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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39화 (239/800)

# 239

"다 왔다!"

펭귄은 아주 여유로운 걸음으로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펭귄의 뒤에는 느긋한 진격에도 아무 불평불만이 없는 코카트리스들이 펭귄의 발자국을 뒤따르고 있었다. 현재 할파스 군단에서 불만이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아마도 펭귄의 옆에서 힘겹게 따라붙고있는 푸르카스 정도가 끝일 것이다.

"공주님...너무 느린 거 아닙니까?"

아무리 시체마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해도 자신이 전력으로 달리면 금방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걸 몇 배는 느린 속도로 걸었으니, 페일 라이더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펭귄은 펭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뭐? 느리면 뭐 어때. 어차피 함정 살피느라 빨리 갈 수도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함정은 하나도 안 나왔잖습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하나라도 나왔으면 어쩔 뻔 했어? 만약에 빨리 달리다가 밑에 줄이라도 걸려있었으면? 30분 만에 지옥구덩이를 만들었다고 했잖아? 그럼 그 동안 함정 하나 없겠어?"

펭귄의 지적은 적절했다. 적은 함정을 만드는게 전문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함정 제작에 기이할 정도로 신속함을 보였다. 아예 함정을 만드는 팀이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말이야, 지금 위아래로 움직이는 거 안 느껴져?"

"아래는 그렇다치고...위요?"

"그래."

쿵! 펭귄은 발을 들어올려 바닥을 크게 내리찍었다. 아래에서 '커흑'하는 소리와 함께 숨 넘어가는 소리가 분명히 울렸다. 펭귄은 팔을 으쓱이며 보란듯이 부리를 딱딱 부딪혔다.

"저기 위에 한 번 낫으로 찔러봐. 음...저기."

펭귄이 천장을 향해 부리를 벌렸다. 입안에서 쏘아진 작은 물줄기는 천장을 저격했고, 푸르카스는 바로 저격한 위치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푸---욱!!

낫에 슬라임의 체액으로 보이는 듯한 물질이 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푸르카스는 전혀 눈치재지 못했던 것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건 대체...."

"분명히 위아래로 기어다니면서 계속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너도 얘기했잖아. 두번째 공동에 들어갔더니 바닥 함정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고. 그러면 바닥에 무슨 수작을 해둔게 아니겠어? 천장까지 뭔가 해놓은 건 확실히 과하다 싶지만."

타다닥!

푸르카스의 발바닥에는 짧은 진동이 느껴졌다. 펭귄의 말대로 분명히 무언가가 아래에서 달려나가고 있었다. 푸르카스는 그걸 눈치챈 펭귄의 기감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감이야. 뭔지는 모르겠으니 쉽게 건드리지는 못하겠는데...뭐 어때? 나와봤자 슬라임, 나와봤자 뭐 고블린 정도겠지. 다음에도 튀어나오면 죽여버려. 그러면 끝이잖니."

따닥, 따닥! 코카트리스들은 부리를 부딪히며 펭귄의 말에 동조했다. 어떤 적이 튀어나오든 코카트리스로서는 부리로 쪼아버리거나 발톱으로 잡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특히 흙바닥을 기어다니는 샌드웜같은 놈들을 잡아먹는 건 코카트리스의 주특기였다.

"그것보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인간 냄새는 안 나잖아. 슬라임이랑 짐승 냄새, 오크들 땀내만 지금 나고 있는 걸."

펭귄은 킁킁 소리를 내며 푸르카스의 무릎을 발로 걷어찼다. 본체가 아닌 시체마를 걷어찬 바람에 살짝 몸이 주저앉았고, 푸르카스는 턱뼈를 달달 떨며 고통을 감내했다.

"분명히 인간들이 적이었습니다...."

"그래? 킁킁, 살아있는 인간 냄새는 커녕 마물들 냄새밖에 나지 않는 걸. 습한 건 슬라임같고, 뜨거운 건...모르겠네. 에이, 여기 왜 이렇게 더워? 이러다 쪄죽겠다."

펭귄은 다시 부리를 열고 안을 향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빨리 점령하고 입구 뚫어버린 다음 밖에 나가서 좀 쉬자. 여기 계속 있다가는 뜨끈하게 익어버릴 것 같...뭐야?"

길이 막혀있었다. 펭귄은 전방을 한참동안 주시하다가 푸르카스에게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펭귄은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너!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펭귄이 가리킨 곳에는 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푸르카스가 알린 지도 상으로는 분명 길이어야했건만, 반듯하게 생긴 벽이 막다른 길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원래는 뚫려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럼 적이 방금 벽을 쌓았다는 거야? 장난해? 6시간 만에 이런 깔끔한 벽이 만들어질 리가 없잖아?"

펭귄은 벽을 발로 툭툭 걷어차며 성질을 부렸다. 상식적으로 통로 전체를 에워싸는 벽이 칼로 벤 것 마냥, 그 짧은 시간에 이리도 깔끔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그럼 뭐야. 포털로 누가 들어올 때마다 던전이 바뀌기라도 한다니? 아까랑은 다른 곳이다? 너 혹시 뒤에 있는 곳도 거짓말 한 거 아냐? 다른 통로 발견 못했다거나."

"아, 아닙니다! 하지만 던전이 바뀌었습니다! 분명 이 너머에 통로가 있을 겁니다! 적은 저희의 습격을 두려워해서 벽을 만든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증명해봐. 낫으로 벽을 파보든, 아니면 벽을 가로막는 장치를 발견하든."

펭귄은 팔짱을 끼며 물러섰다. 푸르카스는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낫을 높이 치켜들었다.

"끄아아악!!"

푸르카스는 기합과 함께 벽에 낫을 때려박았다. 낫은 곡괭이마냥 동굴 벽을 움푹 파고들었고, 푸르카스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환희하며 벽을 가리켰다.

"구멍입니다! 이건 벽이라고요!"

"흠...그래?"

펭귄은 한쪽 손을 조심스레 낫이 박힌 곳 위에 올렸다.

쪼르르.

펭귄의 손에서 흘러나온 투명한 액체가 낫을 타고 흘러내려가기 시작했다. 푸르카스는 낫자루가 갑자기 차가워진 것에 이가 달달 떨렸다. 스켈레톤이라 추위를 느낄 수 없음에도 뼈가 시릴 정도로 액체는 차가웠다.

툭, 투둑.

"어머, 진짜네? 미안."?

펭귄은 낫을 타고 흘러내려간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바로 사과했다. 푸르카스는 억울한 심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 분노가 펭귄이 아닌 안드라스와 망할 오크에게로 향했다.

'공주님이 오해할만 하지. 문제가 있다면 공주님을 오해하게 만든 그 오크 놈과 안드라스다.'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 이런 두터운 벽을 만들다니 몹시 괘씸했다. 낫의 길이가 조금만 더 짧았다면, 아마 진짜 그냥 벽인 줄 알고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푸르카스는 의욕을 불태우며 낫을 꽉 붙잡았다.

"공주님.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낫으로 파내서라도 길을 뚫겠습니다."

"굳이? 비켜. 구멍이 있으니 금방 끝날 거야."

푸르카스는 잽싸게 낫을 빼냈다. 펭귄은 푸르카스가 만든 구멍에 펭귄손을 집어넣었고, 다른 손으로는 부리를 열어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구멍에 박힌 펭귄의 손에서 막대한 물줄기가 흘러내려가기 시작했다. 흙파편이 물과 함께 튀어 옷에 묻는데도 펭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계속해서 배출했다.

"슬슬 다 스며들었나...?"

펭귄은 위아래를 살피며 손을 빼냈다. 통로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벽은 펭귄이 뿜어낸 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에잇."

펭귄이 두 손으로 벽을 때렸다. 벽은 삽시간에 얼어붙었고, 펭귄은 세 걸음 물러서며 얼음벽을 가리켰다.

"우리 지나갈 수 있게 잘라. 무너지지 않게 아치형으로. 알겠지?"

"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푸르카스는 낫을 들고 얼어붙은 벽을 반듯하게 잘라냈다. 펭귄과 코카트리스들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게 공간을 넓게 잘라냈다.

서걱, 서걱!

푸르카스는 낫을 교묘히 휘둘러 아치형의 문을 만들어냈다. 문의 두께는 거의 1m를 훌쩍 넘었지만, 이제 밀어내거나 파괴하면 다음 장소로 통하는 문이 보이게 될 것이다.

"히야앗!"

펭귄은 뒤뚱뒤뚱 걸으며 얼음벽을 발로 걷어찼다. 너무 아래를 때린 바람에 벽이 미끄러지며 펭귄의 머리를 덮쳤고, 펭귄은 잽싸게 벽을 손으로 잡아 뒷걸음질 치며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에이, 짜증나. 시작부터 뭐 하나 되는 일이...."

펭귄은 불과 세 걸음 앞에 나타난 나무벽에 할 말을 잃었다. 불안한 마음에 펭귄은 바닥에 쓰러진 문을 발로 밟고 올라가 나무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부숴진 나무판자 너머로, 또다시 동굴벽이 나타났다.

* * *

"아차, 가벽 해체하는 거 잊었다."

나는 던전 기믹의 구현을 위해 세워둔 가벽을 제거하는 것을 까먹었다.

"너무 급해서 슬라임들보고 판자 먹어치우라고 얘기하는 걸 까먹었네."

격벽 차단 기믹.

SF 영화 속에 나오는 것 마냥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슬라임들을 이용해 천장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그 기믹을 대체했다. 다행히 슬라임들은 라임의 공사법을 터득한 상태였고, 라임처럼 아주 얇은 두께는 불가능해도 1m 폭 정도의 두께로 격벽을 만들어내는 건 가능했다.

그리고 경사가 생기지 않게 나무판자로 가벽을 세웠었다. 천장이 무너지더라도 가벽에 부딪혀 범람하지 않도록.

"나무판자 있는 거 알면 계속 뚫으려할텐데."

임시로 만든 나무판자가 갑자기 벽에 나타난다면 적은 분명 당황하리라. 그리고 그것이 벽을 즉석에서 만들어낸 조잡한 수단임을 깨닫고 분노할지도 모른다. 가벽을 제거해야하기는 했는데, 슬라임들을 급히 다른 곳에 동원하느라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지금이라도 다 태워버릴까? 작은 불씨만 밑에 피워도 될 것 같은데."

격벽과 격벽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이면 산소가 적기는 해도 금방 불타버릴 것이다. 아니면 불에 그을려서 적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다거나. 나는 샤이탄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냥 두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적은 지금 현재 동굴 벽을 얼리고 파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벽을 뚫으려면 아마 한참 걸릴 겁니다.]

"...그거 참 미안하네."

가벽만 일곱 개가 되는데. 그걸 전부 뚫으려고 하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쪽도 마찬가지기는 하지. 코카트리스 부대는 어떻게 됐냐?"

[지금 막 후미가 직선 통로에 완벽히 들어갔습니다. 상황을 눈치채고 돌아온다고 해도 아마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래? 그러면 완벽하게 처리해야지. 슬라임들을 보내. 예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퇴로를 차단하라고."

"네!"

륜은 번쩍 뛰어 천장의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현재 지하에 있는 병력 중 유일하게 륜만이 구멍을 오다닐 수 있는 체격이었고, 륜은 슬라임들을 데리고 천장 환풍구를 기어갔다.

'륜은 귀가 밝으니 적이 오는지 안 오는지 판단할 수 있을 거다.'

상당히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륜은 자신이 직접 가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슬라임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낫에 찔려 죽기는 했지만, 적이 없는 곳을 위주로 기어가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퇴로가 잘 막혀야할텐데."

적의 코카트리스 부대를 모두 죽여버리기 위해, 나는 과감히 직선 통로의 이점을 포기했다. 대신 지하 1층을 즉석에서 개조했다.

"하필이면 사지로 들어온 게 코카트리스라 유감이야. 한 500명 정도는 매장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디입니까. 저정도 크기면 죄다 3성은 할 겁니다. 실제 레벨은 갓 3성을 단 수준이겠지만요.]

"그렇지? 너무 욕심 부리면 안 되겠다. 좋아, 샤이탄. 혹시나 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라."

나는 제2 요격실의 땅을 파내려가는 오크들의 한가운데로 풀쩍 뛰어내렸다. 대략 4m 정도 되는 깊이였고, 오크들은 한참 땅을 파낸 흙더미를 전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살아남은 오크든 죽었다가 마석의 힘으로 다시 부활한 오크든 너나 할 것 없이, 그들은 모두 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여기가 코카트리스 무덤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잘 준비해야해. 불로 지져서 구워먹을 거거든."

코카트리스 들이 생긴대로 놀아주기를. 나는 오랜만에 치킨을 구워먹을 생각에 절로 군침이 흘렀다.

"잘 들어라! 이번 전투 끝나면 1인 1닭, 아니 1인 1코카트리스 하는 거다!"

...너무 커서 1인 1닭을 하기가 힘들면 분대별로 한 마리씩 먹으면 될 것이다.

* * *

"흥, 흥, 흥-"

륜은 바닥을 빠르게 기어가며 슬라임들을 제쳤다. 파후우가 발견한 던전의 법칙을 이용하여 적을 매몰시킨다는 계책을 위해, 륜은 직선 통로로 이어진 천장의 환풍구를 아주 조심스럽게 기어갔다.

"......."

전방에 죽은 슬라임이 눈에 보였다. 륜의 앞에 기어가던 슬라임들이 당황한 듯 몸을 떨었지만, 륜은 손을 뻗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복수해야지?"

꾸르륵.

슬라임들은 동료의 시신을 딛고 목적지까지 나아갔다. 륜 또한 코카트리스들에게 들키지 않게 천천히 환풍구를 기어갔다.

"킁킁, 어디서 향기로운 냄새 안 나?"

움찔.

코카트리스 부대를 절반 가까이 지나갔던 륜의 귀에, 펭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엘프 냄새인데...?"

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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