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247화 (247/800)

# 247

우리는 할파스 군단의 3파를 모두 막아냈다.

잡병 혼종 부대.

푸르카스의 페일 라이더.

샥스의 코카트리스.

위기는 분명히 있었고, 가히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나, 우리는 어쨌든 승리했다.

잡병 혼종 부대는 모두 궤멸시켰고,

페일 라이더들은 무사히 격퇴함과 동시에 잔존 병력들까지 완전히 때려잡았으며,

마지막에는 코카트리스 부대를 모두 궤멸시키고 샥스를 손에 넣었다.

더욱이 그레모리 던전에도 승전보가 울렸다.

나보다는 윗전이기는 하지만 그레모리에게 하극상을 벌인 아미는 그레모리의 용병술과 신성력의 힘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만약 이것이 오늘까지의 모든 전투의 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할파스 군단과의 초전을 완벽하게 막아낸 셈이었다.

"쫄려서 죽는 줄 알았네."

"아직 완벽하게 끝난 건 아닙니다. 적의 후속이 있는지 살펴봐야합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생각이 있다. 그레모리, 일단 너희 쪽부터 정리하자."

우리쪽 던전은 지하 1층이라는 방파제가 있는 만큼 여유가 있었다. 세 번을 막아내고 나니 더 여유가 있었다. 그러므로 후방이나 다름없는 그레모리 쪽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수비 병력은 지금으로 충분하냐?"

"이쪽은 아미가 싹다 불었어. 아미 던전에서 더이상 넘어올 놈이 없기는 한데...던전에 남들이 침입할 수 있는 포털이 열려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단 말이야. 어떻게 할 거니?"

"아미의 군대는 없다라...."

나는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설령 누가 오더라도 갤러해드가 있으니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갤러해드는 계속 아미의 옆을 지키고 있는다. 그레모리, 너도 계속 네 던전을 지키도록 해라. 지금 있는 병력들은 계속 네 던전의 상비군으로 사용하겠다."

"하지만 오크들은 또 여차하면 동원할 거 아니야?"

"필요하면 해야하겠지.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포털이 양방향으로 변할 때 까지 수성만 할 거니까."

"흠, 그래?"

워낙 수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말을 못하기는 했지만, 역시 할파스 군단을 상대로 무작정 공격을 들어가는 건 상책이 아니었다.

'샥스가 약한 녀석일 수 있으니까.'

자고로 방심과 오만은 패배의 지름길이다. 내가 적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대를 무조건 나보다 강자로 가정했기 때문이며,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고자 갖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파스 군단은 아직까지 우리보다 강하다고 가정을 해야하며, 샥스로부터 정보를 최대한 뽑아내야했다.

꼬르륵.

뭔가 움직이려하기가 무섭게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생각해보면 자정부터 지금까지 아무 것도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쉬지도 못했다.

"...이제 안 오겠지?"

"그렇죠. 샥스는 자기 뒤로 더 없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말이야, 샥스가 패배한 걸 알아챌 방법이 있을까?"

"인연 소환에 코카트리스 부대가 전부 등록된 것을 확인한다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할파스도 쉽사리 추가 병력을 파견하지는 못 할 겁니다. 샥스 빼고 다 죽었다는 건 샥스가 인질이 되었다는 방증이니까요."

"그렇겠지? 섣불리 공격하러 오지는 않겠지? 오늘은 쉴 수 있겠지?"

쉬어야 했다. 륜의 피치에이드를 마시든, 루나의 젖무덤에 머리를 파묻든, 아니면 꿈속에서 다시 사이단의 품에서 잠이 들든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왕 쉬는 거라면 전투로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샤이탄. 지하 1층에 있는 코카트리스들은 다 제거했지?"

"예. 구울화 된 35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말씀하신대로 한 곳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래...."

생각나는 것은 코카트리스 삼계탕이지만 내장을 제거하는 것도 문제고 물웅덩이도 문제다. 강물을 끓이기에는 피가 너무 많이 고여있었고, 또 샥스가 토해내듯 쏟아낸 강물이라 찝찝한 감이 있었다.

'포상이라고 봐야하나.'

실제로 강물을 토해낸 것은 아니겠지만, 보이는 비쥬얼이 그러했다. 아무리 그래도 물웅덩이에다가 끓이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장을 제거하기는 귀찮고.'

어느 세월에 코카트리스의 배를 갈라 내장을 뽑아내거 제거한단 말인가. 구울이나 슬라임들은 좋다고 먹어치우겠지만, 당장 배를 채우기에는 손질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하는 수 없지. 샤이탄, 그레모리, 전투에 나서지 않은 목장의 오크들을 모아다오. 각자 톱이든 칼이든 썰 도축할 날붙이 하나를 지참하여 이곳으로 불러라."

"피곤해보이시는데 굳이 지금 손질을...?"

"어. 손질까지는 안 할 거야. 먹을 것만 잘라낼 거다."

나는 다리를 손으로 휘휘 저었다.

"오늘만 좀 소스없이 윙봉 직화구이로 가자."

바야흐로 뒤틀린 황천의 코카트리스 윙봉 구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군단 최고의 영양 간식의 탄생이었다.

* * *

으적. 으적.

샥스는 귀를 거슬리게하는 음식 씹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의식은 몽롱하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금방 파악했다.

'젠장, 젠장.'

샥스는 눈물이 핑 돌았다. 강물을 소환해 불꽃 함정을 파훼하고 채워진 강물을 건넌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나 코카트리스 부대를 완벽하게 운용하지 못했다는 것에 샥스는 억울하고 분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런 굴욕은 겪지 않아도 될텐데.'

하지만 샥스는 이미 패배했고, 오크는 온갖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강제로 범했다. 종이 다르다는 건 오크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자신은 꼴사납게도 오크에게 박혀 신음을 터뜨렸다.

'자진할까.'

할파스의 인연소환으로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다면 기억은 남아도 더럽혀진 몸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친딸이니 할파스의 성정에 대해 더 잘 알고있다. 말은 그럴듯하게 기운을 북돋아주지만, 할파스의 본심에 깔린 패배자에 대한 무시와 혐오는 샥스에게 있어 크나큰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잘못하면 인연 소환이 되지 않을지도 몰라.'

죽더라도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제로라는 얘기였다. 샥스는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야, 야. 깼냐? 뭐 좀 물어보자."

그리고 샥스는 자신이 가두어진 감옥에 들어오는 자의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입에서 비린 피맛이 났고, 샥스는 묶여있다는 것조차 까먹고 들어온 이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이 개새끼!"

절그럭!

샥스의 다리에는 통짜 무쇠로 이루어진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제서야 샥스는 자신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

샥스는 벽에 기대듯 앉혀져, 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려진 채, 두 다리를 좌우로 활짝 벌리고 있었다. 마치 닳고 닳은 창녀가 남자를 애원하는 듯한 자세에 샥스는 얼굴이 벌게졌다.

"내 부모가 인간인지 오크인지도 모르는데 개새끼라니 말이 심하네. 이 할파스 새끼야."

오크는 샥스의 욕을 더한 욕으로 받아치며 그릇을 내려놓았다. 샥스의 앞에는 하얀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정체불명의 고기가 놓여있었다.

"먹고 뒤진 밴시가 때깔도 곱다는 말이 있다. 일단 처먹어.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오크는 샥스의 손목 족쇄에 연결된 사슬을 잡아당겼다. 샥스의 고개가 아래로 쭉 내려갔고, 샥스는 그릇을 향해 새가 모이를 쪼듯 고개를 숙여야했다.

"...이러고 먹으라고?"

"물론. 조류는 다 이렇게 쪼아먹는 거 아닌가?"

"......나는 조인이야. 엄연히 아인종이라고."

"그래? 그래도 반은 새라는 거 아니냐. 안 먹겠다고 말 안 하는 거 봐서는 먹겠다는 거네. 일단 먹어라."

"......."

오크의 말대로 샥스는 몹시 배가고팠다. 자신을 범한 상대에게 자비를 받는 것에 샥스는 굴욕감에 다시 전신이 떨렸지만, 그래도 가슴과 배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혀를 살짝 소스에 대었다.

"......할짝."

샥스는 씹기 좋게 잘려진 고기를 한 점 낼름 삼켰다. 아무 망설임 없이 소스가 묻은 고기를 먹어치운 샥스의 행동에 오크가 더 어안벙벙해졌다.

"......맛있냐?"

"나름."

"독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오크들에게 돌림빵으로 간살당할 바에는 차라리 적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게 차라리 낫지."

샥스의 표독스러운 눈빛에 오크는 심드렁하게 볼을 긁적이며 샥스와 마주앉았다.

"정보를 원한다."

"나를 능욕하지 않으면 정보를 줄게."

"...대화의 흐름이 빨라서 좋은데, 너무 중간 과정이 없는 거 아니냐?"

"나는 머리가 좋은 녀석이거든."

샥스는 고개를 들어 오크를 비웃었다. 이미 오크의 성정에 대해서는 지금 나눈 짧은 몇 마디로도 충분했다.

"내게서 우리 군단의 정보를 캐낼 생각이지? ...나를 범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넘겨줄게. 설령 휴전을 맺게 되어 본진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 던전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할게."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럼 씨발 너새끼한테 따먹힌 걸 방방곡곡 알리라는 거야? 아이고, 샥스 아가씨! 어쩌다 오크같은 돼지 새끼한테 깔려서 앙앙거리셨나요!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고 따져야 하는 건 난데?"

"네가 그 말을 할 줄 알아서 그렇게 얘기한 거야. ...내가 넘길 정보는 우리 군단에 대한 모든 것이야."

"그만큼 나한테 먹히는 게 싫다는 건데...아쉽네."

오크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생각보다 맛있었는데."

"...지금 누구 얘기를 하는 거야?"

"너."

"......."

샥스는 침을 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저질렀다가 오크가 눈이 돌아가서 또 자신을 능욕할 수 있었다. 오크에게 깔려 비명을 지르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음...너 혹시 싸우지도 못하고 발린 것 때문에 억울하냐?"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싸움이냐?"

"침대 위에서 남녀가 싸우는 거지 뭐.... 그 때는 침대가 던전 땅이 되었을 뿐. 그럼 좋아. 내기를 하도록 하지."

오크는 샥스에게 거절하지 못할 달콤한 제안을 했다.

"우리 던전의 엘프와 1:1로 싸워서 이기면 나흘동안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으마. 그리고 포털 방향이 바뀌는 즉시 본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 어떠냐?"

"......만약에 내가 지면?"

"이겼을 때의 상황을 되묻지 않고 만약을 가정한다? 불안한가보군. 걱정마라. 엘프는 나의 부하이니. 무기도 들지 않고 손으로만 상대할 예정이니라."

"뭐? 푸흡, 좋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샥스는 자신감이 넘쳤다. 오크는 사슬을 잡아당기며 샥스의 고개를 강제로 들어올리게 만들었다.

"대신 네가 패배하면 너는 나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생각할 시간을 잠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샥스가 오크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는 자신이 엘프를 상대로 어떻게 이길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고, 오크는 샥스의 행동에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았다.

'내가 이겨.'

역시 이길 수 있다. 인형탈이 없어져서 방어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샥스는 승리를 장담했다. 마나만 조금만 더 회복한다면 샥스는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그럼 나와."

까득, 까득!

오크는 족쇄를 발로 짖이기는 걸로 샥스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미 샥스가 대화하는 도중에 마법을 이용해 족쇄를 파괴한 걸 진작에 눈치챈 얼굴이었다.

'이길 수 있겠지?'

샥스는 괜히 불안해졌다. 무조건 이길 수 있겠지만, 지면 노예가 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샥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노예가 되면 분명 그 짓도 시킬 거야.'

그냥 진짜로 자진할까. 아무리 할파스라도 딸이 죽었는데 부활을 안 시켜주지는 않을 것 아닌가. 샥스는 자신에게 놓인 처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죽으면 다시 부활을 장담할 수 없다.

살아 있으면 오크에게 계속 능욕당할 것이다.

그러니 샥스가 존엄성을 유지하고 살려면 엘프를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누구든 와봐! 내가 무릎꿇려줄테니까!"

"어, 그래. 루나야!"

"불렀어?"

샥스는 압도적인 크기에 절망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나타난 다크엘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다크 엘프잖아!"

"엇차, 루나야. 잠깐 바깥 공기 좀 쐬러 갈까?"

"그래."

중천을 넘어간 햇빛이 반짝이는 던전 밖.

"짜잔, 엘프 등장!"

샥스는 하얗게 변한 노출증 엘프의 모습에 기절할 뻔 했고, 예고도 없이 찾아온 주먹질에 기절했다.

========== 작품 후기 ==========

연재가 느린 이유는 다른게 아니구요, 연말이라 생업이 좀 바쁩니다.

아마도 12월 4주 즈음은 되어야 다시 2편씩 올릴 수 있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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