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269화 (269/800)

# 269

륜과의 플레이는 내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끔 해주었다.

'역시 라스는 사랑이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그 마음을 육체적으로 잇는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란 말이더냐. 사랑이 몸으로 이어지는 관계. 그것이 진정한 라스가 아닐까.

'물론 그것도 결실이 있어야지.'

나와 륜의 결실. 그것은 바로 륜의 뱃속에 자리를 잡은 나의 씨로, 산부인과에 가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파종〉 씨를 뿌린다. 열매가 수확되는 시기는 천차만별이다.

# 파종대상 : 륜 ★★★★☆

# 예상시각 : 269일 17시간 뒤."

"흐흐흐."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륜의 안에 씨앗이 뿌려지니 더 기분이 좋았다.

"주인님. 그렇게 좋으세요?"

"물론이지. 너와 나의 딸이 아니더냐. 분명 너를 닮아 예쁘고 아름다운 그린엘프가 태어날 것이다."

하이엘프도 태어날 수 있지만 그럴 확률은 낮았다. 지금까지 가챠에서 륜의 가호를 받았을 때마다 기적처럼 낮은 확률만 걸렸던 걸 생각해보면, 내가 확률을 -50% 깎아먹더라도 륜이 확률을 140%까지 끌어올릴 것이다.

나머지 10%? 아무리 그래도 100%를 맞추지는 못할테니 어쩔 수 있나.

"륜아. 혹시 빨리 아이를 낳고 싶으냐?"

"그거야 주인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는 거죠. 빨리 낳게 할 수 있는 방법 있으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나는 머리맡에 내려놓은 마정석을 들어올렸다. 이미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 딱 하나의 마정석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건 안 쓸 거다."

"네? 왜요?"

"배가 만삭이 되면 쓸려고."

"???"

륜은 혼란에 빠졌다. 만삭이 되었다는 건 사실상 아이를 낳기 일보직전이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고, 그 때 마정석을 사용하는 건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마정석을 사용할 것이다.

"임산부를 상대로 격한 플레이를 할 수는 없잖냐. 혹시나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 가서 안 좋게 되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네요. 아까처럼 힘차게 하는 것도 어려울테고, 안에다가 하는 것도 힘들테고...."

"뒤로 하는 것도 태아에 부담이 갈 수 있지. 그러니까 마정석은 사용하지 않아. 지금은 해도 되는 시기니까, 격하게 할 거지만."

"...격하게 즐기시다가 나중에 그게 불가능해지면 마정석으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시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비바, 솔로몬.

"그런데 륜아. 내가 하나만 부탁을 하도록 하자."

"네, 말씀해주세요."

"...하루만 나와 떨어져지내자꾸나."

"네?!?!"

나는 륜의 배에 내 아이를 가지게 하자마자 하루 별거를 선언했다.

시각은 어느덧 밤 11시 경.

[준비는 끝났습니다.]

하루를 꼬박 '특수시설'을 만드는데 고생을 하던 샤이탄이 드디어 연락을 취했다. 나는 기겁한 륜에게 키스하며 안심시켰다.

"걱정하지마라. 딱 하루다. 잠시 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 지 알지 않느냐."

"포털 방향이 바뀌는 거요?"

"그래."

할파스 군단과 우리 군단 사이에 이어진 던전의 포털은 이제 곧 방향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군단이 역공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힘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공격할 거다. 그러기 위해선 힘을 기를 필요가 있지."

나는 내 아랫배를 탕탕 두드리며 웃었다.

"하루 정도 나도 개인 수련을 하고 정비한다음, 할파스 군단을 먹어치우자꾸나."

"...하루라고 하시는데 왜 저는 자꾸 하루가 하루같지 않은 느낌이 들까요?"

"흐흐, 그냥 기분탓이다. 하루가 맞아."

륜에게는.

그리고 나와 샤이탄을 제외한 모두에게는.

* * *

〈그 시각, 타우러스 령 동굴 입구.〉

"성녀님의 흔적이 정말 이곳으로 이어졌단 말인가?"

성기사단의 단장은 수하의 보고에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나를 능멸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성녀님의 신성력은 분명 이 던전의 입구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제는 칼이 들이밀어졌음에도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이 알아낸 것을 보고했다. 사제는 확신에 가득차있었고, 오히려 기사단장이 긴가민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럴리가 없지 않는가. 성녀님이 어린 아이도 아니고, 홀로 던전에 들어갈 리가 없지."

"그...납치당했다는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성녀님이 애도 아니고."

"너무 흉측한 걸 봐서 놀란 나머지 기절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저런 것 처럼."

사제는 성기사단이 수습하고 있는 마물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기사들은 흰 갑옷에 마물들의 체액이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물들로부터 마석과 쓸만한 재료를 챙기고 있었다.

"성녀님이 저 광경을 보고 놀라셨을지도 모릅니다. 아아, 그 가녀린 분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을 지."

"...글쎄."

마음의 상처는 커녕 본인이 저 상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기사단장은 뒷말을 마음속으로만 삼키고 괴물들의 사체를 확인했다.

수하들이 발견하지 못한 단서가 또 있을까. 기사단장은 유심히 마물들의 상처를 확인했다.

'이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검법인데?'

기시감이 들었으나 무슨 검법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성녀라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당장은 그 성녀가 여기에 없었다.

"이거 안 되겠군. 아무래도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 할-"

구구구.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기사 한 명이 순간 자세를 바로잡지 못할 정도로 땅은 거칠게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뭔가...온다!!"

기사단장은 빼어든 검에 기도하며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지축을 흔드는 진동은 분명히 인위적인 것이었고, 이정도 지진을 일으킬만한 존재는 기사단장의 기억상 오우거나 트롤 급의 괴물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

콰----앙!!

던전 구멍의 입구 윗부분의 흙이 폭발했다. 갑자기 생겨난 구덩이 안에는 왠 정체불명의 중갑 기사가 성녀를 공주님처럼 안고 모습을 드러냈다.

"성녀님!"

"내려주세요, 기사님."

성녀의 말에 중갑 기사는 묵묵히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무게가 나갈 법도 하건만 기사는 너무나도 손쉽게 착지했고, 성녀는 상처하나 없이 일어서 일행을 훑었다.

"미궁은 잘 빠져나온 것 같네요."

"도대체 혼자서 위험하게 어디 간 것입니까?!"

"당신들이 저 안 따라오고 결계속에 갇혀버린 거 아녜요. 어딜 사람을 미아취급해요? 따지고보면 당신들 모두가 미아가 된 셈인데. 어떻게 아무도 결계를 바로 통과못하냐고요.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

성녀는 눈을 희번득 뜨며 성기사단 전체에게 따지고 들었다. 성녀의 질책에 기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반성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성녀님, 그 뒤의 분은 누구...?"

기사단장은 긴장된 얼굴로 기사를 위아래로 훑었다.

동성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신체접촉을 허용하지 않는 성녀가, 자신조차 해보지 못한 공주님 안기를 하게 해준 중갑 기사의 정체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아...이 분이요."

성녀는 기사를 향해 존칭을 취했다. 자연히 기사단장의 자세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비록 깨진 갑옷 사이의 얼굴이나 피부는 하얀 붕대로 칭칭 감았으나, 기사단장은 본능적으로 중갑 기사가 상당한 강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이름은, 그...."

"...타우러, 아니 〈타우라스〉라고 불러주시오."

기사, 타우라스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강자가 먼저 예를 갖추니, 기사단장은 성녀의 몸을 만졌다는 분노를 잠시 접기로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타우러스 경. ...아니 라스?"

"타우라스. 이 영지의 이름과 비슷해서 조금 난감하긴 하오. 이해해주시오."

"...음. 알겠습니다. 이상이 있으면 성녀님께서 먼저 말씀하셨겠죠."

기사단장은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여 타우라스의 존재를 인정했다. 성녀가 인정한 존재라면 자신도 인정해야했다.

"그런데 뭔가 좀 특이한 것 같은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미 타우라스 님이 던전을 공략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빨리 비르고 영지로 돌아가야해요. 기사단장, 어서 남작령으로 돌아갈 준비를."

"알겠습니다. 그러면 타우라스 님은 어떻게...?"

"그는 저를 따라 움직이기로 했어요. 그렇죠?"

"......알겠소. 하지만 명심하시오. 나는 내가 찾는 이를 찾는 즉시, 그대의 곁을 떠날 것이오."

"얼마든지요."

기사단장은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는 성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타우라스를 앞에 둔 성녀는 마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사단장은 모르쇠 딴청을 피웠다.

'꼭 남자한테 반한 귀족영애같네.'

왠지 모르게 기사단장은 타우라스가 고깝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플라우로스 던전.〉

비밀 시설을 갖출 만한 곳이 과연 어디가 가장 좋을까. 여러모로 고민을 해본 결과, 샤이탄과 나는 한 장소를 선정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플라우로스 던전.

그중에서도 현 플라우로스인 텐타클 드라실이 있는 공간.

샤이탄은 그곳에서 플라우로스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경하드립니다. 드디어 거사를 치르셨군요."

"그래. 그런 의미에서 샤이탄아, 너는 딸이 좋냐 아들이 좋냐?"

"조카를 말하는 겁니까?"

"아니, 네 자식."

노골적인 내 어필에 샤이탄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출산보다는 그냥 떡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래? 그거 아쉽군."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일부러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강요하는 순간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라스가 아니게 되니까.

'거기에 그냥 하는게 더 좋다잖아.'

애를 가질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질싸를 받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걸까. 나는 당당히 자신의 포부를 밝힌 샤이탄의 의지를 수용하기로 했다.

"들어가서 시간이 되면 한 번은 해주마. 플라우로스. 네게 큰 짐을 맡겨서 미안하구나."

플라우로스는 뿌리를 흔들었다. 플라우로스 또한 뿌리의 구멍을 넓히며 내가 뿌려주는 영양액을 원했으나, 미안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정을 쏟아야 했다.

"너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박아주도록 하마. 그 때는 뿌리가 아니라 네 인간형에 말이야. 흐흐."

플라우로스는 뿌리를 끄덕이며 안으로 집어넣었다. 뿌리가 들어간 아래 공간은 지하로 통하는 긴 통로가 이어져있었고, 나는 샤이탄과 함께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애들도 모를 것이다. 이곳에 이런 시설이 있는 것을."

"던전의 정규 시설은 아니니까요. 플라우로스가 열어주지 않는 이상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꿀럭, 꿀럭, 쿵.

나는 통로의 끝에 멈춰섰다. 천장의 높이가 3m 정도는 되어보이는 넓은 방은 침대도 뭣도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미리 모험가들을 통해 챙겨온 낡은 무기들 뿐이었다.

연무장.

정사와 라스의 방이랍시고 불렀던 그곳이 샤이탄의 힘과 노력에 의해 문을 열었다. 체감은 되지 않건만 벌써부터 안쪽에서 100초가 흘러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만 시간이 100배 빨리 흐른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결계의 위치는 제가 서있는 이곳까지. 주인님이 만약 결계 밖의 이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주인님과 그분의 대화는 100배 늦게 이어질 지 모릅니다."

"그렇군. ...들어오라. 샤이탄. 그것을 하겠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샤이탄은 난감하게 웃으며 내 주머니에 들린 영롱한 구슬을 가리켰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일단 있는 방법부터 동원해야지."

과정 1. 기존의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 나는 샤이탄이 건네는 나무컵을 받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액손실이 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잘 챙기거라."

"그거야 물론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주인님께서 그렇게 하기로 하셨으니."

샤이탄은 고맙게도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물건-최상급 마석을 나무통 안에 집어넣었다.

'루나와 륜이 강해진 것처럼 나도 강해진다.'

강해지기 위한 시간이 곧 100일이었다. 강해지고 난 다음 몸이 새롭게 탈바꿈 할 신체에 적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00일이었다.

오크의 신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크의 신체를 더욱 강하게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럼 샤이탄. 망을 봐다오."

"제가 직접 해드리겠습니다."

"안 돼. 하면서 은근슬쩍 삼킬 거 아니냐."

"......조금만 챙기겠습니다. 조금만."

"됐다. 이미 벗었다."

강해지기 위한 조바심은 숨길 수 없었고, 나는 바지를 내리자마자 바로 자지를 잡고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탁탁탁.

아마 밖에서 보면 평소보다 100배 빠르게 자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나무컵을 향해 자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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