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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84화 (284/800)

# 284

상황은 변했다.

어쩌면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군단은 강해졌다. 강해진 비결이 다소 그렇기는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우리 군단의 평균 레벨은 높아졌다.

여성진만.

'애초에 먹기도 조금 그런데 남자 걸 먹는 건 미친 거지.'

기네비어의 제보가 아니었으면 나는 오크들에게 음용수로 넘길게 분명했다. 마시기만 해도 강해지는데 왜 안 마시냐며 꼰대 짓거리를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이번 전투는 XX염색체들로 치를 생각이니라."

지상조, 지하조. 모두가 마액으로 강화된 여성들로만 구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병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오크들은 라스베가스를 지킨다. 워울프들은 구울들과 페어를 이루고 지하 1층에서 대기하라. 행여나 우리 후속 병력이 필요하면 호출하겠다. 플라우로스 던전의 플레어 판테라 부대는 그대로 경계. 던전 1층을 지키는 건 너다, 안드라스."

"맡겨만 줘."

안드라스는 사실상 할파스가 인장보다도 더 눈독을 들이는 존재였다. 비록 원래의 안드라스는 죽었으나, 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눈이 돌아갈 게 뻔했다.

병력배치 1.

라스베가스와 그레모리 던전에는 오크 부대가.

나의 던전에는 워울프 부대, 안드라스 부대, 하서스와 라스투자드의 언데드 부대가 대기하게 될 것이다.

플라우로스 던전의 플레어 판테라들은 동원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투입하기로 예정된 병력 구성에 따라 던전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역할은 당연하게도 샤이탄의 몫이다.

"샤이탄은 내가 넘어간 동안 던전 내부의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해라. 라스베가스에 대한 관리도 마찬가지다."

내 던전, 그레모리 던전, 그리고 라스베가스. 세 곳 모두 관리자가 부재가 예정된 이상, 샤이탄이 관리해야 할 곳이 상당히 늘어났지만 샤이탄의 능력은 충분했다.

이제 어떤 부대를 투입할 것인가. 지상조와 지하조의 양동을 펼칠 계획이기는 하나, 나는 병력을 크게 세 부대로 나눴다.

처음으로 맞상대를 하게 될 지상 1층.

계단을 등반해 올라가는 2층.

뒷통수를 치기 위해 바글바글 거리는 지하 1층.

'지상에서 싸운 병력들을 다시 싸우게 하면 손해가 심할 수 있다.'

지상 1층의 적을 상대한 병력은 바로 후방으로 빠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선봉'의 역할로 나는 두 종족을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선봉은...키메리에스, 암두시아스."

나는 악연으로 묶은 듀라한, 유니콘 페어를 불렀다.

마액을 통해 이전보다 더욱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페일 라이더와 맞상대를 하기에는 역부족인 감이 있었다.

그러므로 같은 선상에 놓일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다.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저도...."

둘은 손까지 잡으며 내 제안을 수용했다. 처녀를 앗아가고 빼앗긴 불편한 관계였으나, 결국 군단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마음을 모은 것이다.

"고맙다, 키메리에스."

"주인님 덕분이죠."

사실상 키메리에스가 암두시아스를 용서해 준 셈. 나는 둘을 소환진에 올렸다.

〈마물합성〉 종족이 다른 두 마물을 하나의 개체로 짝을 이룹니다.

# 키메리에스(듀라한★★★)

# 암두시아스(유니콘★★★)

# 합성 결과 : 〈죽음의 기사/★★★★〉

'데나가 이런 식으로 나오네.'

언데드 대장은 하서스의 몫인 줄 알았는데, 하서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둘이 언데드 중 톱을 달게 되는 건 듀라한과 유니콘 페어였다.

"합성개시."

나는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암두시아스의 몸이 유니콘의 몸으로 변했고, 키메리에스는 두둥실 떠올라 암두시아스의 위에 올라탔다.

소환진에서 흘러나온 보라색 안개가 둘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개는 둘의 몸에 달라붙어 얇은 피막이 되었다.

쩌적, 쩌저적!

둘의 피부가 마른 사막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번데기가 껍질을 깨고 우화하듯, 안에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 오오!"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라도 하듯, 둘은 하나가 되었다.

푸르르.

하얀 유니콘에게는 듀라한의 것과 같은 검은 마갑이 씌워졌다. 듀라한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드레스와도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

속도를 중시하는 페일 라이더들과 달리, 합체한 죽음의 기사는 마갑부터 생김새까지 무게를 이용한 돌파력을 중시하는 외형이었다.

"......근데 뿔이 왜 저 모양이지?"

나는 원뿔형에서 살짝 휘어진 유니콘의 뿔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모양은 여전히 유니콘의 뿔 그대로였지만, 왠지 모르게 두께가 다소 윗부분이 두터워진 형태였다.

톡까놓고 말해서-

"좆같습니까?"

"......표현을 달리하자꾸나, 비비안. '뿔이 음경을 닮았다'고 하지."

"쿡쿡."

키메리에스는 다소 불편할 지 모르는 섹드립에도 웃었다. 일부러 꾸민 미소가 아니라 편안한 미소였다.

"기분은 어떠냐? 뭐 둘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인다거나, 강제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거나 그러냐?"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키메리에스는 풀쩍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암두시아스는 몸을 반짝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모습은 합성되기 전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각자 떨어져서 지낼 수 있습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서로 멀리 떨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샤이탄이 말하기를 짝이 된 개체는 멀리 떨어지면 동시에 약해진다고 하더구나."

둘이 힘을 합치면 ★★★★급 스펙을 가지고 있으나, 1km 이상 떨어지면 둘 다 ★★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식이었다.

"반대로 얘기하면 둘이 항상 붙어있으면 어지간한 놈들은 다 때려잡는다는 얘기지. 너희들, 페일 라이더들 이길 수 있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대, 대신 이기면...."

"마액을 주도록 하마."

짝! 둘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었다. 사이가 좋아진 것이 참 보기가 좋았다.

"나머지 듀라한들도 모두 죽음의 기사로 만들겠다. 하고 나면 이너아머도 갖춰야하고. 흐흐, 해야할 일이 많아. ...그런데 암두시아스, 네 뿔은 어디로 갔느냐?"

"히끅."

암두시아스는 갑자기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내가 지적한 대로, 암두시아스는 진화를 하며 그 요상한 모양의 뿔이 이마에서 사라져있었다.

"후후훗...."

갑자기 키메리에스가 사악하게 웃었다.

"주인님, 제가 설마 그냥 암두시아스를 받아들였겠습니까? 강제로 처녀를 앗아갔던 녀석을."

"그건 아니긴 하지."

"그래서 말입니다."

사락.

키메리에스는 허리를 살짝 앞으로 숙여, 배틀 드레스의 치맛자락 부분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제가 기수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기마를 후려잡을 고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기마와 떨어져서는 안되기도 하고요."

"......어우야."

키메리에스의 아래에는 뿔이 나있었다. 그 뿔은 암두시아스의 것과 똑같은 크기였다.

"비비안. 아래에 뿔을 달고 있는 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여기죠."

키메리에스는 손가락을 좌우로 밀었다. 나는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어 불안감이 가라앉았다.

"그렇구나. 무사히 기차놀이도 할 수 있겠어. 비비안, 이번 전투가 끝나면 이렇게 하자꾸나."

나는 키메리에스에게 제안했다.

"네가 뒷치기로 암두시아스에게 박고, 내가 너를 뒤에서 박는 것이다. 어떠냐?"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선봉이 정해졌다.

* * *

〈잠시 뒤, 라스베가스.〉

"오셨습니까."

조합장은 퀭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이 제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했다.

"스타킹...완벽하군. 스쿨미즈도 그래. 스패츠, 타이즈. 레깅스까지. 그대는 우리 군단의 보배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흐흐."

영혼을 갈아넣었다는 그의 말마따나 안드라스 실로 만들어진 의복들은 현대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았다.

'오히려 더 단단하지.'

의복이 아닌 방어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 나는 조합장이 준비해놓은 이너아머들을 전부 챙겼다.

"조합장. 그 물건은?"

"...흐흐흐."

조합장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안내했다. 창고 방 중에서도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온갖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오오오."

물건들의 색은 하나같이 깊고 어두운 검정이었다.

"사자의 가죽은 이런 색이 아니었을텐데?"

"염색을 했습니다."

"좋구나. 덕분에 좋은 곳에 잘 활용할 수 있겠어."

할파스 군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포로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언제까지 숲에서 가져온 나뭇줄기나 밧줄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이제는 가죽 제품들을 이용해 단단하게 구속할 때가 되었다.

"반드시 승리하여 돌아오겠다."

"구, 군단의 주인이시여."

조합장은 넙죽 조아리며 내게 양피지 하나를 건넸다.

"부, 부디 이것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을 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무엇이냐?"

"보시면 아실 겁니다."

조합장의 태도에 나는 괜히 긴장되었다. 나 또한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를 펼쳤다.

"이 놈!!!"

나는 양피지를 집어던졌다. 상대가 연장자라고 해도, 양피지 안의 물건은 이 세상에 나와선 안 될 물건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냐!"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조합장은 바닥에 엎드리며 벌벌 떨었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 그가 열심히 나를 도와 일한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양피지 속 도안 뿐.

"어쩌자고 이런 물건을 만들었어!"

"호, 혹시 아시는 물건입니까?"

"알다마다!"

"이,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아! 이름! 이 저주받을 물건의 이름은 '래쉬 가드'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도안을 찢어버렸다. 조합장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굳어버렸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면전에서 찢어버린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 했으나, 그 이상으로 나는 조합장에 대한 상심이 컸다.

"말해라! 이런 저주받을 물건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이, 이렇게 하면 노출도를 줄이고 방어력을 높일 수 있기에...."

"나는 네게 방어구를 주문하지 않았다!"

"!!!"

그는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굳어버렸다. 나는 조합장의 어깨를 붙잡았다.

"스쿨미즈를 만들었던 때, 너는 내게 말했다! 스쿨미즈를 입고 있는 여인들이 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자, 생각해봐라! 래쉬 가드를 입고 물놀이를 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아, 아아아!!"

"그렇다! 저것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물건이니라! 이런 걸 만들 시간에 이런 거나 더 만들 수 있도록 하라!"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양피지에는 이미 수많은 의복들이 스케치되어 있었고, 나는 빈칸을 활용해 하나의 도안을 완성했다.

"이, 이건...!"

"흐흐흐, 자극이 너무 심했나?"

조합장은 시뻘게진 얼굴로 내가 건넨 스케치에 침을 꼴깍 삼켰다.

"이것은 요정들에게 입힐 옷이다. 어떠냐?"

"당신은 정녕 신입니까...?"

"신이라니, 그 무슨 망발을.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할 뿐이다."

"......하아아."

조합장은 탄식하며 양피지를 끌어안았다. 나는 품에서 재료로 쓸만한 물건, 사자의 갈기털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양은 그리 많지 않아도 된다. 방어구가 아닌 그저 평상복일 뿐이니. 그래, 수량은 50개가 좋겠구나."

요정들에게 입힐 것, 그리고 내 여인들에게 입힐 것. 그리고 선물용.

"이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아, 그것 말이냐."

포르네우스를 보고 생각했다. 포르네우스 같은 체형의 여성이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을만한 옷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동정을 죽이는 스웨터'라는 것이다."

"......."

조합장은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입은 것을 상상하는 듯 했다. 나 또한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샥스한테 어울리겠는 걸.'

골반과 엉덩이가 잘 빠졌고, 아래로 물을 많이 흘리니까 배수성 또한 뛰어나니 얼마나 좋은가. 덤으로 루나에게도 함께 선물하면 금상천화일 터.

'스웨터 입히고 코트까지 입히면 박살나겠군.'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할파스 군단을 상대로 이기는 것보다 더 쾌감이 들 것 같았다.

"부탁한다. 그대여. 부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미안하다. 내가 보자마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래쉬 가드도 몇 벌 만들어 보겠느냐? 한 10벌 정도."

"......예?"

조합장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도안을 찢어버린 건 나건만, 내가 래쉬가드를 만들어 달라고 하니 '이뭐병'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흠흠. 잘 들어보시게."

나는 조합장을 위로하며, 래쉬가드가 그래도 소량은 있어야 할 당위성을 어필했다.

"......남들 앞에서는 정숙하게 꽁꽁 감싸고 있지만, 침대에서 래쉬 가드를 벗기니 비키니가-"

"오오오오!!!"

...

...

...

래쉬가드를 딱 스무 장만 만드는 걸로 합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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