벌이. 마물들이 한창 전투가 진행중인 윗층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으면 된다. 곁눈질로 뒤를 슬쩍 살피니, 륜과 그레모리가 빨갱이를 상대로 압도하고 있었다.

4m는 족히 훌쩍 넘는 체구의 까마귀를 상대로 벌이는 바람 화살의 난사. 그리고 중간중간 급소를 쏠 때는 신성력을 담은 은빛의 화살로 바꾸어 저격.

불꽃이 흩날리고 바람이 칼날처럼 날아간다. 때때로 자신의 마법에 신성력을 담아 빛의 포격을 날린다.

륜도 그레모리도 기존의 전투 스타일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저 마나를 사용함에 있어 신성력이 조금 가미된 치명적인 공격을 할 뿐이었다.

'둘에게는 단순한 버프기일지는 몰라도, 마물에게는 치명적이지.'

실제로 빨갱이는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방어에 급급했다. 특히 신성력이 담긴 공격을 피할 때는 다른 일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흐흐, 잘 싸우는 구만."

까아아아악!!

시체매는 거듭된 피해에 포효를 내질렀다. 무언가 큰 공격을 준비하는 듯 했다. 걱정은 되지만 내가 저기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다.

"아오, 씁...."

신뢰의 도약에 따른 격통이 아직 전신을 찌르고 있다. 오크의 체력 회복 능력을 믿고 견디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가만히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까아아악!!

거대 까마귀들이 점액의 화망을 뚫고 결국 계단의 지척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선두에서 가장 많이 점액을 얻어맞은 거대 까마귀는 잔뜩 열이올라 나를 부리로 찌르려했다.

피하기는 늦었다.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거대 까마귀의 강철같은 부리는 닿는 즉시 내 피부를 찢고 심장을 쪼아먹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기로 좀 써야겠다 이거다!"

나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슬라임 드래곤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고, 나는 두 손을 쫙 펼치며 부리를 잡을 준비를 마쳤다.

끼기긱!!

거대 까마귀는 나를 비웃으며 풀쩍 뛰어올랐다.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부리는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 좆됐다."

이건 예상못했는데. 나는 드릴처럼 회전하는 부리에 어쩔 수 없이 손을 갖다대었다.

끼기기긱!!

"쓰으으읍!"

손바닥이 갈려나갈 것 같다. 아니, 실제로 갈려나가고 있다. 부리의 표면은 흙바닥처럼 거칠어, 내 손바닥 안에서 긁히듯 계속 돌아가려했다.

"우오오!!"

하지만 견뎌내야한다. 륜과 그레모리가 둘이서 시체매를 공략할 때까지 이곳을 지켜야한다. 손바닥은 피로 흥건해졌으나, 나는 간신히 거대 까마귀의 부리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흐흐, 너 내가 멍청해서 부리를 잡은 것 같지?"

새대가리라서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거대 까마귀의 부리를 놓지 않았다. 거대 까마귀는 퍼뜩 날개를 펼치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그보다 내 아래에서 튀어나온 라임의 동작이 더 빨랐다.

콰득!

라임은 몸을 크게 벌리며 거대 까마귀의 부리를 집어삼켰다. 내 손과 부리, 그리고 머리를 향해 몸을 들이민 라임은 거대 까마귀를 머리부터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륜보다는 낮더라도 어느덧 50레벨 언저리를 돌파한 라임이다. 움직이는 적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부리가 붙잡힌 적을 먹어치우지 못할 건 없었다.

"그만하면 됐다."

퉤.

라임은 적당히 먹어치운 거대 까마귀의 몸에서 몸을 떨어뜨렸다. 머리가 절반 정도 먹힌 거대 까마귀는 힘없이 아래로 텅텅 구르며 떨어졌다.

쾅, 콰---앙!!

거대 까마귀가 계단을 굴러 떨어지며 가고일 무리를 덮쳤다. 눈치 빠른 놈들은 재빨리 도망쳤으나, 아래에서 올라오기 급급했던 놈들은 거대 까마귀에 깔려 추락했다.

"씁. 뒤지겠네, 정말. 저것들 4성이라도 되는 건가?"

손바닥이 전기에 지져진 것 마냥 얼얼하다. 혈류가속 덕분에 피는 더 철철 흘러넘치고 정신이 아찔했다. 물론 10분 정도 그대로 놔두면 겉은 아물게 되겠지만, 그 10분을 가만히 놔둘 까마귀들이 아니다.

"한 놈 먹혀 죽어서 더 열받은 것 같다, 라임아."

까아아아아아악!!

어느덧 10마리 정도로 줄어든 거대 까마귀는 우리를 향해 욕설을 퍼붓듯 비명을 질렀다. 라임은 몸을 꿈틀거리며 내게 달라붙었고, 나는 라임의 몸통을 꽉 붙잡았다.

"...라임아, 꼭 가슴으로 할 필요는 없는데."

꾸르륵.

"알았다. 나야 고맙지."

나는 내 몸에서부터 뻗어나간 라임의 거대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라임의 머리에는 자신이 먹어치운 거대 까마귀의 '부리'가 씌워져 있었다.

흙벽을 파낼 정도로 단단한 부리. 내가 전력을 다핻야 쉽게 구겨지던 부리인 만큼, 적의 부리를 맞받아 치기에 안성맞춤인 무기였다.

캬아아악!

"다음은 가고일이냐!"

부리의 아래에 라임이 딱 달라붙는다. 점액을 접착제삼아 자신의 몸을 고정시키고, 나는 라임의 가슴을 잡고 위로 크게 들어올렸다.

"조용히 하거라!"

퍼---억!!

나는 라임을 들고 아래로 크게 내리쳤다. 강철 부리는 가고일의 대가리를 일격에 박살내버렸고, 가고일은 돌덩어리가 되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끼이익!!

이번에는 가고일 한 마리가 돌덩어리를 맞고 날개가 부서졌다. 마냥 멍청이는 아닌지 피하는 걸 보아 학습효과가 있기는 했다.

"그래도 계속 버티면 그만이지."

손바닥은 얼얼하지만 라임의 폭유를 잡고있는 덕분에 따갑지는 않았다. 따갑기는 했지만, 푹신한 가슴의 감촉은 놓칠 수 없었다.

"야! 다음 들어와!"

거대 까마귀들은 하나 둘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명령을 내릴만한 시체매가 륜과 그레모리에게 묶여있으니, 본능에 따라 겁을 먹은 것이다.

'이러면 나야 유리하지.'

시간을 끌면 나의 승리.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버티면 나의 간부들이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신성력만 쓰는 애들로 편성을 하니까 좀 힘드네.'

오크 성기사든 그린 엘프든 신성력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부대를 따로 만들어서 편성하는게 어떨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 힘이 당장은 할파스 군단을 쓰러뜨리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번에 체감한 문제는 시행착오를 거쳐 새롭게 가다듬으면 된다.

"흐흐, 잡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가 넘치네. 아주."

꾸르륵.

"그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이기는 거지."

시간이 흐를수록 적이 마석을 통해 마물을 부활시키는 것도 마찬가지기는 했으나, 그 간격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더이상 시간을 줘선 안 되겠다 판단했는지, 거대 까마귀 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두 팔을 넓게 벌렸고, 라임도 그에 맞춰 부리를 쩍 벌렸다. 몸은 그대로 둔 채.

"라임, 허튼 짓 하지 마라! 그냥 공간을 열어!!"

라임은 머뭇거리며 가운데 공간을 활짝 열었다. 거대 까마귀는 정확히 라임이 만든 빈 공간을 부리로 찔렀고, 나는 이번에는 주먹을 쥐고 팔뚝으로 부리를 붙잡았다.

카가가각!!

"크으으윽!!!"

팔뚝 전체의 피부가 쓸려나간다. 팔이 90도로 돌아갔으며, 나선 모양으로 할퀸 자상이 남았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으나, 부리는 내 명치에 닿을 정도까지만 놓였다.

꿀럭!

라임은 나를 대신하여 복수를 하듯 또다시 독수리의 대가리를 집어삼켰다. 이걸로 부리를 두 개 째 확보했다.

끄오오오오오오!!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니, 시체매가 죽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륜과 그레모리는 자잘한 상처가 있었으나, 결국에는 시체매를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그럼 나도 이제 슬슬-"

순간, 아래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좆됐다'는 생각이 들어 발을 뒤로 살짝 뺀 순간.

카가가각---!!

내 발치에서 계단을 꿰뚫은 또다른 강철 부리가 날카롭게 회전하며 나를 노렸다.

나의, 고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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