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 46일차 -->
하루가 지났다.
우리 던전에 포털이 열린지도 어느덧 사흘째. 정말 많은 일이 생겼지만,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역시 사람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레모리.
마녀였다가 이제 타천사로 다시 태어날 여인. 나는 그레모리에게서 이름을 거두었고, 그에 따라 그레모리 던전은 내 던전의 멀티 던전이 되었다.
'다행히 아직 정원은 안 막혔다.'
하나의 던전으로 통일되었고, 하나의 군단으로 통일되었기에 다행히 정원 오버로 탈력감이 생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레모리의 빈 자리는 내가 잘 채웠고, 지하 1층에 생기게 될 혹시 모를 변수는 루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18시간.
츕, 츄릅, 츕.
아침을 여는 륜과 샤이탄의 더블펠라와 함께 잠에서 깨어난 나는 잽싸게 둘에게 한 발 끼얹어줬다. 오늘자 사정 1회. 륜과 샤이탄은 서로의 얼굴에 묻은 내 정액을 그루밍하듯 서로 핥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더 많이 가져갔죠?"
"넹. 샤이탄. 아-"
륜은 품에서 작은 마석 하나를 꺼내 샤이탄의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마석을 입에 넣고 사탕마냥 굴리기 시작했다.
"으이인."
방금 주인님이라고 한 건가? 둘에게 고개를 돌리니, 둘은 입을 쩍 벌린채 내게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입안에는 정액과 마나가 섞여 한가득 고여있었다.
꿀꺽.
둘은 그걸 한 입에 집어삼켰다. 하이파이브까지 하며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렇게 좋냐?"
"마석의 마나를 손실없이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인 걸요."
"괜히 마물의 강화 수단이 마물합성인게 아닙니다. 마석으로 99%가량 흡수가 가능했다면 바로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 이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니냐."
마석을 녹여 마나를 손실없이 보관하는 성질. 샤이탄은 그걸 두고 〈마액〉이라고 명명했다. 마나가 담긴 정액. 참 명명이 그렇고 그랬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부정은 하지 못했다.
"얻은 마석들을 번거롭게 마물 소환해서 합성 안 해도 되겠네."
"어디까지나 강화할 대상이 주인님이 주시는 마액을 먹거나 취한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남한테 주기 싫은데…."
샤이탄과 륜은 각자의 이유로 마액의 보급을 반대했다. 마액의 원료를 알면 당연히 나와 몸을 섞은 이들만 마시려고 들 것이며, 모르는 이에게 마액을 먹이기는 상당히 죄책감이 들었다.
'행여나 남자라도 먹이면? 아들들이나 랜슬롯이 먹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뿐더러 앞으로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마액은 주요 간부들만이 마시는 특제 음료가 되었다.
"후후. 그러면 주인님, 저는 오늘 '작업'을 위해 하루동안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오냐. 자정에 보자."
샤이탄은 종종걸음으로 그레모리 던전을 떠났다. 할파스 군단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 샤이탄의 보좌는 받을 수 없다.
"오랜만에 던전 운영 빡시게 하겠네. 젠장."
"평소에 하던대로 하시면 되는 거 아녜요?"
"륜아. 일이라는 건 말이다,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노라."
나는 내 쥬니어를 탐하려고 드는 륜에게 단언했다.
"오늘은 못 한다."
"예?!"
"바빠. 할 시간 없어."
"그, 그런--!!"
청천벽력이 떨어진 륜의 비명과 함께, 나는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 * *
〈전 그레모리 던전〉
나는 군단 병력을 재편성하며 호전적이지 않은 이들을 전부 목장 수비대에 배치했다. 다른 이를 공격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은 당연히 공격대로 편성했지만, 무언가를 지키는 것에 더 재능이 있는 이들은 목장을 지키도록 재조정했다.
"목장에 이상은 있느냐?"
"없습니다. 피난 준비를 했던 이들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키메리에스. 비비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듀라한은 목장 수비대에 배정받았다.
강제로 범해졌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목장의 경비를 맡기는 것도 좀 그렇기는 했지만, 목장에 있는 이들 중 남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이었다.
"막 예전처럼 저항하는 놈들은 없고?"
"말씀하신 기준에 따라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뭐 저항하는 이들이야 이미...."
키메리에스는 손을 제 배에 슬쩍 올렸다. 듀라한 또한 언데드 계열의 마물인 만큼, 키메리에스 또한 마물합성에 있어서 라스투자드의 혜택을 받고 있다.
"너도 제법 강해졌구나. 이제 어엿한 군단의 일원이 되었어."
"주인님의 보살핌 덕분입니다."
키메리에스는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웃었다. 마물과의 행위 자체에 기겁을 하던 발라크와는 달리, 키메리에스는 그저 강압적인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것도 요즘 방어가 내려가고 있지.'
빛이 바랜 도화지 위에 나의 색으로 물들여나간다고 해야할까. 처음에는 소프트하게 즐기던 플레이는 점점 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듯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다른 애들이랑 비교하면 소꿉놀이 수준이지만.'
그레모리와 루나랑 하는 것에 비하면 키메리에스는 약과다. 그런 순정파인만큼, 키메리에스는 나 이외에 다른 이들과 하는 행위는 거부하고 있었다. 기특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조금 미안하기는 했다.
"이것을 마셔라."
나는 미리 준비한 나무통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무지개빛이 반짝이는 걸쭉한 요거트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아아, 이건 '마액'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단 마셔봐."
키메리에스는 아무 망설임없이 걸쭉한 마액을 들이켰다. 한손으로는 컵을, 한손으로는 목을 잡고 마시는게 상당히 불편해보였지만, 키메리에스는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마액을 전부 안에 털어넣었다.
우우웅---
빛이 반짝이며 키메리에스의 몸을 감싸안았다. 몸속에 들어간 마액은 키메리에스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키메리에스는 자신을 채우는 감각에 눈을 빛냈다.
"이것은...마나를 섭취...?"
"그런 셈이지."
마액의 효과는 대단했다. 살아있는 자에게도 통하지만 죽은 언데드에게도 통했다. 즉, 사실상 우리 던전의 모든 존재가 마액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주인님. 이거 맛이 조금 이상합니다."
"응?"
"이,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 지 모르겠지만...꼭 주인님의 성수와도 같은-"
"그거 맞다."
"......."
키메리에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맛있게 먹고 난 야들야들한 고기가 알고보니 앞마당에서 키우던 순돌이였다는 걸 알게된듯한 표정이었다.
"이, 이게 대체."
"아무래도 내 거에는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모양이더구나. 한가득 싸서 마석을 녹였지. 흐흐. 어떠냐?"
"......조금 힘들 듯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렇겠지?"
모르고 마신다면 모를까, 알고 마신다면 참 용기가 필요한 음식이었다. 생선의 이리도 그냥 모르고 먹는다면 괜찮지만, 무엇인지 알고 먹는다면 생각이 참 많이 드는 음식 아니던가.
"군단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아뇨. 그러니까 제 말은."
키메리에스는 비어버린 나무컵을 들어올렸다. 족히 300ml는 들어갈 만큼의 머그컵 크기였다.
"주인님께서 군단 전체에 이만큼 양을 만들어내시는 건 조금...."
"아, 그런 문제라면 전혀 신경쓰지마라."
마액 공급을 통한 전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만큼, 나는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작업 과정을 찾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석만 녹이면 되는 거라서. 네가 마신 것이 전부다 그건 아니거든. 희석한 거다."
"과연. 뭔가 특별하고 달콤한 맛이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초코우유."
"......."
키메리에스의 표정이 대번에 썩어들어갔다. 우리 군단에서 초코우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마신 것의 정체가 모유와 정액과 마석의 화합물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주인님."
"미안하다."
"...혹시 다른 이에게 먹일 거라면 결코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뭐? 너 혹시?"
키메리에스는 살포시 웃으며, 목장 근처를 열심히 오다니는 이들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만 당할 수 없죠. ...모르고 먹으면 맛있기도 하고. 후후."
키메리에스는 생각보다 무서운 녀석이었다. 자기도 한 번 당했으니, 다른 이들도 한 번 당해봐야한다는 심사가 엿보였다.
'하긴, 억울하게 듀라한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키메리에스가 듀라한이 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 번 물어봤다.
"누구에게 먹이면 좋겠냐?"
"암두시아스요."
...키메리에스는 정말 칼같이 엿먹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나는 다음 타깃을 유니콘 마물-암두시아스로 잡았다. 페일 라이더와는 달리 명백히 살아있는 마물인 동시에 우리 던전에서 나와 쌍벽을 다루는 버진 헌터.
"그래. 그런데 암두시아스 지금 여기 없지?"
"예. 기동부대로 라스베가스에 배치되었습니다."
유니콘 부대는 비전투원 3~4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라스베가스에 배치되었다. 워울프도 마찬가지. 아주 극히 일부 목장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 녀석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라스베가스에서 기마나 가축처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잇었다.
"라스베가스에 가게 되면 꼭 먹여보도록 하마. ...그러고보니 키메리에스. 너 혹시 페일 라이더라고 아느냐?"
"주인님 직영 던전을 습격한 괴물이라고는 전해들었습니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듀라한과 유니콘 부대를 하나로 합치실 생각이십니까?"
정곡이 찔렸다. 그냥 생각만해봤을 뿐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마물합성〉 두 종족의 마물을 하나의 개체로 합칩니다.
# 〈듀라한〉 + 〈유니콘〉 = 〈죽음의 기사〉
# 〈오크〉 + 〈워울프〉 = 〈울프 라이더〉
# 높은 등급의 개체의 등급을 기준으로 ★ 추가.
현재 우리 던전에서 페일 라이더처럼 합성 가능한 조합은 두 가지. 후자는 차치하고, 전자는 키메리에스와 암두시아스 부대의 편성만으로 충분했다.
"네 휘하의 듀라한들 대부분 ★★이라서 머리 아직 없잖아. 유니콘이랑 하나로 합치면 ★★★되거든?"
암두시아스를 제외한 모든 유니콘들은 현재 ★~★★의 선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키메리에스를 제외한 모든 듀라한들은 ★★의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둘을 하나로 합치면 온전한 기병 부대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에 해당하는 죽음의 기사들이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페일 라이더들이랑 한 판 붙어보니까 알겠더라. 걔들 장난아니게 강하더라고. 근데 내가 땀냄새 풀풀 풍기는 놈들 데려다가 쓰기는 싫고...."
"저희도 죽은 자입니다만."
"그래도 너희는 최소한 냄새를 향기로 덮는 노력이라도 하잖냐."
듀라한들은 천만다행으로 구더기가 끓는 시체는 아니었다.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사인의 흔적은 조금 남아있을지 몰라도, 피부가 창백한 것을 빼면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언제까지고 애들 머리 없이 몸만 다니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처럼 ★★★까지 진화할 수도 없잖냐. 머리 얻으려면 3성 찍어야 한다며. 그렇다고 합성으로 두 명을 하나로 합치기도 그렇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똑같은 언데드라도 사람처럼 행동하느냐 안 하느냐, 그리고 사람에 가깝냐 안 가깝냐 하는 문제가 참 내 선택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었다. 최소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판단하는 녀석들을 강제로 합성시킬 수는 없는 노릇.
"생각있으면 한 번 얘기해봐라. 너야 괜찮지만, 언제까지 부하들 목 없이 다니게 할 수는 없잖니. 뭐...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너무 신경쓰지말고."
"다른 방법이요?"
"듀라한 하나를 마왕군에게서 소환한 다음 합성하는 거지."
"......."
던전이 발전할수록 부하들을 강화할 방법은 늘어만 갔다. 단지 효율만 추구하느냐, 아니면 어느정도 양심을 챙기느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
'이쪽은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시간을 줘도 되겠지.'
암두시아스와 키메리에스의 관계는 사실 따지고 보면 바퓰라와 발라크의 관계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했다. 지금이야 둘 다 내게 순순히 복종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둘이 한 전장에 두기에는 상당히 애매하긴 했다.
"그럼 나는 다른 곳으로 간다. 오늘 던전에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침입자입니까?"
"아니. 침입자는 아니고...."
나는 키메리에스의 귀를 톡톡 건드렸다.
"여왕을 모실 종들이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