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약관 같은 건 잘 읽으셨어야죠. 주인님 나중에 혼인신고서 쓸 때 주의하세요."
"혼인신고서 쓸 만한 곳은...흠흠. 알았다. 숙지하마. 그래서 어떻게 조치 가능하냐?"
"네. 물론이죠."
샤이탄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마정석을 제 인장에다가 슥슥 문질렀다.
"이런 물건들은 결과적으로 마왕군의 전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표현은 교배,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파종'을 위한 것이라고 되어있기는 하지만...."
우우웅--!!
마정석에는 샤이탄의 보라색 기운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자신의 아랫배에다가 마정석을 굴린 샤이탄은 자색으로 물든 걸 내게 건넸다.
"이제 확인해보십시오."
"그래, 고맙다."
"〈마정석〉 정기를 가득 머금은 마석. 사용시 출생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 단축 배율 : 100배."
"헐."
고작 네 단어가 사라졌을 뿐인데 효과는 무궁무진해졌다. 교배에만 한정되어있던 물건이 이제 맥락상 교배 이외의 상황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장의 힘인가?"
"비슷하긴 합니다. 정확히는 원래 용도로 사용하던 물건의 제약을 풀어낸 겁니다."
"제약?"
"시간을 다루는 만큼 마정석은 여러모로 위험한 물건이니까요."
샤이탄 왈, 마정석을 통한 시간 단축은 온갖 곳에서 활용되었다고 했다. 그게 비단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알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 사용될 수 있는 무서운 이물이라고 했다.
가령, 특정 공간의 시간만 100배 빠르게 만드는 마법진의 코어로 사용한다거나.
"예를 들어 이 공간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는 거죠. 시간 흐름의 배율이 100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럼 만약 여기다가 설치하면 이곳의 100년이 바깥의 1년인 셈이나 다름없죠."
"뭐야, 그거 개꿀인데? 그거 완전 정신과 시간-"
"신체 나이는 보정되지 않습니다. 즉, 남들보다 빨리 더 늙는 셈이죠."
"...그건 별로구만."
새삼 솔로몬의 마법 능력이 무서워졌다. 그리고 새삼 그런 마법 능력을 '이런 곳'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약을 걸어둔 것에도 무서워졌다.
"원래는 제약을 풀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특정 공간에다가 설치를 했는데 거기에 용사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깥에서 7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기서 수련을 하고 나오면요?"
"백배면 700일이니까...대략 안에서 2년간 수련한 셈이 되겠군. 어? 혹시?"
"네. 바알 아저씨의 던전을 무너뜨린 용사가 그걸 이용했습니다. ...10레벨도 안 되던 용사가 반 년만에 100레벨이 되어서 나타났죠. 백발이 성성한 상태로."
반 년. 180일로 잡아도 약 50년을 수련한 셈이다. 복수에 눈 먼 미친 복수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그건 문제가 있군. 하지만 샤이탄, 그 위험을 감수하고 공간을 만들면 좋은 점도 있다."
"...도대체 뭡니까?"
"밖에서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안에서는 100일동안 떡칠 수 있잖냐."
"......그거 상당히 솔깃하기는 합니다만 삼가해주시죠. 꿈속에서도 비슷하게나마 할 수 있는데다가, 그렇게 해서 알이라도 나왔다가는-"
나와 샤이탄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시간가속.
알.
"혹시?"
"설마?"
하루 최대 720마리의 마물을 쏟아낼 수 있는 솔로몬의 소환 시스템. 그 힘의 편린을 어느정도 맛보고 말았다.
"설마 그걸 위해서 하시는 거라면-"
"......아무리 나라도 거기까지는 조금."
참고는 하되 우리 부하들에게는 써먹을 만한 방법이 아니다.
"주인님, 그레모리가 가지고 있던 것 말고도 마정석 하나 있지 않으십니까? 지난 번에 약속한 대로 쓰시는 겁니다?"
"물론이지."
불안한 물건을 치워버리는 게 인지상정. 아주 오래전에 얻었던 마정석은 사용처가 정해져있다.
"그런데 샤이탄아...내가 지금 하나 더 얻었거든?"
"예?"
"곰탱이...아니 바퓰라 서브 던전 히든보스 잡고 나오더라."
최상급 마석과 함께 덜컥 튀어나온 마정석 하나. 여전히 교배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약이 걸려있었지만, 샤이탄이 있으면 제약을 다시 풀 수 있다.
"저 인장의 힘을 다 쓰고 말았습니다. 다시 채워주시겠습니까?"
...샤이탄의 안에 넣고 한 번 싸서 마력을 채워주면 다시 제약을 풀 수 있다. 나는 샤이탄의 은근한 눈빛에 빛이 사라진 인장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은근슬쩍 한 번 박아달라고 하는 거 보게."
"후훗. 기회가 있을 때 마음껏 해야죠. 제 덕분에 산 줄 아십시오."
샤이탄은 우쭐대며 가슴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는 샤이탄의 탐스러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네 덕분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는구나. 꼼짝없이 그레모리를 1년 동안 기다려야하나 싶었다."
꿈틀, 꿈틀.
코쿤 또한 마치 동의를 한다는 듯 꿈틀거렸다. 그 꿈틀거리는 속도는 원래의 속도보다도 훨씬 빨라,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구나. 흐흐."
마정석을 사용한 덕분에 이제 남은 시간 3일 하고도 12시간.
공교롭게도 타이밍을 계산해보니, 할파스 군단과의 전쟁이 딱 닷새째가 끝나는 날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역공각을 잡는데. 쯧."
할파스 군단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기는 했어도 출혈이 크기는 컸다. 더군다나 그 공격도 군단 전체의 온전한 힘은 아니니, 나로서는 수비는 해도 역공은 할 수 없었다.
시간만 충분히 있었다면-
"...샤이탄. 나 하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지 아니까 싫습니다. 위험합니다."
"아니, 안 빼앗기면 되잖아?"
"위험합니다. 설치를 한다고 해도 아주 작은 방 하나 정도밖에 안 될 것이고, 행여나 주인님께 반기를 가진 자가 들어갔다가 강해지기라도 하면 어쩌실려고요?"
역시 샤이탄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똑똑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위험하다고요."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야지. 걱정마라. 나 거기에 들어갈 사람은 정해놓을 거야."
"주인님께서 들어갔다가 나오시면...그만큼 바깥에서 보기에는 수명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오크는 기대 수명이 그렇게 많지 않-"
"샤이탄."
나는 주먹을 불끈 들어올렸다.
"그런 건 진화 환생하면 어떻게든 되게 되어있다. 네임드 마족들 봐라. 몇 천년을 사는 경우도 있지 않냐. 혹시 아냐? 여신을 잡아다가 솔로몬한테 바치면 불로불사의 방법이라도 알려줄지."
"......꼭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샤이탄아. 딱 하루. 딱 하루만 그러자. 응?"
포털이 역방향으로 열려 오롯이 우리 던전에서만 넘어갈 수 있는 나흘째.
"딱 100일만 빡시게 훈련하고 밖으로 나올게. 아니 뭐, 100일 정도는 괜찮잖아?"
"......하아."
샤이탄은 여전히 내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성은 안된다고 말하는데, 자꾸 내가 부탁을 하니 갈등이 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샤이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내밀었다.
"조교의 방."
"!!"
"방치 플레이."
샤이탄의 눈이 더할나위없이 커졌다. 나는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밖에서 3분만 기다려도 안에서는 5시간 동안 절여지는 거 아니냐. 생각해봐라."
나는 샤이탄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제안했다.
"슬라임 공구리 쳐놓고 안에 던졌다가 꺼내면-"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샤이탄은 검지 하나만 들어올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할파스 군단으로부터 이기기 전까지 단 하루만 들어가시되, 들어가는 사람은 오직 저 한 명이어야합니다."
"...루나랑 들어가려고 했는데? 전투 훈련은 루나랑-"
"안 돼요!"
샤이탄은 빽 소리를 질렀다.
"루나가 같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 지 아시잖습니까?!"
"아니, 샤이탄. 아무리 내가 발정난 개새끼라고 해도 이런 위험한 시국에 그렇게까지는-"
"루나가 주인님 힘으로 제압하고 100일 동안 따먹는 게 뻔한데요! 체위는 후배위로 하겠지만, 자세 바꾸려 하면 바로 힘으로 제압할 게 분명합니다!!"
"......."
설득력이...있다.
"하아, 알았다. 샤이탄.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나는 성난 샤이탄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이탄을 번쩍 들어올렸다.
"너, 나, 그리고 조교 플레이할 손님. 딱 이렇게만 부르는 거다. 어때?"
"륜이나 루나, 다른 분들도 들어오려면 제 리드대로 움직이는 겁니까?"
"물론. 본인들이 원한다고 한다면."
"......인장이나 다시 한 번 가득 채워주십시오."
결국.
나는 샤이탄의 안에 한 번 더 사정함으로써, 샤이탄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합의를 봤다.
이른바, 〈정사와 라스의 방〉.
* * *
〈그 시각, 비르고 남작령 스피카 성 '아발론' 지하.〉
"내 무례를 용서하시게, 메어리 양."
비르고 남작은 메어리의 옆에 안겨 아양을 떨었다. 메어리는 비르고 남작을 끌어안아 안심시키면서도 속으로 비웃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속내. 메어리는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얼굴로 비르고 남작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마음은 진작에 풀렸어요."
"그럼 다행이고. 흐읏."
"후훗, 예뻐요. 남작님."
비르고 남작은 메어리가 주는 쾌락에 져버렸다. 두 여인은 얇은 침대 이불 하나만 덮은 채 발가벗은 상태로 함께 누워있었다.
밖에서 알게 된다면 크게 경을 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안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아발론은 남작과 메어리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장소였다.
물론 이런 육체적 관계마저도 자신의 귀족 작위나 생명에 위협이 된다 싶으면 바로 칼같이 잘라내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메어리가 비르고 남작에게 아군이 되어주는 이상 큰 문제는 없었다.
"스타킹 판매는 어떤가? 오늘 내가 그대를 하루동안 빌려서 바깥 일은 전혀 하지 못했을텐데."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신 건 남작님도 마찬가지잖아요? 피차일반이죠. 그리고...."
메어리는 비르고 남작의 위로 올라탔다. 머리통만한 가슴 두 개가 남작의 몸을 누르기 시작했다.
"저희가 없어도 다행히 바깥 일은 돌아가게 되어있잖아요. 후훗."
"...그렇지. 유감스럽게도 당분간은 이곳에 못 올 것 같지만."
비르고 남작은 슬픈 눈빛으로 메어리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네. 나도 모든 일을 하인들에게 맡기면 좋으련만, 곧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말이야."
"중요한 손님?"
메어리는 귀가 쫑긋 섰다. 자신이 일부러 이 침대에 올라와 남작과 살을 섞는 이유도 남작에게서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대는 왜 중요한 손님이라는 말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가?"
남작은 표정을 굳히며 메어리에게 따지고 들었다. 메어리는 순간 표정이 굳었지만, 남작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살살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얼마나 중요한 손님이길래 여기도 못 찾아오신단 말씀이세요?"
"둘러대는 건가?"
"...뭐, 중요한 손님이 어느정도 급이냐에 따라 저도 인사 드려야하니까?"
메어리는 적당히 웃으며 변명을 내뱉었다. 남작은 다리를 들어올려 메어리의 엉덩이 뒤로 휘감으며 웃었다.
"그래. 중요한 손님이긴 한데, 이런 곳은 반기지 않으실 거야. 교단에서 오시기로 했거든."
"교...단?"
메어리의 표정이 굳었다. 허리를 흔들던 움직임도 굳었다. 남작은 메어리가 이상할 정도로 굳자 표정을 바꾸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미, 미안하네. 하긴 교단에서 금기라고 하는 이런 행위는 자네에게 신경쓰일만 하지. ...그치만 우리 말고는 아무도 이런 쪽으로 하지는 않잖나?"
"...그렇긴 하네요. 남작님, 교단에 누가 오시길래?"
"성녀님."
메어리는 다시 한 번 더 굳어버리고 말았다. 듣고 싶은 정보기는 했으나, 너무나도 거물이 비르고 남작령으로 오고 있었다.
"성녀님께서 오신다네."
"언제요?"
"......원래는 진작에 오시기로 했는데, 몰라."
남작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메어리의 얼굴을 붙잡았다.
"자네, 혹시 성녀님이 오신다니까 새 여자 찾으려는 건가?"
"...에이, 설마요."
메어리는 상체를 들어올려 남작의 다리를 앞으로 밀었다. 메어리의 패밀리어-라인은 어떤 오크와 똑같이 생긴 자지 모양으로 메어리의 고간부에 붙어있었다.
"제가 남작님 두고 딴 눈 팔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눈길도 안 주고 있었는 걸. 메어리는 미소를 지으며 남작의 애널에 슬라임 딜도를 찔러넣었다.
"흐으응!!"
남작은 자신의 애널을 뚫고 들어오는 거근에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괜히 성질을 부렸다 싶을 정도로, 메어리가 말한 '슬라임 딸'의 감각은 헤어나올 수 없었다.
"마음 껏 가버리세요. 아예...여기 찾아오기 싫어질 정도로 해드릴테니까."
"하아아악!!"
메어리가 비르고 남작의 위로 살짝 몸을 들어올렸다. 덕분에 비르고 남작은 메어리의 가슴 아래에 얼굴이 깔렸다. 그 바람에 그녀는 메어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후훗, 어때요?"
목소리는 웃고 있으나, 메어리의 눈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