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우우웅!!
포털에 진입하자마자 역한 짐승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청난 악취에 나는 곧장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고, 뒤따라 들어온 부하들에게 입을 가리켰다.
“당장 코를 막...응?”
“왜 그러세요?”
륜은 어리둥절해하고, 그레모리는 킥킥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이상한 냄새 안 나냐?”
“냄새요?”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너는 더 민감하게 느끼는 모양이네.”
륜은 느끼지 못하는데 그레모리와 나만 느낀다?
“아무래도 엘프에게는 안 느껴지는 걸 봐서는 그게 맞는 것 같아. 얘, 거기 밟지 마. 영역표시 되어있으니까.”
“영역표시라는 건...윽.”
륜은 그레모리의 말뜻을 깨닫고 바로 내 어깨 위로 올라탔다. 사자가 영역 표시를 했다는 것은 즉 무언가를 싸질렀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고, 바닥은 발로 밟기 싫을 정도로 길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진짜 싫다.”
“한 명 정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 길은 있어보이는 걸?”
“그러면 그레모리 너도 이쪽으로 와라. 발 더럽히는 건 안 좋으니.”
나는 그레모리를 앞에 안아들었고, 그레모리는 내 앞에 물에 흠뻑 젖은 무언가를 들어 코에 붙였다. 진한 머스크 향이 향긋하게 코를 채웠다.
“이걸로 참아.”
“킁킁, 이게 뭔데?”
“스타킹 원단 있잖아? 그거 손수건으로 하나 만들었어. 냄새는 어느정도 줄어들 거야.”
“고맙네. 킁.”
그레모리가 준 검은 손수건 덕분에 나는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륜도 맡지 못하는 악취를 왜 나는 이리도 민감하게 느끼는 걸까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퓰라 놈이 무슨 특별한 페로몬...아니 냄새를 뿌리는 건가?”
“저는 전혀 느끼지 못하겠는데요?”
“그럴 수밖에. 다른 건 아니고 순수한 마족들만이 느낄 수 있는 냄새거든. 자기 영역이라는 표시인 거야. 그리고 그 표시로...이걸 뿌리는 거지.”
그레모리는 손을 아래로 뻗어 내 자지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자연스레 전해져오는 포근한 자극에 나는 싸지는 않았지만 바로 퀘퀘한 냄새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방에 자기 거를 뿌리고 다닌다고? 미친 거 아니냐?”
“너도 자기 여자한테는 머리카락 전부 적실 정도로 정액 뿌리잖아.”
“그건 맞지. 바퓰라 녀석, 나처럼 미친 녀석이었군.”
자기 것에 대한 소유의 표현으로 뿌려댄 것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단지 바퓰라가 자기 소유의 ‘땅’에 뿌렸다면, 나는 나의 여인들에게 뿌리고 싸질렀을 뿐이다.
“같은 논리라면 륜이나 네 몸에는 내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겠군.”
“네.”
“몰랐어?”
“......뭐라고?”
나는 새롭게 알게된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걱정이 되었다.
“막 땀내나 뭐 썩은 내가 나는 건 아니지?”
“전혀요!”
“향긋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암내라거나 그런 건 아니야. 적당히 몸에 감도는 향이라 뭐라 표현하기는 그렇네.”
“그럼 다행이고. 괜히 식겁했네.”
괜히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냄새가 난다고 할까봐 식겁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라고 했으니, 나는 마음을 조금 놓고 화염사자 서브 던전의 안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바퓰라를 쏙 닮은 화염 사자 한 마리가 뒤돌아선 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암컷인가?”
“어떻게 아세요?”
“수컷은 머리 주변에 갈기가 있거든.”
아무리 마족이라 한들 사자종 자체에 대한 공통적인 유전적 특징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갈기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저 사자는 암컷이 분명했다.
“수컷은 가만히 앉아있고 암컷이 먹이를 사냥하러 다닌다고 하더라. 륜, 내려라. 그리고 저격해버려.”
“제가 해도 될까요?”
륜은 내가 아닌 그레모리의 눈치를 봤다. 상황상 화염사자를 죽인다고 하면 륜보다 그레모리가 잡는게 더 급하기는 했다.
“응, 해. 나는 일단 살피고 있을게.”
그러나 그레모리는 흔쾌히 승낙했고, 륜은 자신감을 얻고 화염사자의 꽁무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제발 한 방…!”
푸슝!
바람화살이 빛처럼 날아가 화염사자의 뒤를 덮쳤다. 화염사자는 호들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으나, 하반신 쪽에 원통형으로 생긴 구멍에 나도 륜도 그레모리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륜, 역시 네가 저격하기에는 최고구나. 노렸구나, 노렸어.”
“아니, 그게, 암컷이라고 하셔서 아닌 줄 알았는데….”
“괜찮다. 내가 암컷이라고 했으니 그럴 수 있지. 뭐, 거기 좀 맞췄으면 어떠냐. 지금 저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화염사자는 끅끅거리며 바닥을 좌우로 구르고 있었다. 하반신에는 바람 화살 하나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었고, 다소 떨어져 있어도 알싸한 피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그레모리야. 너는 저게 꿰뚫리는 감각을 아느냐?”
“아니. 몰라. 그보다 나 전투에 집중하면 안 되겠니?”
크아아악!
이미 내게 안겨있다가 두발로 선 그레모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을 구르던 화염사자가 입에서 불을 토해내며 괴성을 질렀다.
“거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구만.”
갈기없는 화염사자는 수컷의 상징인 갈기도 없었고, 륜의 저격으로 인해 알까지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아픈 거야 아플 수 있겠지만, 서브던전의 마수 주제에 시끄럽게 구니 상당히 귀찮았다.
“쓸데없이 반항은. 그냥 죽을 것이지.”
회광반조라고 해야할까. 화염사자는 이대로 죽기는 억울하다는 듯 잽싸게 뛰어올라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어딜?”
나는 이빨을 사납게 딱딱 붙이며 달려오는 놈의 아가리를 위아래로 붙잡았다.
‘“키익?!”
“어디서 똥내나는 아가리를 벌려?”
내 바로 앞에서 멈춘 화염사자의 입안에서는 꼭 담배를 피고 온 상사가 입가심이라며 자판기에서 싸구려 커피를 들이킨 쩐내가 물씬 풍겼다. 나는 위아래로 붙잡은 화염사자의 입을 강제로 닫게 만들었다.
“양치 해, 시발!”
“끄륵, 끄르륵.”
화염사자는 연신 입을 벌리려 했지만 내가 힘으로 눌렀다. 이런 식으로 입이 잡힐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우리를 통째로 잡아먹으려고 달려온 것이 화근이리라.
“잡고있어봐. 내가 잡을테니까.”
그레모리는 화염사자의 목 아래에 지팡이 끝을 붙였다. 화염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내게서 도망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절단.”
콰득!
그레모리가 방출한 마력의 칼날이 화염사자의 목을 베었다. 단면도가 이보다 더 갈끔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화염사자는 짧게 경련하다가 축 늘어졌다.
“그건 또 무슨 마법이야?”
“바람을 빠르게 움직여서 칼날로 만드는 거지. 아직 나도 부족해서 직접 날리지는 못하고, 이렇게 근거리에서 날리는 건 가능해.”
서걱, 서걱!
그레모리는 자기 입맛대로 화염사자를 요리하기 시했다. 목과 사지가 잘려나간 사자는 더이상 사자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토막나있었다. 피는 튀지 않았고 천천히 절단면에서 흘러내려 바닥을 흥건히 적실 뿐이었다.
“대단한 걸. 륜, 다음에는 네가 한 번 해보자꾸나. 내가 다시 입을 벌리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너는 지금처럼 방울을 날려버리고 숨통을 끊어버리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맞추라고 하면 맞출 수 있기는 해요. ...주인님, 진짜로 쏠까요? 저것들도?”
동료의 피냄새를 벌써 맡았는지, 먼 통로 반대편에서 화염사자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크아아앙!!
이미 륜의 활시위는 새롭게 나타난 화염사자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손을 두어번 꺾은 뒤, 화염사자들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륜, 그레모리! 지금부터 중성화 수술을 시작한다, 이 덩치만 큰 고양이 새끼들아!!”
달려드는 사자들를 향해,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포효를 내질렀다.
"덤벼!!"
그레모리와 륜이 옆에서 보좌하며, 나는 화염사자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갔다.
* * *
파후우가 열심히 사자들의 알을 까고 있던 그 시각.
비르고 령 스피카 성의 한 허름한 건물은 오늘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그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으로 온 진상에 대해 요정들은 쫓아내기 상당히 어려워했다.
"메어리 양은 언제 돌아오나요...?"
"그게 곧...."
"그거 아까 한 시간 전에 말하셨던 건데."
"마법으로 오다니시다보니 뭔가 시간이 지체될 수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그건 두 시간 전에 말하셨던 거고."
진상 그 자체. 한창 물건을 팔고 있는 잡화점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여인, 버지나니야 비르고 남작의 등장에 요정들과 그에이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단단히 꽂혔나보다.'
그들은 왜 남작이 꼭두새벽부터 메어리를 찾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메어리가 반드시 돌아와야만 해결되는 문제였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죠?"
"메어리 님!!"
"...자초지종은 잘 알았어요. 이제는 제게 맡기세요."
그리고 그들에게 구세주이자 진상이 찾는 책임자가 아발론에 도착했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메어리는 최대한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돈한 뒤, 조심스레 남작이 기다리고 있는 지하의 방문을 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남작님."
"어서오세요, 메어리."
남작은 벌써부터 침대에 누워 메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흩뿌려진 옷가지나 남작의 상태를 보아, 아무래도 남작은 메어리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쁜 짓을 저지른 듯 했다.
'재워야하는데.'
재우고 나면 서큐버스들이 알아서 뒤를 정리해 줄 테지만, 문제는 남작이 현재 전혀 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남작님.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잠깐 눈 좀 붙이시는게…?"
"아직 거뜬합니다. 후후. 기다리고 있었어요."
눈치를 밥말아 먹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메어리와 함께 하기를 바라기에 모른 척 하는 건지.
"사실 오늘 새벽부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래서 오늘 해야할 일을 전부다 처리하고 이렇게 왔답니다. 오호호."
'어느 쪽이든 그냥 꺼져줬으면 좋겠어.'
당장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남작도 참 무슨 생각인지 하는 행동이 너무 우습고 단순해보였다.
"그럼 메어리. ...혹시 오늘도 가능할까요?"
메어리는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남작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작님. 혹시 슬라임 딸이라고 아십니까…?"
남작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 * *
"우오오오!!"
나는 달려드는 갈기 없는 숫사자를 틀어막았다.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나를 베려고 했으나, 내가 미리 챙겨온 쇠방패를 할퀴고 뒤로 튕겨나갈 뿐이었다.
"그레모리!"
"그래."
방패로 공격을 막은 이상 반격을 할 차례. 그레모리는 마나를 끌어올려 스태프로 땅을 두드렸고, 땅에서 날카로운 가시창이 솟아나 화염사자의 심장을 찔렀다.
크아앙!
심장이 꿰뚫린 화염사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화염사자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천장에 닿을 정도로 뛰어올랐다.
캬오오오!
"이런 미친!"
무게까지 실어서 손톱을 내려찍으려고 하더라. 나는 슬쩍 눈을 흘겨 륜과 그레모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요격 불가능.'
그레모리는 마나를 회복하고 있었고, 륜의 손은 부어있어 잠시동안 활을 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요격해야했다.
'방법은 하나.'
나는 철방패를 옆으로 살짝 뉘여 화염사자를 향해 집어던졌다.
"캡틴 라스!"
부웅---!!
전력으로 집어던진 철방패는 부메랑처럼 날아가 화염사자의 얼굴을 강타했다. 원형으로 된 방패도 아니고 아래가 뾰족한 스타일이었으며, 운좋게 화염사자의 이마에 날카로운 부분이 박혔다.
캬악?!
화염사자는 날아오른 상태 그대로 나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하기에는 늦었고, 나는 두 팔을 벌려 화염사자를 받아냈다.
"크윽?!"
엄청난 무게에 깔려 죽을 것 같았지만, 나는 문신의 힘까지 동원해 화염사자를 전력으로 끌어안았다. 안면 한쪽이 함몰된 화염사자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나를 할퀴려 들었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빨리 화염사자를 끝장내버렸다.
우두둑!
화염사자의 목이 180도 돌아갔다. 한순간에 목뼈가 부러진 화염사자는 더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절명했고, 나는 뒤로 몸을 눕히며 화염사자의 몸을 받아냈다.
쿵!
엄청난 무게였지만 죽지는 않았다. 나는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 화염사자의 시체에서 빠져나왔다.
"무거워 죽겠네. 으휴."
"...이게 마지막인가요?"
"그래. 마지막이지. 보스 직전까지."
나는 악취가 짙은 철문의 앞에 퍼질러 앉았다. 그레모리와 륜도 함께 모여 옹기종기 앉았다.
"조금 쉬었다가 보스도 잡는다. 힘들어도...무조건 잡아야 해. 너희 둘이."
내가 탱커가 되고 그레모리와 륜이 딜러로서 싸운다. 다른 모두를 배제하고 둘을 데려온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진화해야지?"
그레모리와 륜.
진화가능한 레벨까지, 앞으로 1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