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푸르카스의 대가리를 던지는 걸 보고 나는 직감했다. 아, 저 것도 상당히 제정신은 아니구나. 할파스 군단의 간부급 놈들은 다 저런 성향일까 싶었다.
침착, 냉철, 그리고 잔혹.
'펭귄이 장난 아니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대의 던전에 함정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침착함을 가지고 있었고, 륜의 후방교란에 얼타지 않고 곧장 벽을 부수며 진격하는 냉철함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소름돋는 건 엄연히 아직 전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푸르카스의 대가리를 뽑아다가 함정 확인 용으로 던져버린 잔혹함이었다.
"야. 너는 네 부하가 불쌍하지도 않냐?"
"어차피 머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부활하게 되어있어. 지금 만신창이 된 거 생각하면, 너희 던전 다 박살내고 나오는 마석으로 새로 부활시키는 편이 나아."
"죽이고 다시 되살리겠다고? 잔인한 소리를 하네."
"너는 그러지 않나봐?"
떠보는 것인가, 아니면 알아챈 것인가. 나는 슬쩍 내 옆에 선 오크들을 눈으로 흘겼다.
"......."
오크들은 모두 안드라스 실로 엮어낸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고, 나와 다른 오크들의 차이는 별반 없었다. 나는 그저 정예 오크 간부 A를 연기하고자 했지만, 펭귄은 내가 던전 주인임을 눈치챈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말을 돌렸다.
"...나라면 그렇게 안 하겠지?"
"그래. 우리 군단장님도 그런 때가 한 때는 있었지. 하지만 너도 결국에는 타협을 하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퍼억.
펭귄은 푸르카스의 시체마를 노란 발로 걷어찼다. 시체마는 저항할 새도 없이 지옥구덩이를 향해 빠졌다. 족히 5m 가까이 되는 깊이의 불구덩이에 빠진 시체마는 소각장에서 나는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더이상 전력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된다면, 이렇게 죽었다가 나중에 다시 부활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거야. 던전 주인으로서 기본일텐데?"
"세상 어느 누가 그런 걸 기본이라고 하더냐."
던전 주인으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지론이었다.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구덩이로 빠지는 절벽의 앞에 섰다.
"부활이 가능하기에 병력을 갈아넣는다? 그거야말로 진짜 개소리지. 인연 소환이 있는 이유는 행여나 전투 중에 사망한 부하가 있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원코인 같은 거라고. 부활할 수 있으니까 멋대로 갈아넣어도 좋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야. 선후관계가 잘못 됐어."
"하지만 효율 만큼은 너도 인정할 걸? 얼마나 편해? 다른 병력들 수십 수백을 기를 필요 없이, 정예로 딱 10명만 육성하면 되는 거잖아. 관리도 육성도 쉽고, 설령 죽어도 부활시키면 끝. 얼마나 편해?"
"부하 키우는 거에 편리를 논해?"
"그럼 편리하게 키워야지."
직감했다. 륜의 증언에 따라 맛있어보이는,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자라고 할지라도 정신상태가 바르지 못하다면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 나의 교정용 스틱으로 정신을 올곧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증명하는 수밖에 없겠군. 나의 방식이 옳다는 것에. 우리 군단의 최정예, 오크들의 분노를 맛보거라."
"어머, 개고생을 하면서 부하들을 키우셨나봐? 그런데 어쩌지? 우리 쪽 애들이 더 강해보이는데. 코카트리스 하나당 적어도 세 번은 죽었을 걸?"
"흥. 이 구덩이도 넘어오지 못할 닭대가리들이 아무리 많아봐야 의미가 있나."
"너 엄청 짜증나게 말하는 구나?"
펭귄은 부리를 위아래로 열고 안에 손부채질을 했다. 아래에서 불특정한 순간마다 타오르는 불기둥에 절로 제2 요격실의 공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으, 더워."
"더우면 벗지 그래?"
"싫은데? 너희 들이나 벗어. 칙칙하게 시꺼먼 로브 뒤집어 쓰고 지금 뭐하는 짓이야? 보는 사람 답답하고 덥게 만들고 있어."
"우리는 시원한 걸? 흐흐."
로브의 아래에는 스타킹 한 겹만 입었으니 더울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불구덩이 지옥을 만들 때부터 저 안에서 싸워야할지도 모르는 오크들이 입을 갑옷으로 안드라스 아머 이외에는 다른 방어구는 상정을 하지 않았다.
"흥, 그래? 진짜로 시원하게 만들어 주지."
펭귄은 바닥에 네 발로 엎드렸다. 그리고는 부리를 구멍 아래로 밀어넣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가 싶은 순간.
"우웁."
펭귄의 부리가 번쩍 열렸다. 그리고 펭귄의 부리 안에서 무언가가 빛무리가 튀어나왔다. 나로서는 인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우리 군단에는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존재가 한 둘이 아니었다.
"륜!"
"뭔가...일어나려고 해요! 부리에서 마나가 엄청나게 몰아치고 있어요!"
뭔가 펭귄이 부리에 수작을 부렸는 건 직감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거리가 너무 멀기도 했고, 유일한 원거리 공격수단인 륜의 바람화살은 현재 사용이 불가능했다.
'젠장, 이런 제약이 있을 줄이야.'
바함 화살의 형태를 고정하려면 정령의 도움을 받거나 주변이 안정되어있어야하는데, 지옥구덩이에서 뿜어져나오는 플레어 판테라의 불덩이 때문에 륜은 바람 화살을 고정하지 못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억지로라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지옥구덩이에 타오르는 불꽃은 어지간한 수위를 훨씬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그럴 것 없다. 전장이 이렇게 된 게 네 탓은 아니다."
나는 륜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옥구덩이는 내가 계획한 함정이었다. 륜이 이 함정에서 활약하지 못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나다.
'뒷 라인으로 물리면 활약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륜이 나설 것도 없이, 플레어 판테라로도 적의 진격을 충분히 막아세울 수 있었다. 펭귄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적은 쉽게 넘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웨에에에엑!!"
엄청난 소리와 함께, 펭귄의 부리에서 막대한 양의 물줄기가 뿜어져내렸다.
콸콸콸콸---
넓은 부리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둘레는 내가 양 팔을 벌려 간신히 감싸안겠다 싶을 정도로 두꺼웠다. 심지어 물줄기는 한 두 번 나오는 걸로 그치지 않았다.
"뭐...야?"
"강물의 물을 소환하는 마법이지. 우웁, 우웨에에엑."
펭귄은 물을 토해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다. 역시 안에 사람이 따로 있는 듯 했지만, 어째서 왜 하필이면 물을 배출하는게 토해내는 방식일까.
'물대포면 거의 끝장이었겠는데.'
치이이익!!
막대한 물이 불꽃에 닿으니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던전은 한증막처럼 되어버렸고, 우리 군단이 입은 로브는 조금씩 축축하게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스타킹 아머는 단순히 물에 젖는다고 파괴되거나 약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습기가 짙어질수록 물기를 머금은 만큼 몸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스타킹 아머 뿐만이 아니었다.
콸콸콸콸---!!
"뭐 그렇게 많이 토해내는 거야?!"
"강물을 소환하는 마법이니까! 구우에에엑!"
펭귄은 한 번 더 강물을 토해냈다. 댐의 물을 방류하는 듯한 모습과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바닥의 모습에 나는 오한이 들었다.
"물이...차오른다고?"
"구웨에에엑!"
점점 바닥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분명 플레어 판테라들이 불을 쏘기 위해 구멍을 수 도 없이 만들어놓았는데 어째서 물이 빠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님, 저기요!"
"...얼음?"
나는 륜이 가리킨 곳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플레어 판테라들이 구멍 너머에서 열심히 불을 뿜어대고 있었지만, 벽은 결계라도 펼쳐진 것마냥 불꽃이 전혀 통과하지 못했다.
"얼음으로 구멍을 메운건가!"
"눈치 빠르네! 우웁, 우엑!"
콸콸콸콸.
벌써부터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게 아니라, 점점 수면이 위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덩이의 깊이는 7m. 강물을 통해 구멍을 메우기. 빙결 능력도 사용 가능한 적.
가만히 놔두면 구덩이 전체를 다 물로 채운 다음, 그 위를 빙판으로 얼려서 넘어올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젠장, 원거리 사격 개시!"
짱돌을 든 오크들이 펭귄을 향해 집중적으로 돌팔매를 날렸다. 스타킹 안에 들어간 가고일 조각은 포물선을 그리며 펭귄의 몸을 저격했다.
"끼이이익!"
하지만 코카트리스들의 반격에 돌팔매는 맥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말았다. 요격당했다. 코카트리스들은 날개를 펼치며 펭귄의 몸 위로 떨어지는 돌팔매를 전부 쳐냈다.
"끼익, 끼이익!"
퍼어억.
펭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기던 코카트리스의 눈에 눈 먼 돌팔매 하나가 박혔다. 코카트리스는 의식을 잃은 듯 휘청거리다가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됐다! 이제 쉽사리...."
콸콸콸콸콸!
펭귄의 입에서는 더 많은 양의 강물이 쏟아져나왔다.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펭귄은 입을 더 벌리며 방금 전보다 수 배의 강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부하가 지금 빠졌는데 안 건지고 뭐하냐!"
"괜찮아! 마석으로 살리면 돼!"
"이런 미친?!"
바닥에 처박혀 옆으로 누운 코카트리스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위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코카트리스의 날개 사이에 숨은 펭귄을 저격할 방법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계속 날려! 계속!"
오크들은 내 지시에 따라 미리 준비해둔 돌팔매를 투척했다. 륜도 힘겹게나마 바람 화살을 하나 둘 만들어 코카트리스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끼이익!
그리 많은 데미지를 줄 수는 없었으나, 코카트리스들은 하나 둘 웅덩이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물위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는 코카트리스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수위가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젠장!"
죽거나 다친 코카트리스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부피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상하리만큼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엄청 빨랐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진짜로 물이 꽉 차오를 것만 같았다.
'넘어 오겠지?'
다친 코카트리스들은 강 위의 오리배마냥 둥둥 떠다니며 날개를 퍼드득거리고 있었다. 주변에 기포가 둥둥 떠오르기 시작하는게 수면 아래의 발을 열심히 움직이는 듯 했다.
"랜슬롯, 너희 부대는 아래에 빠진 놈들을 저격해!"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랜슬롯의 부하들은 차오르는 수면을 향해 돌팔매를 날렸다. 코카트리스의 머리와 몸통에서 붉은 피가 튀었고, 펭귄이 토해낸 강물은 금방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씨발, 꼭 냄비에 닭 삶는 것 같네."
펭귄이 만든 얼음벽에 플레어 판테라들은 연신 불꽃을 뿜어내도 있었다. 강물이 계속 투입되지 않고 그대로 계속 있었다면 냄비의 물이 끓듯이 증발하게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진짜 코카트리스 튀겨가지고 치킨 뜯는다."
더이상 수위가 올라오면 위험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전방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야! 절벽!"
"쿠웨엑, 쿠흡, 크흡!"
강물이 쏟아지던 게 멈췄다. 펭귄은 기침을 하며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흐리멍텅한 눈빛에는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솔직히 얘기해라! 몸매에 자신이 없으니까 인형탈 쓰고 있는 거지!!"
"아니야!"
펭귄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 법. 나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륜을 끌어당겼다.
"흐하하! 륜에게 열폭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군!"
나는 륜의 봉긋한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펭귄을 도발했다. 펭귄은 팔을 부들부들 떨며 부리를 딱딱거리기 시작했다.
"상냥함이 부족하니까 부하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 거지!"
"병력 운용의 효율성이랑 가슴이랑은 상관없잖아?!"
"나는 상냥함이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우웨에에에엑!!"
펭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격렬히 강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나를 향해 치켜뜬게, 나와 입씨름을 하느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우리쪽으로 넘어와 우리를 공격하겠다는 생각인 듯 보였다.
쏴아아아아아-----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이전보다 더 빨라졌다. 펭귄은 아예 바닥에 누워 부리 쪽만 바닥에 놓은 채 강물을 토해냈다. 어느덧 수위는 대략 5m 가량. 수면에 떠오른 불탄 두개골이 나를 섬짓하게 만들었다.
"구우, 우엑, 코카트리스---!!"
펭귄은 비명을 지리듯 소리쳤다.
"도하---!!"
끼요오오오오옷!!
2m짜리 수탉들이 미지근한 웅덩이를 향해 모두 날개를 펼치며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펭귄 A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